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호기심으로 써 내려온 인류의 우주 서사시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저도 열심히 정진하며 잘 지냈습니다.
추석연휴 동안에도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뉴스가 끊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정적인 주제를 꺼내볼까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속 잔잔한 호수 하나쯤은 필요할 테니까요.
연휴에 우연히 애니메이션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겼던 인류가 호기심의 횃불을 들고 혹독한 핍박 속에서도 과학적 업적을 이룩한 여정은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탐구의 노력과 고통 속에서 피어난 진리가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은 언제나 진합니다.
사실 거의 모두가 별을 좋아합니다. 각자의 가슴속에 자신만의 별이 있듯이 제게도 그렇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별들은 플레이아데스 성단과 오리온자리입니다. 군대 시절 추운 겨울에 경계근무를 설 때마다 밤하늘 가득한 별들 사이로 두 별자리를 발견하면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 같이 좋았고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경이롭고 누구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도 하는 별들이 우리의 세계관을 어떻게 뒤집었는지, 그 여정을 흥미롭게 따라가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여정은 인류가 우주 속에서 겸손하게 자신의 위치를 재정의하고 무지와 편견과 싸워온 장엄한 대서사시입니다.
모든 혁명에는 무너뜨려야 할 구체제가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해하려면 먼저 1,500년 이상 지속된 천동설(天動說)의 세계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 유럽까지,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절대적 중심이며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우주관: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은 천체들이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제자 에우독소스는 각 행성이 여러 개의 투명한 구(球)에 실려 회전한다는 동심천구설을 제안했습니다. 하늘의 움직임을 27개의 겹겹이 쌓인 구로 설명한 것입니다. 마치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지구를 중심으로 여러 겹의 하늘이 둘러싸고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기원전 384~322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모델을 철학적으로 완성했습니다. 그는 우주를 두 영역으로 나누었습니다. 그의 이론에서 달 아래의 '지상계(sublunary sphere)'는 불완전하고 변화하며, 흙·물·공기·불 네 원소로 구성됩니다. 반면 달 위의 '천상계(superlunary sphere)'는 완벽하고 영원불변하며, 제5원소인 에테르로 이루어졌습니다. 천체들은 완벽한 원운동만 하고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과학 이론이 아니라 세계관이었습니다. 지구가 중심이라는 것은 인간이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였고, 하늘의 불변성은 신의 완벽함을 반영했습니다. 교회는 이 우주관을 신학과 결합하여 가장 바깥 천구 너머에 천국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정교한 체계: 기원후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천동설을 수학적으로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행성들이 밤하늘에서 가끔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 '역행 운동'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화성을 관측하면 대부분은 동쪽으로 가다가, 몇 달간 서쪽으로 후진하고, 다시 동쪽으로 갑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천재적인 기하학적 트릭을 고안했습니다. 바로 '주전원(epicycle)'과 '이심원(eccentric)' 개념입니다. 행성이 작은 원(주전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그 작은 원의 중심이 큰 원(이심원)을 따라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입니다. 마치 놀이공원의 회전목마가 큰 원판 위에서 돌고, 각각의 목마는 또 자기 축으로 도는 것과 비슷합니다.
더 복잡한 것은 지구가 정확한 중심이 아니라 약간 벗어나 있다는 '편심(eccentricity)'과, 회전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등화점(equant)' 개념까지 도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모델은 놀랍도록 정확했습니다! 천체의 위치를 몇 년 앞까지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1,500년의 지배: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관측 자료와 놀랍도록 잘 맞았고, 철학적으로도 완벽해 보였으며, 종교적으로도 올바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중세 유럽 대학에서 가르치는 표준 우주론이 되었습니다. 단테의 『신곡』도 이 우주관을 바탕으로 쓰였고, 모든 천문학 교과서가 이것을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고대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생각한 사람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아리스타르코스는 이미 태양중심설을 주장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이 1,500년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천동설이 지구의 특별함과 하늘의 완벽성을 주장하는 크리스트교의 세계관과 잘 맞았기 때문이며, 또한 관측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천구의 개수가 수십 개에 이르는 등 상당히 복잡했지만 그때까지 관측한 결과를 대체로 잘 설명할 수 있어서 그럭저럭 쓸 만했기 때문입니다.
