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 말의 해에 살펴본 6천만 년 말(馬)의 역사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붉은말의 해 병오년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 시간에는 말의 기원을 시작으로 인류의 문명과 함께 해온 말의 역사, 그리고 제주마의 유래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말이 음식 문화에 끼친 영향과 말의 품종, 그리고 덕력으로 살펴본 일본의 유난한 경마사랑과 마력을 넘어선 새로운 힘의 단위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4,000-5,000년의 역사를 지닌 아라비아마는 가장 오래된 말 품종 중 하나입니다. 아라비아 반도의 베두인 유목민들이 선택적 교배를 통해 발전시켰으며, 최고 순혈종은 '아실(Asil)'이라 불렸습니다. 유명한 알 캄사(Al Khamsa) 전설에 따르면, 예언자 무함마드가 용기와 충성심으로 선발한 다섯 암말에서 주요 혈통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TMI: 알 캄사(Al Khamsa): 목마름보다 강한 충성심
앞서 서양 기사들은 공격성이 강한 수말(종마)을 선호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중동의 아라비아 기병들은 수말 대신 암말(Mare)을 전쟁터에 데려가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선택의 기원이 되는 전설이 재미있습니다.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예언자 무함마드는 어느 날 사막을 횡단하는 긴 여정 끝에 오아시스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인 말들은 물 냄새를 맡자마자 미친 듯이 오아시스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말들이 물에 도착하기 직전, 무함마드는 전투 나팔을 힘껏 불었습니다. 이것은 곧 "돌아와라"는 명령이자, 충성심의 시험이었습니다. (아니, 이런 X개 훈련을…)
갈증에 눈이 먼 대부분의 말들은 나팔 소리를 무시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오직 다섯 마리의 암말만이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참으며 주인에게 되돌아왔습니다. 생존 본능을 이긴 충성심이었습니다.
무함마드는 감동하여 이 다섯 암말에게 축복을 내리고 '알 캄사(Al Khamsa, 다섯)'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 암말들을 모든 번식의 기초로 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각 암말의 목에 엄지손가락을 대어 축복의 표시를 남겼는데, 오늘날에도 아라비아 말의 목에서 발견되는 근육의 작은 움푹 들어간 부분을 '예언자의 엄지 자국(Prophet's Thumbprint)'이라 부릅니다.
이 다섯 암말로부터 아라비아 말의 5대 혈통이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케헤일란(Kehilan), 세글라위(Seglawi), 아베얀(Abeyan), 함다니(Hamdani), 그리고 하드반(Hadban). 역사학자들은 이 전설의 사실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이야기가 담고 있는 교훈만큼은 분명합니다. 베두인 유목민들에게 암말의 충성심은 종마의 공격성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습니다.
암말을 선호한 다른 이유들도 있습니다. 암말은 수말보다 조용해서 기습과 야습이 많은 사막 전투에서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적었고, 이동 중에도 멈추지 않아 부대 기동력 유지에 유리했습니다.
또한 암말은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했기에 발정기가 와도 통제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반면 수말은 발정기 암말의 냄새만 맡으면 이성을 잃었습니다. 아라비아 기병대는 이 차이를 전술로 활용했습니다. 의도적으로 발정기 암말을 전투에 투입하여 적군의 종마들을 교란시킨 것입니다.
11세기 십자군 전쟁에서 유럽 기사들은 거대한 종마에 올라탔습니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사가 창을 들고 돌격하면 그 위력은 살아있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어 아라비아 기병들이 화살을 쏘고 재빨리 물러나면, 십자군의 종마들은 암말의 냄새를 맡게 됩니다. 테스토스테론 덩어리인 종마가 발정기 암말을 코앞에서 마주친 것입니다. 기사들의 명령이고 뭐고, 저 암말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라비아 기병대는 신호에 맞춰 암말들을 풀어 풀을 뜯게 했다가 다시 군영으로 불러들이는 훈련을 철저히 시켰습니다. 알 캄사 전설처럼 나팔 소리 한 번이면 암말들은 충성스럽게 주인에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십자군의 종마들은 암말을 따라 사막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갑옷 입은 기사들은 말없이 사막 한가운데 남겨졌습니다.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살라딘이 십자군을 대파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십자군의 패배에는 물 부족, 지형의 불리함, 살라딘의 뛰어난 전략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소개팅을 하고 싶은 수말의 터질듯한 욕구를 제어하지 못한 '생물학적 교란 작전'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터질 것 같은 내 심장은 날 미치게 만들 것 같았지만
난 이제 깨달았어. 았어. 날 사랑했다는 것을”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유럽인들은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무서운 말이 승리를 보장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막의 베두인들은 더 충성스럽고, 적의 말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말이 진정한 승리의 열쇠임을 알았습니다. 테스토스테론으로 무장한 유럽의 종마들은 사막에서 암말들의 향기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발정이 이성을 이긴, 그래서 전쟁의 승패까지 뒤바꾼 이야기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나 동물이나 이성을 제어하지 못하면 큰 낭패를 봅니다.
아라비아마의 일부 개체는 요추 5개(일반 6개), 늑골 17쌍(일반 18쌍)을 가진 독특한 해부학적 특성을 보입니다. 체고 14.1-15.1 핸드(145-155cm), 체중 360-450kg의 비교적 작은 체구이지만, 높은 골밀도와 강한 관절로 큰 품종에 필적하는 힘을 냅니다. 오목한 얼굴 윤곽(dished profile), 높이 치켜든 꼬리, 넓은 이마 사이의 돌출부(jibbah)는 사막 기후 적응의 결과입니다.
