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는 헛것이었다.

-익숙한 문화적 관점 너머-

by Who am I

이미 다가온 다문화 사회...


최근에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10년 후'라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10년 전 부산의 어느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취재한 후 그 후 10년 후 그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을까를 다룬 내용이었는데,

그 가운데 6학년 아이는, 러시아에서 이민을 온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10년 후 그 아이는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고 휴가 때는 집에 돌아와 엄마와 김치찌개를 먹는 평범한 한국인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의 아이는 파키스탄 출신이었는데, 성년이 된 후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말이 더 익숙한 이 아이는 막상 파키스탄 사회에 갔을 때, 또 다른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한국을 좋아하지만, 2세에게 한국 국적을 택할 것인지 아닌지를 한 번만이라도 물어봤더라면 좋지 않았겠냐는 말을 남겼다.

왜 갑자기 다큐 이야기를 하느냐고. 이 다큐는 사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다문화 한국사회의 이야기다. 사회 전반에 걸쳐, 지역사회의 곳곳까지도 주변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되지 못한 한국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가지는 정체성 문제를 들으며, 나는 내가 사는 익숙한 곳과 익숙한 관점을 벗어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다들 그들 주변인들은 한국인과 다른 외모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내부는 어떤가.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문화적 DNA란 무엇인가. 다문화라는 것은 콤플렉스인가 자신감인가. 이런 질문들.

나와 내 아이들은 한국이라는 익숙한 지붕 밖을 벗어나 타국의 사회와 세계에 가는 것이 더 이상 힘든 일이 아니다. 심지어 유튜브나 구글만 켜도 지구 반대편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문화 사회를 인정하는 우리 자신은 진화했는가. 다시 묻고 싶다.


1780년 조선에서 중국을 건너가 타인의 세계에 떨어진, 연암의 모습이 떠올랐다.

연암은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 Scean 1. 연암 일행은 소 흑산에 묵는다. 저녁식사를 마친 마친 연암이 마실을 나가 슬슬 다니다가 문이 열려있는 가게로 들어선다. 외국인이 마을에 나타나니 사람들이 뒤따라와 뜰에 사람이 가득하다. 마침 뜰에 몇 사람이 탁자를 가운데 놓고 둘러서서 붓글씨를 쓰고 있다. 얼핏 써놓은 글자를 보고, 연암은 필법이 별로라고 생각해 붓글씨를 쓰니 주변 사람들이 우르르 탁자로 몰려들어 소란을 떤다. '조선 사람이 글씨를 잘 쓰네, 동이도 우리와 쓰는 글씨가 같네, 글자는 같지만 음은 다르다네' 하는 소리가 왁자하다.


처음에는 이 장면을 읽고, 연암의 자기 자랑이려니 하는 생각 정도였다. 그러나 몇 번 더 읽으니, 당시 현장에서 조선인을 한 명 가운데 두고 신기한 듯 구경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마치 연암이 중국 여행 중 낙타를 구경하는 관점이나 중국인들이 조선인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망설임 없이 이 상황을 다루는 당당한 그의 태도가 놀랍다. 그리고 그 경험을 자기 입으로 말 하는 것도.


