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 삶의 마지막 문장을 쓰는 법

워런 버핏 옹의 은퇴

by 동이의덕왕


묘비명, 삶의 마지막 문장을 쓰는 법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2026년 1월 1일, 워런 버핏 옹께서 버크셔 해서웨이 CEO에서 물러나셨습니다. 약 60년에 걸친 투자 여정에 마침표를 찍으신 것입니다. 의장직은 유지하시며 사무실에도 나가시겠다 하셨으니, 멍거 옹처럼 완전한 퇴장은 아닙니다. 영국식으로 표현하자면 "going quiet" 정도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하니 가슴 한편이 먹먹해집니다. 찰리 멍거 옹이 2023년 99세로 세상을 떠나신 지 2년, 이제 버핏 옹마저 무대 뒤로 사라지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직접 뵌 적은 없으나 큰 스승을 잃은 느낌입니다.


버핏 옹은 지난 11월 마지막 주주서한을 발표하셨습니다. 투자 조언보다는 노철학자의 인생 고백에 가까운 내용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마음을 한참이나 붙잡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부고 기사에 어떤 내용이 담기길 바라는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라."


서한에서 버핏 옹은 알프레드 노벨의 일화를 소개하셨습니다. 노벨의 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신문이 이름을 혼동하여 알프레드의 부고를 먼저 실었다 합니다. "죽음의 상인"이라 불리는 자신의 부고를 직접 읽게 된 노벨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 후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노벨상을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매일 자신의 부고를 써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누구에게 어떤 말을 건넸는지,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가 모여 결국 마지막 날 읽히게 될 한 편의 글이 되는 것이니까요.


버핏 옹은 덧붙이셨습니다.


"내 인생의 후반은 전반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과거의 실수로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위대함은 돈이나 권력에서 오지 않습니다. 친절은 공짜이지만 동시에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입니다"


60년간 5,500,000%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하신 분이, 마지막 편지에서 강조한 것이 돈이 아니라 친절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다 문득 위인들의 묘비명이 궁금하여 찾아보았습니다.


알렉산더 왕은 "용기 있게 살고 영원한 명성을 남기고 죽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도다!"라 남겼습니다. 삶을 불꽃처럼 살다 간 자의 선언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나는 자유롭다"라 썼습니다. 욕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난 자만이 진정 자유롭다는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루와 같다"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일 뿐이니, 머무는 동안 따뜻한 손길 하나 건네고 가자는 뜻으로 읽힙니다.


천상병 시인의 묘비에는 그의 시 「귀천」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으나 세상을 "소풍"이라 부른 시인입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삶의 태도가 있을까요.


조병화 시인은 "나는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라 남기셨습니다. 삶 전체를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본 것입니다. 선한 일, 아름다운 일,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하는 일. 심부름을 다 마치고 돌아간다는 표현에서 삶에 대한 깊은 겸손이 느껴집니다.


그중에서도 제 가슴에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안병욱 수필가의 묘비명입니다.


"산다는 것은 자기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죽는 날까지 배우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부지런히 자기의 재능과 인격을 갈고닦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자기 창조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읽었던 『오십에 읽는 주역』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삶은 소명을 찾는 여정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엇을 세상에 남겨야 할까요. 지금 가는 이 길의 끝에서 우리는 무엇을 이루었다 말할 수 있을까요.


그저 미움받지 않고 굶지 않고 무탈하게 살면 충분할까요. 아니면 세웠던 뜻을 날카롭게 끝까지 벼르며 최선을 다했음을 죽는 순간까지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까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깨닫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버핏 옹의 은퇴를 보며 참 부럽다 생각했습니다. 그분의 자산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고 퇴장하시는 그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95세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최고의 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투자자로서 바통을 이어받은 마음으로, 저 또한 소명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버핏 옹처럼 "후반이 전반보다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안병욱 선생처럼 자기 창조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묘비명을 남기고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세계에 환생한 삼국지의 진정한 덕왕은 지혜와 덕을 베풀고 떠났다"


버핏 옹, 오랜 시간 좋은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겨주신 지혜 잘 새기며 살겠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버핏.jpg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그대 없는 밤은 너무 쓸쓸해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잖아요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나약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봐

그대가 내겐 전부였었는데 음-


오 제발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그대 없는 밤은 너무 싫어

우 우 우 돌이킬 수 없는 그대 마음

우 우 우 이제 와서 다시 어쩌려나

슬픈 마음도 이젠 소용없네



<빛과 소금>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Warren Buffett announces retirement from Berkshire Hathaway — these ar.jpg 이제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