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契機)에 대하여

계기: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

by 동이의덕왕

계기(契機)에 대하여

계기(契機):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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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민족의 대명절을 맞이하여 내일부터 제법 긴 연휴가 시작됩니다. 어떤 분은 고향으로, 어떤 분은 해외로, 또 어떤 분은 집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겠지요.


새해 인사에 앞서 오늘은 '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길지 않은, 하지만 그다지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면서 많은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삽니다. 때로는 지금 사는 모습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꾸는 것이 귀찮아서 혹은 두려워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거나 받아들입니다.


작은 행복을 느끼며 이것으로 충분하다 위안을 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바꾸고 싶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이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어려워집니다.


삶을 바꾸려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계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것은 웬만해서는 스스로 만들기 어려우며, 감당하기 힘든 외부의 충격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고요한 수면 위에 돌멩이가 떨어져야 파문이 일듯, 삶도 그러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공부도 어느 정도 했지만 그보다는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 몰래 운동을 했으나 중학교 말 심각한 부상을 당해 선수의 꿈을 접었고, 고등학교 입시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저는 비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흐지부지 그만둔 친구들과 함께 놀기 바빴고, 그나마 유지하던 성적은 곤두박질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놀수록 마음속 불안감은 커져만 갔고, 변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아니, 변하고 싶다기보다는 이렇게 살면 큰일 나겠다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중학생인 꼬마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 마음을 외면한 채 관성처럼 계속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말고 뒷자리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뒤를 돌아보며 학생들을 쏘아보시더니 책을 덮으시며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너희들, 인생이 얼마나 만만할 거라 생각하냐? 지금 아무 생각 없이 떠들고 놀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훗날 얼마나 큰 후회로 돌아올지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거다."


선생님은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너희들이 누리는 그 작은 즐거움이 훗날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돌아올 것이라고 선생님은 확신한다. 그래서 선생님이기 이전에 어른으로서, 너희들의 미래에 확정된 실패를 나는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러면서 교탁 옆 몽둥이를 들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눈을 감고 그동안 자신이 잘못했던 행동의 횟수를 세어라. 그리고 나와서 그 횟수만큼 벌을 받아라."


아이들은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하지만 뒷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던 저는 그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습니다. 공부를 멀리했던 일, 어머니께 대든 일, 친구들과 땡땡이를 친 순간들…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몇 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아무도 없는 거냐? 그럼 수업 다시 시작한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저는 왠지 지금이 아니면 제 인생을 바꿀 기회가 영영 사라져 버릴 것 같았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천천히 걸어 나와 칠판에 손을 대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몇 대?" 선생님이 물으셨습니다.

"삼십 대" 저는 짧게 대답했고, 삼십 대를 풀스윙으로 맞았습니다.


얼마나 아팠는지, 당시의 그 아픔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제가 기어가다시피 자리로 돌아온 후 용기 있는 몇몇 친구들도 하나둘씩 걸어 나와 맞았습니다. 하지만 삼십 대 이상을 맞은 친구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열 대 이상을 맞은 친구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계기였습니다. 저는 사랑의 매로 정신을 차렸고, 비뚤어진 태도에서 올바른 태도로 돌아와 공부에 매진하여 무사히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담배에 일찍 눈을 떴습니다. 중학교 시절 스승에게 사랑의 매를 맞고도, 약빨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시험은 쉬웠고, 저는 자만했으며, 또 금세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담배도 태웠습니다. 그 당시 담배 구입은 사탕을 사 먹는 것만큼이나 쉬웠습니다.


성적은 역시 급전직하. 상위권에서 놀던 성적이 고2 중간고사 이후에는 하위 30%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밖에서 신나게 놀고 가방을 찾으러 교실로 돌아오니 불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아니 밤 10시도 넘었는데 도대체 누가 있는 거야?"

교실로 들어오니 한 친구가 교실 창문을 신문지로 막아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 먼 친척이기도 했습니다.


