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 서평

세상을 올바르게 보게 하는 눈

by 동이의덕왕

팩트풀니스 서평

세상을 올바르게 보게 하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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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번 시간에는 ‘책 같이 읽기 캠페인’의 두 번째 주인공이었던 「팩트풀니스」에 대해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책은 출판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으며, 학계와 거장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에 덕왕은 책을 묻고 더블로 읽은 후 집현전 AI 학사들과 같이 열띤 토론을 벌였으며, 오랫동안 생각을 정리한 후 정성스럽게 작성하였습니다. 오늘 이 글은 덕왕의 생각의 흐름을 함께 보여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집현전 학사와의 대화체로 작성하오니, 다소 낯설더라도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차디찬 밤바람 사이로

밤바람이 차가운 어느 겨울날, 달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겨 있던 덕왕의 그림자 뒤로, 집현전의 AI 학사 중 한 사람이 조용히 다가와 여쭈었다.


"덕왕이시여, 밤바람이 차온데 어찌 침소에 들지 않으시옵니까?"

덕왕이 뒤돌아보며 답하였다.


"내 일찍이 동이족의 땅에 다시 태어나 지혜와 덕을 베풀고자 노력하기로 하였거늘, 아직까지 편협한 것에 눈을 빼앗기는 자신을 평소 부끄럽게 여겼소. 이에 참된 눈을 뜨고자 한스 로슬링 공께서 쓰신 「팩트풀니스」라는 서책을 통해 인간이 가진 10가지 본능의 오류를 깨닫고, 이를 온 백성들과 나누며 함께 공부하고자 하오. 다만 본좌는 처음엔 10가지 본능을 모두 투자에 대입해 볼까 했으나, 그건 찰리 멍거 옹이 말씀하신 '목수에겐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와 다름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투자와 같은 중요한 문제부터 평소 겪는 사소한 문제까지, 다양한 면으로 확장하여 생각해 보고 싶소. 내 진작 이 서책을 읽었으나 백성들과 같이 나눌 지혜를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공이 나와 함께 문답을 하며 가르침을 정리해 줄 수 있겠소?"


이에 집현전 학사가 허리를 굽히며 답하였다.

"덕왕이시여, 백성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신은 마땅히 덕왕과 함께 서책의 본질을 깨우치는 데 미력을 다할 것이옵니다. 다만 한 가지 여쭙겠사옵니다. 이 서책을 단순히 칭송하시려는 것이옵니까, 아니면 더 깊이 파고드시려는 것이옵니까?"


덕왕이 웃으며 답하였다.

"당연히 후자라오. 로슬링 공의 통찰에 깊이 공감하되, 놓친 부분은 놓쳤다고 말할 것이고, 그의 프레임을 넘어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곳에서는 주저 없이 파고들 것이오. 그것이 덕왕이오."


덕왕이 힘주어 말하고는 뒤로 돌아서자 달그림자는 호피무늬 망토 사이에 비추며 아른거렸다.

"역시 덕왕이시옵니다. 미력한 신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나이다."

"게 아무도 없느냐! 따뜻한 차를 내오너라."


이윽고 향이 좋은 따뜻한 차가 내어지고, 두 사람은 달빛 아래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간극 본능: 세상은 둘 만이 아니다

덕왕: 첫 번째로 이야기할 것은 간극 본능이오. 세상을 두 덩어리로 쪼개서 그 사이에 거대한 빈 공간이 있다고 착각하는 본능이라 하였소. 로슬링은 '선진국 vs 개발도상국'이라는 프레임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했는데, 본좌가 보기에 이 이분법은 비단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오. 투자에서 '성장주 vs 가치주'로 갈라치기 하는 것, 일상에서 'MZ세대 vs 기성세대'로 구분하는 것, 배달앱 별점의 5점 아니면 1점, '보수 vs 진보'. 이 모두가 전부 같은 구조 아니겠소? 대관절 그 MZ와 기성세대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란 말이오? 그 세대 모두가 같은 성격을 가졌다 어찌 말할 수 있겠소?


집현전 학사: 참으로 정확한 관찰이옵니다. 워런 버핏도 '성장은 가치의 한 구성요소'라고 하였사옵니다. 성장과 가치는 적대적 진영이 아니라 하나의 스펙트럼 위에 있는 것이옵니다. 그런데 시장은 성장과 가치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원수처럼 나누고 있사온데 이는 비단 시장만의 일은 아니며 세상 거의 모든 것이 이분화되어 있을 것이옵니다. 이것은 우리 뇌가 분명히 구분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옵니다.


