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빛 말이 온다 (上)

병오년, 말의 해에 살펴본 6천만 년 말(馬)의 역사

by 동이의덕왕

붉은빛 말이 온다 (上)

병오년, 말의 해에 살펴본 6천만 년 말(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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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붉은말의 해, 운명의 동반자를 만나다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 바로 '붉은말의 해'입니다. 60년 주기로 돌아오는 이 해는 천간의 '병(丙)'이 불과 붉은색을 상징하고, 지지의 '오(午)'가 말을 뜻하니, 두 화(火) 기운이 만나 열정과 도전, 변화의 에너지가 극대화되는 해라 합니다. 직전 병오년이 1966년이었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붉은말의 질주인 셈입니다.


덕왕에게 있어 '말'이라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옛날 대륙을 호령하며 각지의 군웅들과 자웅을 겨루던 시절부터, 여포의 적토마 전설을 듣고 가슴이 뛰었던 기억과, 이세계 환생 후 비디오 가게에서 제목이 심상치 않은 영화들을 발견하고(애X부인, 차탈래 말탈래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차X래 부인 등)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던 사춘기의 기억, 그리고 대학 시절 친구가 "짜릿한 게 있다"며 데려간 과천 경마공원에서 눈이 새빨개진 아저씨들을 보며 "여긴 사람이 올 곳이 아니구나"를 직감했던 순간까지. 말은 제 인생 곳곳에서 묘한 존재감을 드러내 왔습니다.


하지만 인류 문명사에서 말은 단순히 가축도 유흥의 대상만도 아니었습니다. 역사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마다 그들의 힘찬 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 변화를 가속시켰습니다. 병오년 새해를 맞이하여 비록 지금은 우리 곁에서 멀어졌지만 오랫동안 함께했고 앞으로도 가슴속에 남아 있을 동반자인 말의 6천만 년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1부: 말의 기원, 문명의 새벽을 열다


Chapter 01. 토끼만 한 크기에서 시작된 6천만 년의 진화

이야기는 약 5,500만 년 전, 북미 대륙의 울창한 숲 속에서 시작됩니다. 이곳에 살았던 '에오히푸스(Eohippus)'는 오늘날 모든 말의 시조로 여겨지지만, 그 모습은 상상과 전혀 다릅니다. 어깨 높이가 고작 35cm에 불과해 토끼보다 조금 큰 정도였고, 발가락은 앞발에 4개, 뒷발에 3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후 변화가 이 작은 동물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숲이 점차 초원으로 변해가자, 에오히푸스의 후손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질기고 거친 풀을 뜯어먹기 위해 어금니가 발달했고, 탁 트인 초원에서 포식자를 피해 살아남기 위해 몸집은 점점 커졌습니다. 이 과정은 결코 하나의 목표를 향한 직선적인 길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거대한 나뭇가지처럼 수많은 종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그 치열한 생존 경쟁의 끝에서 오직 하나의 속(屬), '에쿠스(Equus)'만이 살아남아 현존하는 모든 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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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2. 왜 말의 발가락은 하나만 남았을까?

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단단한 단일 발굽입니다. 여러 개였던 발가락이 왜 하나만 남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가설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포식자 회피설'입니다. 훤히 트인 초원에서는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쉬웠고, 여러 개의 발가락보다 단단하고 넓은 단일 발굽이 땅을 박차고 더 빨리 달리는 데 유리했다는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속도를 선택한 결과라는 해석입니다.


두 번째는 '먹이 탐색설'입니다. 약 1,200만 년 전부터 지구가 급격히 추워지자 초원의 풀이 귀해졌고, 말은 먹이를 찾아 더 멀리, 더 오랫동안 걸어야 했습니다. 이 가설은 말이 단거리 질주보다는 장거리 이동에 최적화된, 즉 지구력에 유리한 구조로 진화하면서 발가락이 하나로 합쳐졌다고 설명합니다.


흥미롭게도 말의 다리에는 '스테이 아퍼라투스(stay apparatus)'라는 특수한 장치가 있습니다. 힘줄과 인대가 뼈를 단단히 고정해 최소한의 에너지로도 서 있을 수 있게 해 주는데, 이 덕분에 말은 서서도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포식자로부터 즉시 도망칠 수 있도록 진화한 생존의 비밀입니다. 말은 누워서 자면 불안한 동물인 셈입니다.


이번 CES 2026에서 하루 종일 게임하다 밥 먹으라는 소리에 귀찮은 듯 나와 기지개를 켠 후 찬장과 냉장고를 뒤지며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시원하게 맥주 한 캔을 따며 야무지게 저녁식사를 사수하는 백수 아들의 행동패턴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찬사를 받은 아틀라스(Atlas) 로봇을 만든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인 스팟(Spot)도 스테이 아퍼라투스 구조를 재현한 것입니다.

CES 2026에서 백수 아들의 걸음걸이를 기가 막히게 재현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Atlas)


Clipboard - 2026-01-12 00.07.20.png 스테이 아퍼라투스(stay apparatus) 구조와 기계적으로 재현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스팟(Spot)

그러고 보니 직장인들도 앉아서 잘 수 있는 정신적 스테이 아퍼라투스가 있군요.


Chapter 03. 777만 종 중 단 20여 종: 가축화라는 기적

지구상에는 약 777만 종의 동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중 인류가 성공적으로 가축화한 동물은 개, 말, 소, 양, 염소, 돼지, 닭, 오리, 거위, 낙타, 라마, 알파카, 물소, 꿀벌, 누에 등 고작 20여 종에 불과합니다. 0.0003%도 안 되는 확률입니다. 왜 이렇게 적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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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화에 성공하려면 까다로운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난폭하지 않은 성격, 인간의 통제를 받아들이는 사회성, 좁은 우리에서도 번식할 수 있는 적응력, 그리고 무엇보다 까다롭지 않은 식성이 필요합니다. 아프리카의 얼룩말은 말과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성격이 극도로 난폭하고 예측 불가능해서 수천 년간 길들이기 시도가 모두 실패했습니다. 코끼리는 길들일 수 있지만 번식 주기가 너무 길어 진정한 가축화가 불가능했습니다.