"너 이 새끼. 뭐하는 거야? 집에도 안 가고?"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며 다가온 저의 물음에, 그 친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응. 공부하지… 하긴 뭘 해. 선생님께는 말하지 말아 줘."

그렇게 무심한 듯 담담하게 말한 친구는 다시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친척인 만큼 그 친구네 집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떠났고,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들 삼형제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공부라는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고 있었는데, 제 친구는 전기세가 아까워 남들이 다 집에 가고 나면 교실 창문에 신문지를 붙이고 새벽까지 공부했던 것입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친구를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진짜 충격은 그다음 말이었습니다.


"덕왕아, 우린 같은 중학교를 나왔잖아. 중학교 때는 내가 널 절대 이길 수 없었어. 너 참 공부 잘했고 부러웠어.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아. 지금의 넌 나를 절대 이길 수 없을 거야. 내가 지금부터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야. 그런데도 부러워. 왜냐하면 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은 부모님이 있잖아. 난…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친구는 이렇게 말하며 다시 고개를 돌려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부끄러워서 교실을 뛰쳐나갔습니다. 얼마나 뛰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숨이 턱끝을 뚫고 나올 때까지 달렸던 것 같습니다.


"시X새끼가… 얼마나 잘났으면…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입으로는 그런 말이 나왔어도 마음으로는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분노인 줄 알았던 감정의 정체는 수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남은 길은 오직 하나, 변해야 한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다음 날도 친구는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다가가 오늘부터 같이 공부하겠다는 짧은 말을 남기고 함께 신문지를 붙였습니다. 그러면서 같이 공부를 시작했고, 곧 독서실을 끊어 새벽 2시까지 함께 공부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시절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엄청난 공부량을 전부 따라갈 수는 없었기에 고3이 끝날 때까지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저도 열심히 했고 다행히 성적이 많이 올라 턱걸이로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저는 어쩌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그 친구는 시골의 작은 병원장을 하고 있고, 가끔 통화하며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안타깝게도 친구는 서울대학교에 떨어졌고 저는 다른 학교에 붙었지만, 얄궂게도 둘은 같이 재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덕왕은 엄밀히 말하면 반수이지만.)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응원했던 시절은 제 젊은 날의 소중한 추억입니다.


또 다른 계기는 학교를 졸업했을 때 찾아왔습니다.

저는 졸업 학기에 작은 회사의 인턴사원으로 들어갔습니다. 학교와 회사를 병행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일이 재미있었기에 열심히 했습니다. 사장님은 졸업하면 정식 채용이라며 격려해 주셨고, 저도 그 믿음에 보답하려 노력했습니다. 인턴으로서는 드물게 높으신 분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제 기획안이 최종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 회사가 제 운명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이사님이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이사님은 담배를 태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요즘 회사가 좀 어려워져서 그러는데, 학교로 돌아가 졸업할 때까지 몇 개월 기다려 주면 어떨까? 나아지면 바로 연락 줄게."


저는 회사가 좋았기에 얼마든지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졸업 시점이 다 되어도 주겠다던 연락은 오지 않았고, 발이 닿는 선배를 통해 알아보고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있던 자리에, 당시 모 여당 국회의원의 딸이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저는 당시 자만했고 나태했습니다. 저 대신 들어온 그 사람을 원망하며 저주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잠시뿐, 모든 것은 결국 제가 자초한 일이었습니다.


한동안 좌절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집에 틀어박힌 채 나가지도 않고 게임만 하며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그런 저를 친형은 다독였고, 부모님은 보기 좋게 복수하라며 일어나라 다그치셨습니다. 저는 가족들의 응원 속에 다시 일어나 늦은 다시 학교에 입학하여 진지하게 공부를 시작했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당시 학교에는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입학시험 때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저를 뽑아 주신 그분을 저는 어머니라 부릅니다. 저는 당시 어머니 교수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쏟으며, 꼭 수석으로 졸업하리라 다짐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 시절 역시 제 인생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계기가 된 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글을 오랫동안 봐오신 독자분이시라면 알고 계시겠지만, 2025년 3월 저는 타의에 의해 신변의 변화를 겪으면서 심적으로 무척 힘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책과 소명에 대한 영상, 그리고 저를 찾아주신 많은 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또 한 번 일어났습니다.


