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대하여

알아 두면 언젠가 도움 될지도 모를 설날에 관한 지식

by 동이의덕왕

설날에 대하여

알아 두면 언젠가 도움 될지도 모를 설날에 관한 지식

설날.jpg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이제 곧 설날입니다. 한 해의 첫 문을 여는 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떡국 한 그릇 나누고, 윷가락 던지며 웃고, 세뱃돈 주고받는 그 풍경이 곧 펼쳐지겠지요.


덕왕이 먼저 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순풍이 불고, 노력만큼 얻으시며 가내 두루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 설날 풍경은 그저 전통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설날 풍습 하나하나에는 확률론, 유체역학, 재료공학, 천문학까지 현대 과학이 총동원된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조상님들은 그것을 '과학'이라 부르지 않았을 뿐, 수백 년에 걸친 경험으로 최적값을 찾아내셨지요. 오늘은 민족의 명절 설날을 맞이하여 덕왕이 생뚱맞지만 재미있는 것들만 엄선하여 고른, 설날에 알아두면 언젠가 도움 될지도 모를 지식들을 함께 즐겨보겠습니다.


역시 오늘도 글이 좀 깁니다만, 덕왕의 독자시라면 이 정도 이야기는 여유롭게 읽으시겠지요. 그럼 시작합니다.


Chapter 01. 까치설날은 왜 어저께고, 우리 설날은 왜 오늘일까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동요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습니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가사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덕왕은 근본적 물음에 이르렀습니다.

“왜 까치의 설날은 어저께인가? 그리고 참새도 있고, 까마귀도 있고, 부엉이도 있고, 꿩도 있는데 왜 하필 까치인가?”


이 단순해 보이는 동요 한 곡에 한국어의 역사, 삼국시대 설화, 일제강점기의 저항 정신이 전부 압축되어 있습니다.


먼저 언어학적 추적부터 해봅시다. 국어학계에서 가장 정설로 받아들이는 것은 고(故) 서정범 교수의 주장입니다. 옛 우리말에 '작다'는 뜻의 '아치' 또는 '아찬'이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설 전날인 섣달 그믐날을 '작은설'이라는 의미로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아치'의 뜻이 잊혀지고, 발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었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까치설'이라는 단어는 옛 문헌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즉, 까치설의 까치는 새 까치가 아니라, '작은'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 변형된 것입니다. 참새, 부엉이, 꿩이 후보에 오를 일이 애초에 없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까치가 '새'로 오해된 데에는 민속적 기반이 있었습니다. 한국 민속에서 까치는 ‘서조(瑞鳥)’, 즉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여겨져 왔습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담이 대표적입니다. 실제로 까치는 영역 동물이라 마을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경계의 울음소리를 냅니다. 조상님들은 이것을 "반가운 손님이 오는 신호"로 해석했습니다. 설날이면 온 가족이 모이니, 손님을 알리는 까치가 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입니다. '아치'가 '까치'로 변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 까치라는 새의 상징성이 변환을 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설화도 있습니다.《삼국유사》 기이편 '사금갑(射琴匣)' 조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10년(488년) 정월, 쥐가 사람의 말로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라"고 했습니다. 이에 왕이 부하장수를 보냈고 까마귀를 따라간 부하장수는 결국 왕비와 승려의 반역 음모를 밝혀내어 왕의 목숨을 구합니다. 왕은 감사의 뜻으로 정월 보름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까마귀에게 찰밥을 공양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원래 설화의 주인공은 까마귀입니다. 그런데 고려시대까지 '영험하고 빛을 상징하는 짐승'으로 존중받던 까마귀가, 조선시대에 성리학이 수입되면서 흉조(凶鳥)의 이미지로 전락합니다. 왕을 구한 공로는 까마귀의 것이었지만, 까마귀의 이미지가 나빠지자 친근한 까치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는 것이 민속학자들의 분석입니다. 까마귀 입장에서는 엄청난 업적을 세웠는데 최하 고과가 나온 것도 모자라 해고까지 당한 나온 상황과 다름없습니다. 정말 억울하겠네요.


그런데 이 동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구절입니다.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동요를 만든 사람은 윤극영 선생입니다. 동요 '반달'로 유명한 그분입니다. 이 노래가 발표된 해는 1924년, 일제강점기 한복판입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음력설을 폐지하고 양력설만 인정했습니다. 떡방앗간을 폐쇄하고, 설빔을 입은 아이들에게 먹칠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일본 노래밖에 부를 수 없던 시절, 21세의 윤극영은 조선의 아이들에게 우리말로 된 동요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에서 '까치설날'은 일제가 강요한 양력설(1월 1일)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양력 설은 어저께 지났고, 오늘은 "우리 우리 설날", 즉 음력설이라는 선언입니다. 어떤 해석이 역사적 진실인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노래가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전통과 언어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이 노래의 정신을 지켰습니다. 해방 후에도 정부는 양력설만 공식 인정했지만, 1981년 조사에서 무려 81.8%의 국민이 여전히 음력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아무리 금지해도 국민 5명 중 4명이 “안돼. 나는 음력설”을 기어이 실천한 것입니다. 결국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하루 공휴일이 생겼고, 1989년에야 정식 명칭 "설날"이 회복되면서 3일 연휴가 탄생했습니다. 참고로 “구정(舊正)”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라는 인식이 있으나 국립국어원의 답변에 따르면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부른 설날의 노래가 단순히 귀여운 새 이름이 들어간 동요가 아닌, 우리말의 역사, 삼국시대의 설화, 민족의 얼이 함께 녹아 있는 것이었다니 놀랍습니다. 올 설날 이 동요가 들릴 때, 그 안에 담긴 무게를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Chapter 02. 윷놀이는 확률 사기극

영화 '타짜'의 마지막 대결을 기억하십니까? 아귀가 고니의 손을 낚아채며 외칩니다.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고니가 능글맞게 되묻습니다. "증거 있어?" 그러자 아귀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한 마디 합니다. "증거? 증거 있지! 너는 나한테 9땡을 줬을 것이여. 그리고 정 마담한테 줄려는 거 이거, 이거 이거 장짜리 아니여?"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 "패 건들지 마! 손모가지 날라가붕께!" 고니는 대답합니다. "이 패가 단풍이 아니라는 거에 내 돈 모두하고 손모가지 건다."


타짜들은 패를 조작했지만, 조상님들은 윷가락을 깎는 각도만으로 확률을 바꿨습니다. 이쪽이 훨씬 고급 기술입니다.


도개걸윷모, 다 똑같이 나올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윷가락 4개를 던지면 이론적으로 16가지 경우의 수가 나옵니다. 평평한 면(배)과 둥근 면(등)이 나올 확률이 각각 50%인 완벽한 대칭 윷이라면, 확률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 (배 1개, 등 3개): 25%
개 (배 2개, 등 2개): 37.5% — 가장 잘 나옵니다
걸 (배 3개, 등 1개): 25%
윷 (배 4개): 6.25%
모 (등 4개): 6.25% — 가장 드뭅니다


그런데 실제 윷가락은 완벽한 반원이 아닙니다. 여기서 '절단각'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둥근 통나무를 얼마나 깊이 깎아내느냐에 따라 평평한 면이 아래로 안착할 확률이 달라집니다. 연구에 따르면 절단각 60~80도에서 평평한 면이 60~70% 확률로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무게중심이 평평한 쪽으로 쏠리기 때문입니다.