아라비아 혈통은 거의 모든 현대 승용마 품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러브레드의 3대 종마 모두 아라비아/바브/터크 혈통이며, 아메리칸 쿼터호스, 모건, 올로프 트로터, 트라케너, 심지어 중량마인 페르슈롱까지 모두 아라비아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아라비아마는 내구력 경주(endurance riding)를 지배하며, 160km를 하루에 주파하는 테비스 컵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입니다.
또한 유전병도 적고, 쾌활하며, 개만큼 인간과 친해질 수 있으며 훈련이 쉽고 무엇이든 시키면 열심히 해서 ‘말계의 보더 콜리’로 칭송받습니다.
현대 경주마의 대명사 '서러브레드(Thoroughbred)'는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직 '더 빠른 속도'를 위해 17-18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진 인공의 산물입니다. 모든 현대 서러브레드는 단 세 마리의 종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이얼리 터크(The Byerley Turk, c.1680-1703)
가장 먼저 도입된 기초 종마입니다. 1686년 부다 전투에서 노획되어 로버트 바이얼리 대위의 군마로 아일랜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한 전투에서 바이얼리는 "말의 뛰어난 속도 덕분에 포로 신세를 면했다"라고 합니다. 1693년 종마로 은퇴하여 1703년까지 활동했습니다. 그의 후손 헤로드(Herod, 1738)는 현대 서러브레드의 3대 부계 혈통 중 하나를 형성했습니다.
달리 아라비안(The Darley Arabian, c.1700-1730)
가장 영향력 있는 기초 종마입니다. 1700년 1월 4일 시리아 알레포에서 태어나, 영국 영사관 소속 토마스 달리가 당시로서는 큰 키인 15 핸드의 이 말을 소총 선적과 교환하여 구입했습니다. 1704년 영국으로 수입되었습니다.
그의 증증손 이클립스(Eclipse, 1764)는 19전 전승으로 은퇴했으며, 경쟁자가 없어서였습니다. "이클립스 1위, 나머지는 보이지도 않는다(Eclipse first and the rest nowhere)"는 유명한 말이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현대 서러브레드의 80%가 이클립스의 혈통을 잇고, 95%가 달리 아라비안의 Y염색체를 물려받았습니다. 트리플 크라운 우승마 세크리테리엇과 아메리칸 파로아도 그의 후손입니다.
고돌핀 아라비안(The Godolphin Arabian, c.1724-1753)
1724년경 예멘에서 태어나 튀니스의 베이, 프랑스 루이 15세를 거쳐 영국으로 왔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파리에서 짐마차를 끌었다고 합니다. 작은 체구로 처음에는 저평가되었으나, 종마로서 탁월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그의 손자 매첨(Matchem, 1748)은 1771-1786년 16년 연속 챔피언 종마를 차지했습니다. 맨오워, 워어드미럴, 시비스킷이 그의 후손입니다.
서러브레드는 56-72km/h의 속도를 낼 수 있으며, 2008년 위닝 브루가 세운 70.76km/h가 최고 기록입니다. 세크리테리엇은 1973년 벨몬트 스테이크스에서 31 마신 차로 우승하며 아직도 깨지지 않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다만 이처럼 극단적인 속도 추구는 말이 감당하기 힘든 골격계 부담을 낳아 잦은 부상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안달루시아마(Andalusian Horse): 유럽 왕실의 말
스페인 남부 선사시대 20,000-30,000년 전 동굴 벽화에서 조상을 찾을 수 있으며, 15세기부터 독립 품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567년 펠리페 2세가 '푸라 라사 에스파뇰라(PRE)' 육종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연예인 뺨치는 외모와 우수에 찬 눈빛, 온순한 성격과 높은 지능으로 "유럽의 왕실 말"로 불리며 대륙 전역의 귀족과 왕이 타고 외교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1580년 카를 2세 대공이 안달루시아마 9마리 종마와 24마리 암말을 슬로베니아 리피차로 가져가 리피차너(Lipizzan) 품종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185,000마리 이상 등록되어 있으며, 체고 15-15.5 핸드, 80%가 회색이며 머리가 좋아서 현대에는 마장마술, 투우, 승마, 공연 등 다방면에서 활약합니다.
프리지안마(Friesian horse): 중세 기사의 파트너
네덜란드 프리슬란트 지방 원산으로 4세기 AD부터 기록이 있습니다. 윌리엄 정복왕이 탄 말도 프리지안 타입으로 추정됩니다. 20세기 초 종마 단 3마리만 남아 멸종 직전까지 갔으나, 1913년 보호 협회가 설립되어 구출되었습니다. 현재 60,000마리 이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오직 흑색만 허용되며, 긴 갈기와 꼬리, 다리의 깃털 같은 털이 특징입니다. 영화 산업의 총아로 「왕좌의 게임」 등에 자주 등장합니다. 멸종 위기에서 할리우드 스타로 변신한 셈입니다.
클라이즈데일(Clydesdale horse): 버드와이저의 얼굴, 말계의 갸루상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강 유역에서 17세기말 발전했습니다. 1806년 태어난 램피츠 메어(Lampits Mare)가 기초 암말로, 현존하는 거의 모든 클라이즈데일이 이 말의 후손입니다. 체고 16-18 핸드(163-183cm), 체중 725-1,000kg의 대형 품종입니다. 발굽 하나가 프라이팬 크기에 무게 약 2.3kg에 달합니다.
1933년 4월 7일 금주법 폐지를 기념하여 버드와이저가 클라이즈데일을 마스코트로 도입했습니다. 현재 회사가 200마리 이상 보유하며, 마차용 말은 18 핸드 이상(183cm), 816-1,043kg, 밤색 코트, 4개의 흰 양말, 흰 얼굴 줄무늬, 검은 갈기/꼬리가 필수 조건입니다. 1986년부터 슈퍼볼 광고의 단골입니다.
