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켄밀러의 생각

13F 공시를 통해 훔쳐보는 거장의 투자

by 동이의덕왕

드러켄밀러의 생각

13F 공시를 통해 훔쳐보는 거장의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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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여러분, 설날 잘 보내셨습니까? 단 며칠 쉬었을 뿐인데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열린 지도 몰랐던 동계 올림픽에서부터 트럼프의 이란 공격 협박까지, 과거에는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일어났던 일들이 단 며칠 안에 일어난 느낌입니다. 세상의 속도가 현기증 날 만큼 빨라지고 있듯이 투자자의 촉도 따라가야 함을 느낍니다. 원래는 2주를 휴재하고 다음 주에 돌아오려고 했으나 시절이 하수상하고, 또 혹시나 저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르고, 저 또한 여러분들이 그립기에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설 연휴 직전에 투자 관련하여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분기마다 운용자산 1억 달러(한화 약 1,400억 원) 이상의 투자기관이 보유 주식을 공개하는 13F 공시라는 것이 있습니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레이 달리오의 브릿지워터, 빌 애크먼의 퍼싱스퀘어 등 전설적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입니다. 2026년 2월 17일, 이 13F 공시에서 특이한 움직임이 관찰되었습니다.


미국의 전설적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가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그것도 한 분기 만에 포트폴리오의 거의 절반을 갈아엎었습니다. 무려 45억 달러(약 6.6조 원) 규모의 자산이 새 방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러켄밀러는 투자의 세계에서 절대 뺄 수 없는 거물 중의 거물입니다. 비록 이번에 발표된 13F 공시보고서는 2025년 4Q를 기준으로 3개월 정도 지난 것이지만, 우리는 거장의 움직임을 몰래 훔쳐봄으로써 투자에 대한 통찰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월가의 전설이 쿠팡을 매수했다.png 어디 한 군데 모자란 동네형처럼 생겼지만 실은 무시무시한 실력자


우선 처음 들으시는 분들을 위해 이 사람이 누구인지, 왜 이렇게 움직였는지, 그의 포트폴리오에서 미국 경제 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를 소개한 후, 그것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비추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1. 핫도그 장사꾼에서 월스트리트의 전설로

1953년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어린 시절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이혼한 후 아버지와 함께 뉴저지, 버지니아를 전전하며 자랐고, 메인주의 작은 리버럴 아츠 칼리지인 보든 대학에서 영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대학 시절 그의 사이드잡입니다. 훗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경제정책 보좌관이 되는 로렌스 린지와 함께 캠퍼스에서 핫도그 가판대를 운영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전설이 첫 사업 아이템으로 소시지를 팔았다니! 왠지 처음부터 천재소년 두기처럼 모든 것이 쌉가능했을 것만 같은 그의 시작점이 전혀 다른 곳에서부터 출발한 것을 보면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나 봅니다.


졸업 후 미시간대학교 경제학 박사과정에 진학하지만, 두 번째 학기 중간에 자퇴합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교실에서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실제 시장에서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직접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1977년, 스물네 살의 드러켄밀러는 피츠버그 내셔널 뱅크에 석유 애널리스트로 입사합니다.


여기서 전설의 첫 장이 열립니다. 입사 첫해, 상사가 소매업종 분석을 시켰습니다. 그는 K마트의 실적 추정치를 들고 갔습니다. 상사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그래서 뭐가 주가를 올리는데? 자네가 알려준 건 다 아는 얘기야. 더 파봐."


드러켄밀러는 다시 돌아가서 식품과 에너지 가격 변동을 소매주 지수 위에 겹쳐 그래프를 그렸습니다. 마치 시계태엽처럼,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소매주가 떨어지는 패턴을 발견한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아무도 데이터로 증명하지 않았던 것이었고, 이 패턴은 이후 10~12년간 유효했습니다. 입사 1년 만에 그는 은행의 주식 리서치 부서장으로 승진합니다. 스물다섯 살이었습니다.


1981년, 스물여덟에 두 명의 고객과 80만 달러로 듀케인 캐피털 매니지먼트를 창업합니다. 여기서부터가 비현실적입니다. 2010년 회사 문을 닫으며 자진 청산할 때까지 30년 동안 연평균 수익률 약 30%를 기록하며 단 한 해도 손실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연평균 수익률 약 30%가 복리로 30년 유지되면 원금이 약 2,600배가 됩니다. 같은 기간 S&P 500 연평균이 약 10%, 워런 버핏 연평균이 약 20%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기록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체감되실 것입니다. 심지어 2008년 금융위기에도 +11%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의 이름이 역사에 각인된 날은 1992년 9월 16일,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입니다. 당시 소로스 퀀텀펀드의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였던 드러켄밀러는 영국 파운드화가 유럽환율메커니즘(ERM) 내에서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영란은행의 외화 보유고가 파운드를 방어하기에 충분치 않고, 금리 인상도 정치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고 계산한 것입니다. 그는 소로스에게 파운드 공매도를 건의합니다.


"조지, 파운드화에 15억 달러(약 2조 원) 정도 공매도를 걸고 싶습니다."


이를 들은 소로스는 실망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한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자네, 정말 한심하구먼(That's ridiculous)."


드러켄밀러는 순간 당황했으나 소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자네가 말한 그 논리가 정말 확실하다면, 그리고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면, 왜 고작 15억 달러뿐인가? 목덜미를 물어뜯어야지(Go for the jugular)!"


image.png 묻고 더블로 가


소로스의 한마디에 베팅 규모는 100억 달러로 늘어났고, 하루 만에 1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영란은행을 파산시킨 남자'라는 별명은 소로스의 몫이 되었지만,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을 주도한 것은 드러켄밀러였습니다. 소로스 자신이 이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후에도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동아시아 통화 공매도로 대규모 수익을 올리는 등, 매크로 투자의 교과서 같은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소로스가 그에게 가르쳐준 것은 한마디였습니다. "확신이 있으면 돼지가 되어야 한다(It takes courage to be a pig)." 드러켄밀러 자신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다각화는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것 중 가장 잘못된 개념이다. 워런 버핏도, 칼 아이칸도, 켄 랭곤도 뭔가를 보면 거기에 농장을 걸었다." 집중 투자의 대가, 확신이 서면 물러서지 않는 사나이. 그런 사람이 2025년 4분기에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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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5억 달러의 대이동

2026년 2월 17일 SEC에 제출된 그의 회사 듀케인 패밀리오피스의 Q4 2025 13F 공시를 분석해 보면, 총 포트폴리오 규모 약 44.9억 달러, 보유 종목 62개(주식·ETF 58개 + 옵션 4개). 그런데 회전율이 43.1%입니다. 한 분기에 포트폴리오의 거의 절반을 갈아엎은 것입니다. 26개 종목을 새로 사고, 30개 이상을 전량 매도했습니다.