약 5,500년 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북부의 보타이(Botai) 문화에서 말의 가축화가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주로 식용 고기나 유제품을 얻기 위한 목적이 우선이었으며, 이동 수단으로는 퍼지지 않았고 그 당시의 말은 우리가 아는 현대의 그것과도 달랐습니다. 그러다가 약 4,200년 전 현재의 러시아 서남부의 돈(Don) 강과 볼가(Volga) 강 유역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해당하는 유라시아 초원과 삼림의 접경지대에서 처음으로 말을 길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포유류 중 말이 가축화에 성공한 데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까다롭지 않은 식성입니다. 말은 영양가가 낮은 풀만으로도 생존할 수 있었고, 심지어 얼어붙은 땅을 발굽으로 파헤쳐 스스로 먹이를 찾는 능력까지 갖췄습니다. 유목민 입장에서 이보다 편한 가축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저기 옮겨주기만 하면 알아서 잘 크는, 이른바 '방목 친화형' 동물이었던 것입니다.


둘째, 뛰어난 사회성입니다. 말은 지배와 복종의 위계질서를 이해하는 사회적 동물이었기에 인간의 통제를 비교적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해부학적 '우연'이었습니다. 말의 입에는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 재갈을 물리기에 완벽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이 작은 틈이 없었다면 인류가 말을 통제하고 그 엄청난 힘을 빌리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재갈 덕분에 말은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20여 종의 가축 중에서도 말은 이동, 전쟁, 농경, 식용, 가죽까지 다목적으로 활용된 거의 유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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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4. 길들여진다는 것: 말에게도 러키비키?

인간의 입장에서 가축화는 정복과 지배였지만, 말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이는 종(種)의 번성을 위한 탁월한 '공진화(co-evolution)' 전략이었습니다. 과거 기후 변화가 말을 신체적으로 진화하도록 압박했다면,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은 가축화라는 '행동적' 진화를 통한 생존을 유리하게 만드는 새로운 환경 압력으로 작용했습니다.


말처럼 체구가 큰 포유류는 번식이 느리고 임신 기간이 길어 환경 변화에 취약하고 멸종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북미 대륙의 말들이 멸종한 것처럼, 인류와의 공생 관계가 아니었다면 말이라는 종 자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개체와 종의 번성은 항상 같지는 않은데, 이는 이는 닭의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체 하나하나는 좁은 공간에서 고통받지만, 닭이라는 종 전체를 놓고 보면 인류 덕분에 역사상 가장번성하고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개체의 고통과 종의 번영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길들여짐'은 말이 선택한 가장 효율적인 생존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제2부: 말, 문명의 엔진이 되다


Chapter 05. 속도 혁명: '마력'이라는 개념의 탄생

오늘날 우리는 자동차의 성능을 이야기할 때 너무나 당연하게 '마력(Horsepower)'이라는 단위를 사용합니다. 이 개념은 18세기 산업혁명의 아이콘, 제임스 와트가 만든 기가 막힌 '마케팅' 용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개량한 증기기관을 탄광과 양조장의 말 대신 팔기 위해, 기계의 힘을 고객들이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 몇 마리의 힘'으로 환산했습니다.


와트가 1마력을 '높게' 정의한 치밀한 상업적 이유

제임스 와트는 맥주 양조장에서 일하는 말 한 마리가 1분에 33,000파운드·피트(ft·lbf/min)의 일을 한다는 계산을 통해 '1마력'을 정의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와트가 이 1마력의 기준을 실제 말의 평균적인 능력보다 약 50%나 더 부풀려 설정했다는 사실입니다. 현대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말이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힘은 약 0.7마력 정도이며, 단시간 최대 출력도 약 14.9마력에 불과합니다.


와트가 이처럼 '1마력'의 기준을 실제 말의 능력보다 부풀린 이유는 증기기관이 말보다 힘이 약하다는 소비자들의 불평을 원천 차단하고 만족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름의 치밀한 마케팅전략이었던 셈이지요.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와트가 고객에게 "이 증기기관은 10마력의 힘을 냅니다"라고 말하며 제품을 팔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1마력의 기준 자체가 실제 말보다 훨씬 높게 잡혀 있다 보니, 이 기계는 실제 현장에서 말 10마리가 아니라 약 15마리가 붙어야 할 일을 거뜬히 해냅니다. 이를 지켜본 사업가는 "말 10마리 힘이라며? 그런데 15마리보다 힘이 세네? 와 대박! 오! 개꿀. 김 부장, 추가 구매 건 진행시켜!"라며 제품의 성능에 크게 만족하고 깊은 신뢰를 갖게 되겠지요.


결국 와트는 성능 수치를 부풀리는 대신 '단위의 기준'을 엄격하게 높임으로써,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고객의 감동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러한 '언더프로미스(Under-promise, 약속은 보수적으로)''오버딜리버(Over-deliver, 결과는 초과적으로)' 전략 덕분에 증기기관은 기존의 말을 빠르게 대체하며 산업 혁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고, 이 매력적인 단위는 훗날 21세기의 전기차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와트의 이 전략은 비단 산업혁명 시대에서 통했던 것만이 아닌 현대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에도 적용됩니다.


언더프로미스, 오버딜리버 전략의 정수, 대한민국 방위산업

우리나라 방위사업은 밀리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른바 '뻥스펙의 반대말' 혹은 '겸손한 사기캐'로 유명합니다. 주로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거나(정치적 이유), 기술적 불확실성을 대비해 보수적으로 발표했다가, 실전 배치 때는 "어?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수준의 괴력을 보여주는 한국 무기들의 흥미로운 사례를 정리해 드립니다.


1. 현무(Hyunmoo) 미사일 시리즈: "평범한 로켓이라니까요?"

대한민국 '언더프로미스'의 정점입니다. 과거 한미 미사일 지침에 묶여 있을 때, 우리나라는 사거리와 탄두 중량을 아주 조심스럽게 발표해야 했습니다.


공식 발표(Under-promise): "이것은 사거리 300km 정도의 평범한 방어용 미사일입니다. 탄두도 그냥 평범하게 500kg 정도 실으려고요."


실제 성능(Over-deliver): 미사일 지침이 해제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현무-5를 공개했는데, 탄두 중량이 무려 8~9톤까지 가능합니다. 이는 전 세계 탄두 중량 중 압도적 1위로, 핵무기가 없는 나라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핵무기에 가까운 위력'을 가진 괴물 미사일입니다.


주변국: "야, 탄두가 9톤이면 그건 미사일이 아니라 떨어지는 운석 아니냐?"