천동설은 연주시차 문제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태양이 돈다"는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도 잘 맞아떨어졌으며, 무엇보다도 '지구는 당연히 정지해 있다'는 우리가 느끼는 상식과도 완벽히 들어맞았습니다. 지구가 움직인다면 항상 바람이 불어야 하고 새들은 뒤처져야 하며 건물은 무너져야 합니다. 위로 던진 돌은 앞이나 뒤로 떨어져야 하며 우리는 항상 어지럼증을 느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 하나도 벌어지지 않으므로 지구는 분명히 움직이지 않는 세상의 중심임이 당연했습니다. 이 '상식'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적이었습니다. 때로는 진실이 상식보다 더 낯설고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관측이 정밀해질수록 프톨레마이오스 모델은 더 많은 주전원을 필요로 했습니다. 어떤 버전에는 80개가 넘는 원이 등장했습니다. 너무 복잡했습니다. 마치 엑셀 수식이 너무 길어져서 본인도 무슨 계산을 했는지 모르게 된 것처럼 말이죠. 13세기 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는 "만약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나에게 조언을 구했더라면, 더 간단한 설계를 제안했을 텐데"라고 비꼬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1543년, 폴란드의 한 사제가 1,500년의 벽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였습니다.
상상해 봅시다. 지구가 우주의 유일한 중심이란 믿음이 1,50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속되다가 어느 날 그 반대의 주장이, 그것도 한 사람에 의해 생뚱맞게 등장했다면 어떨까요? 아마 신문 한 귀퉁이의 가십란에도 실리지 못할 만큼 미미하거나 어느 미치광이의 주장 정도로 치부해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유력자라면 모든 기득권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사회적 매장을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득권 세력에게는 마치 평생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믿다가, 어느 날 자신이 수많은 등장인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선고받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1543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사망 직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하며 태양중심설을 제시하였습니다. 코페르니쿠가 사망 직전까지 출판을 망설였던 이유는 당시 그가 사제의 신분으로서 정립한 주장이 가톨릭 교회의 우주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저서는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립한 천동설을 무너뜨리는 과학 혁명의 서막을 열었으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여러 행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종교계와 학계의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후대 과학자들이 이를 입증하며 불꽃을 이어갔습니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1609년부터 1619년까지 행성운동의 세 법칙을 확립하여 행성이 완벽한 원이 아닌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는 점을 증명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완벽한 천상계'라는 믿음에 또 한 번의 타격을 주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10년 망원경 관측으로 금성의 위상 변화와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며 지동설의 증거를 쌓았습니다. 금성이 달처럼 차고 기울고 하는 현상은 금성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갈릴레오는 이 발견 때문에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가택연금에 처해졌지만, 그의 관측 기록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의 말 또한 진리를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써 후세에 길이 남았습니다.
결국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천문학적 발견을 넘어 인류의 우주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지구가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코페르니쿠스 원리'는 현대 우주론의 토대가 되었으며,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 우주의 광대함 속에서 인류의 겸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TMI: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홍대용(1731 ~ 1783)
조선 중기 실학자겸 과학사상가인 담헌 홍대용(1731~1783) '지구자전론'은 물론이고 '우주무한론'을 설파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담헌서>에서 "하늘의 뭇별은 각각의 세계를 갖고 있다. 우주세계에서 지구 또한 한 개의 별일 뿐이다. 무한한 세계가 우주에 흩어져 있는데 오직 지구 만이 중심에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리스펙!
초신성은 서기 185년 12월 7일, 중국 후한(後漢) 시대의 천문학자들(태사)에 의해 처음 관측되었습니다. 중국의 정사인 《후한서(後漢書)》에는 "객성(客星, Guest Star)", 즉 "손님별"이라는 의미로, 평소에 보이지 않던 별이 갑자기 나타났음이 기술되어 있으며 지금의 알파 센타우리 부근에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당시 기록으로는 "크기가 방석의 절반만 했다(大如半席)"고 묘사되며, 약 8개월 동안 오색으로 빛나다가 점차 어두워지며 사라졌다고 합니다. 현대에 X선 관측 등을 통해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추적한 결과, 해당 천체가 RCW 86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이 빛나는 '새로운 별'(Nova Stella)이 달보다 훨씬 멀리, 즉 항성들의 영역에 있는 새로운 천체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과학자는 덴마크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입니다. 1572년 11월 11일, 티코 브라헤는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갑자기 나타난 밝은 '새 별'을 목격하였습니다. 이 천체는 금성보다 밝아 낮에도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밤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이 불청객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티코는 이 현상을 단순히 경이로운 구경거리로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18개월 동안 꾸준히 관측하며 최대 밝기가 -4등급에 달한다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가 보는 가장 밝은 별들보다도 훨씬 밝은 수준입니다. 그는 1573년 『새로운 별에 관하여』를 출간하여 '신성(nova)'이라는 용어를 처음 도입하였습니다.