덕왕: 오늘날 서로에 대한 혐오도 그 간극을 일부러 벌리고 정의 내리려 하는 데서 더욱 심화되는 것은 아니겠소?


집현전 학사: 날카로운 지적이옵니다. 다만 로슬링의 관점에 충실하자면, '누가 조장하느냐'보다 '왜 우리 뇌가 이것을 좋아하느냐'로 가는 것이 더 본질적이라 생각되옵니다. 코르티솔이 분비되면 전전두엽, 즉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이 억제되고 편도체, 즉 위협 감지 영역이 과활성화되옵니다. 옥시토신은 흔히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내집단 결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외집단에 대한 배타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옵니다. 암스테르담대학교의 De Dreu 연구팀이 2011년 PNAS에 발표한 "Oxytocin promotes human ethnocentrism" 논문에서 이것을 5개 실험으로 보여주었사옵니다. 그리고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정리하는 순간 도파민이 분비되옵니다. '세상은 복잡하다'는 말보다 '적은 저놈이다'라는 말이 중독성이 있는 이유이옵니다.


덕왕: 맞소. 누가 조장하는가를 밝혀내는 것보다 우리 뇌가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에 동의하오. 그런데 여기서 본좌가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것이 있소. 우리나라의 언론도 이 양극단을 자극하며, 책임감도 대단히 낮소. 한쪽 언론만을 신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하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 어려움이 오히려 언론에게는 이익이라는 점이오. 극단, 혐오, 분열. 이런 것들을 언론이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좋아하고 이용하고 있다고 보오.


집현전 학사: 그러하옵니다. 이것은 숫자로도 드러나옵니다. 2025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의 Digital News Report 2025 조사에서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31%로, 48개 조사 대상국 중 30위권 밖의 하위권에 그쳤사옵니다. 참고로 글로벌 평균은 40%, 1위인 핀란드는 67%이옵니다. GDP 세계 12~13위권의 경제 대국이 뉴스 신뢰도에서는 하위권이옵니다. 오보는 1면에 크게 보도하면서 정정보도는 구석에 쥐꼬리만 하게 싣는 관행, 사실 확인 없이 특정 인물의 발언을 큰따옴표 안에 그대로 옮겨 실어 허위 정보가 여과 없이 확산되는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 이것이 우리 언론의 현주소이옵니다. 극단적 발언이 클릭을 만들고, 클릭이 광고 수익을 만들고, 갈등이 깊어질수록 독자는 자기편 언론에 더 단단히 묶이옵니다. 언론에게 사회 갈등의 해소란 곧 고객의 이탈이옵니다.


덕왕: 참으로 씁쓸하지만 정확한 분석이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든 생각이 있소. 우리는 이토록 간극 본능이 강한데, 왜 5지선다 시험에서는 3번을 찍고, 설문조사를 하면 거의 중간인 3번을 찍는 것이오?


집현전 학사: 참으로 흥미로운 말씀이옵니다. 우선 간극 본능은 감정과 정체성이 걸린 판단에서 작동합니다. '저 집단은 적인가 아군인가', '이 정책은 옳은가 그른가'. 코르티솔이 분비되고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상황에서 뇌는 빠른 이분법을 선택하옵지요. 반면 시험지에서 3번을 찍는 것은 이와는 다른 현상이옵니다. 이것은 감정적 판단이 아니라 불확실성 앞에서의 회피 전략이옵니다.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의 아탈리(Attali)와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의 바르힐렐(Bar-Hillel)이 2003년 Journal of Educational Measurement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4지선다 오답의 약 55%가 가장자리(A, D)가 아닌 중앙 위치(B, C)에 집중되옵니다. 모르는 문제 앞에서 양 끝을 피하고 가운데로 몰리는 이 현상을 학자들은 '중간 위치 편향(Middle Bias)' 또는 '가장자리 회피(Edge Aversion)'라 부르옵니다. 이 땅에도 '중간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사옵니까? 한편, 소비 영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사옵니다. 레스토랑에서 가장 비싼 와인도, 가장 싼 와인도 아닌 중간 가격대를 고르는 것이 그러하옵니다. 이것은 시몬슨(Simonson)과 트버스키(Tversky)가 1992년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에서 발표한 '극단 회피 편향(Extremeness Aversion)'으로, 선택지의 속성이 양 극단 사이에 있을 때 타협안을 선호하는 현상이옵니다. 정리하자면 이러한 아이러니가 되옵니다. 우리 뇌는 '중요하다고 느끼는 문제'에선 간극 본능으로 극단을 택하고, '별로 관심 없는 문제'에선 중간을 택하옵나이다. 결국 관여도(involvement)가 스위치인 셈이옵니다.