한국: "아, 계산을(매우 보수적으로) 해보니 그 정도는 아닙니다. 형님들은 더 무서운 무기들도 많은데 무얼 그리 무서워하십니까? 저희는 그저 작은 걸 하나 만들었을 뿐입니다."


2. K9 자주포: "가성비 좋은 포 사세요."

세계 자주포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K9은 처음엔 그저 '가성비' 자주포 정도로만 홍보되었습니다.


공식 발표(Under-promise): "분당 6발 정도 쏠 수 있고, 사거리도 40km 정도인 착한 가격, 착한 성능의 중저가 자주포입니다."


실제 성능(Over-deliver): 분당 6발 발사는 기본, 급속 사격 시 15초 이내에 3발을 꽂아 넣는 급속 사격(Burst Rate)은 물론, 한 대의 자주포가 각도를 조절해 동시에 여러 발을 한 지점에 떨어뜨리는 TOT 사격 능력이 세계최고 수준입니다. 게다가 최근 폴란드 등에 수출된 버전은 자동화 시스템이 더해져 거의 '강철의 비'를 내리는 수준으로 진화했고, 2027년에는 완전 자동 장전 시스템으로 분당 9발까지 퍼붓는 괴물로 바뀝니다.


주변국: "헬로, 코리아. 우리 몇 대만 샀는데 왜 포병 부대 전체가 쏜 것 같은 화력이 나오는 거죠? 제품 잘못 보냈나요?"


한국: "대한민국은 '빨리빨리' 민족이라 짜장면도 조금만 늦으면 오토바이 시동 걸기 전에 환불 전화부터 받습니다. 혹시라도 화력이 부족하시면 급속 사격 모드를..."


3. 도산안창호급 잠수함(KSS-III): "왕뚜껑이야? 디젤 잠수함이 왜 뚜껑을 열어?"

보통 디젤 잠수함은 어뢰를 쏘는 것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3,000톤급 잠수함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공식 발표(Under-promise): "우리가 처음으로 독자 설계한 3,000톤급 잠수함입니다. 조용하고 잘 내려가는 게 그저 소박한 목표랍니다."


실제 성능(Over-deliver): 런칭 행사 때 갑자기 서해바다 밑에서 미사일(SLBM: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여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보통 SLBM은 거대한 원자력 잠수함의 전유물입니다. 더구나 하나도 아닌 6개의 VLS(수직발사대)를 탑재한 것입니다.


주변국: "디젤 잠수함에서 SLBM을 쐈다고?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거였어?"


한국: "아, 형님들. 잘 정리해 봤더니 이게 되더라고요. 시험 삼아 쏴 봤는데 운 좋게 되네요?"


4. KF-21 보라매: "4.5세대일 뿐이라니까요?"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아주 겸손하게 '4.5세대 전투기'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공식 발표(Under-promise): "아직 스텔스 기술이 부족하고 내부 무장창도 없는 겨우 4.5세대 전투기를 개발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형님들."


실제 성능(Over-deliver): 막상 시제기가 나오고 테스트를 해보니, 기체 형상 자체가 웬만한 5세대 스텔스기 뺨치게 매끄럽습니다. 기존 4.5세대 기종 중 최고 수준인 라팔을 씹어 먹고 심지어 레이더 반사 면적(RCS)은 F-16보다 훨씬 작고 F-35에 근접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양산기가 나오기도 전에 스텔스 도료와 내부 무장창 설계까지 끝났고, 5세대 기체 전용 접합구조 설계도 끝났으며 6세대 전투기의 필수조건인 무인기까지 개발 중입니다. 폴란드와 아랍에미리트(UAE)는 돈다발을 들고 찾아와 같이 개발하자고 합니다. 나중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내부 무장창만 달면 바로 5세대 스텔스기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주변국: "야! 너네 그거 4.5세대 아니지? 스텔스기 아냐?"


한국: "에헤이, 무슨 말씀을. 밖에 미사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거 보셨잖아요? 4.5세대랍니다. 5세대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형님들."


5. 누리호(KSLV-II): "에헤이, 과학용이라니까요?"

누리호는 대한민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첫 우주 발사체입니다. 이 프로젝트 역시 '언더프로미스' 뒤에 무시무시한 '오버딜리버' 잠재력을 숨기고 있습니다.


공식 발표(Under-promise): "순수한 과학용 로켓발사에 겨우 세 번째 시도 만에 성공했습니다. 우리는 자력으로 1.5톤급 실용 위성을 저궤도(700km)에 올려 '스페이스 클럽'에 가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실제 성능(Over-deliver): 로켓 공학에서 '우주 발사체'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기술은 곧 탄두를 지구 반대편으로 정확히 떨어뜨리는 기술과 90% 이상 일치합니다. 누리호의 75톤급 엔진 4개를 묶은 1단 추진력은 이미 검증되었습니다. 여기에 위성 대신 '무거운 무언가'를 싣고 궤도를 조정하면, 그것은 그대로 사거리 1만 km 이상의 ICBM이 됩니다. 즉, 평화로운 우주 탐사를 위해 만든 엔진이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 어디든 닿을 수 있는 거대한 운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2차 발사 때 다중 위성 발사의 성공 노하우는 다탄두 기술로 즉시 응용될 수 있습니다.


주변국 1: "야, 너네 방금 1톤 넘는 위성 쐈지? 그 정도 무게면 탄두로 바꿨을 때 위력이..."


한국: "어이구 형님. 무슨 그런 무서운 말씀을! 저희는 그저 '스페이스 클럽' 막내로 가입한 게 기쁠 뿐입니다. 작은 나라가 언감생심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주변국 2: "야, 너네 로켓 왜 그리 높이 올라가는데? 그리고 왜 자꾸 페어링(로켓 덮개) 분리 기술에 집착해? 왜 자꾸 무게를 늘려?"


한국: "아이고 형님들, 우리나라는 나라 작고 돈 없어서 꽉꽉 눌러 담아야 하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 포장 좀 잘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버전인 차세대 발사체는 10톤까지..."


왜 이런 전략을 쓸까요?


지정학적 눈치: 너무 강력한 무기를 만든다고 광고하면 주변 강대국(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견제가 들어옵니다. "우린 그냥 과학연구용으로 작고 허접한 거 만들어요~" 하면서 실속을 챙기는 전략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공개한 무기 스펙을 믿는 전문가는 거의 없습니다. "그 정도겠어?"가 아니라 "그 정도뿐이겠어?"라서입니다.