이 발견이 왜 그토록 중요했을까요?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2,000년 가까이 유지되던 '천구 불변성'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달보다 먼 천상계는 신의 영역으로써 완벽하고 영원불변하며, 변화는 오직 불완전한 지상계에서만 일어난다고 믿었는데, 완벽한 천상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 당시 우주관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티코는 시차 측정을 통해 이 천체가 달보다 훨씬 멀리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시차란 관찰자의 위치가 바뀔 때 천체의 겉보기 위치가 변하는 현상입니다. 만약 이 별이 가까이 있었다면 밤새 위치가 바뀌었어야 했지만, 티코가 관측한 결과 위치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항성 영역에서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드러낸 혁명적인 증거였습니다.
현대 연구에 따르면 티코가 본 이 초신성은 7,500에서 13,000광년 떨어진 Ia(아이에이) 형 초신성으로, 백색왜성이 동반성으로부터 물질을 흡수하다가 찬드라세카르 한계(태양 질량의 1.4배)를 초과하면서 폭발한 결과입니다. 백색왜성은 죽은 별의 잔해인데, 옆에 있는 동료 별에서 가스를 계속 빨아먹다가 배가 터져버린 것이죠. 그 폭발의 밝기가 너무나 강렬해서 우리 은하 전체보다도 밝게 빛났던 것입니다.
TMI: Ia형 초신성(Ia形超新星, type Ia supernova)
표준촛불: Ia형 초신성은 밝기가 일정하여 먼 은하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 활용됩니다.
암흑 에너지 연구: Ia형 초신성 관측 데이터는 우주 가속 팽창을 설명하는 암흑 에너지 연구에 중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 연구로 2011년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되었습니다.
티코의 기록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초신성 잔해 SN 1572를 분석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이 발견은 우주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한, 조용한 혁명이었습니다.
1608년 10월 2일, 네덜란드 안경 제작자 한스 리페르세이(Hans Lippershey)가 망원경 특허를 신청하였습니다. 3배 배율의 굴절식 망원경으로, 먼 것을 가까이 보는 도구로 소개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리페르세이의 가게에서 일하던 아이들이 우연히 두 개의 렌즈를 겹쳐 들고 놀다가 멀리 있는 교회 첨탑이 가까이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특허는 다른 발명가들의 유사한 주장 때문에 거부되었으나, 리페르세이는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았고 그의 발명은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군사적 긴장이 높았던 시기라 멀리 있는 적함을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이 도구는 군사적으로 엄청난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 망원경은 두 개의 볼록렌즈로 구성되어 상을 뒤집어 보이게 하거나, 볼록 대물렌즈와 오목 접안렌즈를 조합하여 똑바른 상을 만드는 구조였습니다.
1609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 소식을 듣고 무려 '단 하루 만에' 자체적으로 망원경을 제작하였고, 끊임없는 개량을 통해 20배 이상의 배율을 달성하였습니다. 군함을 발견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하늘을 살피는 도구로 재탄생시킨 갈릴레오의 생각은 이후 천문학의 혁명을 이끌어냈습니다.
갈릴레오는 이 망원경으로 달의 분화구와 산맥, 목성의 네 위성, 금성의 위상 변화, 토성의 고리(당시 기술로는 정확히 보이지 않아 '귀'처럼 보였습니다), 은하수가 무수한 별들의 집합임을 관측하였습니다. 특히 밤하늘에 뿌옇게 보이던 띠가 사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었던 은하수 발견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망원경의 발명은 관측의 혁명을 넘어, 인류의 호기심이 기술로 결실을 맺은 상징입니다. 마치 안경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준 것처럼, 망원경은 우주라는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망원경은 육안의 한계를 초월한 인류의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였으며, 망원경을 통한 발견은 전통적 우주론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인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리페르세이의 공로를 기려 달 분화구와 소행성, 외계행성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1610년 1월 7일,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신이 만든 20 배율 망원경으로 목성을 관측하다 근처에 세 개의 작은 빛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목성 뒤에 있는 별들로 여겼으나, 며칠간의 지속적인 관측으로 이들이 목성과 함께 움직이며 위치가 변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갈릴레오는 매일 밤 꼼꼼히 위치를 스케치했고, 이 작은 점들이 목성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월 13일 네 번째 천체를 찾아내고, 1월 15일까지 이들이 목성 주위를 공전하는 위성임을 결론지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 주위를 도는 천체를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610년 3월, 갈릴레오는 『별의 전령(Sidereus Nuncius)』을 출간하여 발견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후원자인 메디치 가문을 기려 이 위성들을 '메디치의 별들'로 명명하였으며, 17세기 내내 이 이름이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귀족의 후원 없이는 연구를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작명 마케팅'이 필요했습니다. 갈릴레오는 거리 순으로 로마 숫자 I, II, III, IV로 표기하였고, 현재도 '갈릴레오 위성'으로 불립니다.
