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고전극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보통 셰익스피어의 고전극을 생각할 때 그 단면만 생각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막상 작품을 보다 보면
이 시대에 사람들의 다층적인 면을 이만큼 잘 다룬 작가가 있나 싶을 정도이다. 셰익스피어는 사람의
마음속 여러 겹으로 감추어져 있는 내면적 갈등을 누구보다 잘 파악했던 작가였다. 그래서 고전 읽기를 하다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제가 단순한 사랑이 아니고 베니스의 상인의 주제가 돈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가 던져주는 소재 안에는 누구나 속에 있을 법한 심리가 담겨있고, 셰익스피어는 그 틈새를 뼈아프게 찌르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 놀랍게도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돈과 사랑 그 어떤 것도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모습 그 자체이다.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은 돈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딸이 돈을 갖고 사랑의 도피를 했을 때, 그에게는 돈과 딸 어느 한쪽이라고 따질 수 없이 소중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돈에 관한 장면이 등장한다. 로미오가 가난한 약국 주인에게 독약을 사려할 때, 이런 실랑이가 벌어진다. 독약을 파면 법률상 사형에 처해진다고 말하는 약국주인에게 로미오는 많은 돈을 낼 테니 약을 팔라고 하면서,
“가난을 버리시오. ‘법률을 깨뜨리고 이 돈을 받으시오”라고 재촉한다.
약국 주인: 받기는 하겠소만, 이는 가난 때문이지, 나의 본의는 아니오
로미오: 돈을 주는 것은 당신의 가난에게 주는 것이지, 당신의 마음에 주는 것이 아니오
이에 약을 산 로미오는 말한다.
“자, 돈 받으시오. 이건 사람의 마음에는 독보다도 무서운 독이오. 이처럼 더러운 세상에서는 독보다도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 당신이 못 팔겠다던 이 따위 독하고는 비교조차 되지 않소.
독을 판 것은 나지, 당신이 판 것은 독이 아니요”
저자는 셰익스피어를 좋아했던 마르크스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인간은 그저 인간이고, 세계에 대한 인간관계는 인간적인 관계라고 전제하자. 그러면 당신은 사랑을 그저 사랑하고만, 신뢰를 그저 신뢰하고만 동등하게 교환할 수 있다”<경제학. 철학수고>
다시 말해 셰익스피어는 돈을 독이라고 생각했고, 독을 팔고 돈을 받는다는 부분은 작가의 일종의 절묘한 은유적인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돈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가치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인데, 돈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신뢰를 사는 세태를 비판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른바 로미오는 돈을 받고 사랑과 양심을 팔아버린 그 세대를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십 대에 불과한 그에게 죽음이란 기존 사회의 저항이었던 것. <햄릿> 역시 타락한 자기 가문에 대한 울부짖음과 동시에 왕족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었다. 목숨을 잃을까 봐 권력 앞에서 벌벌 떠는 현실 속 왕자는 영웅도 아니고 용사도 아니었던 것. 당시 민중들은 이런 돌려 까기에 대한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울분을 작품을 통해 울고 웃으면서 풀었다. 모두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사실 연극의 기능이자 사회적 역할이었다. 그랬던 것이다.
사진출처: 클립아트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