리스크 관리: 무기 개발은 변수가 많습니다. 처음부터 "세계 최고!"라고 했다가 실패하면 타격이 크니, 일단 낮게 잡고 결과를 좋게 내서 신뢰를 얻는 것입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오버프로미스, 언더딜리버 전략을 구사하여 무기를 수입한 나라의 뒤통수를 때리는 나라도 있습니다. 바로 옆나라 중국입니다.


Clipboard - 2026-01-13 00.35.05.png 좌상으로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현무 5, K-9 자주포, 도산안창호함, KF-21, 누리호 4호



Chapter 06. 말이 없던 대륙, 말이 있던 대륙

말의 존재 유무는 문명 발전에 얼마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아메리카 문명의 발전이 유라시아보다 뒤처진 핵심 원인 중 하나로 '말의 부재'를 꼽았습니다. 약 9,000년 전 아메리카 대륙에서 말이 멸종하면서, 이곳의 문명은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이나 강력한 기동력을 가진 군사 조직을 발전시키는 데 심각한 제약을 받았습니다.


잉카 제국은 4만 km의 도로를 깔고도 수레 하나 굴리지 못했습니다. 수천 년 후, 유럽인들이 배에 말을 싣고 다시 아메리카 대륙에 나타났을 때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1532년 피사로가 168명의 병력으로 8만 잉카 대군을 격파했을 때 앞세웠던 말과 기마병은 원주민들에게 무시무시한 공포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유럽인들이 가져온 보이지 않는 세균 이전에 어쩌면 전투의 승패는 시작부터 결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Chapter 07. 바퀴와 말의 결합: 전차의 등장

말의 힘에 바퀴가 더해지자 인류 최초의 기동 병기, '전차(Chariot)'가 탄생했습니다. 이는 고대 전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전까지 평화로운 교역 중개자였던 목축민들은 전차를 앞세워 무자비한 약탈자로 변모했습니다.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수천 대의 전차를 동원해 맞붙었던 '카데시 전투'는 고대 문명들이 전차를 얼마나 핵심적인 전략 자원으로 여겼는지 보여줍니다.


전차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진(秦) 나라가 제(齊) 나라를 정복한 후, 전차가 막힘없이 질주할 수 있도록 밭두렁의 방향을 기존의 남북 방향에서 동서 방향으로 바꾸라고 명령했을 정도입니다. 국가의 농업 기반을 바꾸도록 강요할 만큼, 전차는 고대 세계의 질서를 결정하는 힘이었습니다.


전차 경주의 영광은 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1981년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영국 육상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그리스 음악가 반젤리스가 작곡한 주제곡은 그해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고, 영화 자체도 작품상을 거머쥐었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미스터 빈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며 패러디한 장면들은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회자됩니다. 고대 전차의 위엄이 현대의 코미디까지 영감을 준 셈입니다.


Clipboard - 2026-01-12 00.37.00.png 이 영화의 주제곡을 들으면 왠지 천천히 달리고 싶어 집니다.


Chapter 08. 유목민의 등장과 문명의 충돌

전차를 넘어 인간이 직접 말 위에 올라타는 '기마술'이 등장하면서, 인류사에 새로운 주역이 탄생합니다. 바로 '유목민'입니다. 정해진 근거지 없이 초원을 따라 이동하며 사는 이들은 농경 정주 문명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스키타이, 흉노와 같은 초기 유목 세력은 바람처럼 나타나 달리면서 활을 쏘고 사라지는 압도적인 기동력을 바탕으로 정주 문명을 위협했으며, 이는 기존의 보병 중심 군대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공포였습니다. 다만 그들은 문자가 없었기에, 그들의 역사는 대부분 그들에게 침략당한 정주민들의 공포로 새겨진 기록을 통해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Chapter 09. 말을 타기 위해 입기 시작한 옷, 바지

우리가 매일 입는 바지가 사실은 말을 타기 위해 발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치마 형태의 옷을 입었던 고대 로마인들은 말을 타기 위해 바지를 입는 켈트족이나 페르시아인들을 '야만인'이라 여기며 경멸했습니다.


하지만 기마술의 위력은 복식 문화마저 바꾸었습니다. 페르시아 기마병을 통해 바지 문화는 중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기원전 300년경, 조나라의 무령왕은 북방 기마민족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합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오랑캐의 풍습이라 여겨지던 기마술을 배우게 하고, 말을 타기 편하도록 바지를 입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호복기사(胡服騎射)'라 불리는 이 개혁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문화 혁명이었습니다. 이처럼 말은 인류의 전투 방식뿐만 아니라, 입는 옷의 형태까지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제3부: 말 위에서 태어난 전쟁의 신


Chapter 10. 최초의 제국을 만든 힘, 아시리아의 기마 군단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 사이 인류 최초의 '제국'이라 불리며 최전성기를 맞이한 아시리아의 핵심에는 바로 체계적으로 편제된 '기마 군단'이 있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자리 잡았던 아시리아인들은 북방의 기마 유목민들과의 잦은 접촉을 통해 기마술을 습득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철기 무기와 결합시켜 주변 문명들을 무자비하게 정복해 나갔습니다.

Clipboard - 2026-01-14 00.42.21.png 아시리아의 기마병


이는 매우 역설적인 역사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정주 문명이었던 아시리아가 기마 유목민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그들의 기술을 받아들였고, 오히려 그 힘을 바탕으로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주체가 된 것입니다. 위협이 곧 혁신의 동력이 된 셈입니다.


Chapter 11. 겁 많은 초식동물을 병기로: 군마 훈련의 비밀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릅니다. 고대 전투에는 말을 이용한 전차와 기병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사람도 겁을 먹는 그 무서운 전쟁터에서 겁 많은 초식동물이 어떻게 도망치지 않고 싸울 수 있었을까요? 용감한 말만 골라 썼을까요? 아니면 무슨 약이라도 먹였을까요?