티코 브리헤의 제자인 요하네스 케플러는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로마 신화의 유피테르, 즉 목성)와 관련된 인물 이름을 따서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로 제안하였으나, 이 명칭은 200년 이상 지난 후에야 정착되었습니다. 교회가 신성한 천체에 신화 속 제우스의 연인들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발견은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우주에 하나의 중심만 존재한다는 전통 우주론이 무너지고, 최소 두 개의 운동 중심(태양과 목성)이 있음이 입증된 것입니다. 만약 지구가 우주의 유일한 중심이라면, 어떻게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들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후 1892년 E.E. 바나드가 또 하나의 위성인 아말테아를 발견할 때까지 282년 동안 추가로 발견된 위성은 없었으며, 아말테아는 지금까지도 육안으로 발견된 마지막 위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 망원경의 발전과 탐사선들의 활약으로 추가적인 위성들이 발견되었고, 현재 목성의 위성은 95개로써, 태양계 최고의 위성부자인 토성의 274개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갈릴레오의 발견은 우주의 거대한 구조를 밝혀낸 첫걸음이며, 행성계의 복잡성을 깨닫게 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1687년, 아이작 뉴턴은 『수학적 자연철학의 원리(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일명 『프린키피아』를 출간하여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법칙은 두 물체 사이의 인력이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간단하면서도 우아한 수학 공식으로 우주의 운동을 설명합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실제로는 뉴턴이 20년 이상 골몰한 끝에 얻은 결과입니다. 그는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과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같은 힘 때문이라는 통찰을 얻었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이 우주의 모든 물체를 당기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뉴턴이 이 책을 출판했을 때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고 케임브리지의 수학자 조지 클라크조차 이 책의 세 절을 읽었는데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며, 뉴턴은 독자의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례한 저자라고 질타했습니다. 사람들이 마침내 뉴턴의 물리학을 이해하기 시작한 첫걸음은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Émilie du Châtelet, 1706-1749)가 라틴어로 쓰인 뉴턴의 책을 프랑스어로 쉽게 번역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뉴턴의 발견은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이론에 물리적 기반을 제공하였습니다. 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지, 왜 행성들이 타원 궤도를 따르는지, 왜 조수가 생기는지를 통합적으로 밝혔습니다. 이 법칙은 지구상의 현상과 천체 운동을 같은 원리로 연결하는 획기적인 통찰입니다. 뉴턴 이전에는 하늘의 법칙과 땅의 법칙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출판하게 된 계기가 에드먼드 핼리(핼리 혜성으로 유명한 그 사람)의 강력한 권유와 재정 지원 덕분이었다는 것입니다. 뉴턴은 완벽주의자라 출판을 미루고 있었는데, 핼리가 출판비를 대겠다고 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만유인력 법칙은 후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확장되었으나, 여전히 일상적 규모에서 유효합니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행성 탐사선의 궤도를 계산하고, GPS의 정확도를 보정하는 데 모두 뉴턴의 법칙이 사용됩니다. 뉴턴의 작업은 과학의 수학화 시대를 열었으며, 우주를 예측 가능하고 이해 가능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이 발견은 인류가 자연의 법칙을 깨우치는 여정의 정점입니다.
시차(視差, parallax) 방법은 17세기부터 개념으로 존재하였으나, 관측 정밀도의 한계로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시차란 무엇일까요? 양 눈을 번갈아 감으면서 손가락을 보면 배경에 대해 손가락의 위치가 바뀌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시차입니다. 천문학에서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6개월 간격으로 별의 위치를 관측하면, 가까운 별일수록 더 크게 위치가 바뀝니다.
1838년, 프리드리히 베셀이 쾨니히스베르크 천문대에서 헬리오미터라는 특수 망원경을 사용해 백조자리 61번 별의 거리를 처음으로 측정하였습니다. 약 11.4광년(현대 측정값 11.36광년)으로, 이는 빛의 속도로 11년이 넘게 가야 도착하는 거리입니다. 지구 공전 궤도를 기준선으로 6개월 간격 위치 변화를 이용한 삼각측량법입니다.
헬리오미터는 프라운호퍼가 제작한 특수 망원경으로, 반으로 나뉜 렌즈를 조절하여 두 상의 분리를 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측정합니다. 베셀이 측정한 시차는 0.314 초각(arcsecond)으로, 이것은 400미터 떨어진 곳에서 1원짜리 동전을 보는 각도와 비슷합니다. 당시 기술로는 믿기 어려운 정밀도였습니다.
