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여행기를 떠나며

-열하일기 인트로덕션-

by Who am I

코로나 시대로 여행의 즐거움을 잃었다. 어차피 해외여행이 비싸서 못 간다 쳐도, 국내 여행은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지난 3년은 그 상상마저 져버리게 했다. 더운 여름휴가를 포기하고 집에 있을 때나, 화려하게 꽃피는 봄, 가을의 풍광, 겨울의 눈이 주는 갖가지 유혹을 뿌리치고 집에 수행하듯 있다 보면, 나 같은 집순이도 마음의 병이 절로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럴 때 내가 찾았던 것은 책 속의 여행기였다. 마치 장르문학에도 플롯이 있는 것처럼, 여행기도 형식이 존재하지만 그 안에는 작가의 개성이 담겨있어 소설보다도 읽기가 편하다. 특히 아주 먼 나라, 먼 시대의 낯선 인물들을 접하다 보면 소설 못지않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도 한다. 열하일기도 그중 하나였다. 사람들의 추천대로 돈키호테나, 빌 브라이슨, 걸리버 여행기, 하멜 표류기도 도전해보고 싶다.


단언하건대 여행기는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내가 여행기를 좋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이기 때문이고, 반대로 내가 필자가 된다면 대단한 관찰력과 센스를 가진 사람이어야 하며,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아야 한다. 낯선 환경에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말하고 감정 분출도 잘하는 능력은 기본이다. 예전에 읽었던 류시화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에는 작가가 여행 중에 겪었던 갖가지 수모를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었다. 제일 극악했던 것은 인도의 만원 버스에서 겪은 설사병이었다. 화장실도 없는 비포장 도로에서 터진 설사 덕분에 작가는 나무 하나 없는 곳에서 볼일 볼 수밖에 없었다고. 또 그 장면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인도 사람들의 그 많은 눈. 어쨌든 돌아와 버스를 다시 타고 출발한 작가는 그 이후에 정신적으로 해탈하신 듯하다. 늘 그렇듯 여행기에는 사실 같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유튜브 브이로그와는 다른 맛인데 더 리얼하다.

88faef4c4e8e9031807960e0bee83bf7d928dd2ff506e73369878e3cc7e82930bfb790af45a74719d3192e5e923b28af60d2bc639cba91090cbe3b4e48193071a75da9fe9a0c7e7d70f90497655f5a005f7ccb3625194b0c865de7d9cebe046df28323e6706eb45.jpeg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있는 그대로 모습을 다룬 것이 아니다. 그림 속에는 인물의 특징을 강조한 키워드가 있다. 이 그림속의 박지원은 눈이 굉장히 날카롭다. 관찰력을 말한 것 아닐까


18세기 박지원의 중국 여행을 담은 <열하일기>도 읽다 보면 생각보다 먹고 싸는 이야기가 많다. 때로는 고상한 담론도 이야기하고, 문명과 기술의 발전도 이야기하고,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도 많지만, 무엇보다 여행 기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일기의 형식이 있고 그 내용 중에는 여행 중 배탈 이야기, 소화가 안돼서 고생한 이야기, 술 마신 이야기, 도박한 이야기, 심심해서 시간 때운 이야기, 시시껄렁한 농담, 코를 골며 잔 이야기, 다른 사람에 대한 흉 등 입안의 밥알이 벌 때같이 튀어나올(작가의 표현을 빌면) 갖가지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많다.( 작가는 물론 여기에도 여러 가지 장치를 해놓긴 했다. 떠도는 이야기라 하고 호질과 연관시키는 것을 보면) 물론 내가 처음 이 책을 강의한 선생님으로부터 소개받았을 때는 이런 부분보다는 고상한 부분을 소개받아서였지만, 실제로 원본을 읽다 보면 오히려 이런 인간적인 이야기들에 더 끌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내가 작가의 포인트를 못 잡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인 건 몇백 년 전의 박지원이 왕이나 누구에 대한 칭송도 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부인을 보고 싶다거나, 자식이 그립다거나 부모 형제를 보고 싶다거나 이런 부분도 거의 없다. 있긴 해도 아주 적은 편.