전투마에게 전투의 공포를 잊게 하려고 마약을 먹였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비록 로마 시대 전차 경주마에게 '히드로멜(Hydromel, 꿀물 발효주)' 같은 흥분제를 먹인 기록은 있지만, 실제 전쟁에서는 약물보다 훈련과 기수와의 유대감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오히려 약물은 바이킹의 '버서커(광전사)'처럼 사람들이 전투 전에 복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버서커들은 레X불을 마십니다)


겁 많은 초식동물을 극강의 병기로 재탄생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체계적인 둔감화 훈련'과 '엄격한 선발 과정' 덕분이었습니다. 말은 본능적으로 겁이 많은 초식동물입니다. 야생에서 살아남으려면 조금이라도 위험 신호가 감지되면 무조건 도망쳐야 했으니까요. 그런 말을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전쟁터에 세우려면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공포를 지우는 '둔감화 훈련'

군마는 어릴 때부터 전쟁터의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철저히 세뇌되었습니다. 먼저 소음과 냄새에 적응시켰습니다. 시끄러운 소리, 번쩍이는 무기, 그리고 피 냄새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했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말들을 도축장 근처나 대장간, 시끄러운 시장통에 데리고 다니며 피 냄새와 금속 소음에 무뎌지게 만들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신입사원 OJT를 가장 빡센 현장에 먼저 투입하는 셈입니다.


또한 말의 무리 본능을 영리하게 이용했습니다. 어린 말들을 경험 많은 베테랑 군마들과 함께 생활하게 했습니다. 말이 겁을 먹으려 할 때 옆에 있는 노련한 말이 평온해하면, 어린 말도 "여기는 안전하구나"라고 학습하는 것입니다. 베테랑과 함께 하면 후배도 안정감을 느끼는 직장 생활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고대의 비밀 훈련 매뉴얼: 키쿨리 문서

기원전 1350년경 히타이트 제국의 조련사 '키쿨리'가 작성한 점토판 문서는 세계 최초의 군마 훈련 매뉴얼로 꼽힙니다. 이 문서에는 현대 스포츠 과학과 유사하게 강도 높은 훈련과 휴식을 번갈아 배치하는 184일간의 인터벌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훈련 후 따뜻한 물로 씻기거나, 밤에만 먹이를 주는 등 컨디션을 조절하여 전차를 끌고 장거리를 질주할 수 있는 지구력과 근력을 만들었습니다.


이 훈련법은 당시 히타이트 제국의 일급기밀이었습니다. 강력한 전차 부대를 앞세워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 점토판에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3,400년 전에 이미 체계적인 운동 프로그램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엄격한 선발: 배짱 있는 말만 남긴다

아무 말이나 전쟁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중세 기록에는 말의 꼬리를 세게 잡아당겨 보는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이때 말이 놀라서 도망치거나 주저앉으면 탈락이고, 버티고 서 있거나 뒷발질을 하며 맞서는 배짱 있는 말만이 군마로 선발되었습니다.


특히 서양의 기사들은 거세하지 않은 수컷 말(Stallion)을 주로 탔는데, 이는 수말 특유의 공격성을 이용하여 적에게 돌격하고 보병을 물어뜯거나 발로 차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의 돌격해서 부딪히는 충격은 시속 50km로 달리는 소형 승용차에 치이는 것과 맞먹습니다. 말을 탄 중세 시대의 기사가 창을 들고 돌격할 때 창끝에 집중되는 에너지는 9mm 권총탄과 비교했을 때 약 100배에 가까운 파괴력을 냅니다. (권총탄 약 500 J, 기병의 랜스 돌격 약 45,000 J)


결론적으로, 고대 군마는 타고난 용맹함을 가진 말을 선별해, 피 냄새와 소음에 무감각해지도록 수년간 가르친 '살아있는 병기'였습니다. 좋은 커리큘럼과 선생님을 만나면 빨리 성장한다는 것을 3,000년 전 조련사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Chapter 12. 안장과 등자: 기마술의 완성

말 위에 그냥 올라타는 것과 안장과 등자를 사용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안장(Saddle)'은 기수가 말 위에서 안정적으로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4세기경 훈족이 개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등자(Stirrup)'는 기병 전투에 진정한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등자에 두 발을 딛게 되면서 기수는 비로소 말 위에서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칼을 휘두르고, 창을 찌르고, 활을 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고 강력해졌습니다. 특히 말을 달리며 뒤를 돌아 활을 쏘는 '파르티아 사격법'은 등자 없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난도 전술입니다. 이 작은 발걸이가 기병을 지상 최강의 병종으로 완성시키면서, 유라시아 초원에서는 이 기술을 극한까지 활용하여 세계를 뒤흔들 거대한 제국이 태동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Clipboard - 2026-01-12 00.42.05.png 덕왕은 학생 시절, 무용총의 수렵도를 직접 보고 왔습니다. 완전 러키비키



Chapter 13. 몽골 제국: 말발굽 아래 통일된 세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의 천하통일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답은 바로 '몽골마'에 있습니다.


몽골말의 신체적 특성

몽골마는 체고 12-14 핸드(122-142cm), 체중 227-272kg의 작은 체구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영하 40도에서 영상 30도까지의 극한 온도를 견디며, 겨울철에는 체중의 30%까지 감량하고도 생존했습니다. 눈 속에서 풀을 파헤쳐 먹을 수 있어 러시아 원정 같은 겨울 작전이 가능했습니다. 하루 140km까지 이동할 수 있었고, 곡물 사료 없이 풀만으로 생존하여 유럽 품종들처럼 복잡한 보급선이 필요 없었습니다.


순진하게 생긴 녀석들이지만 욕망과 전투력은 생김새와 정반대입니다. 야생 몽골말 무리에서는 한 마리 종마가 여러 암말들을 거느리며 하렘을 이루고 삽니다. 나이 많은 종마는 항상 어린 수말로부터 도전을 받으며 서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데 실제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칼라마일리 자연보호구역에서는 하렘 때문에 두 마리의 종마가 싸우다 한꺼번에 죽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보통 7~8살의 젊은 수컷이 17~18살 정도의 늙은 종마를 제끼고 하렘을 빼앗습니다. 자신의 하렘을 잃은 늙은 종마는 대게 혼자 외롭게 지내다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젊은 종마들로 구성된 총각 무리에 합류합니다. 하렘 무리에서 태어난 어린 수말들과 종마에게 선택받지 못한 암말들은 약 2~3살이 되면 기존 하렘에서 쫓겨나 새로운 무리를 찾아 나섭니다.

