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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르쥬 Oct 25. 2024

고양이 죽음 가까이서 마주했던 것들

별고나 2024년 10월 25일 금요일

갑작스러운 고양이의 죽음을 마주한 후 7개월이 훌쩍 지났는데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진짜 현실이 되어버리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많은 분들께서는 이렇게 까지 매주 글을 남기면서 신세 한탄할 정도의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나도 이와 같은 절망적인 일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다고 해도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죄책감과 상실감이 너무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머무르다 보니 우울한 감정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그만큼 뀨의 모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조용하던 다른 고양이와 달리 수다쟁이였고 항상 스킨십을 좋아하던 사교성 만렙의 고양이라서 그런지 그 아이가 주는 잔향은 상당히 오래간다. 찍어둔 뀨의 사진만 봐도 그 아이의 모습이 한 편의 애니메이션처럼 재생이 된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아이가 생후 2개월이 되고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모습부터 6살이 된 후 허망하게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날의 기억까지 마치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것이다. 남은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잠을 함께 잘 때도 그 아이와 이런 시간을 누리지 못한다는 게 가슴이 사무칠 정도로 고통스럽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죄책감과 상실감 그리고 우울한 감정은 금세 지나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실 이런 비극적인 일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와 같은 어이없는 일로 인해 갑자기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멀리서 보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안쓰럽거나 불쌍하다는 것 정도에 그치게 된다. 당사자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가족이 아닌 이상 그들의 감정을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너무나도 소중했던 반려동물과 이별을 하면서 그 누구도 삶에 있어서 본질적인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언제나 함께 하길 바랐던 집착으로 인해 내가 더 큰 고통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평소 15년, 20년 함께 해 주길 바랐던 만큼 그렇지 못한 상황이 오게 되니 더 크게 죄책감을 느낀 것이 아닐까... 영원하지 못하고 변하는 것에 집착했기에 그만큼 불안했었고 괴로움이 동반된 것 같다. 

인간에게 있어서 희망은 영혼을 밝히는 등불이라고 한다. '희망이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삶에 대한 전의는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나의 상태가 그러하다. 더 좋아질 것 같지 않고 지금의 상태보다 훨씬 더 최악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공포감을 느낄 지경이다. 심기일전을 하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봐도 그때가 지나면 원상복구가 된다. 마치 중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관성이 작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내 상태가 엉망진창이지만 참고 견디기 위해서는 결국 잃어버린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마음을 비우면 비울 수록 행복으로 가득 찰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처럼 직접 현실로 마주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감정에 속지 말고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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