거의 동시에 다른 천문학자들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토머스 헨더슨은 알파 센타우리(1832-1833 관측, 1839 발표)를, 프리드리히 폰 슈트루베는 베가(1837 예비, 1840 정밀)의 시차를 쟀습니다. 헨더슨의 측정값은 현대 값 0.76 초각에 가까운 1 초각이었고, 슈트루베의 베가 값은 0.261 초각(현대 값 0.130 초각)이었습니다.
이 발견들은 우주의 진정한 규모를 드러냈습니다. 천문학자들이 별의 광도와 크기 같은 물리적 특성을 추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알파 센타우리 쌍성계는 4.37광년 거리로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계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별들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처음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이후 분광시차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별의 스펙트럼을 분석하여 절대등급을 추정해 거리를 산출하는 방법으로, 10,000 파섹(약 32,600광년)까지 적용됩니다. 별빛이 어두워지는 정도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역제곱 법칙을 활용한 이 접근은 우주 거리 측정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보다 더 먼 100억 광년까지의 거리는 Ia초신형, 신성, 구상성단, 세페이드 변광성 등의 '표준촛불'을 이용해 거리를 구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가이아(Gaia) 위성(2013년 발사)은 약 10억 개 별의 시차를 마이크로초각(백만분의 일 초각) 정밀도로 측정합니다. 세페이드 변광성과 Ia형 초신성은 표준 촛불로 수십억 광년까지 도달합니다.
100억 광년 이상 떨어져 있는 은하에서는 밝기의 한계로 Ia형 초신성이 관측되지 않으므로 계산에 어려움이 있는데 최근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24년 한국천문연 호지슨-이상성 박사 연구팀은 국제연구팀이 제 Ia형 초신성보다 더 먼 거리에 있으면서도 훨씬 밝은 천체인 활동은하핵(AGN, Active Galactic Nuclei) '3C 84'를 새로운 표준촛불의 후보로 제시했습니다. 활동은하핵이란 다양한 파장에서 대량 에너지를 방출하는 활동이 활발한 은하의 중심 영역을 말하는데 여기엔 태양 질량의 100만 배에서 수십억 배 질량에 이르는 초대질량블랙홀이 있습니다. 이 초대질량블랙홀은 주변 물질을 빨아들이는 동시에 중심에서 빛의 속도로 물질을 내뿜는 제트를 형성하며 매우 강력한 복사에너지를 방출합니다.
여러 방법들의 발전은 무한의 공간에서 인류의 여정이 비록 더디지만 나아가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1863년, 루이 파스퇴르가 발효 연구(1857-1877) 중 산소 없이 생존하는 놀라운 혐기성 미생물을 발견하였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모든 생명체는 산소가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숨을 쉬지 않으면 죽듯이, 모든 생명이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떤 미생물들은 산소가 있으면 오히려 죽는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에 '호기성(aerobic)'과 '혐기성(anaerobic)' 용어를 도입하여 미생물을 분류하였습니다. 이는 생명의 조건이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또한 1861년, 파스퇴르는 낙산(butyric acid) 발효가 산소 없는 환경의 운동성 포자 미생물과 관련 있음을 밝혔습니다. '낙산 비브리오'로 명명된 이 미생물은 현대 분류로는 클로스트리디움 부티리쿰(Clostridium butyricum) 그룹에 속합니다. 1865년 파스퇴르와 쥘 주베르는 탄저병 관련 패혈증에서 병원성 혐기성 세균을 확인하고, 1877년 배양에 성공하여 '패혈 비브리오'로 불렀습니다.
파스퇴르는 플라스크를 끓여 공기를 제거하고 밀봉하는 기본 배양 방법을 개발하였습니다. 그 후 1887년 에밀 루가 다양한 배양 기술을 설명하였고, 1895년 아드리앙 베이용은 진공 없이도 혐기성 환경을 만드는 '베이용 튜브'를 도입하고 인간 구강에도 혐기성 세균이 공생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혐기성 세균은 잇몸병 및 치주질환과 입냄새(구취)의 원인이 됩니다.
20세기 중반부터는 극한생물(extremophiles)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 80°C 이상 고온에서 사는 초호열성 미생물, 해저 화산 분출구에서 발견된 생물, 강산성이나 고염도 환경에서도 번성하는 생명체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발견들로 인해 우주 생명체 발견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산소 없는 환경이나 극한 조건에서도 생명이 가능하다는 점은 화성, 목성의 위성 유로파,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 타이탄 탐사에 희망을 줍니다. 이 천체들은 지표면에 산소가 없지만, 지하에 액체 상태의 물이나 액체바다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 지구의 혐기성 미생물처럼 산소 없이 살 수 있는 생명체가 있다면, 우주 어딘가에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집니다. 생명의 다양성은 우주의 신비를 더 깊게 만들 것입니다.