몽골야생말 - 나무위키.jpg 순진하게 생긴 주제에 모조(Mojo)가 넘치는구나


측대보: 기마 궁술의 비밀

몽골말의 진정한 비밀 무기는 '조로(joroo, 발음에 주의하세요. 조루 아닙니다)'라 불리는 다섯 번째 보법이었습니다. 측대보(Ambling)라고 불리는 이 보법은 일반적인 4가지 보법(걷기, 속보, 구보, 습보)과 달리 왼쪽 앞발-왼쪽 뒷발, 오른쪽 앞발-오른쪽 뒷발을 동시에 움직이는 4박자 측면 보법으로,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물 가득 찬 잔을 들고 달려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을 만큼"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기수에게 선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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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위아래 반동이 없는 움직임은 파르티안 사격법(뒤돌아 쏘기)에 결정적이었습니다. 기수가 양손으로 활을 다루면서 후방을 향해 상체를 비틀어야 하는 이 기술은, 수직 흔들림이 크면 정확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기원전 53년 카르헤(Carrhae) 전투에서 파르티아 기마 궁수 9,000명이 로마군 35,000명을 격파하며 20,000명을 죽이고 크라수스 장군까지 전사시킨 것은 이 전술의 위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몽골군은 각 병사가 3-5마리(최대 20마리)의 말을 보유하여 항상 신선한 말을 타면서, 전진·측면·후방 사격을 자유자재로 구사했습니다. 몽골말의 이점으로 인해 몽골의 기마 궁사들은 350야드(약 320m)까지 화살을 날렸고, 조준 사격은 150-175m에서, 곡사 사격은 400m까지 가능했습니다. 영국 장궁의 사거리가 250야드임을 감안하면 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기동력 또한 경이로웠습니다. 일반적인 부대는 하루 130km 이상을 주파했으며, 파발을 전하거나 기습을 감행하는 정예 부대는 무려 400km까지 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적군들은 볼품없는 몽골말을 보고 비웃으며 “쟤들 말은 작으니까 아무리 서둘러도 내일이나 오겠지?”라고 생각할 때, 측대보로 피로를 최소화하며 밤새 자율주행급으로 달려온 몽골군은 새벽에 적의 텐트까지 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서양세계가 알고 있던 속도와 비교하면 몽골군의 이동 속도는 거의 우주군급 기동력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먹이를 줄 필요도 없이 알아서 풀을 뜯어먹으며 잘 사니 그야말로 ‘기름값’도 필요 없는 사기급 영구기관인 셈이지요.


이처럼 몽골말의 기동력과 내구력은 또한 제국을 건설하고 지배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주요 도로에서 말이 전력으로 달릴 수 있는 구간인 25~40km마다 역을 설치하여 전령이 지친 말을 맡기고 미리 준비된 싱싱한 새 말로 갈아타 24시간 내내 목적지를 향해 달릴 수 있던 ‘잠치(站赤: 역참)’제도는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는데 있어서 오늘날의 인터넷 망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몽골의 군사, 행정 시스템의 근간은 바로 말이었던 것입니다.


Chapter 14. 말이 끝낸 시대: 훈족과 로마의 멸망

말은 고대 세계를 창조하는데 바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세계를 끝장내기도 했습니다. 4세기 후반, 아시아 초원지대에서 나타난 기마민족 '훈족'의 등장은 유럽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말 위에서 먹고 자는 것은 물론, 생리 현상까지(심지어는 X까지, 그게 되나?) 해결했던 그들의 삶은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재앙 그 자체였습니다.


훈족의 무자비한 서진(西進)은 그들 앞에 있던 게르만족들을 압박했고, 살길을 찾아 쫓겨난 게르만족들은 결국 로마 제국의 국경을 넘어 대규모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며, 이는 수백 년간 지속된 팍스 로마나의 종언을 고하고 서로마 제국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말의 발굽 소리가 제국에게는 장송곡이 되었던 셈입니다.



제4부: 말, 문화와 경제의 대동맥


Chapter 15. 초원길에서 실크로드까지: 말이 연 교역의 시대

말은 전쟁의 도구이기만 했을까요? 아닙니다. 말은 동서 문명을 잇는 경제의 대동맥이었습니다. 기마병들이 달리던 광활한 이동 경로는 자연스럽게 '초원길(스텝 루트)'이라는 무역로로 발전했고, 이는 우리가 아는 실크로드 네트워크의 중요한 축을 형성했습니다.

세계사] 몽골 제국의 동서 교역망 - 역참제와 초원길, 비단길, 바닷길  네이버 블로그.png


특히 몽골 제국은 교역의 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그들은 '파이자(Paiza)'라는 일종의 통행증을 발급하여 상인들의 안전한 이동을 보장했고, 제국 전역에 촘촘히 깔린 역참 시스템은 물류의 속도와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말발굽 아래 통일된 유라시아 대륙에서 사상, 종교, 기술, 그리고 상품이 자유롭게 오가며 인류 문명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Chapter 16. 역사 속 명마들: 신화와 역사 사이

역사는 수많은 명마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설의 말들은 실제로 존재했을까요, 아니면 문학적 상상의 산물일까요?


한혈마(汗血馬): 황제가 전쟁까지 벌인 말

피 같은 땀을 흘린다는 전설의 한혈마는 실존했습니다. 한나라 무제(武帝, 재위 141-87 BCE)는 역경(易經)의 점괘에서 "서북쪽에서 신마(神馬)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완국(大宛, 페르가나)의 "피땀 흘리는 말"을 얻기 위해 천금과 황금말을 보냈으나, 대완왕이 사절을 죽이고 보물을 빼앗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1차 원정(104 BCE)에서 이광리 장군이 6,000 기병과 20,000 보병을 이끌고 5,000km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했으나, 보급 부족으로 대패하고 돈황으로 퇴각했습니다. 2차 원정(102 BCE)에서는 60,000명의 병력, 30,000마리의 말, 소와 당나귀, 낙타까지 동원했습니다. 행군 중 50%의 병력을 잃으면서도 대완의 수도 이시(Ershi)를 40일간 포위하여 끝내 함락시켰습니다. 대완 귀족들은 왕을 죽여 머리를 보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최상급 천마 30 필과 중급 이하 3,000마리를 획득했으나, 귀국 중 대부분이 죽어 약 1,000마리만 중국에 도착했습니다.


