[그림에세이] 산책하는 마음(15)
그녀가 내게 돌려주고 간 핸드폰을 열어보곤 깜짝 놀랐다. 저기 진홍빛 진달래 꽃무더기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에게 달려가 제대로 인사를 건네고 싶을 만큼 고마웠다. 어쩌다 같은 길을 지나가던 낯선 그녀에게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을 뿐인데, 대체로 그런 부탁을 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사진 결과물이란 고만고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가 찍어준 몇 장의 사진은 뭔가 달랐다. 요즘은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많지만, 그녀의 사진에는 단번에 느껴지는 따뜻한 정성과 배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몇 해 전, 부천 원미산으로 나들이를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진달래동산’이라고도 불린다는데, 우리가 갔던 때도 봄이었지만 며칠 늦게 간 탓에 진달래는 이미 많이 져버려, 동산 전체를 물들이던 자홍빛 꽃물결은 볼 수 없었던 게 아쉬웠다. 내년엔 꼭 진달래가 활짝 핀 축제 때 다시 오자고 다짐했지만, 일상에 떠밀려 몇 년 동안 ‘진달래동산’이라는 이름조차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오랫동안 기다려온 반가운 소식이 마침 도착했고, 이토록 기쁜 날을 어디서 어떻게 축하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환하고 예쁜 봄꽃 나들이만 한 게 없겠다는 생각에 잊고 있던 진달래동산의 기억을 다시 불러냈다. 그리고 무턱대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올해는 꽃이 예년보다 한참 늦게 피는 바람에, 예전과 비슷한 시기에 갔음에도 3만여 그루의 진달래가 한창 절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갑작스럽게 나들이를 나선 탓에 셀카봉을 챙기지 못해, 우리 일행이 함께 사진을 찍으려면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거기에 뭔가를 부탁하는 건 더더욱 망설여지는 일이어서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다 함께 찍은 진달래 사진 하나 없이 집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싶던 찰나, 우리 앞을 지나가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 한 장만 찍어달라는 우리의 부탁에, 그녀는 선선히 내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더 나은 구도를 찾으려 애쓰며 우리를 찍어주었다. 심지어 우리가 다 같이 웃던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짧은 동영상으로도 남겨주었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 낯선 이들에게 이렇게까지 세심한 정성과 배려를 쏟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감동적이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누구 하나 상대의 사진을 대충 찍는 사람이 없었다.
“이쪽을 보세요.”
“고개를 조금 더 들어보세요.”
“거기보단 여기서 찍는 게 더 예쁘겠어요.”
이런 조언이 자연스럽게 오갔고, 사진을 찍는 이들도 상대가 더 멋지게 나오도록 자세와 위치를 바꾸며 기꺼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무슨 이유로 이토록 다들 정성스럽게 남의 사진을 찍어주는 걸까? 진홍빛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이 아름다운 풍경 때문일까? 모두가 고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또 찍어주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친절과 다정, 그리고 배려가 산뜻한 봄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서로를 향해 오가고 있었다.
사람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 봄꽃이 만발한 동산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에도 환하고 고운 진달래꽃이 피어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가슴 속에 따사로운 햇살이 퍼지고, 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싱그럽고 환한 꽃이 돋아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