1903년 12월 17일 오전 10시 35분, 노스캐롤라이나 키티호크의 차가운 모래언덕에서 오빌과 윌버 라이트 형제가 '라이트 플라이어(Wright Flyer)'로 동력 비행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는 인류가 하늘을 정복한 역사적 순간입니다. 수천 년 동안 새처럼 하늘을 나는 것은 인류의 꿈이었습니다. 이카로스 신화처럼 날개를 달아보기도 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비행 기계를 설계하기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첫 비행은 오빌이 조종하여 12초 동안 37미터를 날았습니다. 12초, 37미터. 지금 보면 너무 짧은 거리지만 이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이 탄 동력 항공기가 이륙하여 조종 가능한 비행을 하고 안전하게 착륙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어 세 번의 비행이 더 이루어졌으며, 윌버의 네 번째 비행은 59초 동안 무려(?) 260미터를 기록하였습니다.
항공기는 12마력 가솔린 엔진으로 구동되는 푸셔 프로펠러와 카나드(canard, 앞날개) 구조, 날개 뒤틀림(wing warping) 기술을 갖추었습니다. 최고 고도는 3미터에 불과하였으나, 불안정한 공기 속에서도 조종 가능성을 입증하였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천재성은 단순히 비행기를 띄운 것이 아니라, 조종할 수 있게 만든 데 있었습니다.
네 번째 비행 착륙 후 강풍에 항공기가 전복되어 수리 불가 상태가 되었으나, 형제는 잔해를 가져와 복원하였습니다. 이후 1948년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최초 성공 비행기로 공식 인정하며 잔해는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었습니다.
이 최초 비행 이후 인류는 더 빠른 속도를 추구하였습니다.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아 인류는 음속을 돌파하는 제트기를 만들었고, 중력을 거스른 로켓을 통해 사람을 달로 보내 걷게 했으며, 이제는 태양계 밖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중 보이저 1호(1977년 발사)는 태양계를 가장 먼저 벗어나 초속 17km 속도로 항행 중이며 주노 탐사선(2011년 발사)은 목성 도착 시 초속 74km를 기록하였습니다. 파커 태양 탐사선(2018년 발사)은 태양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때 초속 192km(시속 692,000km)로 인류가 만든 가장 빠른 물체가 되었습니다. 이 속도들은 중력 도움(gravity assist)과 추진 기술의 결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2초 37미터에서 시작된 인류의 비행은 이제 우주 탐사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비행은 우주 탐사의 문을 연 상징이며, 인류의 도전 정신을 상기시킵니다.
1920년 4월 26일, 워싱턴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대논쟁(The Great Debate)'이 벌어졌습니다. 할로 섀플리와 히버 커티스가 나선성운의 정체를 놓고 토론하였습니다. 섀플리는 나선성운이 우리 은하 내부의 가스구름이라고 주장했고, 커티스는 독립된 '섬우주(island universes)', 즉 우리 은하 밖의 별개 은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학술 토론이 아니었습니다. 우주의 크기와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논쟁은 3년 넘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1923-1924년, 에드윈 허블이 윌슨 산 천문대의 2.5미터 후커 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를 관측하여 논쟁을 종식시켰습니다. 1923년 10월 어느 날 밤, 허블은 안드로메다에서 세 개의 신성 후보를 발견했습니다. 다음 날 사진을 분석하던 중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신성이 아니라 세페이드 변광성이었던 것입니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일정한 주기로 밝기가 변하는 별로, 그 주기와 실제 밝기 사이에 명확한 관계가 있습니다. 마치 전구의 밝기를 알면 얼마나 멀리 있는지 계산할 수 있는 것처럼, 세페이드의 주기를 측정하면 거리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허블은 V1이라고 명명한 이 별이 31.4일 주기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를 약 100만 광년(후에 250만 광년으로 수정)으로 계산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알려진 은하수 직경의 3배 이상이었습니다.
허블은 사진판에 'VAR!'(variable)이라고 크게 써놓고 섀플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섀플리는 이 편지를 받고 "내 우주를 파괴한 편지(the letter that destroyed my universe)"라고 탄식하였습니다. 1924년 말까지 허블은 36개의 변광성을 발견하여 90만 광년(현대 측정값 250만 광년) 거리를 더욱 확실히 하였습니다.
이 발견은 우주관의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가 아니라, 수천억 개 은하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허블은 1924-1925년 미국천문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고, 뉴욕 타임스가 1면에 이 발견을 기사화하였습니다. V1 세페이드는 아마추어 망원경으로도 관측 가능하며, 그의 이름을 딴 허블 우주망원경이 그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했다면, 허블은 우리 은하조차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우주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우주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으며 이 깨달음은 무한의 문을 열었습니다.