페르슈롱(Percheron): 프랑스의 만능 말
프랑스 노르망디 페르슈 지방에서 발전했으며,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 후 무어인의 바브 기병 종마가 토착 암말과 교배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1823년 태어난 장 르 블랑(Jean le Blanc)이 기초 종마로, 모든 현대 페르슈롱이 이 말의 혈통입니다. 체고 15-19 핸드, 체중 500-1,200kg으로 크기 변이가 큽니다. 다리에 깃털 장식이 거의 없어 클라이즈데일과 구별됩니다. 1930년대 미국 중량마의 70%가 페르슈롱이었으며, 디즈니랜드 퍼레이드 마차를 끄는 말로 유명합니다.
리피차너(Lipizzer horse): 나는 어둠에서 태어나 빛이 되리라!
1572년 비엔나에 설립된 스페인 승마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전 승마 학교입니다. 리피차너는 밤색, 검은색, 쥐색 등 어두운 색으로 태어나 6-10년에 걸쳐 점차 하얗게 변합니다. 유전적으로는 회색(grey)이며, 회색 유전자가 시간에 따라 색소를 감소시킵니다. 드물게 성체까지 밤색을 유지하는 개체가 있으며, 스페인 승마학교는 전통적으로 "행운을 위해" 최소 한 마리의 밤색 종마를 유지합니다.
2차 세계대전 말, 나치 독일은 리피차너 번식 암말들을 체코슬로바키아 호스타우로 이전시켜 '아리아 말'을 만들려 했습니다. 소련군이 접근하자 독일 수의관들이 미군 2기병단에 연락했고, 올림픽 승마 선수 출신 조지 S. 패튼 장군이 구출 작전을 승인했습니다. 1945년 4월 28일 '카우보이 작전'으로 1,200마리의 말(리피차너 375마리 포함)이 구출되어 35마일 넘게 독일로 이동했습니다. 이는 미군과 독일군이 무장친위대(Waffen-SS)에 맞서 함께 싸운 단 두 번의 사례 중 하나입니다. 1963년 디즈니 영화 「흰 종마들의 기적」이 이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샤이어(Shire): 슈퍼 헤비급 챔피언
영국 중부 지방(The Shires)에서 유래한 이 품종은 '말 세계의 거인'으로 통합니다. 중세 기사들이 무거운 갑옷을 입고 탔던 '그레이트 호스(Great Horse)'의 직계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멸종 위기까지 갔으나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보존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압도적인 풍채 덕분에 승마용보다는 전시 및 퍼레이드용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1878년 영국 샤이어 호스 협회가 설립되었으며, 1760년대에 태어난 '패킹턴 블라인드 호스(Packington Blind Horse)'가 현대 샤이어 종의 기초 종마로 간주됩니다. 산업 혁명기에는 농경뿐만 아니라 운하의 배를 끌거나 맥주 마차를 끄는 등 영국 경제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체고는 평균 17-18 핸드(173-183cm)이나, 19 핸드(193cm)를 넘는 경우도 흔합니다. 무게는 보통 850-1,100kg에 달하며, 역사상 가장 컸던 '샘슨(Sampson)'이라는 샤이어는 체고 21.2 핸드(215cm), 체중 1,524kg을 기록했습니다.
클라이즈데일처럼 발목에 풍성하고 긴 털(Feathering)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모색은 주로 검은색, 갈색, 회색이 많습니다. 현재도 영국의 몇몇 전통 양조장들은 기계 대신 샤이어가 끄는 마차로 맥주를 배달하며 전통을 홍보합니다.
무스탕(Mustang): 야생마가 된 정복자의 말
말은 아메리카에서 약 10,000년 전 멸종했다가, 1493년 콜럼버스의 2차 항해 때 돌아왔습니다. 1680년 푸에블로 반란은 원주민에게 대량의 말이 넘어간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스페인인들이 뉴멕시코를 버리고 도망치면서 수천 마리의 말이 남겨졌습니다.
말의 전파는 평원 인디언 문화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1680년대 푸에블로, 아파치, 코만치가 말을 획득하고, 1730년경 네즈퍼스, 크로우, 블랙풋까지 전파되었으며, 1769년경에는 대부분의 평원 인디언이 말을 보유했습니다. 코만치족은 "평원의 지배자"로 불리며 아이들은 걷기 전에 말에 올랐고, 6세에 경주에 참가했습니다.
1971년 '야생마 및 야생 당나귀 보호법'이 제정되어 무스탕은 "서부의 역사적, 개척자 정신의 살아있는 상징"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1964년 첫 출시된 이래로 미국 머슬카의 상징인 포드 머스탱의 심볼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구글로 무스탕 이미지를 찾아보면 싸우는 장면이 유난히 많이 나옵니다. 이는 미국에 무스탕 야생마가 많고 암말들과 구역을 두고 종마끼리 끝없는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메리칸 쿼터호스(American Quarter Horse): 말보로 카우보이의 말, 미국의 아이콘
아메리칸 쿼터호스는 단순한 말 품종이 아니라 미국 문화의 상징 그 자체입니다. 혹시 말보로 담배 광고에서 거친 서부를 배경으로 말을 탄 카우보이의 이미지를 기억하시나요? 그 말이 바로 쿼터호스입니다. 광활한 대평원, 석양, 그리고 말 위의 카우보이라는 이미지는 전 세계적으로 '미국'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시각적 아이콘이 되었고, 그 중심에 쿼터호스가 있었습니다.