현대 학자들은 한혈마가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의 아할(Akhal) 오아시스 지역에서 유래된 품종인 '아할테케(Akhal-Teke)'의 조상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피땀'의 원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것은 기생충설로, 러시아 스텝 지역에 분포하는 선충 ‘Parafilaria multipapillosa’가 피하조직에 기생하며 결절을 형성하고, 이 결절에서 주기적으로 출혈이 발생합니다. 수의학에서 '여름 출혈(summer bleeding)'로 알려진 현상입니다. 또 다른 설명은 아할테케의 극도로 얇은 피부와 표면에 드러난 모세혈관이 격렬한 운동 중 파열되어, 강한 땀과 섞여 피땀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할테케는 그 금속성 광택으로도 유명합니다. 모발 중심의 불투명한 수질(medulla)이 축소되거나 없어지고, 투명한 부분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빛이 한쪽에서 들어가 다른 쪽으로 굴절되는 '광파이프 효과'를 만듭니다. 1956년 흐루시초프가 엘리자베스 2세에게 금빛 아할테케 종마 멜레쿠시를 선물했을 때, 영국 마부들이 인공 광택제인 줄 알고 씻어내려 했으나 오히려 더 빛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약 6,600-7,000마리만 남아 있으며,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 상징으로 국장과 화폐에 등장합니다.

Clipboard - 2026-01-12 00.50.34.png 말 주제에 본좌보다 잘생기다니



적토마(赤兔馬): 인중여포 마중적토

삼국지의 적토마는 부분적으로 실존했습니다. 정사 삼국지에는 여포가 "적토라는 좋은 말을 탔다"는 기록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인중여포 마중적토(人中呂布 馬中赤兔)", 즉 사람 중에 여포요 말 중에 적토라는 유명한 문구도 정사에 나옵니다. 그러나 관우가 적토마를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창작된 것입니다. 여포는 189년쯤 동탁에게서 적토마를 선물받은 후 199년에 사망하고 적토마를 이어받은 관우가 219년에 사망했는데, 말의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같은 말이 동탁에서 여포로, 여포에서 관우로 30년 넘게 이어졌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한나라 시대 간독(목간)에는 여러 다른 말들을 "적토"라고 부른 기록이 있어, 적토마가 특정 개체가 아니라 "토끼 머리처럼 생긴 붉은 털 말"이라는 일반명사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초패왕을 지킨 검은 용, 오추마

초패왕 항우의 곁을 끝까지 지킨 오추마(烏錐馬)도 명마이야기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항우가 산적인 우영과 환초를 회유하러 갔을 때 인근 백성들이 사나운 말 한 마리가 날뛰는 바람에 농사일을 망치고 있다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농부들은 겁에 질려 “이 산에 큰 연못이 하나 있는데 그 속에 살고 있는 검은 용 한 마리가 날마다 말로 변해 마을로 내려와 소리를 지르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과 집이 뒤흔들립니다. 더구나 논이고 밭이고 마구 뛰어다녀 농사를 망치고 있습니다.”라며 하소연했습니다.


이에 항우가 연못에 가니 못의 물이 부글부글 끓다가 검은 말이 튀어나와 소리를 지르며 발로 항우를 차려고 했지만 항우는 재빨리 피하고는 말에 달려들어 목덜미를 움켜쥐며 말 등에 올라탔고 연못을 10여 바퀴를 돌며 사투를 벌인 끝에 결국 말을 굴복시켰습니다.


항우의 강한 힘에 반한 오추마는 이후 초나라와 한나라의 마지막 싸움이었던 해하전투(垓下戰鬪)까지 초패왕의 곁에서 지키다, 패배를 인정한 항우가 자결을 결심하며 자신의 호위 장수에게 오추마를 주며 배에 태워 피신시켰으나 오추마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중 항우가 자결하는 모습을 보고 슬피 울며 스스로 강에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항우의 오추마가 당시 북방 민족인 흉노 계통의 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이 외에도 눈 아래에 눈물샘(이슬) 모양의 반점이 있다는 이유로 삼국지연의에서는 주인에게 해로움을 끼칠 '흉마'로 묘사되기도 했으나, 유비가 유표의 부하장수인 채모, 괴월에게 쫓길 때에 성 밖의 넓은 개울을 한번에 건너서 귀 큰 놈의 목숨을 구하는 공로를 세워 반전스토리를 쓴 적로마(嫡露馬)도 명마의 반열에 듭니다. 다만 이는 삼국지연의에서만 등장하는 허구입니다.


근현대의 명마들

이외에도 근현대로 넘어오면 나폴레옹과 함께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다 워털루 전투 패배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종마로 (행복하게) 살다가 38세에 죽은 '마렝고', 그리고 20세기 최고의 경주마로 불리며 비정상적으로 큰 심장(일반 말의 2배 이상)을 가졌던 '세크리테리엇'에 이르기까지, 명마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인간에게 영감을 주는 신화로 남아있습니다.


Clipboard - 2026-01-12 01.18.03.png 좌상으로부터 반시계방향: 관운장과 적토마 / 나폴레옹의 마렝고 / 알렉산더왕의 명마 부케팔로스 / 유비를 구한 적로 / 경마 챔피언 세크리태리엇 / 항우의 오추마


이렇게 명마들을 말하고 나니, 본좌가 전생에 동오를 주름잡던 시절, 본좌와 함께 무수한 전장을 달리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던 덕왕의 애마 ‘패라리(覇羅理: 으뜸가는 그물로 이치를 바로잡도다)'가 떠오릅니다. 손책놈에게 일찍 당하는 바람에 역사 속에 묻혀버렸지만 속도와 코너링이 일품이었던 명마였습니다.

(검색은 하지 마시길)


Chapter 17. 신화 속의 말: 포세이돈은 원래 말의 신이었다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원래 신격이 '말의 신'이었다는 흥미로운 학설이 있습니다. 본래 발칸 반도 북쪽 내륙에 살며 바다를 몰랐던 민족이 그리스로 남하하면서, 처음 본 바다를 가르는 '배'를 마치 초원을 달리는 말처럼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배를 '바다의 말'이라 여겼고,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신이었던 말의 신 포세이돈에게 바다를 다스리는 역할을 부여했다는 해석인데 다음과 같은 근거에 기반합니다.