1929년, 또다시 에드윈 허블이 은하의 '적색편이'와 거리 사이에 비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하였습니다. 24개 은하 관측 데이터를 통해 v = H₀ × d라는 간단한 공식을 확립하였습니다. 여기서 v는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 d는 거리, H₀는 허블 상수입니다. 당시 허블 상수는 500 km/s/Mpc였으나, 현재는 67-74 km/s/Mpc로 수정되었습니다.
적색편이(redshift)란 물체가 내는 빛의 파장이 늘어나 더 긴 파장, 즉 붉은색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는 물체가 관측자로부터 멀어질 때 발생하는 도플러 효과나, 강한 중력장 안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통해 관측되며, 이 현상을 통해 우주의 팽창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구급차가 우리 곁을 지나갈 때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구급차가 다가올 때는 사이렌 소리가 점점 높게 들리다가, 멀어질 때는 점점 낮게 들립니다. 이것을 도플러 효과라고 합니다.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하가 우리에게서 멀어지면 빛의 파장이 늘어나 붉은색 쪽으로 치우치게 되고 다가오면 파란색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이것을 각각 적색편이, 청색편이라고 부릅니다.
허블은 먼 은하일수록 더 큰 적색편이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우주의 모든 은하들이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으며,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뜻입니다. 마치 풍선을 부는 것처럼 우주 전체가 팽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발견은 1922-1927년 알렉산드르 프리드만과 조르주 르메트르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제안한 팽창 우주 모델을 실증하였습니다. 르메트르는 우주가 '원시 원자(primeval atom)'라는 극도로 밀도 높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개념을 제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빅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1948년 조지 가모프가 빅뱅 이론을 체계화하였고, 1965년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 우주배경복사(CMB)를 발견하여 결정적인 증거를 더하였습니다. CMB는 빅뱅 직후 뜨거운 우주에서 나온 빛이 138억 년 동안 식으면서 마이크로파로 변한 것입니다. 마치 난로의 열기가 식으면서 적외선으로 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1998년, Ia형 초신성 관측으로 우주가 단순히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가속 팽창한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를 발견한 사울 펄머터, 브라이언 슈밋, 애덤 리스는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은하들 간의 중력으로 인해 팽창이 점점 느려져야 하는데, 오히려 빨라지고 있다니 이상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암흑에너지라는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WMAP(2003)과 플랑크(2013-2018) 위성을 통해 본 우주 나이는 138억 년으로 1% 미만 정확도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허블 텐션(Hubble tension)'이라는 난제가 남아 있습니다. 초기 우주를 관측하여 계산한 허블 상수(67 km/s/Mpc)와 후기 우주 관측으로 계산한 값(73 km/s/Mpc)이 5 시그마(통계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차이) 수준으로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아직 모르는 무언가 있다는 뜻입니다.
허블의 발견은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현대 빅뱅 우주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우주는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고 진화하고 있는 역동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다음은 또 어떤 대단한 발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1933년, 스위스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가 코마 은하단의 은하들이 회전하는 속도를 연구하며 중력 이상 현상을 발견하였습니다. 비리얼 정리(virial theorem)를 적용하여 계산해 보니, 관측되는 질량보다 400배나 큰 중력이 필요했습니다. 실수인가 싶어 다시 계산했지만 결론은 전과 같았습니다. 보이는 별과 가스만으로는 은하들이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츠비키는 강한 중력을 가진 이 보이지 않는 물질을 '암흑물질(dunkle Materie)'이라고 명명하고 발표하였으나, 초기에는 허블 상수 과대평가와 질량 이해 부족 때문에 회의적인 반응뿐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고약한 성격 탓도 있었습니다. 츠비키는 괴짜 과학자로 유명했는데, 동료들을 "구형 멍청이들(spherical bastards, 어느 방향에서 봐도 멍청이라는 뜻)"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이런 성격 때문에 그의 발견이 더욱 무시되었습니다.
프리츠 츠비키는 이 외에도 같은 천문학자 발터 바데(Walter Baade)와 함께 1930년대 초(1931년경) Supernova(슈퍼노바: 초신성)'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정립하였습니다.
1960년대 X선 방출과 은하단 매질 측정으로 불일치가 다소 줄었으나, 여전히 암흑물질의 필요성은 남았습니다. 1970년대 베라 루빈이 개별 은하의 회전곡선(rotation curve)을 정밀하게 측정하여 암흑물질 존재를 재확인하였습니다.