1660년대 식민지 시대에 미국의 초기 정착민들이 영국에서 들여온 영국산 서러브레드(Thoroughbred) 계열의 말과 당시 원주민(치카소 인디언 등)이 보유하고 있던 스페인산 바브(Spanish Barb) 및 안달루시아 혈통의 말들을 교배시키면서 탄생했습니다. 이름은 마을 메인 스트리트에서 벌어진 1/4마일(400m) 경주에서 유래했습니다. 아메리칸 쿼터호스는 이 정도거리에서는 70-88km/h의 속도로 달리는 단거리 최강자입니다.
쿼터호스가 미국에서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선천적인 "소 감각(cow sense)"으로 목장 작업에 탁월합니다. 소의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예측하고 차단하는 능력이 있어, 카우보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입니다. 또한 온순한 성격과 뛰어난 훈련성으로 초보자도 다루기 쉽습니다. 로데오, 경주, 레이닝, 배럴 레이싱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합니다.
무엇보다 쿼터호스는 가격경쟁력이 뛰어납니다. 서러브레드나 아라비아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일반 가정에서도 소유할 수 있는 '대중적인 말'입니다. 이런 접근성 덕분에 쿼터호스는 미국 전역에서 가장 많이 기르는 말이 되었습니다.
1940년 아메리칸 쿼터호스 협회(AQHA)가 설립되어, 현재 600만 마리 이상이 등록된 세계 최대 품종 등록 기관입니다. 말보로 카우보이 이미지가 담배 광고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쿼터호스는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자유, 개척 정신, 광활한 서부의 낭만을 상징하는 살아있는 아이콘으로 남아있습니다.
아팔루사(Appaloosa): 네즈퍼스의 유산
아팔루사는 네즈퍼스족이 1730년경부터 선택적 교배로 발전시킨 종으로 야생 무스탕의 후손이자 옛날 유럽의 탐험가들이 가져온 스페인 말의 후손이며 엉덩이나 온몸에 점박이가 특징인 매력적인 품종입니다. 1877년 네즈퍼스 전쟁 중 추장 조셉은 750명의 부족민과 3,000마리의 말을 이끌고 캐나다를 향해 2,250km를 도주했으나, 국경 64km 앞에서 항복했습니다. 미군은 생존한 말들을 압수하여 대부분 사살하거나 팔았습니다. 1991년까지 네즈퍼스족의 아팔루사 소유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현재 600,000마리 이상 등록되어 있으며 1975년에 아이다호주의 주마(州馬)가 되었습니다.
유목 민족의 기마 문화는 단순히 이동 수단을 넘어 식문화에도 혁신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구석기시대 동굴 벽화에 그려진 말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사냥감이었고, 말의 가축화 초기 목적 역시 승마가 아닌 식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승마에 필요한 재갈이나 안장 등의 도구는 가축화보다 훨씬 나중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즐겨 드시는 참깨빵 위에 순쇠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얹은 햄버거의 기원이 말안장 밑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14세기경 아시아 초원을 누비던 몽골의 기마 유목민족(타타르족)은 장거리 이동 시 식사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말안장 밑에 날고기(주로 질긴 말고기나 소고기)를 넣고 다녔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는 동안 안장과의 마찰과 체중의 압력으로 고기가 부드럽게 다져졌고, 말의 땀(염분)이 배어들어 자연스럽게 간이 되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승마하면서 자동 조리'가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다져진 고기를 생으로 먹던 문화가 유럽으로 전해져 서양식 육회인 '스테이크 타르타르(Steak Tartare)'가 되었고, 이것이 독일 함부르크(Hamburg)를 거쳐 구워 먹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 오늘날 '햄버거' 패티의 기원이라는 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유력한 학설입니다. 햄버거의 조상이 몽골 기마병의 안장 밑 고기였다니, 음식의 역사도 참으로 흥미진진합니다.
몽골 제국의 진정한 비밀 무기는 '보르츠(Борц, Borcha)'라 불리는 건조 육포였습니다. 생고기 1kg이 건조 후 200-300g으로 줄어들어 5배 경량화되면서도, 단백질 함량 60-80%, 열량 386kcal/100g의 고농축 영양식이 되었습니다.
늦가을에 도축한 고기를 2-3cm 두께, 5-7cm 너비로 잘라 전통 천막인 ‘게르’의 지붕 아래 매달아 한 달간 건조합니다. 완성된 보르츠는 단단한 나무 막대기 같은 갈색 덩어리가 되어 1-3년간 보존이 가능했습니다. 귀족들은 좀 더 공을 들여 3년간 건조·분쇄하여 소의 위장 하나에 소 한 마리 분량의 고기를 담을 정도로 농축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 우주식품이나 전투식량의 원조라 할 수 있겠네요.
마르코 폴로는 몽골 기병이 "10일간 요리 없이, 불을 피우지 않고 행군"할 수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중국 문헌들은 몽골군 진영에서 "연기 한 줄 나지 않았다"라고 놀라워했습니다. 각 병사는 보르츠, 건조 유제품(아롤), 말린 우유 페이스트 약 4.5kg을 휴대했고, 긴급 시에는 말의 정맥에서 피를 뽑아 마셨습니다.
1218년 칭기즈칸은 400마일의 키질쿰 사막을 도로도 물도 없이 횡단하여 부하라 후방에 출현했습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우회 기동 중 하나로, 보르츠와 몽골말 없이는 불가능한 작전이었습니다. 1223년 칼카강 전투(Battle of the Kalka River: 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에서 제베와 수부타이가 이끄는 몽골군 2만이 러시아군 8만을 격파한 것도 이러한 우월한 기동력의 결과였습니다.
극한의 효율을 추구한 유목민의 지혜가 놀랍다 못해 무섭기까지 합니다.