따라서 그는 기존 유교에서 강조하는 군신관계나, 부모 자식 간의 윤리에서 자유로웠던 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었다. 그런 사람이 너무 많았던 시대에 한 명쯤은 벗어날 필요도 있지 않은가. 아니면 그 당시 조선에서도 남자들은 집 떠나면 집 생각을 잘 안 하는 편이었던 건가. 여행 중 시간이 나면 술 마시고 돈 따기 놀이도 하지만 집이 그리워 편지 썼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건 작가가 가진 기본적인 외향성에 감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향수병? 먹는 건가요?


어떤 분의 여행기를 읽다가, 오래간만에 해외여행을 갔는데 하루 만에 집에 가고 싶어 울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속으로 왜?를 외쳤는데, 막상 지난날을 돌아보니 어딘가 패키지로 여행을 갔던 시절 가이드가 내리라고 하면, 그냥 버스에서 좀 쉴게요 하고 잤던 내 모습도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여행만 떠나면 왜 그렇게 집이 가고 싶은지. 돈 내고 오기 전까지는 여행지가 1순위였는데, 막상 떠나고 나니 가고 싶은 곳이 집이 되는 건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고작 길어봐야 5일인 여행에.


교통 수답이 없던 시대 중국으로 조선 사신단이 여행을 간다는 건 기본 6개월을 작정하고 떠나는 일이었다. 말이나 도보, 배 이 정도가 교통수단이었으니, 체력이 안되면 현지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식당이나 숙소가 없는 곳에서는 노숙도 해야 했고, 청나라 황제의 스케줄에 맞춰서 도달하지 못하면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심지어 황궁에 도착했지만 황제는 휴가를 떠난 뒤였다. 사신단은 진영을 나눠서 한 팀은 북경에 한 팀은 열하로 향하는데 급하게 가는 그 일정에 겪은 일도 만만치 않았던 걸로 보인다. 황제가 사절단이 민가에서 숙식하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밥도 거의 먹지 못했고, 하인이 다쳐서 걷지도 못하는 것을 말에 붙들어 매고 가까스로 끌고 가는 장면도 나온다. 강을 건너다 넘쳐서 죽을 뻔한 적도 여러 번이고 자려고 누우면 벼룩이 많아서 잠도 못 잤다니 거의 이 정도면 정글의 법칙에 다녀온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여행 체질이신지, 그렇게 고생한 경험담에도 애정이 담겨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고생해서 집에 돌아오면 또 나가고 싶은 프로 여행자들의 그 마음인가.


또 한 가지 지금의 여행자들의 모습과 제일 겹쳤던 것은, "중국 몇 번 와 봤는데 볼 거 정말 없다"라고 외치는

조선 관리들의 모습이다. 나는 여기서 중국을 강조하고 싶지 않다. 중국이 아니라 어디든 마찬가지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막상 와보니 예전에 보고 들은 것 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재미가 없어서? 관광지가 별로라서? 물가도 비싸고 현지인들도 안 친절해서? 깨끗하지가 않아서? 이유는 많을 것이다. (그 당시 조선인들이 외부세계에 마음을 닫고 있었던 건 사실이기도 하다. 그들은 세상 어디를 가도 다 불편했을 것이다)

정말로 여행지가 별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 있다면, 볼 줄 아는 눈이 없어서 인지도 모르겠다고 자조할 것이다. 같은 것을 보아도 내 것으로 소화시킬 그런 능력이 나에게는 있는가? 그저 누군가가 유명하다고, 맛있다고 해서 와봤는데 '이곳이 나 랑 안 맞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고 끝날 것인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가?


박지원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본격적인 인지론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