가장 주목할 변화는 세 가지 ETF의 대규모 신규 편입입니다. 첫째, XLF(금융 섹터 ETF)에 549만 주, 약 3억 100만 달러를 투입해 포트폴리오 2위로 올렸습니다. 둘째, RSP(S&P 500 동일가중 ETF)에 117만 주, 약 2억 2,500만 달러를 배치했습니다. 셋째, EWZ(브라질 ETF)에 주식과 콜옵션을 합쳐 총 약 2억 4,700만 달러를 넣었습니다. 이 세 ETF만 합치면 약 7억 7,000만 달러, 포트폴리오의 17% 이상입니다.


image.png Duquesne Family Office LLC, 13F Report


상위 5개 종목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위는 5분기 연속으로 유전자 진단 기업 나테라(NTRA)가 12.8%인 5.75억 달러로 차지하고 있으며, 2위가 이번에 신규 편입된 XLF 6.7%인 3.01억 달러, 3위 희귀 폐질환 치료제 기업 인스메드(INSM) 5.74%인 2.58억 달러, 4위 브라질 ETF인 EWZ 5.5%인 2.47억 달러, 5위 동일가중 ETF RSP가 5.0%인 2.25억 달러입니다. 상위 10개 종목이 전체의 52.29%를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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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시에서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매도 목록입니다. 불과 한 분기 전인 Q3 2025에 신규 매수했던 메타 7만 6,100주, Arm 홀딩스 16만 7,900주, 몽고 DB 1만 7,710주 전량을 모조리 청산했습니다. 90일 전에 산 것을 90일 만에 다 판 것입니다. 여기에 샌디스크(수익률 +1,540%에서 차익 실현), 씨게이트(+318%),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캐피털원, GE버노바, 싱크로니 파이낸셜 등 개별 은행주도 모두 정리했습니다. 또한 지난 4분기 동안 보유하고 있던 TSMC 주식의 약 20~25% 정도를 매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알파벳(구글)은 276.7%, 아마존은 69~91% 늘렸으며, 씨(Sea Ltd)는 244%, 그리고 놀랍게도 쿠팡을 46%나 확대했습니다.


image.png 왼쪽: 최다 신규 매수 종목 / 우측: 최다 매도 종목


그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해 보면 AI라는 테마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지만, AI의 과실이 인프라(반도체·하드웨어)에서 플랫폼(검색·이커머스·클라우드)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판단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알코아(알루미늄, 7,300만 달러), 서던코퍼(구리, 1,700만 달러), 블룸에너지(AI 데이터센터 전력, 6,400만 달러), 델타·유나이티드·아메리칸항공(합산 9,400만 달러), 필립모리스도 새로 편입했습니다.


쿠팡의 보유 비중 증가도 주목할 만한 점입니다. 6,800주, 약 1.6억 달러(포트폴리오 3.6%)로 확대했는데, 한국에서 노이즈가 있다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을 텐데 흥미롭습니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루겠습니다. 일단 이런 생각이 들 테지요.


Q. 대가가 이상한 짓을 하면?

A. 다 이유가 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AI 인프라 과열 포지션(메타, Arm, 몽고 DB, TSMC)은 전량 및 일부 청산. 개별 은행주도 전량 청산. 대신 금융 섹터 ETF(XLF), 동일가중 지수(RSP), 신흥국(EWZ), 원자재(알코아, 서던코퍼), 에너지 인프라(블룸에너지), 경기순환주(항공)로 자본을 이동시켰습니다. 단순한 섹터 로테이션이 아닌, 시장의 주도권이 바뀐다는 테제 변화를 그는 예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RSP 편입이 특히 의미심장합니다. SPY나 VOO 같은 시가총액 가중 ETF가 아니라 500개 종목에 동일 비중을 부여하는 RSP를 선택했다는 것은, 매그니피센트 7이 이끄는 장세가 끝나고 '나머지 493개 종목'이 살아나는 순환매를 예상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2026년 초 RSP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반면, 시총가중 S&P 500은 빅테크 냉각으로 보합권에 머물렀습니다. 드러켄밀러의 베팅이 이미 적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EWZ(브라질 ETF) 편입은 드러켄밀러 특유의 헷지를 위한 비대칭 거래입니다. MSCI 브라질 지수 선행 P/E가 6.7배로 10년 평균 대비 33% 할인 상태이고,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세계 최고 수준의 실질금리, 원자재 슈퍼사이클 노출이 겹칩니다. 콜옵션 오버레이로 볼록성(convexity)을 추가한 구조는 1992년 파운드 숏 때와 동일한 메커니즘입니다. 적은 비용으로 큰 수익을 노리는 것이지요. 실제로 2026년 2월 중순 EWZ는 연초 대비 +20%, 브라질 증권거래소 B3에서 상위 종목을 추적하는 벤치마크인 이보베스파 지수는 1월 한 달간 +12.56%(2020년 11월 이후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드러켄밀러는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미국 주식이 향후 10년간 1966~1982년처럼 제자리걸음을 할 가능성이 높다." 탈세계화, 재정 과잉, 1982년 이후 40년간 누렸던 순풍(금리 하락, 세계화, 인구 보너스)의 소진이 그 근거입니다. 이번 포트폴리오 재편은 그 경고의 실행 버전입니다.


3. 재무장관은 제자, 연준 의장은 파트너: 워싱턴을 관통하는 사제 네트워크

드러켄밀러의 포트폴리오가 단순한 '투자 신호'를 넘어 '정책 방향의 해독서'로 봐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미국 경제정책의 두 핵심 축을 장악한 인물들이 모두 드러켄밀러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스콧 베센트(79대 미국 재무장관)는 1991년 드러켄밀러가 소로스 퀀텀펀드에서 직접 채용한 인물입니다. 1992년 영란은행 격파 거래를 함께 실행했고, 이후 소로스펀드 CIO(2011~2015)를 거쳐 키스퀘어 그룹을 설립한 후, 2024년 11월 트럼프에 의해 재무장관으로 지명됐습니다. 2025년 1월 상원에서 68대 29로 인준되어 28일 취임했습니다. 베센트는 올인 팟캐스트(2025년 3월)에서 드러켄밀러를 공식적으로 "나의 멘토"라 칭했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에 비유했습니다.


케빈 워시(연준 의장 후보)는 2006~2011년 역대 최연소(35세) 연준 이사를 역임한 후, 2011년부터 드러켄밀러 가족의 자금을 관리하는 회사인 듀케인 패밀리오피스의 파트너로 합류해 14년 이상 드러켄밀러와 함께 일해 왔습니다. 두 사람은 하루에 12회 이상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정도면 애인인데?)