윷놀이 절단각.png

실제 나무 윷(절단각 약 70도 기준 추정치)의 확률은 대략 이렇습니다.

도: 약 22%

개: 약 36% (여전히 최강)
걸: 약 28%
윷: 약 7%
모: 약 3% (타짜급 치우침)


윷놀이 기원의 가장 가설은 고대 부여의 가축 경쟁 놀이로 추정됩니다. 마가(말), 우가(소), 구가(개), 저가(돼지) 등 부족장들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도(돼지/1칸), 개(개/2칸), 걸(양/3칸), 윷(소/4칸), 모(말/5칸)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동물의 이동 속도를 반영한 셈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서 일제 중추원이 조사한 ‘조선풍속집’이라는 자료를 보면, 백제 시대부터 있었으며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잡기며 돈을 거는 것 외에도 섣달그믐과 정월에 놀이로 행해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봉유설’에서는 역신을 쫓는 놀이로도 설명했습니다. 또한 역사가 신채호는 윷놀이의 기원을 단군왕검시대로 보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중국과 인도의 고대 놀이가 전파된 것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사희(柶戲)라 해서 관리들이 즐긴 사례가 나옵니다. 특히 태종실록 34권에는 “유복중의 아내와 함께 윷놀이했다”며 남녀가 함께한 기록도 있습니다.


"윷"의 원래 의미가 흥미롭습니다. 일부 고대 기록에 따르면 "돼지가 자빠진다"는 뜻이었다고 합니다.《동국세시기》(1849)에는 "윷가락 4개가 모두 뒤집힌 것은 돼지가 사방으로 자빠진 모양"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돼지가 완전히 넘어졌으니 잡아먹기 쉽다는 뜻이니, 결국 우리는 명절마다 돼지 사냥 시뮬레이터를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Chapter 03. 윷가락을 비틀어 던지면 멀리 간다, 마그누스 효과

1852년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마그누스가 발견한 '회전하는 물체가 휘는 현상', 바로 마그누스 효과입니다. 야구에서 커브볼이 휘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선 초기 성현이 쓴 《용재총화》(1525년 간행)에 이미 이런 취지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윷가락을 비틀어 던지면 바람을 타고 멀리 간다는 것입니다. 마그누스보다 327년 앞선 관찰입니다. 만약 그 당시 조선이 세계적인 나라였다면 마그누스 효과가 '성현 효과'로 불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회전하는 윷가락 위쪽은 공기가 빨리 흐르고 아래쪽은 느려져 압력 차이가 생깁니다. 이 압력 차가 윷가락을 한쪽으로 밀어주는 힘이 됩니다. 실험에 따르면 윷가락에 초당 약 3회전을 주면 직선 던지기보다 10~20% 더 멀리 날아간다고 합니다. 조선 사람들은 이것을 '바람을 탄다'고 표현했습니다. 용어만 달랐을 뿐, 물리학 교과서보다 300년 먼저 체득한 유체역학인 셈입니다.


UFO 슛에 과학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다 마그누스 효과.png


이 마그누스 효과는 현대에도 다양한 분야에 활용됩니다. 야구 커브볼과 축구 바나나킥이 대표적이고, 선박 분야에서도 회전 실린더로 바람의 추진력을 끌어올리는 기술이 개발되어 연료를 20~30% 절약하고 있습니다. F1 레이싱에서는 타이어 회전이 만드는 마그누스 효과로 다운포스를 조절하고, 고공에서 회전하는 풍력 로터는 같은 원리로 전기를 생산합니다. 윷놀이판의 프로 윷꾼들은 이 원리로 원하는 패를 높은 확률로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윷놀이계의 류현진이라 하겠습니다.


Chapter 04. 윷판의 우주론, 나무판 위에 펼쳐진 별자리 지도

윷가락의 확률도 놀랍지만, 진짜 경이로운 것은 윷판 그 자체입니다. 설날이면 바닥에 펼쳐놓는 그 동그란 놀이판 위에 고대 천문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전통 윷판은 바깥 둘레에 20개의 말밭, 안쪽 십자 지름길에 9개의 말밭, 총 29개의 점으로 구성됩니다. 왜 하필 29개일까요? 동양 천문학에서 하늘을 나누는 기본 체계는 28수(宿)입니다. 동서남북 각 7개씩 총 28개의 별자리가 하늘을 감싸고, 그 중심에 북극성이 있습니다. 28 + 1 = 29. 윷판의 말밭 수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윷판 중앙의 점이 북극성이고, 바깥 둘레의 점들이 28수를 표현하며, 십자 지름길은 동지-하지, 춘분-추분을 잇는 천구의 대원(大圓)입니다. 말이 바깥 둘레만 따라가면 먼 길이고, 가운데 지름길을 타면 빠릅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별이 지평선을 따라 길게 도는 것과 자오선(子午線)을 가로질러 빠르게 이동하는 것의 차이와 같습니다.


이 우주론적 설계가 현대에도 유효한 이유가 있습니다. 윷판의 구조는 네트워크 이론에서 말하는 '스몰월드 네트워크(small-world network)'와 동일합니다. 대부분의 노드는 이웃끼리만 연결되지만(바깥 둘레), 소수의 허브를 통한 지름길(십자 경로)이 전체 네트워크의 효율을 극대화합니다. 1998년 코넬대학교의 왓츠와 스트로가츠가 발표한 이 이론은 인터넷, 뇌 신경망, 항공 노선의 최적 설계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조상님들은 나무판 위에 우주를 그려 넣었는데, 그 우주의 구조가 21세기 네트워크 과학의 최적 모델이었던 겁니다.


그러니 올 설날 윷놀이를 하실 때 기억하십시오. 지름길로 말을 보내는 그 순간, 여러분은 북극성을 관통하는 천문학적 경로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네트워크 과학이 증명한 최적 경로를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윷판 하나에 우주론, 네트워크 이론, 게임 이론이 전부 들어 있습니다. 이 정도면 '보드게임'이 아니라 '우주게임'이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Chapter 05. 무릎에 체중 3배 압력, 건강해지는 세배

소위 헬창이라 불리는 분들은 미모의 상대가 "오빠, 내일 뭐 해?" 톡을 보내도 "하체"라고 답한다는 도시전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헬창이 아니더라도 설날이면 온 국민이 하체 운동을 합니다.


큰절 한 번 할 때마다 무릎 관절에는 체중의 약 2.8~3.2배 압력이 가해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60kg 성인 기준으로 약 180kg. 설날에 평균 12번 절하면 누적 하중이 대략 2,160kg. 소형차 한 대 무게를 무릎으로 지탱하는 셈입니다.


"명절만 되면 무릎이 아픈 이유가 있었구나..." 하시겠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큰절 동작은 무릎 주변 근육 활성화율이 일반 스쿼트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앉았다 일어나는 과정에서 대퇴사두근, 대둔근, 햄스트링이 고루 자극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어설 때 양손을 무릎에 짚지 않고 올라오는 전통 방식은 코어 근육까지 동원됩니다. 세배는 명절 인사가 아니라 전신 운동이었던 겁니다. 헬스장에서 돈 내고 스쿼트 하지 말고, 설날에 친척 집 열 군데만 순례하면 PT 한 달치가 끝납니다. 요즘은 화상 세배도 한다던데, 큰절하면서 무릎 압력은 동일하면서 세뱃돈 수령 확률은 제로에 가까우니 절대 비추입니다.