중앙아시아 유목 민족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료이자 술이 바로 '쿠미스(Kumis)' 또는 '아이락(Airag)'입니다.
말을 타고 이동하는 유목민들에게 말은 고기뿐만 아니라 젖을 제공하는 귀한 자원이었습니다. 신선한 말젖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가죽 주머니에 넣고 말안장에 매달아 흔들리게 두었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효되어 탄산과 알코올이 섞인 '쿠미스'가 탄생했습니다. 이동하면서 자동으로 술이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일하면서 술 빚기의 원조라 할 만합니다.
비타민이 부족한 초원 지대에서 유목민들에게 중요한 비타민과 영양 공급원 역할을 했습니다. 칭기즈칸도 쿠미스를 즐겨 마셨다고 전해지며, 몽골에서는 지금도 여름철 축제 때 쿠미스를 대량으로 만들어 나눠 마십니다.
말고기는 소고기에 비해 질기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소고기를 압도하는 프리미엄 식재료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말고기는 소고기에 비해 글리코겐의 함량이 높고 단맛이 강하며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합니다. 또한 매우 연하고 부드러우며 저지방, 고단백 및 철분, 아연, 비타민 B12등이 풍부합니다. 즉 소고기보다 우리 몸에 더 친화적입니다.
732년 교황 그레고리오 3세는 게르만족의 이교도 관습(말을 제물로 바치고 먹는 행위)을 근절하기 위해 말고기 섭취를 공식적으로 금지했습니다. 이 종교적 금기가 수백 년간 이어지며 서구권 식문화에서 말고기는 '불결하거나 먹지 못할 것'으로 낙인찍혔고, 이것이 현대 글로벌 식문화의 표준(소고기 중심)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 말고기를 즐기는 식문화는 남아있습니다.
바사시(馬刺し): 임진왜란이 낳은 일본의 별미
일본의 구마모토현 지역 특산물인 말고기 회 '바사시'도 승마 및 전쟁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구마모토의 영주였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가등청정)'는 조선의 최전선에서 싸우다 보급이 끊겨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울산성 전투에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에게 포위된 가토의 군대가 굶주림에 시달리다 결국 부득이하게 군마(軍馬)를 도축하여 불 피울 새도 없이 회로 먹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이게 꿀맛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구마모토로 돌아간 가토는 이 맛을 잊지 못해 말고기 식문화를 퍼뜨렸고, 이후 구마모토는 일본 최고의 말고기 소비 지역이 되었습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탄생한 음식이 400년 후 미식의 반열에 올랐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베쉬바르막: 다섯 손가락으로 먹는 유목민의 환대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전통 음식 '베쉬바르막(Beshbarmak: 발음에 주의해 주세요)'은 '다섯 손가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 위에서 생활하던 유목민들이 정착지에서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내놓던 음식입니다. 삶은 말고기(또는 양고기)를 넓적한 면과 함께 손가락으로 집어먹는 방식에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베쉬바르막에는 말의 갈비 부위로 만든 소시지인 '카지(Kazy)'가 곁들여지는데, 이는 이동 중 보관이 용이하도록 고안된 유목민의 지혜가 담긴 음식입니다. 한국 사는 배재승 씨는 카자흐스탄에 가셨을 때 “베쉬바르막 재승배”라고 욕을 들어도 결코 당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건 욕이 아니라 "베쉬바르막 잡수실래요?"라는 친절한 권유입니다.
파스띠르마: 파스트라미의 조상
터키의 전통 육포인 '파스띠르마(Pastirma)' 역시 기마 문화와 연결됩니다. 이 역시 몽골 기마민족의 방식과 유사하게, 중앙아시아 기마민족들이 소고기 조각을 안장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다리의 압력으로 꾹꾹 눌러 수분을 빼고 건조한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Pastirma'라는 단어 자체가 '눌린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훗날 루마니아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현대의 '파스트라미(Pastrami)' 샌드위치의 주재료가 되었습니다. 뉴욕 델리에서 즐기는 파스트라미 샌드위치의 뿌리가 중앙아시아 초원에 있었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스테이크 아 슈발 (Steak à cheval, 발음에 특히 주의해 주세요)'
프랑스어로 '슈발(Cheval)'은 말을 뜻합니다. 과거 프랑스 노동자 계층에게 말고기는 저렴하고 단백질이 풍부한 훌륭한 영양원이었습니다. 지금도 프랑스 일부 정육점(Boucherie Chevaline)에서는 소고기보다 훨씬 담백하고 부드러운 고급 스테이크용 말고기를 취급합니다. 발음이 완벽하지 않은 채로 프랑스의 식당에서 이 메뉴를 주문한다면 누군가 당신의 영상을 찍어 무례한 한국인이라는 제목으로 틱톡에 올릴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말고기 문화
한국에서 말고기 식용은 고려시대 몽골의 영향으로 본격화되었습니다. 1227년부터 몽골이 전투용 말을 제주도에서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제주도에서는 말고기가 귀한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육당 최남선의 기록에 따르면, 제주도 말은 임금님께 진상되던 귀한 식재료였으며, 말고기 육포는 궁중 진상품이었을 정도입니다. 말고기 육회나 구이 등이 귀한 손님을 위한 보양식으로 대접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조선 세종 때에는 말고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군마 확보에 차질이 생겨 태종 1년(1401년)에 식용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말고기 식용은 일반적이지 않은데, 이는 역사적 이유와 함께 말을 충직한 조력자로 여기는 유교적 정서에 따라 신성한 동물로 여기는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중앙아시아는 물론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에서도 말고기는 저지방, 저칼로리, 고단백 건강식품으로 소비됩니다. 반면 영국과 미국에서는 말고기 식용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유대교에서는 금기 음식, 이슬람에서는 '마크루(권장하지 않음)'로 분류됩니다.