케빈 워시는 2026년 1월 30일 트럼프에 의해 연준 의장으로 지명됐으며, 파월의 임기가 2026년 5월 종료되면 취임할 예정입니다. 워시의 부인 제인 로더는 에스티 로더 가문 상속녀로, 포브스 추정 자산이 25억 달러입니다. 월스트리트와 화장품 왕국의 결합이라니,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워시가 쿠팡의 이사회 멤버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드러켄밀러가 쿠팡 지분을 46% 늘려 1.6억 달러(포트폴리오 3.6%)로 확대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드러켄밀러는 지금의 쿠팡 사태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덕왕도 동의합니다. 투자의 역사를 보면 어느 정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데, 워런 버핏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에 대한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TMI: 고객은 돌아오는 거야! 샐러드 오일 스캔들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


사건의 배경: 샐러드 오일 스캔들 (1963년)

'앤서니 드 안젤리스'라는 사기꾼이 운영하던 '얼라이드 크루드 베지터블 오일(Allied Crude Vegetable Oil)'이라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거대한 저장 탱크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위에만 살짝 식용유(샐러드 오일)를 띄워 놓았습니다. 기름은 물 위에 뜬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었지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자회사는 이 탱크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기름이 가득 차 있다'는 창고 증권(Warehouse Receipt)을 발행해 주었습니다. 사기가 들통나자 드 안젤리스는 파산했고, 허위 증권을 믿고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약 6,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아멕스의 연간 순이익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지요.


버핏의 독특한 현장 검증: "스테이크 하우스 조사"

아멕스의 주가는 65달러에서 35달러 수준으로 반토막이 났고, 시장은 아멕스가 망할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하지만 버핏은 책상 앞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직접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버핏은 오마하의 식당과 호텔들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여전히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로 결제를 하는지, 여행을 갈 때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여행자 수표를 사용하는지 관찰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샐러드 오일 사기'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로 결제를 하고 여행자 수표를 썼습니다. 아멕스가 가진 강력한 브랜드 가치(경제적 해자)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버핏은 "회사의 대차대조표는 일시적으로 망가졌을지 몰라도, 고객의 머릿속에 있는 브랜드는 건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버핏이 투자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경영진의 판단이었습니다. 당시 아멕스 이사회는 배상금을 지불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버핏은 "신뢰를 잃으면 끝장이다. 돈을 다 물어주고 브랜드 명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경영진의 결정을 보고 투자를 확신했다고 합니다.


결과와 투자 수익

버핏은 당시 자신의 파트너십 자금의 40%에 달하는 1,300만 달러를 아멕스 주식에 쏟아부었고,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더 샀습니다. 이후 2년 만에 주가는 3배가 올랐고, 아멕스는 버핏에게 수천억 원의 수익을 안겨준 효자 종목이 되었습니다.


쿠팡의 가치는 훼손되었는가?

쿠팡은 현재 브랜드 가치는 훼손되었으나 현금 창출이라는 기업 본연의 가치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이를 측정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평일 퇴근 후나 주말에 아파트를 걸어 올라가 보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쿠팡을 욕하는 사람은 많아도 쿠팡을 끊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더욱 정확한 것은 1분기 보고서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겠지요. 참고로 주가는 역사적 저점에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드러켄밀러의 네트워크는 압도적입니다. 재무장관은 그의 제자. 연준 의장 후보는 그의 친구이자 비즈니스 파트너. 파이낸셜타임스가 "드러켄밀러를 세계 경제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쓴 것이 과장이 아닌 이유입니다.


베센트의 '3-3-3 플랜'(재정적자 GDP 3%로 축소, 실질성장률 3%, 에너지 생산 일 300만 배럴 증산)은 드러켄밀러가 수십 년간 주장해 온 재정 건전성 철학을 직접 반영합니다. 두 사람 모두 현재 미국 재정적자(GDP 대비 약 6.5%)를 "부채 폭탄"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스승의 철학이 제자의 정책이 되고, 파트너의 통화정책과 맞물려 현실이 되는 구조. 드러켄밀러의 포트폴리오가 단순한 종목 리스트가 아니라 워싱턴 정책의 로드맵으로 읽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4. XLF를 산 진짜 이유, 워시의 '역설적 처방'

드러켄밀러의 XLF 3억 달러 베팅을 이해하려면, 케빈 워시의 통화정책 철학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철학은 기존 연준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워시의 핵심 명제는 이렇습니다.

"인쇄기를 덜 돌려야 금리를 내릴 수 있다."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 문장의 논리를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잠깐 금리의 기초를 짚고 가야 합니다.

금리는 크게 단기금리와 장기금리로 나뉩니다. 단기금리는 연준이 직접 조절하는 기준금리(Fed Funds Rate)이며, 은행 간 하루짜리 대출금리를 말합니다. 기업의 단기 자금조달 비용, 변동금리 대출, 신용카드 금리 등이 여기에 직접 연동됩니다. 장기금리는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대표적이며,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 경제 성장 전망, 재정 건전성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됩니다. 모기지 금리, 회사채 금리 등이 장기금리에 연동되는데, 쉽게 말해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아질수록, 정부 재정이 불안해질수록 장기금리가 높아집니다.

(뭐 물가가 오를 거라고? 나라가 휘청일 거라고? 그럼 금리 더 내놔!)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연준이 직접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단기금리뿐이고, 장기금리는 시장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2024년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175bp나 내렸는데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오히려 상승한 현상이 바로 이 괴리를 보여줍니다.


워시는 이 역설의 원인을 연준의 비대한 대차대조표에서 찾습니다.

잠깐, "연준의 대차대조표가 비대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연준(Fed)도 일반 기업처럼 대차대조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산 쪽에는 연준이 시장에서 사들인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이, 부채 쪽에는 시중은행들이 연준에 맡긴 지급준비금과 유통 중인 달러, 그리고 재무부가 중앙은행에 개설한 TGA 계좌, RRP라는 역레포 자금 — 쉽게 말해 다 빚 — 등이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약 9,000억 달러였습니다. 그런데 금융위기 때 경기를 살리기 위해 연준이 시장에서 국채와 MBS를 대량으로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양적완화(QE, Quantitative Easing)입니다. 연준이 채권을 사면 그 대금이 시중은행의 준비금으로 들어가고, 이 돈이 시장에 풀립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 이 매수가 극단적으로 확대되면서 대차대조표가 9조 달러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현재도 약 6.6조 달러 규모입니다. 2008년 이전 대비 약 7배입니다.

FED TOTAL ASSETS.png 연준의 대차대조표


문제는 이 비대한 대차대조표가 월스트리트에 과잉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자산 가격을 인위적으로 떠받치고, 동시에 시장에 "연준은 위기 때 또 돈을 풀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준다는 것입니다. 이 기대가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구조적으로 높게 고착시킵니다. 그래서 아무리 단기금리를 내려도 장기금리가 따라 내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워시는 이것을 "위기 시대를 위해 설계된 연준의 비대한 프레임워크"라고 규정하며, 근본적 축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워시의 처방은 다음과 같은 순서입니다. 1단계, QT(양적 긴축, Quantitative Tightening)를 실행해 연준 대차대조표를 공격적으로 축소합니다. 연준이 보유한 국채와 MBS가 만기가 되면 재투자하지 않고 소멸시키는 방식입니다. 2단계, 시장에 "Fed는 더 이상 돈을 풀지 않는다"는 신뢰를 확보합니다. 3단계,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하락하면서 장기금리의 리스크 프리미엄(Term Premium)이 감소합니다. 4단계, 장기금리가 안정되거나 소폭 하락합니다. 5단계, 이 환경에서 단기금리(기준금리)를 인하합니다. 최종 결과는 단기금리는 내려가고 장기금리는 안정되면서 수익률 곡선이 가파르게(Steepening) 됩니다.