단, 무릎 관절이 약한 분이나 어르신 분들은 반절만 하셔도 충분합니다. (어르신들이 세배를 하실 일이 있으실까 싶지만) 무리한 큰절로 연휴 첫날부터 정형외과 신세를 지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효도와 관절 보호, 둘 다 챙기시길 바랍니다.


Chapter 06. 세배의 경제학, 우주 최강 알바?

덕왕도 어릴 적 친척들과 함께 방에서 지폐를 세며 연초 특수의 쏠쏠함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세뱃돈의 투자수익률(ROI)을 한번 진지하게 따져봅시다. 순수하게 세배 동작만 놓고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세배 1회 소요시간: 약 45초
평균 세뱃돈(친척 기준): 약 3만 원
시급 환산: (3만 원 ÷ 0.75분) × 60분 = 240만 원


시급 240만 원이라니! 우주 최강 알바의 탄생입니다. 이 정도면 워런 버핏도 부러워할 수익률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습니다. 세뱃돈의 'TCO(Total Cost of Ownership, 총 소유비용)'를 계산해야 합니다.


일단 시간에 따른 기회비용이 발생합니다. 귀성 이동시간 왕복 4~6시간, 친척 집 이동과 대기 집당 1~2시간, 필수 대화 ("지금 몇 학년이니?”, “공부는 잘하니?", "여자(남자) 친구는 있니?" 등)를 비롯한 인내의 시간 30분~1시간, 거기에 식사 및 설거지 동원 2시간 추가.


총 투입 7~8시간이면 수익 15만 원 기준 실질 시급은 약 1.9만 원으로 급락합니다. 240만 원에서 1.9만 원으로, 무려 126배 하락. 이것이 바로 명절의 실제 시간대비 기대 수익입니다.


세뱃돈 인플레이션도 흥미롭습니다. 1980년대 세뱃돈 평균은 500원 안팎이었습니다. 2020년대 기준 약 3만 원. 연평균 상승률이 대략 10~12%에 달하는데, 같은 기간 S&P500 연평균 수익률(약 10~11%)과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삼촌들의 지갑이 월가와 동기화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이 글을 비록 아이들이 보진 않겠지만 세배전략도 있습니다.

첫째, 3인 이상 동시 세배를 노리십시오. 큰집에서 삼촌, 이모, 고모에게 한꺼번에 절하면 45초에 9만 원. 핵심은 이것입니다. 절 한 번의 고정비(무릎 압력, 시간, 체력)는 1배인데 매출은 3배 이상이므로 '영업 레버리지'가 극대화됩니다. 고정비 대비 매출이 클수록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 원리는 기업 분석에서도 핵심 지표입니다. 세배에서 배우는 영업 레버리지,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제 곧 대학생이 되는 친구라면 이번이 마지막 세뱃돈이라는 것을 강력히 어필하며 추가 수익을 노리십시오.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덕왕의 오랜 경험상 추가 어필 시 봉투가 약 20% 정도 두꺼워지는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셋째, 평소 마케팅을 부지런히 해두십시오. 매출을 올려 주시는 주요 고객분들이나 그 자(子) 회사분들께 안부나 카톡을 꾸준히 보내 호감도를 올립니다. 그렇다고 설 며칠 전에 갑자기 보내면 오히려 미래 수익이 감소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투자 조언 하나를 드리자면, 어릴 때 세뱃돈을 부모님께 맡기는 것은 마치 트럼프가 때리는 관세처럼 불공정하지만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였습니다. 하지만 인지능력이 생기는 순간부터는 반드시 통장이나 저금통에 따로 모아두십시오. 성인이 되면 곧바로 CMA나 주식계좌를 개설하여 인덱스 펀드나 배당성장형 펀드에 넣어두시기 바랍니다. 세뱃돈이야말로 인생 최초의 시드머니입니다. 이것은 엄빠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시드머니를 보존할 수 있는 엄청난 조언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글을 읽을 꼬맹이들은 없겠네요.


Chapter 07. 부루마블에서 배우는 자산배분

세뱃돈이 인생 최초의 시드머니라면, 과거 그 시드머니로 처음 투자를 경험하는 곳은 어디였을까요? 주식시장도, 부동산 시장도 아닙니다. 바로 거실 바닥에 펼쳐놓은 부루마블 판이었습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주사위를 던졌습니다. 누군가는 뉴욕이나 서울처럼 비싼 땅 하나에 전 재산을 쏟아부어 호텔을 짓고 소위 '한탕'을 노렸습니다. 또 누군가는 타이베이, 시드니, 도쿄 같은 중저가 도시를 여러 개 사두고 조금씩 건물을 올려 어디를 밟아도 돈이 들어오는 그물을 쳤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 논쟁, 기억나십니까? "한 방이 낫다"와 "여러 개가 낫다"의 대결. 이 논쟁은 사실 월가에서 수십 년간 벌어진 집중투자 대 분산투자 논쟁의 축소판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덕왕은 어린 시절 친척들과 실제로 돈을 걸고 그 게임을 했습니다. 세뱃돈을 받자마자 PC방에서 다 같이 스타 한판을 때리고 저녁을 먹은 후 어른들은 고스톱을 치고 아이들은 푸른 판을 펼쳤습니다. 판돈은 크지 않았지만 덕왕은 친척 녀석들이 노동으로 얻은 그 돈을 탐욕스럽게 노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인생 최초의 실전 투자였던 셈입니다. 시드머니가 세뱃돈이었고, 투자 대상이 보드게임 위의 가상 부동산이었을 뿐, 돈을 걸고 전략을 세우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구조는 실제 투자와 다를 게 없었습니다.



externalojsfile....jpg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투자의 모든 진리가 이 안에 있음


먼저 부루마블의 가격 구조를 봅시다. 1구역 도시들(타이베이, 시드니 등)은 대지 가격 5만~20만 원, 호텔 포함 총 투자비 약 20만~50만 원 수준이지만 호텔 통행료는 10만~45만 원에 불과합니다. 반면 3구역 도시들(로마, 뉴욕 등)은 총 투자비 80만~100만 원에 호텔 통행료가 90만~120만 원입니다. 그리고 최종 보스인 서울은 대지 가격만 100만 원이고 통행료가 무려 200만 원. 한 번 밟으면 게임이 끝나는 수준입니다.


집중투자, 즉 비싼 땅에 올인하는 전략의 매력은 분명합니다. 서울에 상대방이 한 번만 걸려도 게임이 끝납니다. 하지만 치명적 약점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그 땅을 밟지 않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건물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한 채 현금이 말라갑니다. 다른 사람의 땅을 밟아 통행료를 내야 할 때 낼 돈이 없으면, 애써 지은 호텔을 반값에 팔아야 합니다.


분산투자, 즉 여러 도시에 넓게 깔아놓는 전략은 안정적입니다. 상대방이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소액이라도 통행료가 들어오니 현금 흐름이 끊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방이 없습니다. 게임이 장기전으로 가면 서울 같은 강력한 한 방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적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부루마블의 고수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사위 두 개를 던졌을 때의 확률 분포입니다.