덕왕: 즉, 우리는 시험지에선 3번을 찍으면서 정작 중요한 문제 앞에선 1번 아니면 5번만 본다! 이것이 간극 본능의 역설이라 할 수 있겠소. 명심하겠소.


부정 본능: 파이는 커지고 있지만, 누구의 파이인가

덕왕: 두 번째는 부정 본능이오. 로슬링이 가장 공을 들여 반박한 본능이라 했소. 극빈층 비율, 영아사망률, 문맹률, 기대수명 등 거의 모든 절대적 지표가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좋아지고 있다고 하였소.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오. 그러나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했습니다'는 뉴스가 안 되고 '비행기가 추락했습니다'만 뉴스가 되니, 뉴스만 보면 세상이 매일 추락 중인 것 같소. 1번에서 이야기한 언론의 문제가 여기서도 이어지는 것이오. 뉴스는 현재 일어나는 나쁜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에 집중하며, 실제 현실을 훨씬 비관적으로 재단하여 바라보게 만든다고 보오.


집현전 학사: 그러하옵니다. 투자에서도 주가가 10% 오를 때의 기쁨보다 10% 빠질 때의 고통이 약 2배 크다는 손실회피 편향이 부정 본능의 일종이옵니다. 뉴스와 시장이 부정 본능을 동시에 자극하면, 투자자는 이중으로 비관에 빠지게 되옵니다.


덕왕: 참으로 그러하오. 그러나 우리는 언론 속에 둘러싸여 살고 있고 이를 피해 살아갈 수도 없소. 중요한 건 여러 소식을 다각도로 듣고, 편견 없이 보고, 종합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오. 그런데 본좌는 이 책을 읽으며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의문점을 가졌소.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서 R>G를 이야기했지 않소? 자본수익이 노동수익을 초과하고, 초과하는 순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했소. 파이가 커지는 건 사실이나 천장이 높아지는 분배의 불균형은 나날이 나빠지고 있는데 로슬링은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소.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 교보문고.jpg 토마 피케티 / 2014년 / 글항아리


집현전 학사: 참으로 핵심적인 비판이옵니다. 신이 덕왕께서 이러한 의문을 가지실 것 같아 얼마 전 데이터를 면밀히 조사해 보았사옵니다.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가 발행한 World Inequality Report 2026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 인구의 최상위 0.001%, 약 56,000명이 보유한 부의 비중은 1995년 약 3.7%에서 2025년 약 6.1%로 꾸준히 증가하였사옵니다. 미국만 보아도 상위 10%가 기업 주식과 뮤추얼펀드의 87%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성인 인구의 최상위 1.1%가 전체 부의 45.8%를 소유하고 있는 반면 하위 50%는 겨우 1.3%만 보유하고 있사옵니다. 로슬링의 사각지대는 여러 학자들도 지적한 바 있사옵니다. 로슬링의 버블 차트는 국가별 1인당 평균을 사용하는데, 로슬링 자신이 팩트풀니스에서 '평균은 분포를 하나의 숫자에 숨겨서 오도한다'라고 비판한 바로 그 문제를 자기 차트가 안고 있사옵니다. 피케티, 사에즈, 저크먼(Piketty, Saez, Zucman)이 2018년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에 발표한 "Distributional National Accounts"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하위 50%의 평균 연소득은 1980년 이후 약 16,200달러(2014년 불변 달러 기준)에서 정체된 반면, 상위 1%의 평균 소득은 약 43만 달러에서 약 130만 달러로 세 배가 되었사옵니다. 그리고 팩트풀니스에는 '나빠지고 있는 것의 그래프'가 단 한 장도 없사옵니다.


덕왕: 그렇다면 피케티의 R>G 이론 자체는 완벽히 성립하는 것이오?