핵심을 좀 더 쉽게 말하면, 워시는 QE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통해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구조적으로 낮추고, 그 신뢰를 발판으로 단기금리 인하의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것입니다. 돈을 풀어서 금리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돈을 안 풀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금리를 낮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워시 자신이 Fox Business 인터뷰에서 "인쇄기를 조금 덜 돌리고, 대차대조표를 줄이고, 베센트 장관이 재정 문제를 처리하게 하라. 그렇게 하면 금리를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그는 1951년 재무부-연준 협약(Treasury-Fed Accord)을 모델로 제시하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협조를 강조합니다.


이것이 은행의 수익구조(NIM)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겠습니다. 은행이 돈을 버는 구조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싼 값에 빌려서(단기금리로 예금 수신), 비싼 값에 빌려줍니다(장기금리로 대출). 이 차이를 NIM(Net Interest Margin, 순이자마진)이라 하며, 수익률 곡선의 기울기, 즉 장기금리에서 단기금리를 뺀 값과 거의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아래 그래프는 수익률 곡선의 세 가지 상태를 보여줍니다. 빨간색(역전)은 2023년 SVB 위기 당시의 곡선으로,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아 은행의 NIM이 압축된 상태입니다. 노란색(정상화)은 현재 2025년 전환기의 곡선입니다. 녹색(가파름)은 워시 시나리오, 즉 드러켄밀러가 XLF에 베팅하는 미래의 곡선입니다. 녹색 곡선에서 단기금리(왼쪽)는 3% 수준으로 낮아지고 장기금리(오른쪽)는 4.4~4.85% 수준을 유지하면서, 그 사이의 간격(NIM)이 크게 벌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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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면 이 관계가 매우 선명합니다. 2006~2007년에는 수익률 곡선이 역전(단기 > 장기)되면서 10년물과 2년물 스프레드가 -0.5~0%까지 떨어졌고, 은행주가 부진한 가운데 금융위기의 전조가 나타났습니다. 반면 2010~2013년에는 곡선이 가팔라지며 스프레드가 +2~3%까지 확대되었고, 은행주가 강세를 보이며 NIM이 확대되었습니다. 2022~2023년에는 다시 역전이 일어나 스프레드가 -1%대까지 떨어졌고, SVB 등 지역은행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현재 2025~2026년은 서서히 정상화가 진행되면서 스프레드가 플러스로 전환 중인 구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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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켄밀러가 베팅하는 시나리오는 바로 이 수익률 곡선의 '가파름'입니다. 워시가 단기금리를 내리면 은행의 조달비용이 줄고, QT로 장기금리가 안정 또는 소폭 상승을 유지하면 NIM이 확대됩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황금기가 열리는 셈입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QT가 국채 공급을 늘려 장기금리에 직접적 상승 압력을 가한다고 지적합니다. 시타델 시큐리티즈는 민간 지급준비금이 희소해지는 리스크를 경고하는데, 2019년 9월 레포 시장 위기가 그 전례입니다.


사실 금리 인하와 대차대조표 축소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경제학에서는 이 둘은 함께할 수 없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로 인식되었습니다. 워시의 걱정하지 말라는 '신뢰의 인사'가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시장으로부터의 '공급 압력'을 이겨야 하는데, 어느 쪽이 이길지는 솔직히 아무도 모르지만, 승부사 드러켄밀러는 3억 달러를 걸고 워시의 실험이 성공한다는 데 베팅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단기금리 인하가 모기지 금리를 직접 낮추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 30년 모기지 금리는 10년물 국채 수익률에 연동되기 때문입니다. 2024년 연준이 세 차례 금리를 내렸는데도 30년 모기지 금리가 7%대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은 것이 그 증거입니다. 워시의 처방이 의도대로 작동하여 10년물이 안정되어야만 모기지 금리도 간접적으로 소폭 하락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단기금리 인하의 직접 수혜를 받는 것은 은행 조달 비용, 기업의 단기 차입(CP), 변동금리 대출(HELOC), 신용카드 금리, 소기업 대출 등입니다.


5. 골드만삭스만 따로 산 이유, 레이어드 전략과 M&A의 시대

드러켄밀러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캐피털원, 싱크로니 파이낸셜 등 개별 은행주는 전부 팔았습니다. 그러면서 금융 섹터 ETF인 XLF를 3억 달러어치 샀습니다. 그런데 골드만삭스는 따로 2,800주, 약 2,400만 달러를 직접 매수했습니다. 단기금리가 낮아지면 은행이 유리할 텐데 왜 은행주를 팔았을까요? 그리고 왜 JP모건이 아니라 골드만삭스를 샀을까요?


아몰랑 T map 대중교통 (@amallang2) • Facebook.jpg 괜찮습니다. 천천히 따라오시지요


이 수수께끼를 이해하려면 XLF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은행 ETF'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XLF는 S&P 500 내 금융 섹터 전체를 담는 ETF로 약 80개 종목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래 표에서 XLF의 구성을 카테고리별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약 12%로 최대 비중이고, JP모건과 BoA, 웰스파고 등 대형 상업은행이 합산 약 25%, 비자와 마스터카드 같은 결제 네트워크가 약 13%, 골드만삭스와 블랙록 등 투자은행 및 자산운용사가 약 10%, 보험이 약 10%, 소비자금융이 약 8%를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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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결제 네트워크 기업으로, 금리 환경과 무관하게 거래량이 늘수록 수익이 증가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별 은행주만 사면 이런 노출이 불가능하지만, XLF를 사면 상업은행, 결제 네트워크, IB, 보험, 소비자금융 전체에 동시 베팅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워시 체제의 규제 완화 수혜가 상업은행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본시장, 소비자 금융, 보험 전반에 걸친다는 판단인 것입니다. 워시는 바젤 엔드게임(은행 자본 규제 강화안)에 반대해 왔고, 중소은행 규제 완화를 주장해 왔습니다.


골드만삭스를 따로 산 이유는 바로 M&A에 있습니다. 금리 인하 환경에서 M&A는 구조적으로 활성화됩니다. 파이낸싱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투자은행인 JP모건은 상업은행과 IB를 겸업하는 구조이고, XLF 안에서 이미 11% 비중으로 충분히 커버됩니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M&A 자문과 딜 주선 수수료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순수 IB에 가깝습니다. M&A 붐이 오면 가장 직접적인 수혜를 받는 곳이지요.