그런 일이 제 삶에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 역시 큰 삶의 계기였습니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가며 예전만큼 무모하거나 게으른 태도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제 삶은 팽이와 같습니다. 여기저기 돌지만 정해진 판을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인생의 변동성은 여전히 크지만 불확실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지금의 저는, 실컷 마시고 놀고 즐겨도 결국엔 다시 중심으로 돌아가는 오목한 판 위의 팽이와 같을 것입니다.


저는 아마도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생각을 하며 글을 쓰는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이런 삶의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여러 번의 삶의 계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수련의 시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있을지 모르며, 미래에도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회사 게시판에서 '호시우보(虎視牛步)'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보았습니다.


호시우보(虎視牛步): 소처럼 신중하게 걸으면서 호랑이처럼 주시한다


회사의 어떤 분께서 열심히 오랫동안 노력하여 큰 자산을 이루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의 오랜 노력과 겸손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큰 금액을 벌어서가 아니라, 꾸준히 오랫동안 견디고 공부한 그 태도가 만인의 귀감이 될 만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글이 계기가 될 것입니다. 금액이 아닌 글쓴이의 삶의 태도를 본받는다면 향상심은 높아지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돈의 규모만을 부러워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부러움 혹은 시기심의 대상이거나, 자신을 향한 자책 그 이상으로는 느껴지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계기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것이라도 해석에 따라 일생의 기회가 되기도 하고, 아무 가치가 없는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마치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셨듯,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은 달라집니다.


그러나 글을 읽는다고, 마음속에 불이 지펴진다고, 그것만으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계기에는 반드시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불씨는 계기가 만들지만, 불꽃을 지피는 것은 행동입니다.


여러분이 계기를 만나셨다면 반드시 마음에 떠오르는 그 행동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행동의 첫걸음은 무언가 대단한 것이 아닌, 작은 것의 습관화에서부터 시작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덕왕이 자주 이야기하는 책 읽는 습관을 예로 들자면, 올해 갑자기 10권의 책을 읽겠다는 다짐보다는 하루에 5장 읽기 같은 것으로 시작한다면, 여러분이 만난 계기는 행동으로 승화되고 행동은 습관으로 자리 잡아, 행복한 인생이 단지 로또나 수십억 자산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설 연휴에 작은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

긴 설 연휴, 한 권을 다 읽지 못할지라도 하루에 다섯 장씩, 혹은 다섯 페이지라도 읽으면서 천천히 자신의 모습을 바꾸며 스스로를 개혁할 계기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특히 독서라는, 타인의 삶과 경험을 살펴 자신의 인생에 반영하려는 태도는 타인과 나의 생각의 거리를 좁혀 대화를 훨씬 부드럽게 만들고 타협점을 찾기 수월하게 만듭니다.


병오년 설에 여러분 각자의 인생에 최선의 노력과 최고의 결과가 함께하길 바라며, 우리 모두가 마시멜로처럼 좀 더 달콤하고 서로에게 부드러운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덕왕도 여러분이 끊임없이 계기를 찾으실 수 있도록 곁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생각하며 글을 쓰겠습니다.

먼 훗날 과거의 어렸던 당신이, 나이 든 당신에게 "그 시절 참 잘했다"며 격려할 수 있도록, 삶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신호를 포착하고 계기를 찾아 행동으로 이어가며, 궁극적으로는 소명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을 하시길 바랍니다.


덕왕이 옆에서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같이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주 후에 뵙겠습니다.




엄백호 냉큼.jpg 냉큼 세배를 받지 못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