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걸어가며 만들어진다
- 강을 건너 국경을 넘다-
열하일기 : 도강록
-의주에서 봉성까지
배타고 국경을 넘는 그 체험 나도 해보고 싶습니다만..ㅠ 많은 후손들이 연행길 체험을 하고자 하지만 한계가 많습니다
1780년, 정조 임금 4년 6월 24일. 장마철의 찌는 듯한 더위속에서 조선 사신단은 드디어 압록강을 건너기로 결정한다. 장마로 인해 강물이 불어나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사신단의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정사 박명원(연암의 8촌 형으로 1776년부터 3차례 중국에 파견되었다고 한다) 임금에게 올릴 장계(보고서)에 압록강을 건너는 날짜를 써버렸다. 그렇게 강물을 앞두고 연암은 주변 상황을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분주하고 정신없는 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영화를 찍듯 관찰 카메라를 길~게 한 바퀴 돌린다. 영화의 첫 장면이 시작되면 보통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상황을 찍으며 인물을 소개하듯 장면 하나하나를 그려내듯 묘사한다.
말을 탄 푸른 옷의 군관들은 강둑의 모래밭에서 왔다 갔다 하고, 하인들은 이것저것 물품들을 챙기느라 바쁘다. 이곳은 조선의 행정구역상 압록강과 맞닿은 마지막 장소이기 때문에, 이 지역 행정관이 나와 인사도 하고 다과는 차려오지만 여행길을 앞두고 들뜬 상황에서는 아무도 젓가락 질을 할 마음이 없다. 공항에서 검문검색을 하듯 군관들이 하인들의 몸도 일일이 수색하고, 통관이 금지된 품목을 갖고 가지는 않는지, 인원은 몇 명이며 말의 색깔 이름 등도 꼼꼼하게 조사해 기록에 남긴다. 이불 보따리와 옷 꾸러미가 강 언덕에 풀어헤쳐지고, 가죽 상자나 종이 문갑이 풀숲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각자 짐을 챙기면서 서로 힐끔거리며 돌아다보곤 한다. 연암은 이런 모습을 보고 '어디까지나 겉치레'라고 말했지만 말이다. 만약 강을 건너는 날짜를 신고도 하지 않고 몰래 넘어간다면, 누가 이것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국가가 금하는 품목을 소지하다가 걸리면 물건을 압수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형에 이르는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배에 오르자 배는 유성처럼 빠르게 강을 건너간다. 드디어 조선땅을 처음으로 떠나게 된 것.
영화로 치나 지면 여기가 하나의 시퀀스(sequence. 서로 연결된 작은 사건들이 연쇄되어 이루어지는 단위. 책으로 치면 Chapter. '장'에 해당하는 용어. Shot은 Scean의 단위이고 Scean이 모여서 Sequence가 된다 )라 할 수 있다. 떠나가는 배 뒤쪽으로 멀리 조선땅과 언덕. 통군정이 펼쳐진다.
압록강 하구에는 한강의 뚝섬처럼 중간중간 모래섬이 많은듯
압록강의 명칭에 대한 기원 : 당唐서에 따르면 고려의 마 자수는 말갈의 백산에서 나오는데 그 색깔이 마치 오리(鴨)의 머리처럼 푸르기(綠) 때문에 압록강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오리는 청둥오리를 뜻하는 건가?). 여기서 백산이란 곧 장백산(長白山)이다. 중국의 산해경이라는 책에는 장백산을 불함산이라 일컽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이라고 부른다. 백두산은 여러 강이 발원하는 시초가 되는 곳이고, 서남쪽으로 흐르는 물이 압록강이라고 한다.
국경에 대한 논란
*이 기록에 따르면, 장백산이란 중국에서 지칭하는 이름이고, 백두산이란 조선에서 지칭하는 이름이다. 백두산이 국경 역할을 한 것은 숙종 때 백두산정계비를 청과의 협상을 통해서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 전후로도 오랫동안 서만주와 북만주 부근은 우리 민족들이 터를 잡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청나라 여진족이 자신들의 발원지로 여긴 곳이기도 하고, 고구려 이후 여러 이민족들이 점령했던 역사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백두산에 대해서도 청나라 역시 자국의 영산으로 여겼다 한다. 만주가 본격적으로 중국 땅이 된 것은 20세기 초 일본이 간도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두만강 너머 북간도는 중국에게 완전히 권한이 넘어갔다.
연암이 살던 당시에도 압록강을 실질적인 국경으로 여긴 것 이외에도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연암은 여러 역사서를 예로 들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적고 있다. 특히 고구려의 옛말에 큰 새를 안시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는데 봉황성이 안시 성인지에 대해 추측하는 내용도 적혀있다. 연암은 평양의 위치에도 대동강 이남으로 볼 것인가 압록강 너머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사대주의 때문에 국경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제한해 인식하는 지식인층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