TMI: M&A계의 거인 골드만삭스

골드만삭스, AI 인프라 금융시장 진출…전담조직 신설 - 지디넷코리아.jpg


골드만삭스는 2025년 한 해 동안 약 1.48조 달러(한화 약 2,000조 원) 규모의 거래를 자문하며 글로벌 M&A 리그테이블 1위를 탈환했습니다. 특히 2025년 말부터 2026년 초까지 '메가 딜(Mega-deal)'들이 쏟아졌는데, 그중 골드만삭스가 핵심적으로 참여한 최근 주요 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술 및 엔터테인먼트 (메가 딜)

1. 일렉트로닉 아츠(EA) 비상장 전환 ($550억):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실버레이크 컨소시엄이 EA를 인수하여 비상장사로 전환하는 건에 자문을 제공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이 건으로만 약 1.1억 달러의 자문 수수료를 벌어들였습니다. 야! 그래서 요즘 EA 게임들이 맛이 갔구나!

2. 넷플릭스의 워너 브라더스 인수 ($827억): 2025년 말 발표된 초대형 미디어 합병 건으로, 골드만삭스는 여기서도 주요 자문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제 타이니툰 볼 수 있는 건가요?

3. OneStream Software 인수 ($64억): 2026년 1월 초, 글로벌 투자사 Hg가 원스트림 소프트를 인수할 때 독점 금융 자문을 맡았습니다.

4. ServiceNow의 Armis 인수 ($77.5억): 사이버 보안 기업 아미스가 서비스나우에 매각될 때 재무 자문을 담당했습니다.


헬스케어 및 산업재

1. 킴벌리-클라크의 Kenvue 인수 ($487억~506억): 타이레놀 제조사로 유명한 캔뷰(Kenvue)를 킴벌리-클라크가 인수하는 메가 딜을 자문했습니다. 어라... 그럼 이제 휴지 사면 두통약 주는 건가요?

2. Novartis의 Avidity Biosciences 인수 ($120억): 2025년 하반기에 진행된 굵직한 제약/바이오 딜 중 하나입니다.

3. Eaton의 Boyd Thermal 인수 ($95억): 2026년 1월 말에 발표된 산업재 분야의 주요 인수 건입니다.



이 외에도 금리 하강기에는 빅테크 회사들 간의 인수합병도 활발해집니다. 실제로 2025년 12월, 메타 플랫폼즈가 싱가포르 AI 에이전트 스타트업 마누스(Manus)를 20억 달러 이상에 인수한 바 있습니다. 런칭 8개월 만에 연 매출 1억 달러를 달성한 이 회사는 AI 에이전트 분야의 핵심 인프라(execution layer)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AI 시장의 무게중심이 기반 모델(Foundation Model)에서 에이전트(실행 레이어)로 이동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상징적 사례입니다. 브랜드와 기술력은 있으나 자본이 약한 스타트업이, 자본은 풍부하지만 특정 기술이 필요한 빅테크에 흡수되는 전형적 패턴. 금리 인하로 IB 수수료 비용이 낮아지면 이런 딜이 더 많아질 것이고, 그 수수료의 상당 부분은 골드만삭스의 몫이 됩니다.


이 전략을 '레이어드(Layered) 전략' 또는 '코어-새틀라이트(Core-Satellite) 전략'이라 부릅니다. 코어(핵심)에는 ETF를 배치해 섹터 방향성을 잡고, 새틀라이트(위성)에는 확신이 있는 개별 종목을 배치해 추가 수익(알파)을 노리는 것입니다. '상업은행은 ETF로 분산, IB·자본시장은 골드만 직접 베팅'이라는 이중 구조입니다.

사실 이 전략은 기관투자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개인투자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금융 섹터에 베팅하고 싶다면, KODEX 은행 ETF로 섹터 전체 방향성을 잡은 뒤, 특별히 확신이 있는 종목 하나나 둘(예: M&A 수수료 수혜가 큰 증권사)을 개별 매수하는 방식입니다. 규모만 다를 뿐 드러켄밀러가 45억 달러 포트폴리오에서 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입니다. 전략은 규모가 아니라 구조가 결정합니다.


6. 같은 금리 인하, 다른 세상: 미국의 '타임캡슐' vs 한국의 '판도라 상자'

지금까지 드러켄밀러의 미국 금융주 베팅을 분석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 국내 투자자들도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그럼 우리나라 은행주도 사야 하나?" 하지만 아쉽게도 같은 논리를 한국에 직접 대입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미국과 한국의 금리 제도와 모기지 구조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두 나라의 금리 제도를 비교 정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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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금리는 압도적인 '타임캡슐'입니다. 특히 미국 모기지의 압도적 표준은 30년 고정금리입니다. 전체 신규 모기지의 약 85~90%가 고정금리이고, 대출 시점에 금리를 30년간 완전히 고정합니다. 2020~2021년에 집을 산 미국인들은 2.5~3%대 금리를 지금도 그대로 내고 있습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5%대로 올려도 이들의 월 납입금은 1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미국 부동산 시장의 기묘한 '잠금 효과(Lock-in Effect)'를 만든 원인입니다. 3% 금리로 집을 가진 사람이 지금 집을 팔면 새 집은 7%로 대출받아야 하니 아무도 안 파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구조에서 금리가 올라도 기존 대출자에게 충격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 경제가 금리 인상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는 점입니다. 다만 금리가 충분히 내려가면 '리파이낸싱(낮은 금리로 대출 갈아타기)' 붐이 일어나 가계 가처분소득이 증가하는 것이 미국식 금리 인하의 소비 자극 경로입니다.


반면 한국은 6개월마다 뚜껑이 열리는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한국의 주택담보대출 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한국의 변동금리 대출은 '코픽스(COFIX, Cost of Funds Index, 자금조달비용지수)'에 연동됩니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주요 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IBK기업, SC제일, 한국씨티)이 돈을 끌어오는 데 드는 실제 평균 비용을 지수화한 것으로, 3종류가 있습니다.


신규취급액 코픽스는 해당 월에 새로 조달한 자금의 평균으로 금리 변화가 즉각 반영되어 금리 하락기에 유리합니다. 잔액 코픽스는 현재 운용 중인 전체 잔액의 평균으로 변동성이 완충되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입니다. 신잔액 코픽스는 위 두 가지의 중간 성격입니다. 대출자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각각 3개월 또는 6개월마다 금리가 재산정됩니다.