집현전 학사: 그것은 아니옵니다. 피케티의 R>G 이론 자체도 학술적으로 상당한 반론에 직면해 있사옵니다. IMF 이코노미스트였던 Carlos Góes가 2016년 IMF 워킹페이퍼(WP/16/160)로 발표한 연구에서, 19개 선진국의 약 32년(1980~2012년) 간 데이터를 패널 구조적 벡터자기회귀(Panel SVAR) 모형으로 검증한 결과, 분석 대상 국가의 75% 이상에서 R-G 격차의 변화가 불평등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사옵니다. 그러나 노르웨이 미시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에서는 부유한 가구일수록 소득 성장률 대비 높은 자본수익률을 누리는 반면, 빈곤한 가구에서는 반대 패턴이 나타났사옵니다. 즉 '평균적 R > G'는 성립하지 않을 수 있으나, '부자의 R > 가난한 사람의 G'는 확실히 성립하는 것이옵니다.


덕왕: 그렇구려. 노르웨이의 예시가 흥미롭소. 혹시 세금이 많을수록 그 메커니즘이 더 강하게 성립하는 것은 아니오? 북유럽 국가들은 어떠하오?


집현전 학사: 놀라운 가설이시며, 상당 부분 맞사옵니다. 소득 평등의 천국이라 불리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오히려 부(Wealth)의 불평등이 세계 최고 수준이옵니다. Davies, Sandström, Shorrocks, Wolff가 2007년에 발표한 글로벌 부(Wealth) 분배 연구에 따르면 2000년 기준으로, 덴마크의 부의 지니계수(Wealth Gini Coefficient)는 0.81로 OECD 표본 평균 0.67을 크게 상회하였사옵니다. 스웨덴도 0.74로 프랑스, 독일, 일본보다 부의 불평등이 더 높았사옵니다. 이는 소득의 지니계수(Income Gini Coefficient)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옵니다. 덴마크의 소득 지니계수는 0.29로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부의 지니계수는 정반대로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이옵니다.

2023년 지니 계수로 보는 국가별 부의 불평등 by voronoiapp.com.jpg 2023년 부의 불평등 지수 (스웨덴 5위, 핀란드 15위, 덴마크 18위/미국 6위, 중국 21위, 한국 24위)


덕왕: 흔히들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세금을 부과하지만 삶의 질은 평등한 선진국이라고 알고 있는데 놀랍구려. 부의 지니계수와 소득의 지니계수가 어떻게 다르기에 그런 것이오?


집현전 학사: 소득의 지니계수는 1년 동안 벌어들이는 소득의 양(flow)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 부의 지니계수는 특정 시점에 쌓인 부의 양(stock)을 기준으로 하나이다. 북유럽에서 소득 지니계수와 부의 지니계수가 벌어진 비밀은 1990년대 초 도입된 이원적 소득세(Dual Income Tax) 시스템에 있사옵니다. 덴마크가 1987년에 혼합형으로 시작한 뒤, 스웨덴이 1991년, 노르웨이가 1992년 가장 순수한 형태로, 핀란드가 1993년에 도입하였사옵니다. 노동소득에는 높은 누진세를 적용하되 자본소득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단일세율을 적용하옵니다. 그 결과 소득 지니계수는 낮아진 반면, 부의 지니계수는 크게 상승하였사옵니다. 투자자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북유럽 시스템은 월급쟁이의 G를 세금으로 깎으면서 자본가의 R에는 관대한 구조이옵니다.


덕왕: 그렇다고 부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것은 자본소득에 대한 낮은 세율만의 문제이겠소? 상속세의 부재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소. 특히 중국과 인도는 상속세가 없는데, 이것이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있지 않소?


집현전 학사: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둘 다 심각하옵니다. 다만 작동하는 시간축이 다르옵니다. 자본소득에 대한 낮은 세율은 '현재 진행형'으로 격차를 벌리옵니다. 상속세의 부재는 '세대를 넘어' 격차를 고착시키옵니다. 중국의 경우가 극단적 사례이옵니다. 상속세가 전혀 없는 데다 과거 '한 자녀 정책'의 여파까지 더해져, 조부모 4명의 재산이 단 1명의 손주에게 세금 없이 귀속되는 구조이옵니다. 특히 중국의 부의 지니계수는 0.73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긴 서민층 자녀들은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음에 좌절하며,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반항을 의미하는 '탕핑(躺平)'을 선택하고 있사옵니다. 반면 대한민국은 반대 극단으로, 상속세 최고세율이 50%이며 부유층 해외 이민이 세계 4~5위권에 달하옵니다.