# Scean 2.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던 여행길, 조선 사신 일행은 급하게 숙박할 곳을 찾았고, 그 와중에 지역에서 제일 큰 집을 찾는다. 그 집에서는 주인의 아들이 뛰어나오는데 그 중국인들의 눈에는 한국인 사신단이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소매가 긴 옷을 입은 남자들이 비에 맞으면서 서있는데, 심지어 하인들은 옷도 거의 벗은 상태였다고 한다. 이때 그 중국인은 심각하게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연암이 놀라운 것은 그 상황에서 자신의 관점이 아닌 입을 딱 벌린 중국인의 관점으로 상황을 보고자 한다. 우리가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그는 그 사건을 마치 농담처럼 유연하게 다루고 있다. 그는 아무런 콤플렉스 없이 문화적 '차이'를 마치 탁자 위에 평행하게 놓고 관찰하듯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콤플렉스는 자신 안에 있는 것이지, 존재하는 실물이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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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an 3. 비가 와서 사신단이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게 된 어떤 날, 숙소에서 투전판을 벌이다가 일행이 끼워주지 않자, 벽 너머로 고운 여자 목소리로 들리자 담뱃불을 붙이러 간다는 핑계로 여염집 부엌에 들어가게 된 연암. 그곳에서 만주족 여자를 관찰한다. 50이 넘은 부인이 있었고, 딸로 생각되는 만주족 처녀가 있었는데 손님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밥을 퍼담고 대파에 장을 찍어 반찬삼아 간이의자에 앉아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다. 여기서 연암은 일종의 문화충격을 받는데, 조선인 입장에서 여성이 손님을 의식하지 않고 밥을 먹는다는 것도 밥을 먹는 방식도 외모도, 옷이나 머리 모양, 목에 있는 혹까지 그의 눈에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중국이 여성 중심사회이라는 사전 지식이 없었던 터라, 처음 본 이 낯선 장면에 '단지 조선인을 많이 봤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해석을 내렸을 뿐이다. 이 작은 에피소드는 그가 마주친 수많은 에피소드에 하나일 뿐이지만, 문화, 연령, 나이, 성이 다른 두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의 반응이 생각보다 놀라웠다. 그 처녀가 너무나 담담해서, 그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도 주체 못 할 호기심 때문에 딴청 하며 관찰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덕분에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문화 속에 살고 있었던 현지인 한 명이, 이방인의 눈을 통해 날카롭게 분석되었다. 50대 부인은 인사 정도는 했지만, 파를 된장에 찍어 터프하게 밥을 먹는 처녀에게는 차마 말도 붙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요즘에는 보통 사진을 찍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에게 직접적으로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라고 묻지 않고

오래 관찰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과거에 취재를 다니면 제일 어려웠던 것이 대놓고

누군가를 관찰하는 일이었다. 거기에 추가해서 대답하기 싫어할 때까지 꼬치꼬치 물어보는 일까지. 일반적인 대화와는 확실히 다른 게 취재였다.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대단히 민망했다)


관점을 바꿔본다면...

이런 장면을 정리하면서, 지난 뉴스가 떠오른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하면서 중국인 개회식 중에 조선족을 포함시켰다는 것.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항의 표시를 했었다. 나도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마저 중국사의 일부로 포함시키고자 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시각의 한편으로 보면 중국은 하나의 형태를 보이고는 있지만, 과거부터 원하건 원치 않건 강제화 된 다문화 구성체다.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나라를 구성하는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

다문화를 구성하는 사회 일원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가족 정도로 가까워지지 않는다면, 사실 그 인식의 범위는 여전히 좁다. 중국의 역사는 하나의 문화공동체가 패망하고 다른 세력이 지배하면서도 자신들의 것을 이어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현실 속에는 다문화에 사는 누군가의 옆집 사람이 유럽 사람이고, 앞집 사람이 이슬람 사람이라도 그 문화적 심리적 거리는 마치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건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현실. 어쩌면 중국인들은 중국 내부의 소수민족 간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애초부터 다른 구성원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그리고 주류의 중국인 입장에선 예전의 조선인, 지금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고작 이 정도인 것은 그렇게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관점을 바꿔 생각해보면)

연암이 살던 시대 청나라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주류였던 명나라로부터 패권을 빼앗았는데, 그보다 작은 조선이 거기에 굴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조선과 한국사회가 가진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절의 건물을 활용하는 것에 별 터부가 없는 인도인과 비교했을 때, 한국인은 그런 사례애 대해 굉장히 예민하다. 또한 낯선 사람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정 못지않게 가족과 뿌리를 중시하는 가치관은 정신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인'으로 이해해야 할 특수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인의 특수성 못지않게, 다문화사회가 되기에는 쉽지 않은 면도 존재한다. 그러나 저출산이 이어지고, 다문화 출신 2세나 3세가 많아진다면 언젠가 한국사회도 필연적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중국인 입장에서 One of them 이긴 했지만, 동이족에서 온 신기한 사람에 불과했지만. 연암에게는 위트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정신이 자유로운 사람이었지만, 마음속의 생각은 깊었다. 그는 처음 본 외국인 사이에서 난생처음으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차이를 잘 알았지만, 콤플렉스 같은 건 없었다. 관심을 즐기면서 한복자락을 휘날리면서.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면서. 그러나 무엇이 진짜 의도였는지 오직 그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행 중 만난 한 사람이라도 말을 걸기 위해 그렇게 분주하다니. 마치 고국에서는 말을 못 했던 사람처럼 쏟아내는 그를 보면 마음이 후련하다. 내가 과연 어디를 여행간들 현지인과 그 정도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을까? 열하일기 속 연암은 정말 독특한 캐릭터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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