한국에도 고정금리 상품이 있지만, 대부분 '혼합형'이라 불리는 준고정금리입니다. 5년 간만 금융채 5년물 기준으로 고정이고 이후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구조입니다. 만기까지 완전히 고정되는 상품은 초기 금리가 높아 선호도가 낮습니다. 2024년 말 기준 변동형 주담대 금리가 고정형보다 0.6% 포인트 이상 낮아지면서 변동형 비중이 다시 13.4%까지 올라오는 추세입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변동금리가 많았지만, 2022~2024년 금리 급등기에 정부와 은행이 고정형을 유도했고, 지금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자 다시 변동형으로 쏠리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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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랜 기간 안정적인 미국의 모기지 고정금리와 다르게 한국에서 금리 정책은 미국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훨씬 정치적이고, 훨씬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은행주에 미국 XLF의 투자 논리를 적용하기 어려운 구조적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 한미 금리차가 약 175bp로 이미 위험 수위입니다. 여기서 한국이 추가로 금리를 내리면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고, 더 큰 문제는 금리를 내릴 경우 자금이 산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동산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가계부채 대비 GDP 비율은 약 100%로 OECD 최상위권이며, 2021년과 2023년 말에 금리 인하 기대만으로 부동산 자금이 쏠린 전력이 있습니다.


현 정부는 부동산에 대한 다각적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 입장에서 금리를 인하하여 집값을 자극할 수 있는 정치적 독극물을 굳이 마실 이유가 없습니다. 현재 상황으로는 금리 동결 쪽이 압도적으로 가능성이 높고, 설령 인하가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강력한 부동산 규제가 선행 입법되어야 하는데, 4개월 후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에너지를 쏟기엔 타이밍이 빠듯합니다.


물론 이렇게 반론할 수도 있습니다. 첫째, 경기 둔화 압력이 너무 강합니다. 2025년 한국 GDP 성장률이 1%대로 추락했고, 수출이 중국 경기 둔화와 트럼프 관세 이중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성장이 0% 근방을 위협한다면 금리 인하 압력은 정치와 무관하게 커집니다. 둘째, 미국이 먼저 금리를 크게 내려 한미 금리차가 축소된다면 한국도 추가 인하 여력이 생깁니다. 셋째, 현 정부가 전세 대출 규제, LTV 강화, 취득세 중과 등을 패키지로 선제 입법하여 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원천봉쇄한 후에 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시나리오도 논리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여러 시나리오 중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에서 드러켄밀러가 XLF를 사는 논리와 한국에서 은행주를 사는 논리는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른 환경 위에 놓여 있습니다. 한국 은행주의 투자 근거는 금리 스프레드보다 오히려 주주환원 정책 강화와 밸류업 프로그램 쪽에서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일 것입니다.


7. 코스피 75.6%, G20 최강 수익률의 빛과 그림자

이제 자세히 한국 시장을 들여다보겠습니다. 2025년 한국 코스피는 연초 약 2,300포인트에서 연말 4,214포인트까지 75.6% 상승해 G20은 물론 42개 주요 글로벌 지수 중 1위를 기록했습니다. 2026년 1월 22일에는 장중 5,019.54포인트를 터치하며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코스피 5,000'을 취임 7개월 만에 달성했고, 2월 말 현재 5,900선에 근접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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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등의 첫 번째 동력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입니다. 작년 5월만 해도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삼성전자에 대해 “아마 쟨 안될 거야”라며 비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삼성전자는 HBM3E 엔비디아 퀄 테스트 통과, HBM4 세계 최초 양산 개시, HBM 시장점유율 16%에서 35% 확대 전망에 힘입어 연간 125% 상승하며 '십만전자'를 돌파했고. 2026년 2월 말 현재 20만 원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물론 초 대기업 SK하이닉스는 거의 4배 상승했습니다. 이 두 회사가 코스피 시가총액 3,480조 원의 약 35~40%를 차지합니다. 사실상 코스피의 심장입니다.


두 번째 동력은 방산과 조선, 이른바 'K-조방' 랠리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5년 162.9%, 5년간 3,100% 상승하며 블룸버그 세계지수 기준 최고 수익률 방산주로 등극했습니다. 매출 26.61조 원(전년 대비 136.7% 증가), 영업이익 3.03조 원(75.2% 증가)으로 3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K9 자주포는 글로벌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영업이익 3.90조 원(172.3% 증가)으로 사상 최대치를 갱신했습니다.


세 번째 동력은 외국인 자금 흐름의 극적 반전입니다. 2025년 상반기까지 16조 원 순매도를 기록했던 외국인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6월 4일) 이후 급반전해 6~10월 약 12조 원(84억 달러) 순매수로 돌아섰습니다. 외국인 보유 시가는 2024년 말 673.7조 원(27%)에서 2025년 말 1,326.8조 원(30.8%)으로 97% 증가했습니다. 2026년 1월 외국인 지분율은 37.18%로 5년 9개월 내 최고를 기록했고, 미국 투자자 보유액만 272조에서 546조 원으로 두 배가 됐습니다.


구조적 변화의 핵심은 상법 개정입니다. 2025년 7월 1차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뿐 아니라 '모든 주주'로 확대됐고, 8월 2차 개정으로 대형 상장사의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됐습니다. 3차 개정안(자사주 소각 의무화)이 진행 중입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배당성향 40% 이상 시 세율 49.5%에서 30% 이하), 상속세 할증 폐지 논의 등 밸류업 정책이 총동원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K-프리미엄'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밸류업 지수는 도입 이후 134.9% 상승했습니다.


8. 조금씩 자라나는 위험

그런데 세상에 마냥 좋은 것만 있을 리 없습니다. 지수 6,000을 앞둔 불장의 불꽃놀이 뒤에는 위험한 진실이 조용히 암세포처럼 커져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KBS 수석 경제기자 출신이자 서울대 경제학 박사인 박종훈 기자의 유튜브 채널 '지식한방'에서 다룬 '코스피 급등의 비밀'에서 다뤄 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 역시 한 스푼보다는 한 방인가! 분하다)


박종훈 박사는 다음과 같이 여러 시장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핵심 리스크들을 제기하며 지금의 초고속 상승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첫째,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40%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2개 종목에 집중되어 있다는 편중 리스크입니다. 미국 S&P 500에서 매그니피센트 7의 집중도가 문제라면, 한국은 그보다 훨씬 극단적으로 반도체 2개사에 의존하고 있는 셈입니다.

둘째, 신용잔고가 31조 원을 돌파하며 전년 대비 80% 급증했습니다. '빚투'의 과열 신호입니다.