만약 말고기의 장점을 재현할 수 있다면?
말고기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문화적 반감을 낮출 수 있다면 어떨까요? 배양육(Cultivated Meat)과 대체 단백질 산업을 떠올릴 수 있는데, 2026년 현재, 이 산업은 초기의 막연한 기대감을 지나 '수익성과 스케일업(Scale-up)'이라는 냉혹한 시험대에 올라와 있습니다.
해당 산업의 대표주자들은 알레프 팜스 (Aleph Farms), 업사이드 푸드 (Upside Foods) 등이 있으며 상장사로는 비욘드미트(BYND), 오틀리(OTLY) 등이 있지만 아직 캐즘(Chasm)의 골짜기를 빠져나오지 못했기에 투자 대상으로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으로는 풀무원이 ‘지구식단’으로, 대체육 사업이 단순히 비용만 쓰는 신사업이 아닌 실질적인 이익 기여 모델로 안착 중이며, CJ제일제당도 ‘플랜테이블(PlanTable)’브랜드를 통해 2025년 매출 2,000억 달성을 목표로 했으며 매출의 70% 이상을 해외에서 창출하고 있습니다.
대체육 시장은 글로벌로는 CAGR 한자릿수를 보이며 성장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성숙기’ 진입 징후를 보이는 반면, 국내 시장은 아직 규모가 작지만 대기업 주도의 시장 재편으로 연간 10% 이상의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말은 가죽으로도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구석기시대부터 인류는 가죽을 무두질하는 유성(鞣成) 기술을 발전시켰고, 말가죽은 투구, 갑옷, 신발, 북, 허리띠, 방한모(난모), 안장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가죽의 종류가 규제되기도 했습니다. 말가죽은 '코도반(Cordovan)'이라 하여 최고급 피혁 제품의 재료가 됩니다. 얇고 질기며 광택이 뛰어나 구두, 지갑, 가방의 프리미엄 소재로 쓰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동물 복지와 환경 문제로 인해 동물 가죽의 사용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선인장, 파인애플 잎, 버섯 등에서 추출한 '식물 가죽'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휴고 보스, H&M, 심지어 테슬라까지 식물성 가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가죽 1kg을 생산하는 데 약 17,000리터의 물이 사용되고, 가죽 산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8%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일본에서 경마는 단순한 도박을 넘어 국민 스포츠의 위상을 가집니다. 연간 베팅 규모가 약 3.3조 엔(약 30조 원)에 달하며, 이는 세계 최대 수준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일본 경마의 역사는 1936년 11개 경마 클럽이 통합하여 '일본경마회'를 설립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GHQ(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해 해산되었다가, 1954년 'JRA(일본중앙경마회)'가 설립되면서 현대적 경마 시스템이 구축되었습니다.
일본 경마가 대중화에 성공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1950년대 이후 '선데이 사일런스' 등 우수한 씨수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품질 향상에 투자했습니다. 둘째, 미국식 대중 경마 개념을 도입하여 철저한 팬서비스에 주력했습니다. 입장료가 100~200엔(약 1,000~2,000원)에 불과할 정도로 접근성을 높였습니다. 셋째, 지방 출신 명마들의 성공 신화가 대중의 감성을 자극했습니다. 1970년대 '하이세이코', 1980년대 '오구리캡' 등은 마치 스포츠 스타처럼 국민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넷째, 2000년대 '딥 임팩트' 같은 전설적인 경주마의 등장이 경마 붐을 이끌었습니다. 다섯째, 화려한 '퍼스트콜' 문화와 서브컬처 콜라보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현재 일본에는 10개의 중앙경마장과 15개의 지방경마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다수의 국제 G1 등급 레이스가 열립니다.
TMI: 퍼스트콜
일본 경마에서 퍼스트 콜(First Call)은 경주 시작 직전에 연주되는 팡파레(Fanfare)를 의미합니다. 이는 경주마들이 출발 게이트로 향할 준비를 알리는 신호음으로, 일본 경마의 독특하고 화려한 특징 중 하나로, 경마 팬들에게는 경기가 곧 시작됨을 알리는 흥분되는 신호입니다.
역사: 원래는 다른 나라들처럼 군대에서 사용되던 신호음을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 고유의 다양하고 화려한 곡들로 발전했습니다.
특징: 일본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퍼스트 콜이 많고 매우 화려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현재 일본중앙경마회(JRA)에서는 경마장과 경주 등급에 따라 21가지의 각기 다른 팡파레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MLB 구원 투수 에드윈 디아즈(Edwin Díaz)가 등장할 때 울려 퍼지는 트럼펫곡인 "Narco"도 일종의 퍼스트콜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러한 일본 경마 문화를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입니다. 실제 명마들을 미소녀 아이돌 캐릭터로 의인화한 이 게임은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21년 2월 출시 이후 2023년 3월까지 전 세계 누적 매출이 약 20억 달러(약 2조 6,000억 원)에 달했습니다. 매출의 95%가 일본, 3.3~3.6%가 한국, 1%가 대만에서 발생했습니다. 한국에서는 2022년 6월 20일 출시되어 첫 1년간 약 7,500만 달러(약 978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스쿼드 RPG 장르 1위를 차지했고, 카카오게임즈의 2022년 최대 실적에 기여했습니다.
우마무스메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 실존 경주마를 철저히 고증한 스토리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오구리캡, 골드십, 사일런스 스즈카 같은 실제 명마들의 드라마틱한 실화가 게임의 스토리가 되었고, 이는 젊은 세대를 경마장으로 불러들이는 효과까지 낳았습니다.