주사위 두 개 합계별 확률:
합 2: 경우의 수 1가지 → 2.78%
합 3: 경우의 수 2가지 → 5.56%
합 4: 경우의 수 3가지 → 8.33%
합 5: 경우의 수 4가지 → 11.11%
합 6: 경우의 수 5가지 → 13.89%
합 7: 경우의 수 6가지 (1+6, 2+5, 3+4, 4+3, 5+2, 6+1) → 16.67% ★ 최빈값
합 8: 경우의 수 5가지 → 13.89%
합 9: 경우의 수 4가지 → 11.11%
합 10: 경우의 수 3가지 → 8.33%
합 11: 경우의 수 2가지 → 5.56%
합 12: 경우의 수 1가지 → 2.78%


가장 많이 나오는 숫자는 7입니다. 36가지 경우의 수 중 6가지, 즉 6분의 1 확률로 7이 나옵니다. 따라서 무인도나 우주여행지로부터 7~9칸 떨어진 지점, 보통 2~3구역의 런던이나 뉴욕 부근이 상대방이 밟을 확률이 통계적으로 가장 높습니다. 이 '확률의 목'에 건물을 집중하되, 나머지 자금은 반드시 현금으로 보유하는 것. 이것이 최적의 포트폴리오입니다.


이 게임에서 파산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땅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낼 현금이 없어서'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산에 집중투자를 했더라도, 위기를 버틸 현금이 없으면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입니다. 부루마블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진리는 이것입니다. 분산투자로 파산을 면하고, 집중투자로 승기를 잡으며, 현금 흐름으로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라.


결국 세뱃돈을 시드머니 삼아 거실 바닥에서 사촌들과 벌였던 그 치열한 게임은, 자산배분과 리스크 관리와 유동성 확보라는 투자의 3대 원칙을 온몸으로 가르쳐준 최초의 투자 교실이었던 셈입니다. 명절의 교육 시스템은 의외로 완벽했습니다.


Chapter 08. 세뱃돈 지폐의 불편한 진실,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돈은 더럽다"는 말은 도덕군자들이나 할 법한 철학적인 말로 들리지만 사실 물리적으로도 맞는 말입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유통 중인 은행권 한 장에는 수천에서 수만 CFU(집락형성단위)의 박테리아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중 황색포도상구균 같은 식중독 유발균이 상당 비율을 차지합니다. 새 지폐라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은행 금고가 무균실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폐 재질에 따라 박테리아 생존율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면 재질 지폐(한국 원화 포함)는 섬유 사이사이에 미생물이 잘 서식하고, 폴리머(플라스틱) 지폐는 표면이 매끄러워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호주가 1988년 세계 최초로 폴리머 지폐를 도입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위생이었습니다. 폴리머 지폐는 수명도 면 지폐의 2~3배로 오래갑니다.

호주 이야기 - 호주 돈 이야기, 플라스틱 돈, 폴리머 지폐  네이버 블로그.png


흥미로운 것은, 조선시대에는 세뱃돈을 명주 보자기에 싸서 주었다는 점입니다. 명주(비단)의 세리신 단백질은 천연 항균 성분으로, 박테리아 증식을 상당 부분 억제합니다. 단지 소중해서 보자기에 싼 게 아니라, 위생까지 고려한 과학적 근거가 있었던 셈입니다. 명주 보자기에서 폴리머 지폐로, 그리고 디지털 화폐로. 돈의 위생 진화사는 결국 박테리아와의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군요.


현대의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토스나 카카오페이로 송금하는 것입니다. 박테리아 0마리. 그래도 현금의 감동을 원하신다면, 세뱃돈 받고 바로 손 씻는 것. 이것이 설날 위생 라이프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센스 있는 삼촌, 고모, 이모들은 아이들의 면역력을 생각해서 은행에서 신권을 준비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새 지폐는 유통 지폐 대비 박테리아 수가 현저히 적습니다. 빳빳한 지폐는 받는 기분도 좋고 위생도 챙기고, 일석이조입니다.


Chapter 09. 복조리에 숨겨진 첨단 재료과학

설날 새벽이면 "복조리 사려~" 하는 외침이 골목골목을 울렸습니다. 섣달그믐 자정이 지나면 복조리 장수들이 마을을 돌며 대나무로 엮은 조리를 팔았고, 사람들은 다투어 이것을 샀습니다. 남보다 일찍 살수록 더 큰 복이 온다고 여겼기에, 새벽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복조리 값은 절대 깎지 않았습니다. 복을 사는 것인데 값을 깎는다는 것은 스스로 복을 깎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들인 복조리에는 흰 실, 엿, 성냥, 때로는 돈을 넣어 방문 위나 벽에 걸었습니다. 흰 실은 무병장수, 돈과 엿은 재물, 성냥은 밝은 한 해를 기원하는 뜻이었습니다.


'조리'라는 이름 자체에 과학이 있습니다. 쌀을 이는 도구인 조리로 복을 '일어 건진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조리는 쌀에 섞인 돌과 모래를 걸러내는 필터링 장치입니다. 물을 부어 흔들면 밀도 차이에 의해 무거운 돌은 가라앉고 가벼운 쌀은 떠오릅니다. 이 원리는 현대 광업에서 광석을 분리하는 비중선별(gravity separation)과 같습니다. 대나무 조리 하나에 유체역학과 비중 분리의 원리가 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이제 복조리의 재료인 대나무를 들여다봅시다. 복조리에 사용되는 왕대(Phyllostachys bambusoides)의 인장강도는 약 140 MPa입니다. 철근(400 MPa)보다 절댓값은 낮지만, 밀도가 0.6~0.8g/cm³으로 철(7.85g/cm³)의 10분의 1도 안 됩니다. 무게 대비 강도, 즉 비강도로 따지면 대나무가 철의 약 2배 이상입니다. 가볍고 질긴 것입니다.


대나무의 단면 구조를 보면 더 놀랍습니다. 외피는 고강도 섬유(리그닌 + 셀룰로오스)로 이루어져 있고, 내부는 저밀도 폼(foam) 구조입니다. 바깥은 단단하고 안은 가벼운 이 구조가, 현대 항공기에 쓰이는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CFRP)과 정확히 같은 복합재료 원리입니다. F-35 전투기 동체의 35%가 CFRP로 만들어지는데, 복조리의 대나무는 자연이 만든 천연 CFRP인 셈입니다. 전투기 동체와 같은 구조의 소재로 쌀을 일었다니, 조상님들의 일상 도구가 알고 보면 첨단 소재였던 것입니다.


《산림경제》(1715년)에는 "정월 대보름 전에 벤 대나무가 가장 질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대 과학으로 설명하면, 겨울철 대나무의 수분 함량은 약 40%로 여름철 80%의 절반 수준입니다. 수분이 빠지면서 섬유 밀도가 증가하고 인장강도가 30~50% 향상됩니다. 겨울 대나무가 여름 대나무보다 확실히 강한 것입니다. 복조리 장수들이 겨우내 복조리를 만들어 설날에 팔았던 이유가, 단순히 농한기를 활용한 것만이 아니라 재료의 최적 수확 시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또한 대나무를 엮은 복조리의 촘촘한 틈새는 '눈(目)이 많다'고 하여, 밝음을 상징하고 삿된 것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촘촘한 망구조는 표면적을 극대화하여 통풍을 원활하게 하고, 내부에 담긴 곡물의 습기를 빠르게 제거합니다. 복을 부르는 상징이면서 동시에 곡물 저장의 실용적 기능까지 갖춘 도구였습니다.