셋째, 2026년 초 외국인이 9조 원 이상 순매도로 전환했음에도 지수는 38% 추가 상승했습니다. 외국인이 빠져도 올라가는 시장이라면, 그건 모멘텀이지 펀더멘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넷째, 원달러 환율이 1,440~1,480원대의 구조적 약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그리고 이것이 가장 의미심장한데, 한국 개인투자자가 2025년 미국 주식을 663억 달러(98조 원) 순매수해 세계 최대 미국 주식 매수국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코스피가 역사적 급등을 하는데 국내 개인은 오히려 사상 최대 26.37조 원 순매도를 기록한 것입니다. 급등장에서 정작 개인은 빠져나가고 있다면, 이 랠리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저도 박종훈 박사의 리스크 지적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특히 반도체 2개사 편중과 신용잔고 급증은 구조적 취약점입니다. 다만, 코스피 급등의 근본 동력인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K-방산의 구조적 수혜, 상법 개정으로 인한 거버넌스 혁명은 일시적 테마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리스크가 있다고 해서 기회까지 부정해서는 안 되고, 기회가 있다고 해서 리스크를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문제는 항상 '언제, 어떻게'입니다. 이 점에서는 저와 같은 테크노펀더멘털리스트, 즉 기업의 가치와 모멘텀을 함께 보는 추세추종 투자전략이 좀 더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9. 칵테일파티의 경고, 마음 울적한 날엔 거리를 걸어 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면 망한다

전설적 투자자 피터 린치는 칵테일파티의 비유를 남겼습니다. 파티 초반에는 아무도 주식 이야기를 안 합니다. 중반쯤 되면 슬슬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파티의 절정에서 모두가 주식 이야기에 열광하고, 택시 기사가 종목 추천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주식시장의 분위기가 그런 것 같습니다. 정확히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설 연휴가 끝난 주말, 동네 미용실 원장님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며 등 뒤의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노래의 두 박자 리듬을 느끼면서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원장님이 계속 싱글벙글 웃으시더군요.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시길래 그러시느냐 물었더니, 삼성전자 주식이 많이 올랐다며 제게 감사인사와 함께 (아니 왜?) 웬 듣도 보지도 못한 바이오 종목까지 추천해 주셨습니다. 머리를 다듬고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 들고 나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음... 고레와 야바이...음… 혼또니 야바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미래가 장밋빛이라고 해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주식시장에서 철퇴는 가장 빛날 때 내려오곤 합니다. 실적이 좋다고 반드시 주가가 오르는 것도 아니지요. 이것은 초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착각하는 부분입니다.


엔비디아(NVIDIA)는 2024년 4분기에 사상 최대 분기 매출 393억 달러, 순이익 22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시장 컨센서스를 상회하는 놀라운 실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적 발표 직후 주가는 하락했습니다. 시장은 이미 '완벽한 실적'을 주가에 반영해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록스(CROCS)도 분기 최대 매출을 발표한 직후 급락한 바 있습니다. '실적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기대의 서프라이즈'가 주가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 시장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신호가 있습니다. 하나는 외국인 자금의 방향 전환입니다. 2026년 초 외국인이 9조 원 이상 순매도로 돌아섰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하락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외국인의 보유 비중이 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급 변화는 코스피 전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칩니다. 다른 하나는 단기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투자(증권사 자기매매) 자금의 급증입니다. 또한 레버리지와 프로그램 매매가 늘어나는 것은 상승장 후반의 전형적 과열 신호입니다.


연준에는 '연준의 입'이라 불리는 닉 티미라오스 기자가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수석 경제부 기자인 그는 연준의 정책 방향을 시장에 미리 시그널링하는 역할로 유명합니다. 연준이 직접 말하기 곤란한 것들을 티미라오스의 기사를 통해 시장에 흘리는 것이지요.


연준의 입 WSJ 닉 티미라오스 기자 그가 암시한 12월 FOMC 방향은 l 1214 유사남의 10분 미국증시 (굿모닝인포맥스.jpg 연준의 비공식 대변인 닉 티미라오스 기자


그렇다면 드러켄밀러의 13F 공시가 어쩌면 트럼프 경제팀의 '닉 티미라오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생각해 봅시다. 재무장관은 그의 제자, 연준 의장 후보는 그의 오랜 사업 파트너입니다. 그들이 추진할 정책의 방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드러켄밀러입니다. 어쩌면 베센트 장관과 케빈 워시의 연준 의장 지명에도 그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해도 적어도 드러켄밀러의 투자 방향은 바람을 등지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포트폴리오는 단순한 투자 판단이 아니라, 베센트의 재정정책과 워시의 통화정책이 향할 방향을 미리 보여주는 로드맵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XLF를 사는 것은 금융 규제 완화를 아는 것이고, RSP를 사는 것은 자본의 광폭 확산 정책을 아는 것이며, EWZ를 사는 것은 달러 약세와 신흥국 순풍을 아는 것입니다. 앞으로 분기마다 발표되는 드러켄밀러의 13F를 '미국 정책 방향의 해독서'로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닉 티미라오스의 기사를 읽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당장 한국과 미국의 주식시장이 무너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주식시장의 급락은 실적이 컨센서스 대비 약하게 나오는 정도로는 잘 발생하지 않습니다. 주요 거시경제의 기둥이 되는 지표가 부러지거나(고용 붕괴, 신용 경색, 유동성 위기 등),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의 재무상태에 중대한 문제가 나타났을 때 주로 발생합니다. 현재 미국의 고용시장은 견조하고, 기업 이익은 성장하고 있으며,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구조적 수요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10.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거시경제 지표

그렇다면 우리가 주시해야 할 거시경제 지표는 무엇일까요? 잠깐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미국 시장의 경우, 핵심은 거시경제 지표와 빅테크 실적입니다. CPI(소비자물가지수)는 매월 발표되며, 인플레이션의 방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헤드라인 CPI보다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Core CPI)에 주목해야 합니다. PCE(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는 연준이 공식적으로 가장 중시하는 인플레이션 지표입니다. CPI와 비슷하지만 소비 패턴 변화를 반영하므로 연준 정책의 가장 직접적인 선행 지표입니다.


ISM 제조업 PMI(구매관리자지수)는 50을 기준으로 확장과 수축을 판단합니다. 50 이상이면 제조업 확장, 이하이면 수축. 이 지수가 급락하면 경기 침체 경고입니다. 비농업 고용(NFP)과 실업률은 매월 첫째 금요일 발표되며, 시장을 가장 크게 흔드는 지표입니다. 고용이 견조하면 경기 침체 가능성이 낮고, 갑작스러운 고용 둔화는 시장 급락의 트리거가 됩니다.


신규 실업급여 청구건수(Initial Jobless Claims)는 매주 목요일 발표되어 고용시장의 실시간 체온계 역할을 합니다. 4주 이동평균이 25만 건을 돌파하면 경고등이 켜집니다. 여기에 더해 매그니피센트 7(애플,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메타, 테슬라)의 분기 실적과 가이던스는 시장 전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이들 중 한두 곳에서 어닝 쇼크(실적 대폭 미달)가 나오면 나스닥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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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의 경우, 외국인과 기관의 자금 수급이 핵심입니다. 코스피는 외국인의 매수와 매도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는 구조이며,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외국인 지분율 변화가 가장 중요한 선행 지표입니다. 코스피 200 선물의 외국인 포지션도 주시해야 합니다. 외국인이 선물에서 대규모 순매도 포지션을 쌓기 시작하면 현물 시장 하락의 조기 경보가 됩니다.