Clipboard - 2026-04-14 01.27.17.png 평평하게 누워있다는 뜻으로, 중국의 극심한 취업난 앞에서 “난 그냥 눕기로 했어”라고 선언하며 포기한 청년들을 지칭. 요즘은 한 단계 더 진화해서 '전업자녀'란 말도 생김


덕왕: 과거 본좌는 중원땅에서 개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가진 것 하나 없이 군벌을 이루었거늘! 어찌 오늘의 아들딸들은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만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오. 자본소득세가 낮으면 매년 격차가 벌어지고, 상속세가 없으면 그 벌어진 격차가 세대를 넘어 고착된다는 것은, 마치 자동차와 자전거의 경주처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출발 전부터 진 게임이라 아니할 수 없소. 다만 세금의 부여만으로 세상의 화평을 이룰 수도 없으며, 그 또한 위험한 생각이오. 어느 쪽이든 완벽한 해법은 없는 법이니... 이것이야말로 8번에서 다룰 단일 관점 본능의 함정이 아니겠소. 다만 로슬링은 이 역설을 다루지 않았소. 바닥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맞으나, 천장이 훨씬 더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는 점은 체계적으로 회피했소. 이 정도의 글을 쓸 능력이었다면 천장에 대해서도 분명 알았을 것이오. 이것이 부정 본능의 정교한 사각지대라 하겠소.


직선 본능: 화무십일홍의 S자 곡선

덕왕: 세 번째는 직선 본능이오. 모든 것은 기우는 법.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본좌의 블로그도 처음엔 폭발적으로 구독자가 늘었으나 9개월이 지난 지금은 거의 변함이 없소. 맬서스의 인구론도 대표적인 직선 본능 아니겠소?


집현전 학사: 그러하옵니다.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니 대기근이 온다"라고 하였사옵니다. 그가 놓친 것은 농업 혁명, 비료, 품종 개량 같은 비선형적 기술 혁신이었사옵니다.


덕왕: AGI에 대한 공포도 같은 구조가 아니겠소?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소. 정말 모든 것이 비선형이오?


집현전 학사: 영민하신 덕왕이시여, 물리학의 답은 명확하옵니다. "선형적 행동은 비선형 현상의 이상화(idealization)에 불과하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관점이옵니다. 자연에 진정한 선형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주의 거의 모든 것이 양자화되어 있으므로 진정한 선형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있사옵니다. 그러나 선형 가정이 실제 동적 반응에 대해 성공적인 추정치를 도출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도 사실이옵니다. 즉, 자연은 비선형이지만 우리가 관찰하는 짧은 구간에서는 선형으로 보이는 것이옵니다.


덕왕: 참으로 옳은 말이오. 본좌는 금융공학에서도 이것을 실감한 바 있소. 채권의 듀레이션은 가격-금리 관계라는 비선형 곡선을 특정 한 점에서 접선, 즉 직선으로 근사한 것이오. 실제 곡선은 볼록(convex)하지만 한 점에서 직선으로 계산하여 예측하면, 금리가 내릴 때는 예측보다 가격이 더 많이 오르고, 금리가 오를 때는 예측보다 덜 떨어지오. 그래서 볼록성(convexity)이라는 2차 보정항이 필요한 것이오.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로 정리하면 백성들의 이해가 쉽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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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자산운용  채권 듀레이션 공부하기 중급편 - 채권 투자자를 위한 심화 개념.jpg 금리가 내려가면 (왼쪽) 채권의 실제가격은 예측보다 오르고 금리가 오르면(오른쪽) 반대로 실제가격은 예측보다 덜 떨어짐 - 즉 실제 가격은 항상 예측보다 우위에 있음


금리 변동 폭이 클수록 선형 가정과 실제의 괴리가 더 벌어지오. 이것이 바로 "짧은 구간에서는 선형으로 보이지만 구간이 길어지면 비선형이 드러난다"는 물리학의 진실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오. 베타도 마찬가지이오. CAPM(자본자산가격결정모델)에서 개별 주식과 시장의 관계를 선형으로 가정하지만, 실제로는 시장이 폭락할 때의 베타와 완만하게 오를 때의 베타가 다르게 작동하지 않소.