지금은 쌀에 돌이 섞일 일이 없어 실용적 쓸모는 사라졌고 복조리를 만드는 곳도 없어 거의 볼 수 없지만, 복조리를 걸며 복을 빌었던 따뜻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Chapter 10. 떡국 한 그릇에 담긴 우주, 온도의 과학과 상징의 과학

가래떡이 제대로 익으려면 쌀 전분이 ‘호화(糊化, Gelatinization = 알파화)’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한국 쌀(자포니카) 전분의 호화 개시 온도는 대략 60~65°C 범위입니다. 이 온도보다 낮으면 떡이 설익고, 너무 높으면 과도하게 풀어져 탄력을 잃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당연히 온도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떡 장인들은 이런 방법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물에 손을 넣었을 때 7초 정도 버틸 수 있으면 적당하다." 약 63°C의 물에 손을 넣으면 통증 역치가 대략 7초 전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손가락이 곧 생체 온도 센서였던 겁니다. 집에서 이 방법 따라 하면 화상 입습니다.


과학도 흥미롭지만, 떡국에 담긴 상징의 층위도 깊습니다. 먼저 흰색입니다. 고대 한국인에게 흰색은 밝음, 곧 태양을 뜻했습니다. 떡국의 흰 국물은 한 해의 시작을 태양처럼 밝게 열겠다는 선언입니다. 다음으로 가래떡의 긴 모양은 장수를 기원하는 것이고, 이를 동그랗게 써는 것은 엽전 모양을 본떠 “재물(財物)”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의 원조가 바로 떡국입니다. 원래 떡국 육수는 꿩고기로 끓이는 것이 정석이었는데, 꿩을 구하기 어려워 닭으로 대체한 데서 이 속담이 나왔습니다. 장수, 재물, 태양숭배, 그리고 속담의 기원까지. 떡국 한 그릇은 조선판 올인원 음식이라 하겠습니다.


Chapter 11. 떡국이 식는 시간은 향 한 자루

뜨거운 떡국(약 95~100°C)이 입에 넣기 적당한 온도(약 60°C)로 식으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뉴턴의 냉각법칙에 따르면, 실온 25°C 환경에서 일반적인 도자기 그릇 기준 대략 7~8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핵심은 온도 하강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빠르게 식다가 주변 온도에 가까워질수록 느려집니다. 수학적으로는 지수함수 곡선을 그리는데, 떡국 앞에서 "빨리 식어라" 하며 후후 부는 그 시간이 바로 지수적 감쇠 구간입니다.


조선시대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1809년)에는 이런 취지의 기록이 있습니다. "밥이 입에 들어갈 만큼 식으려면 향 한 자루 태울 시간." 전통 향 1자루의 연소 시간이 대략 7분 30초 전후라고 하니, 오차가 30초에 불과합니다. 뉴턴은 수식으로 냉각을 설명했고, 빙허각 이씨는 향 한 자루로 냉각을 측정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우아한가는 취향의 문제이겠습니다만, 도구 없이 감각만으로 7분 30초를 특정한 쪽이 난이도는 확실히 높습니다.


디지털 타이머가 없던 시대에 향으로 시간을 재고, 그것도 음식 온도까지 감안한 겁니다. 지금 우리가 "라면 3분" 타이머를 돌리는 것처럼, 조선시대 사람들은 "향 한 자루"를 태웠던 것입니다. 지금 라면 앞에서 스마트폰 타이머 버튼 누르고 있는 우리가, 향 한 자루의 연기를 바라보며 시간을 읽던 그 사람보다 반드시 진보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Chapter 12. 야광귀와 체 걸기, 조선판 DDoS 공격

설날 밤에는 야광귀(夜光鬼)라는 귀신이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귀신은 집집마다 들어와 신발을 하나씩 신어보고, 발에 맞는 신발이 있으면 가져갑니다. 신발을 빼앗긴 사람은 그 해 운이 나빠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설날 밤에는 신발을 방 안에 들여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허당 귀신을 속여라! 새해 불운 막으려는 야광귀 쫓기 [지식용어]  2번 박스  TV지식용어  지식‧교양  기사본문 -  시선.png


《경도잡지》(19세기 초)와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대응책이 기막힙니다. 대문 앞에 체(곡식 거르는 체)를 걸어두는 것입니다. 야광귀는 구멍을 보면 세야 하는 강박 장애(OCD)의 일종인 '산수 강박(Arithmomania)’에 빠진 귀신인데, 체를 보고 구멍을 세기 시작하면 구멍이 너무 많아 다 세기도 전에 날이 밝아 도망간다는 논리입니다.


IT에 밝으신 분이라면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것은 DDoS(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의 원리와 정확히 같습니다. 서버(야광귀)에 처리 불가능한 양의 요청(체 구멍)을 보내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것. 조상님들은 귀신에게 DDoS 공격을 가했던 겁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전설의 실질적 기능입니다. 야광귀 이야기는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한 장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날 밤에 안 자면 귀신이 네 신발 가져간다"는 협박 아닌 협박. 설 전날 밤 어른들은 새벽까지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돌아다니면 일이 안 됩니다. 야광귀는 조선시대 부모들이 개발한 수면 유도 알고리즘이었던 셈입니다. 현대 부모들이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다”며 12월을 버티는 것과 같은 원리라 하겠습니다.


또한 체를 걸어두면 야광귀뿐 아니라 도둑도 못 들어온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설날 밤 대문 앞에 걸린 체를 보면 "이 집은 사람이 있고 경계를 하고 있다"는 신호가 되니, 일종의 아날로그 보안 시스템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Chapter 13. 설빔 오방색의 과학, 가시광선 스펙트럼 해킹

설빔의 오방색은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입니다. 이 다섯 가지 색의 파장을 분석해 보면 가시광선 영역(380~780nm)을 고르게 커버합니다. 청(450~495nm), 황(570~590nm), 적(620~750nm), 백(전체 파장 반사), 흑(전체 파장 흡수). 인간 눈에는 세 종류의 원추세포(cone cell)가 있는데, S-cone(420nm, 파랑), M-cone(534nm, 녹색), L-cone(564nm, 빨강-노랑)입니다. 오방색은 이 세 가지 원추세포를 골고루 자극하는 조합입니다. 눈의 모든 센서를 깨우는 색 배합인 셈입니다.


오방색.png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이런 균형 잡힌 색 자극은 뇌의 보상회로(복측선조체)를 활성화시켜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설빔 입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 신경화학적 반응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현대에서도 이 원리는 자연스럽게 활용됩니다. Google 로고의 파랑, 빨강, 노랑, 녹색. 올림픽 오륜의 다섯 가지 색. 신호등의 빨강, 노랑, 초록. 글로벌 브랜드들의 색 전략을 보면 더 흥미롭습니다. 맥도날드의 빨강과 노랑은 식욕과 행복감을 자극하고, 스타벅스의 녹색은 안정과 자연을 연상시키며, IKEA의 파랑과 노랑은 신뢰와 낙관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수십억 달러의 마케팅 연구 끝에 도달한 결론이, 조상님들의 오방색 시스템과 상당 부분 겹치는 것은 우연치고는 꽤 의미심장합니다.