선물가격이 현물가격보다 낮아지는 것을 어려운 말로 '백워데이션(Backwardation)'이라고 하는데, 이 현상이 발생하면 기관투자자들은 자동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램 매매를 통해 비싼 현물인 주식을 팔고 싼 선물을 사는 '매도차익거래'를 실행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프로그램 매도 폭탄이 쏟아져 단기 급락의 직접적 원인이 됩니다.


신용거래 융자 잔고(현재 31조 원 이상)는 레버리지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이것이 급격히 줄어드는, 레이 달리오가 말하는 그 유명한 '디레버리징' 국면이 시작되면 반대매매가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최후의 한 사람까지 탈탈 털어가며 급락이 가속화됩니다.


Clipboard - 2026-02-25 01.46.33.png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신용거래 잔고, 주식시장 폭락 전엔 언제나 가파른 신용잔고 증가가 뒤따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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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다행인 점은 신용잔고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예탁금 대비 신용잔고비율은 하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빌린 돈이 증가하고 있지만 주식투자를 하기 위해 모아놓는 쌈짓돈이 더 많이 증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현재의 주식시장이 여전히 건강하다는 것을 뜻하며 반대매매 등이 일어나는 패닉 상황의 발생 가능성이 낮음을 의미합니다.


이 생각이 맞는지 연도별 상관계수와 당시 시장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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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코스피 지수 (빨간색) / 신용잔고 비율 (파란색 바)


image.png 마이너스 값의 상관계수는 신용잔고보다 예치금이 더 빨리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뜻함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탁금 규모의 비약적 증가입니다. 코스피 지수가 급격히 상승하는 구간(특히 2020~2021년, 2025~2026년)에서 투자자들이 시장에 새로 유입되면서 투자자 예탁금(분모)이 신용융자 잔고(분자) 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둘째, 시장 건전성 강화입니다. 지수가 6,000선을 돌파하는 최근의 초강세장에서도 신용잔고 비율이 낮게 유지되는 것은, 단순히 부채로 끌어올린 장세가 아니라 실제 현금성 자산(예탁금)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재의 상승장이 유동성이 풍부한 긍정적 환경임을 시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투자 자금의 유입입니다. 과거에 투자 1순위는 부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각종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고 상법 개정과 각종 주주친화 정책으로 주식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낮아져 자금이 집중된 것도 주가 상승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현재 한국 시장은 과거에 비해 지수는 훨씬 높지만 신용 거품(예탁금 대비 비율)은 오히려 낮은 수준으로, 시장의 기초 체력이 과거보다 강화된 상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11. 드러켄밀러가 말아 주는 원칙 한 사발

드러켄밀러는 Q3에 메타를 사고, Q4에 전량 매도했습니다. 90일 사이에 확신이 바뀌었고, 바뀐 순간 즉시 행동했습니다. 그에게는 '물타기'도, '본전 심리'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도 없습니다. 확신이 있으면 농장을 걸고, 확신이 사라지면 농장을 접습니다. 이 원칙은 30년 무패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금을 쥐고 시장 밖에서 구경만 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덕왕은 '테크노펀더멘털리스트'입니다. 기업의 펀더멘털을 분석하되, 시장의 기술적 추세를 존중하는 추세추종자라는 의미입니다. 시장에 들어가 있는 저는 참여하되, 추세가 꺾이면 언제든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투자의 핵심은 '사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빠져나올 것인가'를 미리 정해 놓고 장기간 살아남는 것입니다.


어쩌면 가치투자자라면 다른 답을 할지도 모릅니다. "좋은 기업을 싸게 사서 오래 들고 있으면 된다."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스타일의 차이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며, 가치투자자도 자신이 부여한 가치는 시장의 환경이나 기업의 가치에 기반하여 미리 정해 놓아야 합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나는 장기투자자"라고 말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이 말속에는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장기투자자라는 뜻이 담겨 있지만, 실은 그 두 말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추세추종 투자자도 얼마든지 장기투자를 할 수 있으며, 가치투자자도 자신의 판단이 틀리면 초단기로 자산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에 대해 혼동하는 것과 더불어, 스스로 장기투자자라 말하는 분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비자발적 장기투자자'입니다. 사놓고 떨어져서 못 파는 것입니다. -30%, -50%의 늪에서 '언젠가는 오르겠지'라는 희망으로 버티는 것과, '이 기업의 내재가치가 현재 주가의 2배이므로 기다릴 수 있다'는 확신으로 보유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위입니다. 전자는 도박이고, 후자가 투자입니다.


수많은 투자자가 자발적 선택이 아닌 시장의 강요와 손실 회피 성향으로 인해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슴속에 새겨야 합니다.


계좌의 마이너스는 단지 시간이 지나 본전을 찾는다 해도, 실제 삶에서는 복구되지 않는 손실이 발생합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참아온 고통의 매몰비용이 발생하며, 고통이 없었다면 키울 수 있었던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다는 이유로, 혹은 목숨과 같은 자금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을 가치를 추구하는 장기투자자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가치투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덕왕도 적지 않은 사람들과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을 장기투자자라고 말한 사람들 중에서도 진정한 가치투자자는 많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러 글에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지만, DCF(현금흐름할인모형)로 해당 기업의 적정주가를 산출할 수 없다면, PBR에서 Book Value(장부가치)를 구할 줄 모른다면, 유동비율과 부채비율은 무엇이며 이자보상배율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영업이익과 순이익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재무제표를 읽을 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장기투자자일 수는 있겠지만 가치투자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일견 다행인 것은, 가치투자만이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업에 대한 분석 없이 차트분석만으로도 부를 일군 대가들도 있으며, 윌리엄 오닐과 마크 미너비니 같은 추세추종의 대가들도 있듯이, 여러 전략이 있고 그 모든 전략도 오랜 기간 동안 증명되어 왔기 때문에 공부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드러켄밀러가 추세추종으로 30년 무패를 기록했고, 워런 버핏이 가치투자로 60년간 복리 수익을 쌓았습니다. 둘 다 정상에 올랐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투자 스타일을 정립하는 데 수십 년의 공부와 실전을 투자했다는 것입니다. 드러켄밀러는 피츠버그 내셔널 뱅크의 스물다섯 살 애널리스트 시절부터 식품 가격과 소매주의 상관관계를 그래프로 그리며 패턴을 찾았고, 버핏은 열한 살 때 첫 주식을 산 이후 70년 이상 재무제표를 읽었습니다.


어떤 투자 전략을 쓰든 그것은 투자자 개인의 스타일에 달린 것입니다. 하지만 추세추종이든, 가치투자든, 퀀트든, 배당투자든 그 철학을 체득하고 마침내 왕도에 이르기 위해 들여야 하는 절대적인 공부 시간과 노력은 다르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지름길은 없지만, 그렇다고 차별도 없습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시장은 차별 없이 풍족한 과실을 안겨줄 것입니다.


오늘도 같이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엄백호 냉큼.jpg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Cover_하얗게 불태웠어.jpg 특별히 빡쎌 때는 이 짤이 추가로 들어갑니다. AM 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