1. 역사적 및 고고학적 근거


말의 도입과 전파: 기원전 2세기경 그리스에 처음 말을 들여온 초기 헬레네스인(인도-유럽어족)들이 포세이돈 신앙을 함께 가져왔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들은 말을 숭배하던 유목 민족이었으며, 포세이돈은 원래 내륙에서 숭배되던 '대지와 지표수의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미케네 문명의 기록: 선형 B 문자 기록에 따르면,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보다 지진을 일으키는 '지신(地神)' 혹은 '지하수의 신'에 가까운 성격을 보였습니다. 이후 그리스인들이 해양으로 진출하며 바다를 '대지를 둘러싼 거대한 물'로 인식하게 되자, 그의 권능이 바다로 확장된 것으로 봅니다.


2. 신화적 및 언어적 근거


포세이돈 히피오스 (Poseidon Hippios): 포세이돈의 별칭 중 하나인 '히피오스'는 '말의 포세이돈'이라는 뜻으로, 그가 말의 창조자이자 수호자임을 나타냅니다. 내륙 지방인 아르카디아나 보이오티아에서는 바다와 상관없이 말의 신으로서 강력한 숭배를 받았습니다.

말과 물의 상징적 결합: 고대인들은 거친 파도를 달려오는 '하얀 말'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또한 포세이돈이 삼지창으로 땅을 쳐서 말이나 샘물을 솟아나게 했다는 신화는 그가 대지 내의 수분과 생명력을 관장하던 초기 모습을 반영합니다.

말의 탄생 신화: 포세이돈이 메두사와 결합하여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낳거나, 데메테르와 말의 형상으로 결합하여 신마 아레이온을 낳았다는 신화적 계보는 그가 말과 깊은 혈연관계가 있음을 뒷받침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역사적, 신화적 근거들은 본래 대지와 말을 관장하던 포세이돈이, 그리스인들의 해양 진출과 함께 바다의 신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부여받았다는 흥미로운 변화를 시사합니다. 신화의 변천이 곧 문명의 발자취를 담고 있는 셈입니다.


Chapter 18. 로마의 열광: 빵과 서커스, 그리고 전차 경주

로마 제국이 대중을 통치하기 위해 사용했던 정책인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 여기서 '서커스'는 우리가 아는 곡예가 아니라, 바로 '전차 경주'를 의미했습니다. 로마에 있던 가장 큰 경기장인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는 무려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좁은 트랙을 질주하는 모습에 로마 시민들은 열광했습니다. 전차 경주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로마인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은 가장 중요한 대중 오락이자 사회적 통합의 장치였습니다.


영화 「벤허」를 보시면 당시의 전차 스포츠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꽤 오래전 영화이긴 한데 아직 안 보셨다면 필청입니다.



제5부: 한반도의 말, 제주에서 세계로


Chapter 19.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한반도의 기마 문화

한반도 역시 오래전부터 기마 문화가 발달했던 곳입니다. 삼국시대에는 이미 마기(馬技, 말 위에서 부리는 재주), 마희(馬戲, 말과 함께하는 놀이), 마사희(馬射戲, 말을 타며 활을 쏘는 놀이) 등 체계적인 기마 전술과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대구나 창원 등지의 고대 무덤에서 재갈 멈추개와 같은 정교한 마구(馬具)들이 출토되는 것은, 말이 일찍부터 한반도 역사에서 지배층의 권위와 군사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Chapter 20. 제주마의 탄생: 몽골 제국이 남긴 유산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말, 제주마의 역사는 몽골 제국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3세기, 고려의 삼별초를 평정한 원나라는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이곳을 군마를 공급하는 핵심 기지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1276년, 몽골 궁정에서 기르던 최상급 말 160마리를 제주도로 들여와 방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제주마의 직접적인 기원입니다.


추운 초원지대에서 살다가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내려와 연한 풀을 뜯어먹으며 떡상한 생활수준에 살맛 난 몽골말들은 신나게 번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원나라는 '목호(牧胡)'라 불리는 몽골인 말 사육 전문가들을 파견하여 체계적으로 목장을 관리하게 했고, 제주는 동아시아 말 사육의 허브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지금까지 제주마의 조상은 몽골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으나 2019년 발표된 최신 유전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제주마는 몽골마가 도착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반도와 제주도에 정착해 독자적인 진화를 거쳐온 별개의 품종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TMI: 2019년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진은 ‘제주마가 몽골마와 섞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진화해 온 품종’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진화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제주마를 포함한 아시아 품종(몽골 토종마 3 품종, 몽골 야생마), 유럽 품종(더러브렛) 등 6개 품종 제주마, 몽골 토종마 3개 품종(Galshar, Domestic Horse, Jarglant), 몽골 야생마(Przewalski), 더러브렛(Thoroughbred) 41마리의 전체 유전체 염기서열을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제주마는 모든 종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독자 품종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지구력과 속도 유지에 관여하는 유전자(ACTN3, MSTN)는 제주마 집단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진화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Chapter 21. 과하마(果下馬)에서 천연기념물까지: 제주마의 특징과 수난

제주마는 '과하마(果下馬)'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습니다. 과일나무 밑을 지날 수 있을 만큼 체구가 작다는 뜻입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조상처럼 온순한 성격과 혹독한 환경을 견디는 강한 생존력을 지녀 최고의 말로 평가받았습니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은 제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몽골 목호들을 진압했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당시 탔던 말 '응상백' 역시 제주마였습니다.


조선시대 제주는 "국마(國馬)의 부고(府庫)", 즉 '나라의 말 창고'라 불릴 만큼 번성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 수가 급격히 줄어, 현재 순종 혈통은 약 1,392마리가 남아있으나, 이 중 체계적인 혈통 관리를 받는 개체는 200여 마리에 불과하여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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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첫 글 아닌 첫 글’로 말에 대한 이야기, 그 상편을 다뤄보았습니다.


인류가 문명을 일구고, 문화를 꽃피우고, 과학 눈을 뜨기까지. 말의 역사는 곧 인류의 발전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은 그 긴 여정의 첫 발자국을 함께 걸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말과 얽힌 음식문화, 다양한 품종 이야기, 그리고 관련 산업과 기업 분석까지 한층 깊고 넓게 살펴보겠습니다.


한 해의 시작입니다.

말이 박차를 가하듯, 여러분도 결심한 바에도 스스로 채찍질을 더해 원하시는 성과를 거두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같이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병오년 덕왕.png 라리야! 가즈아!






참고문헌 및 출처 (상편)


1. 말의 진화와 가축화

학술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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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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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군마 훈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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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실크로드와 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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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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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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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공학

Boston Dynamics. "Spot: The Agile Mobile Robot." 공식 기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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