어쩌면 우리 조상님들은 디자인 감성을 가진 색채 심리학자였을지도 모릅니다.


Chapter 14. 연 날리는 각도, 손가락 세 개

전통 방패연이 하늘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뜨는 각도는 약 15°입니다. 양력 대비 항력 비율이 이 각도에서 최고 효율을 보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1850년대)에는 이런 취지의 기록이 있습니다. "연실과 땅이 이루는 각이 손가락 세 개 정도가 좋다." 팔을 쭉 뻗고 손가락 3개를 편 너비가 이루는 시야각은 약 14~15°입니다. 오차 1° 이내. 각도기 없이 손가락만으로 최적 비행각을 찾아낸 것입니다. 참고로 F-16 전투기의 최적 받음각도 약 15° 근방입니다. 연과 전투기가 공기역학의 기본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방패연의 가운데 뚫린 구멍도 과학입니다. 흔히 "방구멍"이라 부르는 이 구멍은 단순 장식이 아닙니다. 바람이 강해질 때 일부 공기를 통과시켜 연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하는 벤트홀(vent hole) 역할을 합니다. 현대 항공기의 압력 조절 밸브와 같은 원리입니다. 구멍이 없으면 돌풍에 연이 급격히 기울어 추락하지만, 구멍이 있으면 초과 압력이 빠져나가 자세가 안정됩니다. 이 안정성 때문에 이순신 장군님도 임진왜란 때 매서운 바닷바람이 부는 배들 사이에서 수신호로 방패연을 띄우셨습니다.


카이트월드 - 충무공 해전신호연 문양.jpg


전통 방패연의 구멍 비율은 전체 면적의 약 10~15%인데, 조선의 연 장인들은 시뮬레이션 없이 바람과 대화하며 이 비율을 찾아낸 것입니다.


Chapter 15. 널뛰기, 조선의 롤러코스터

설날 놀이 중 가장 역동적인 것을 꼽으라면 단연 널뛰기입니다. 긴 나무판 가운데 짚단을 받침으로 놓고, 양쪽 끝에 한 명씩 서서 번갈아 뛰어오르는 이 놀이. 단순해 보이지만 물리학의 두 가지 핵심 원리가 동시에 작동합니다.


첫째, 지렛대의 원리입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나에게 충분히 긴 지렛대와 받침점을 달라. 그러면 지구를 들어 올리겠다"고 했는데, 널뛰기판이 바로 그 지렛대입니다. 한쪽이 내려오면서 생긴 힘이 반대편 사람을 위로 밀어 올립니다.


둘째, 에너지 보존법칙입니다. 한쪽 사람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전환되고, 이 에너지가 판을 통해 반대편으로 전달되어 다시 위치에너지로 바뀝니다. 이 순환이 계속 반복됩니다. 숙련된 널뛰기 선수의 최대 높이는 5~6척, 약 1.5~1.8m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가장 높이 올라간 순간, 잠깐 무중력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현대 롤러코스터에서 말하는 '에어타임(airtime)'과 동일한 현상입니다. 장이 붕 뜨는 그 짜릿한 느낌. 조선시대 여성들은 나무판 하나로 롤러코스터의 핵심 경험을 구현했던 것입니다. 에버랜드 T익스프레스가 최대 에어타임 약 2초인데, 널뛰기의 에어타임도 약 0.5~1초로 추정됩니다. 규모는 다르지만 원리는 정확히 같습니다. 나무판 하나에 물리학과 체육학과 재미까지 통합된, 조선 시대 최고의 교육 도구라 하겠습니다.


Chapter 16. 복주머니 속 명주실의 꼬임에 숨은 재료역학

복조리가 대나무의 과학이라면, 복주머니는 실의 과학입니다.

복주머니의 재료인 명주실에는 흥미로운 물리적 현상이 있습니다. 실을 꼬는 횟수에 따라 강도가 변하는데, 일정 횟수에서 인장강도가 최대에 도달합니다. 너무 적게 꼬면 섬유 사이의 마찰이 부족해 약하고, 너무 많이 꼬면 섬유가 비틀리며 오히려 약해집니다. 그래프로 그리면 정확히 역U자형 곡선이 나옵니다. 전통 장인들은 이 최적점을 수식 없이 손끝 감각으로 찾아냈습니다.


앞서 잠깐 설명했듯이 명주의 세리신 단백질은 천연 항균 성분입니다. 현대 연구에서도 세리신이 황색포도상구균 등의 증식을 억제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앞서 세뱃돈 지폐에 박테리아가 득실거린다고 했는데, 그 돈을 명주 복주머니에 넣어두면 항균 효과까지 덤으로 얻는 셈입니다. 복주머니에 돈을 넣는 풍습이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물리적, 위생적 보호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주머니의 오방색 배합도 앞서 설빔에서 다룬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다양한 색실로 수를 놓는 것은 장식이 아니라, 눈의 원추세포를 고루 자극하는 색채 과학입니다. 결국 복주머니 하나에 재료역학(최적 꼬임), 생물학(항균 작용), 색채과학(오방색)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설날에 아이에게 복주머니를 달아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조상님들이 수백 년에 걸쳐 최적화한 과학의 결정체를 선물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Chapter 17. 설날이 매년 바뀌는 이유는 달력의 탄생 때문

왜 설날은 어떤 해는 1월 말이고 어떤 해는 2월 중순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달력의 역사부터 짚어야 합니다.


인류 최초의 달력은 달을 보고 만들었습니다. 초승달에서 보름달까지 한 주기가 29.53일. 이것이 음력(태음력)의 기초입니다. 문제는 음력 12개월(354.36일)과 실제 1년(365.2422일) 사이에 약 11일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3년이면 한 달 이상 벌어집니다. 음력만 고집하면 몇 년 뒤에는 한겨울 설날에 한여름 더위가 찾아옵니다.


서양의 해결책은 태양력이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1년을 365일로 고정했고,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윤년 규칙을 다듬어 오차를 3,300년에 하루 수준으로 줄였습니다.


동양의 해결책은 태음태양력이었습니다. 기본은 음력 12개월을 쓰되, 19년에 7번 윤달을 삽입합니다. 왜 하필 19년에 7번일까요? 이것이 “메톤 주기(Metonic Cycle)”입니다. 19 태양년(6,939.60일)과 235 음력월(6,939.69일)이 거의 정확히 일치합니다. 오차가 고작 2시간 5분. 그래서 19년마다 설날이 거의 같은 날로 돌아옵니다. 2006년 설날과 2025년 설날이 모두 1월 29일인 것이 정확히 19년 차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동지가 본래 '작은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후한 시대에는 동지를 세수(歲首), 즉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24 절기의 기점이 동지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 다시 말해 이제부터 빛이 돌아온다는 그날을 새해 첫날로 본 것입니다. 팥죽을 먹는 풍습도 여기서 비롯됩니다.