루빈의 발견은 놀라웠습니다. 은하 외곽의 별들이 중심부 별들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뉴턴 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태양계에서는 해왕성이 수성보다 훨씬 느리게 공전하듯이, 은하 외곽 별들도 느려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물질이 은하를 둘러싸고 있어서 외곽 별들을 빠르게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초기 400배 불일치는 측정 기술 향상으로 10배 미만으로 조정되었으나, 암흑물질 존재는 확고해졌습니다. 현대 우주론에서 우주의 구성은 암흑물질 27%, 암흑에너지 68%, 일반 물질(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 5%입니다. 암흑섹터가 무려 95%를 차지합니다. 우리가 직접 관측할 수 있는 것은 우주의 5%에 불과한 것입니다!
암흑물질 후보로는 WIMP(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s,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 액시온(axion), 원시 블랙홀 등이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 물리학자 벤자민 W. 리(이휘소, 1935-1977)는 약한 상호작용 이론에 기여하여 WIMP 모델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이휘소 박사는 안타깝게도 42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연구는 현대 입자물리학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암흑물질은 아직 직접 검출되지 않았으며, 21세기 물리학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 지하 깊은 곳에 설치된 검출기들이 암흑물질 입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 발견은 우주의 보이지 않는 힘을 드러낸 수수께끼이며, 우리가 우주에 대해 여전히 무지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1961년,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는 SETI(외계지적생명탐사) 회의를 준비하며 드레이크 방정식을 고안하였습니다. 이것은 정확한 답을 주는 방정식이라기보다는 과학적 토론의 틀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회의에는 멜빈 칼빈(노벨 화학상 수상자), 조슈아 레더버그(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필립 모리슨, 칼 세이건 등 12명의 저명한 과학자가 참석하였습니다.
방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N = R* × f_p × n_e × f_l × f_i × f_c × L
N: 우리 은하에서 교신 가능한 문명의 수
R*: 우리 은하에서 별이 형성되는 평균 속도
f_p: 행성을 가진 별의 비율
n_e: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을 가진 행성의 평균 개수
f_l: 생명이 실제로 발생하는 행성의 비율
f_i: 지적 생명체로 진화하는 비율
f_c: 감지 가능한 신호를 방출하는 문명의 비율
L: 그러한 문명이 신호를 방출하는 평균 기간
이것을 대학 학생 수를 추정하는 것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매년 새로 입학하는 학생 수에 평균 재학 기간을 곱하면 전체 학생 수가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매년 새로 생기는 외계 문명 수에 문명의 평균 수명 L을 곱하면 현재 존재하는 문명의 수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1961년 추정치에서 f_p는 거의 100%, n_e는 1 정도였는데, 이것은 1995년 이후 수천 개의 외계행성 발견으로 2-3배 이내로 정확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하지만 f_l(생명 발생 확률), f_i(지적 생명 진화 확률), f_c(신호 방출 문명 비율), L(문명 지속 기간)은 여전히 큰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신 관측과 수학을 통한 추정으로는 우리 은하에 약 400억 개의 지구형 행성이 거주가능영역에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중 얼마나 많은 곳에서 생명이 발생했는지, 그 생명이 지적 생명체로 진화했는지, 그들이 전파 신호를 방출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방정식은 해결 불가능하지만, 토론에는 매우 유용합니다. 이것이 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 연구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드레이크 방정식은 페르미 역설("외계인이 그렇게 많다면, 그들은 다 어디 있는가?")과 함께 "왜 아직 발견하지 못했나?"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L(문명 지속 기간)이 짧거나 문명 자체가 극히 희귀하거나 고등문명이 있어도 너무 멀어 서로 만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방정식은 외계 지적 생명의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도구입니다. 천문학자이자 뛰어난 과학 커뮤니케이터였던 칼 세이건은 이 방정식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그의 저서와 TV 시리즈 '코스모스'를 통해 수억 명이 우주에서 우리가 혼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이건은 "우주에 우리만 있다면, 엄청난 공간 낭비"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입니다.
재미있으셨는지요?
매번 즐거운 마음으로 쓰지만 나만 신났으면 어쩌나란 불안감은 늘 듭니다.
부디 재미있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이 번 주제는 사실 23번까지 작성되어 있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 글이 너무 길면 시간을 내서 완독하기 어렵거나 질릴 수도 있기에 시루떡 썰듯이 딱 반으로 끊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우주로 올라가 우리의 지식을 폭발시켜 준 우주망원경의 세계에서부터 블록홀과 먼 미래의 우주선까지 재미있고 알찬 내용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특히나 좋아하는 분야인만큼 빨리 다음 편을 올리고 싶은 마음 굴뚝같습니다.
투자가 아무리 중하고 현실을 살기 벅차다 해도 가끔은 모든 것을 잊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수많은 별들에 감동했던 어린 시절처럼 맑은 마음만으로 가득 찬 글을 쓰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도 같이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