둘째, 흥미롭게도 사용자 성비가 남녀 약 50:50으로 균형을 이루며 여성 유저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습니다. 셋째, 높은 리텐션(잔존율)을 보이며 한번 입문한 유저들이 오래 머무릅니다. 말 한 마리의 이야기가 수조 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늘도 있습니다. 게임을 통해 경마 베팅에 빠지는 도박 중독 문제가 심화되고 있으며, 경주마의 혹독한 현실(부상, 폐사 등)을 미화하여 동물 복지 문제를 외면하게 한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우마무스메에 대해서만 세편이 넘는 글을 쓸 수 있으나 봉인하겠습니다)
과거 전쟁터와 농경지를 누비던 말은 이제 우리 곁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말은 단지 돈을 거는 대상을 넘어 승마와 같은 레저 스포츠의 파트너이자, 인간과 교감하는 반려동물로서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단순한 가축의 범위를 넘어, 인간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며 고도의 심리 치유 체계를 구축한 핵심 파트너로 진화한 것입니다.
현대적 추세: 복지와 기술의 정교한 융합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말을 대하는 가장 큰 화두는 '동물 복지(Equine Welfare)'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결합입니다. 국제승마연맹(FEI)과 영국 마사협회(BHS) 등 공신력 있는 기관들은 말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비 규정을 엄격히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소비자들의 윤리적 가치와 맞물려 '친환경·비건 승마 용품'이라는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AI 기반의 웨어러블 센서 기술은 말의 건강 관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말의 심박수, 보폭, 체온은 이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어 부상을 사전에 방지하고 최적의 훈련 강도를 설정하는 데 사용됩니다. 2026년 기준, 선진국 승마 센터의 과반수 이상이 이러한 스마트 모니터링 툴을 도입하여 말의 상태를 데이터로 체계화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신체적 재활 효과
말과의 교감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제 정밀한 임상 데이터를 통해 그 가치가 명확히 입증되고 있습니다.
1. 3차원 골반 운동의 원리: 말의 걸음걸이는 인간의 보행 패턴과 매우 유사하여, 기승자의 골반을 전후, 좌우, 상하로 움직이게 합니다. 이는 평소 쓰지 않는 심부 근육(Core Muscle)을 강력하게 자극합니다.
2. 신경계 재활: 미국 하이포테라피 협회(AHA)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입체적 움직임은 뇌성마비나 척추 손상 환자의 재활에서 일반적인 기계 운동보다 약 3배 이상의 근신경 활성화 효과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 전신 유산소 운동: 45분간의 중강도 승마는 약 300~500kcal를 소모하며, 이는 수영이나 조깅에 버금가는 고효율 전신 운동 효과를 선사합니다.
심리 및 신경학적 치유의 메커니즘
말은 포식자의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초식동물로서, 인간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즉각적으로 거울처럼 투영(Mirroring)하는 독특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1. 옥시토신 분비와 스트레스 저감: 말과 눈을 맞추고 털을 고르는 비언어적 교감은 강력한 유대 호르몬인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합니다. 최신 뇌과학 연구는 말과의 상호작용 후 피실험자의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평균 20% 이상 감소함을 증명했습니다.
2. 말 매개 치료(EAT)의 확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퇴역 군인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에 말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거대한 동물을 스스로 통제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은 자기조절 능력과 자존감을 회복하며, 이는 사회 복귀를 돕는 결정적인 동력이 됩니다.
미래 전망
글로벌 시각에서 볼 때, 승마는 더 이상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정신 건강을 위한 사회적 처방'이자 '생태 감수성을 함양하는 교육 모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2026년 이후의 미래는 가상현실(VR)을 통한 승마 교육과 실제 기승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태, 그리고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형 케어 서비스가 주도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국내에도 480여 개의 승마 시설에서 4만 9천 명 이상이 정기적으로 승마를 즐기고 있습니다. 말의 지능은 3~4세 아이와 비슷하며, 개체마다 성격이 모두 달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매력적인 동물입니다. 결국 말은 인류가 발명한 어떤 기계보다도 정교한 방식으로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어루만지며, 더 이상 전쟁을 위한 수단이 아닌 현대 사회의 고독과 질병을 치유하는 동반자로 우리 곁에 머물 것입니다.
자동차 엔진의 힘을 나타내는 '마력'은 여전히 우리에게 익숙한 단위지만, 인류 기술이 음속을 돌파하고 우주로 나아가면서 마력만으로는 더 이상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영역을 표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단위들을 사용합니다.