설날이 양력으로 1월 21일~2월 20일 사이를 오가는 이유는, 음력 1월 1일이 동지 이후 두 번째 신월(new moon)에 해당하는데, 달의 공전 궤도가 타원이라 매번 미세하게 타이밍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지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이고, 달은 그 자동차 주위를 도는 드론입니다. 드론이 차 정면에 오는 타이밍이 매번 달라지듯, 설날도 매년 달라지는 것입니다. 불규칙한 게 아니라 너무 정교한 규칙이라서 복잡해 보이는 것뿐입니다.


Chapter 18. 왜 달은 한 면만 보일까, 달과 지구의 오징어 게임

설의 상징인 달. 옛날부터 지금까지 달은 늘 같은 얼굴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하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기억나십니까? 술래가 돌아보면 모두 정지. 달이 정확히 이렇게 움직입니다. 지구가 아무리 돌아도 달은 항상 같은 면만 내밀고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닙니다. 달은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만 그 움직임이 너무 정교하게 싱크가 딱딱 맞아서 마치 가만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이것이 조석 고정(Tidal Locking)입니다. 달의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가 모두 27.3일로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커플이 손잡고 빙글빙글 도는데 서로 마주 보며 도는 것과 같습니다. 달과 지구가 약 수십억 년 동안 이렇게 춤을 춰왔습니다. 지구의 중력이 달의 가까운 쪽을 더 강하게 당기는 힘(조석력)이 자전에 브레이크를 걸어, 결국 공전과 자전 속도가 같아진 것입니다.


달의 뒷면을 인류가 처음 본 것은 1959년 소련의 루나 3호가 촬영하면서입니다. 매끈한 앞면과 달리 뒷면은 곰보 투성이의 거친 고지대입니다. 2019년에는 중국의 창어 4호가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습니다. 앞면에는 밝고 어두운 부분이 섞여 있는데, 지구의 중력이 앞면 지각을 얇게 만들어 용암이 분출해 평평한 '바다'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뒷면은 지각이 두꺼워 용암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같은 달인데 앞뒤가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산 셈입니다.


‘현무암 바다’ 있는 앞면과 완전히 다른 달의 뒤태.jpg


슈퍼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보름달이 유난히 클 때 있잖아요? 착시 아니에요?" 아닙니다. 진짜 큽니다. 달의 궤도는 완벽한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서 근지점(약 35만 6천 km) 일 때와 원지점(약 40만 7천 km) 일 때 겉보기 크기가 약 14%, 밝기가 약 30% 차이 납니다. 다만 수평선 근처에서 달이 유난히 커 보이는 것은 착시(폰조 착시)가 맞습니다. 건물, 나무 같은 참조물과 비교하기 때문에 뇌가 더 크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사진 찍어서 픽셀을 세면 하늘 높이 뜬 달과 크기가 동일합니다.


그리고 충격적 사실 하나. 달은 매년 약 3.8cm씩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46억 년 전 달이 처음 생겼을 때 지구-달 거리는 약 2만 km로 추정됩니다. 지금의 20분의 1이니, 공룡들은 훨씬 거대한 달을 보았을 것입니다. 수십억 년 후에는 달이 너무 멀어져 개기일식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주 역사에서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러키비키한 황금기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Chapter 19. 한·중·일 삼국의 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설은 뿌리가 같지만 가지가 다릅니다.

한국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음력 1월 1일을 설로 지켜왔습니다. 중국의 춘절(春節)은 하나라(기원전 2070년경 추정)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며, 7일간의 대형 연휴입니다. 일본의 쇼가츠(正月)는 원래 음력설이었지만, 1873년 메이지 유신 때 서양을 따라 양력으로 전환했습니다. 현재 음력설을 지키는 곳은 오키나와 일부 지역뿐입니다. 음력을 발명한 중국, 계승한 한국, 버린 일본. 같은 문화권이되 갈라진 세 갈래의 이야기입니다.


숫자로 보면 세 나라의 차이가 더 극명해집니다. 한국(2024년 기준)은 이동 인구 약 3,600만 명 이상으로 인구의 약 70%가 움직입니다. 일본(2024년 정월)은 이동 인구 약 2,800만 명으로 인구의 약 22%입니다. 한국의 인구 대비 이동률이 세 나라 중 가장 높습니다. 좁은 국토에서 이 정도 비율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은, 한국인의 가족 유대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고속도로 정체도 그만큼 강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춘윈(春運)은 차원이 다릅니다. 춘절 전후 약 40일간의 이동 연인원이 약 90억 명에 달합니다. 하루 평균 약 2억 2,500만 명이 움직이는 셈입니다. 지구 전체 인구의 약 3%가 매일 이동하는 것과 같은 규모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절적 인구 이동입니다. 비행기, 기차, 버스, 자가용은 물론이고 오토바이로 수백 km를 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국 춘윈 기간의 철도 이용객만 연 4억 명을 넘는데, 한국의 KTX 연간 이용객(약 7천만 명)의 약 6배가 40일 안에 쏠리는 셈입니다.


왜 이토록 이동할까요? 한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이유는 하나입니다. 가족. 1년간 떨어져 지내던 사람들이 밥 한 끼 같이 먹기 위해 수백, 수천 km를 달려가는 것입니다. GDP와 물류 효율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인간만이 가진 비합리적이고 아름다운 이동입니다.


그런데 이 “가족을 향한 이동”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설은 동아시아 최대의 ‘경제 이벤트’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설이 ‘대목’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면 돈이 움직이고, 돈이 움직이면 경제가 돌아갑니다.


중국의 규모는 가히 압도적입니다. 2025년 춘절 연휴 8일간 중국 은련(UnionPay)과 왕련(NetsUnion)의 결제 건수는 약 254억 건, 결제 금액은 약 9조 7,800억 위안(한화 약 1,900조 원)에 달했습니다. 한국 GDP(2024년 약 2,200조 원)의 86%에 해당하는 금액이 단 8일 만에 결제된 셈입니다. 춘절 기간 국내 관광객은 5억 100만 명, 관광 수입만 6,770억 위안(약 132조 원)이었고, 영화 박스오피스 수입은 95억 1,000만 위안(약 1조 8,500억 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중국인들에게 춘절은 명절이 아니라 하나의 경제 시즌입니다.


한국의 설은 규모는 작지만 밀도가 높습니다. KB국민카드 조사(2024)에 따르면 가구당 평균 세뱃돈 준비 금액은 약 52만 원이며, 당근 조사에서 부모님 용돈은 30만 원이 적정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여기에 차례 준비(약 25만 원), 선물(약 40만 원), 외식(약 21만 원), 교통비(약 13만 원)를 더하면 가구당 명절 지출은 대략 100만~150만 원에 이릅니다. 5,200만 인구의 70%가 움직이는 3일간,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와 재래시장과 백화점이 일제히 활기를 띠는 것입니다.