제트엔진: 추력(Thrust)
제트엔진의 힘은 킬로뉴턴(kN)이나 파운드포스(lbf)로 측정합니다. 전투기 엔진은 14,000~22,000 lbf, 민항기 GE90 엔진은 최대 127,900 lbf(58톤)의 추력을 냅니다. 이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정도뿐입니다. 한국도 2025년부터 15,000 lbf급 제트엔진 자체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우주적 스케일: 천문단위(AU)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 약 1억 5천만 km를 1 AU로 정의합니다. 화성까지 약 0.5~2.5 AU, 명왕성까지 40 AU입니다. 빛이 태양에서 지구까지 오는 데 8분 19초가 걸립니다. 지금 이 순간 태양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우리는 8분 19초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반도체: 나노미터(nm)
1 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미터, 머리카락의 10만 분의 1 크기입니다. 삼성전자는 2022년 세계 최초로 3 나노 GAA 공정 양산을 시작했고, 현재 2 나노 개발이 진행 중입니다. 반도체 공정이 1 나노미터 이하로 내려가면 원자 크기에 근접하여 전자가 절연막을 뚫고 지나가는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ing)’현상이 발생하여 누설 전류와 전력 소모의 원인이 됩니다. 이는 현재 반도체 미세화의 물리적 한계로서, 많은 회사들이 GAA (Gate-All-Around)나 GAA기술에서 한 단계 발전된 MBCFET (Multi-Bridge Channel FET) 기술 등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양자컴퓨터: 큐비트(qubit)
0과 1을 동시에 처리하는 양자 비트입니다. n개의 큐비트는 2^n개의 경우의 수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53개 큐비트는 약 9천조 가지 경우의 수를 동시에 다룹니다. 2024년 구글 윌로우 칩은 105 큐비트를 달성하며 양자우위와 오류보정 임계값을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현재 이 분야에서는 IBM과 구글이 가장 선두에 있으며 그 외에도 이온 트랩 방식을 사용하는 Quantinuum과 IonQ, 그리고 초전도 큐비트 방식을 사용하는 Rigetti Computing, 양자 어닐링 방식을 사용하는 D-Wave Quantum이 있으며, 그 외에도 레이저로 중성 원자를 제어하는 방식을 사용하며, 수천 개 이상의 큐비트로 확장성이 뛰어난 신흥 주자 QuEra & Atom Computing과 광자(Photons)를 이용한 광학 방식의 PsiQuantum & Xanadu도 있습니다.
참고로 2026년에는 큐비트 개수가 경쟁의 주요 이슈였던 과거와는 달리 오류가 없는 논리적 큐비트 구현 능력(QEC)이 핵심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이며 슈퍼컴퓨터와 양자컴퓨터를 연결하여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컴퓨팅과 양자 내성 암호(PQC)를 구현하기 위한 양자 보안이 주요 트렌드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슈퍼컴퓨터: FLOPS
초당 부동소수점 연산 횟수로 측정합니다. 2025년 세계 1위의 슈퍼컴퓨터인 미국의 엘 캐피탄은 1.742 엑사플롭스로, 초당 174.2경 번 연산이 가능합니다.
삼성전자의 SSC-24는 106.2 페타플롭스로 2025년 ISC(6월) 기준 한국 1위, 세계 18위로 등재되었습니다. 1980년대 인텔 8087 보조 프로세서가 약 50,000 FLOPS였던 것을 생각하면, 40여 년 만에 성능이 약 10조 배 수준으로 향상된 셈입니다.
문명의 척도: 카르다쇼프 척도
1964년 소련 천문학자 니콜라이 카르다쇼프가 제안한 이 척도는 문명이 사용하는 총에너지양을 기준으로 등급을 나눕니다.
Type I은 행성 전체 에너지(10^16 와트), Type II는 항성 전체 에너지(4 ×10^26 와트), Type III는 은하계 전체 에너지(4 ×10^37 와트)를 활용하는 수준입니다. 현재 인류는 0.73~0.75 수준으로, 행성 전체 에너지를 활용하는 Type I에도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Type I 도달까지 현재보다 500~1,000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며, 핵융합 발전이 필수적입니다.
인류는 이제 마력의 단위를 뛰어넘어, 우주를 측정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아직 투자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긴 것에 또 눈치채신 분도 있으시겠지요. 네 역시 상, 하 편으로 끝내려면 원대한 꿈은 결국 이번에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도 경력직이다 보니 나름 뻔뻔해졌나 봅니다. ‘하’ 편으로 끝내지 못하면 ‘하하’ 편을 쓰고 그마저도 안되면 ‘하하하’ 편을 쓰면 되지! 라며 아주 마음이 가볍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은 여기서 끊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말에 관련한 산업과 기업을 돌아보며 투자 기회를 찾아보겠습니다.
(1월 마지막 주에는 붉은빛 말이 온다 ‘하’ 편과 ‘머니: 인류의 역사’ 리뷰 편이 순서대로 올라갑니다.)
오늘도 같이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엄
참고문헌 및 출처 (중편)
1. 말 품종 및 역사
아라비아마
Bowling, A.T. & Ruvinsky, A. (2000). The Genetics of the Horse. CABI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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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브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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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et, Peter (1970). The Thoroughbred. G.P. Putnam's Sons.
Tesio, Federico (1958). Breeding the Racehorse. J.A. Allen.
유럽 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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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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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ral, Anthony (1977). Mustang: Life and Legends of Nevada's Wild Horses. University of Nevad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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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음식 문화와 역사
말고기 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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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보르츠와 쿠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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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바사시
임진왜란 관련 역사서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관련 일본 역사 문헌
중앙아시아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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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본 경마 및 우마무스메
경마 역사
JRA (일본중앙경마회) 공식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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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승마 및 재활 치료
승마 치료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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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치료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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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술 및 첨단 산업
슈퍼컴퓨터
TOP500 (2025년 6월). 세계 슈퍼컴퓨터 순위. www.top500.org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KISTI). "2025년 상반기 슈퍼컴퓨터 순위(TOP500) 분석 보고서."
양자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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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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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다쇼프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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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an, Carl (1973). The Cosmic Connection. Anchor Press.
6. 대체육 및 식품 산업
대체육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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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원. '지구식단' 사업 보고서.
CJ제일제당. 'PlanTable' 브랜드 현황 자료.
배양육 기업
Aleph Farms. Company 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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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타 참고 자료
말가죽 및 지속가능성
Leather Working Group (LWG). Environmental audit protocols.
식물성 가죽 산업 관련 시장 보고서.
영화 및 미디어
「흰 종마들의 기적 (Miracle of the White Stallions)」 (1963). 월트 디즈니.
본 글은 역사적 사실, 학술 연구, 공식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일부 일화나 전설의 경우 해당 출처를 명시하거나 "전해진다", "~라는 설이 있다" 등으로 표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