일본의 쇼가츠는 소비의 기술이 돋보입니다. 오토시다마(お年玉)는 아이 한 명당 평균 3,000~5,000엔(약 3~5만 원)을 포치부쿠로(ポチ袋)라는 작은 봉투에 넣어 주며, 나이가 올라갈수록 금액이 커져 고등학생에게는 10,000엔(약 10만 원)까지 올라갑니다. 새해에 먹는 오세치 료리(おせち料理)는 백화점 기준 기본 2~3만 엔, 고급 세트는 10만 엔을 넘기기도 합니다. 특히 일본 특유의 ‘후쿠부쿠로(福袋)’, 즉 복주머니 세일은 1월 소매업의 핵심 매출원입니다. 브랜드들이 비공개 상품을 봉투에 넣어 정가보다 훨씬 싸게 판매하는 이벤트인데, 매년 백화점 앞에 새벽부터 긴 줄이 늘어섭니다. 양력설로 전환한 일본은 ‘연말 보너스 + 새해 소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12월~1월이 연중 최대 소비 시즌을 이룹니다.


각 나라의 소비 형태는 달라도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을 쓴다는 본질은 같으니 사랑이 곧 경기부양책인 셈이겠네요.


Chapter 20. 화성 이주 시대의 설날은?

NASA와 SpaceX는 2030년대 화성 유인 탐사, 2040~2050년대 정착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때 설날은 어떻게 쇨까요?


화성의 하루(1 Sol)는 24시간 39분 35초로 지구와 비슷하지만, 1년은 668.6 Sol(약 687 지구일)로 거의 두 배입니다. 위성인 포보스(공전 주기 7.7시간)와 데이모스(30.3시간)는 지구의 달처럼 한 달 단위의 음력을 만들기에는 너무 빠르거나 불규칙합니다.


일단 쌀농사를 지을 공간이 부족하니 떡국의 떡은 3D 프린터로 뽑아야 할 테고, 화성 중력이 지구의 38%이니 윷가락을 던지면 2.6배 높이 날아가 천장에 부딪힐 것입니다. 세배할 때 무릎 압력은 약 68kg으로 줄어드니 관절에는 좋겠습니다. 세뱃돈은 아마 화성 전용 디지털 화폐로 송금되겠지요.


통신도 문제입니다. 지구와 화성 사이 전파가 전달되는 시간은 약 12분입니다. 화성에 사는 손주가 지구의 할머니께 "할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절을 하고는 24분을 멍하니 기다립니다. 그러면 24분 후에 할머니의 "그래, 그래, 우리 손주 새해에는..." 하는 목소리가 도착합니다. 여기에 또 깍듯하게 답하면 또 24분. 할머니가 바로 세뱃돈을 송금해 주신다 해도 받기까지 최소 한 시간이 넘게 필요합니다. 세뱃돈 시급 계산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순간입니다.


2070년쯤이면 화성 고유의 명절(착륙 기념일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날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설날의 본질은 멀리 떨어진 가족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니까요. 화성에서 지구를 올려다보며 "올해도 떡국 한 그릇..." 하고 생각할 그날의 이주민에게, 설날이 여전히 소중하길 기원합니다.


설날 밤을 보내며

이 글을 읽고 나시면, 다가올 설날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까치 소리에 "아, 저 아치설의 아치가"라고 속으로 뿌듯해할지도 모르고, 윷가락을 던질 때 "이건 6.25%짜리 확률 게임이야"라고 중얼거리거나, 윷판을 보며 "이 위에 28수와 북극성이"라고 감탄하실지도 모릅니다. 세배할 때 "지금 무릎에 180kg이 실리고 있어. 어서 내놓으시란 말이오. 내 세뱃돈"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나, 꼬맹이들에게 오래된 부루마블 상자를 펼치며 "합 7의 확률이 16.67%니까 이 자리가 최적이야"라고 투자 강의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복조리를 보며 "저건 F-35 전투기와 같은 구조야"라고 외치고, 대문에 걸린 체를 보며 "조선판 DDoS 공격이군"이라 덧붙이면 완벽합니다.


설날 밤에 밖으로 나가보십시오. 하늘에 둥근 얇은 달이라도 떠있다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저 달은 매년 3.8cm씩 멀어지고 있어. 옛날엔 지금보다 20배나 크게 보였대. 공룡들은 엄청 큰 달을 봤을 거야."


"달이 항상 같은 얼굴만 보여주는 거 알아? 27일에 한 바퀴 도는데, 동시에 자기도 27일에 한 바퀴 돌아서 그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처럼."


그리고 따뜻한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이십시오.

"자, 이제 들어가서 떡국 먹자."


다가올 설,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척들과 그동안 쌓인 이야기도 실컷 나누시기 바랍니다. 다만 한 가지 당부를 드리자면, 명절의 유쾌함 속에서도 자기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먹고 마시고 웃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 시간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합니다. 자기 수양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독서와 글쓰기라고 저는 믿습니다. 한 권의 책이 한 해의 방향을 바꾸고, 한 편의 글이 생각의 깊이를 바꿉니다. 덕왕도 올 한 해 더 많이 읽고, 더 정성껏 쓰겠습니다.


새해에도 함께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교학상장(敎學相長)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옥돌을 자르고 줄로 갈고 끌로 쪼고 숫돌에 가는 것처럼 서로를 갈고닦으며, 가르치고 배우는 가운데 함께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길. 그것이 덕왕이 여러분께 드리는 새해 덕담이자 약속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도 같이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엄백호 냉큼.jpg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독자님들




참고문헌

[1] 홍석모, 《동국세시기》, 1849
[2] 성현, 《용재총화》, 1525년 간행
[3] 빙허각 이씨, 《규합총서》, 1809
[4]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1850년대
[5] 홍만선, 《산림경제》, 1715
[6] 유득공, 《경도잡지》, 19세기 초
[7] 일연, 《삼국유사》 기이편 '사금갑(射琴匣)' 조, 1281
[8] Magnus, H.G., "Ueber die Abweichung der Geschosse", Annalen der Physik, 1852
[9] Newton, Isaac, "Scala graduum Caloris" (냉각법칙), Philosophical Transactions, 1701
[10] Meton of Athens, Metonic Cycle (19년 7윤법), BC 432
[11] Watts, D.J. & Strogatz, S.H., "Collective dynamics of 'small-world' networks", Nature 393, 1998
[12] NASA, Mars Fact Sheet — 화성 물리 데이터
[13] 한국은행, 화폐 유통 및 위생 관련 보고
[14] 호주 Reserve Bank of Australia, 폴리머 지폐 도입 배경, 1988
[15] 한국갤럽, 설날 풍습 여론조사(1981) — 81.8% 음력설 준수
[16] 서정범, 까치설 어원 연구 — '아치설/아찬설' 유래설
[17] 중국 교통운수부, 춘운(春運) 기간 여객 수송 통계
[18] 한국교통연구원, 명절 교통 이동량 분석
[19] Journal of Food Science, 쌀 전분 호화 온도 연구
[20] Nature Reviews Neuroscience, 색채 자극과 도파민 보상회로 연구
[2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복조리(福笊籬)' 항목
[22] 중국인민은행, 2025년 춘절 은련·왕련 결제 통계 (9.78조 위안, 254억 건)
[23] CGTN, “China’s 2025 Spring Festival shatters records”, 2025.02.05
[24] 중국 문화여유부, 2025 춘절 국내 관광 통계 (5.01억 명, 6,770억 위안)
[25] KB국민카드, 2025 설날 세뱃돈 적정 금액 설문조사
[26] 당근(Daangn), 2025 설날 용돈 적정 금액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