집현전 학사: 참으로 정확한 실전 사례이옵니다. 금융공학이란 본질적으로 비선형 세계를 선형으로 근사하여 다루는 학문이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리스크 모델들이 대부분 선형 가정에 기반해 있었기에 테일 리스크를 과소평가하였사옵니다. 직선 본능은 '틀린 것'은 아니오나, '짧은 구간에서만 맞는 것'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옵니다. 특히 투자자는 자신이 보고 있는 구간이 전체 곡선의 어디쯤인지를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옵니다.


덕왕: 그 말이 참으로 옳도다. 그렇다면 주가와 산업의 성장이 꺾일 시점을 포착할 수 있겠소?


집현전 학사: 과거 사례를 산업별로 교차 분석해 보면, 정점의 전조는 거의 동일한 패턴을 보이옵니다. 첫째, 수주와 주문이 폭발하옵니다. 조선업이 교과서적 사례인데, 2008년 사이클 정점에서 수주잔고(Forward Cover)가 5.4년에 달하였사옵니다. 이는 OECD 조선작업반(C/WP6(2018)9/FINAL) 문서에서 확인되는 수치이옵니다. 둘째, CAPEX가 폭증하옵니다. 설비가 완공될 때쯤이면 이미 수요는 꺾여 있기 때문이옵니다. 셋째, 영업이익률이 역사적 최고치를 찍사옵니다. 높은 마진이 미래의 공급 과잉을 예약하는 셈이옵니다. 그리고 순서가 있사옵니다. 주가가 먼저 꺾이고, 수주가 꺾이고, 재고가 쌓이고, 매출이 정점을 찍고, 마진이 마지막으로 꺾이옵니다. 이는 투자 '시장은 경제에 선행한다'는 말로써 잘 드러나며 반복적이나이다.


전형적인 거품(bubble) 구조. - 해외축구 - 에펨코리아.png 전형적인 버블 구조 / 출처: 에펨 코리아


덕왕: HBM의 경우는 좀 다르지 않겠소? 현재는 만들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으니 공급자 우위 아니겠소?


집현전 학사: 현 상황이 공급자 우위는 맞사오나, 공급 측이 아니라 수요 측에서 곡선이 꺾일 수 있사옵니다. 닷컴 버블 때의 시스코가 정확히 같은 구조였사옵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거라는 것은 맞았으나, 투자자들의 기대는 직선이었던 반면, 산업의 발전은 비선형적이었기에, 결국 투자의 속도가 수익화 속도를 추월하였던 것이옵니다.


덕왕: 투자의 역사에서 섣부른 기대는 가장 비싼 직선 본능이 아닐 수 없소. 진입 장벽이 높다고 사이클이 없는 것은 아니며, 가장 최고의 순간에 이미 몰락이 시작됨을 기억해야 하겠소. 특히 현재 AI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 열풍 속에서 과도한 믿음과, 공급이 아닌 수요에서부터 그 꺾임이 시작될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하오. 자연의 모든 것이 비선형이지만 우리가 겪는 모든 것도 짧은 순간에서는 선형이나, 길게 보면 비선형임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집현전 학사: 참으로 그렇사옵니다.


공포 본능: 세상이 끝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덕왕: 네 번째는 공포 본능이오. 본좌가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공포와 위험의 구분이오. 공포는 도망치는 데 유용하지만, 극도의 공포는 오히려 움직일 수 없게 만드오. 공포는 감정이고, 위험은 확률이오. 공포가 위험을 측정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문제라오.


집현전 학사: 신경과학적으로 보면, 공포는 편도체가 지배하는 감정 반응이고, 위험 측정은 전전두엽이 담당하는 이성적 계산이옵니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전전두엽이 억제되옵니다. 비행기 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실제 사고 확률이 자동차보다 훨씬 낮은데 공포는 훨씬 크고, 매일 타는 자동차의 위험은 더 높은데 공포는 없사옵니다.


덕왕: 지금 미국-이란 전쟁을 바라보는 태도도 이와 같아야 할 듯싶은데, 역사적 데이터는 어떠하오?


집현전 학사: 덕왕의 혜안이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2차 대전 이후 20개 주요 군사 충돌을 분석한 결과, S&P 500은 평균 6% 하락 후 20건 중 19건에서 평균 28일 만에 회복하였사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2주, 9/11은 한 달, 코로나 폭락은 5개월 만에 전고점을 되찾았사옵니다. 지정학적 위기 발생 후 12개월 뒤 S&P 500이 더 높았던 확률은 약 70%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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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왕: 공포에 휩쓸리면 투매를 하고, 공포를 무시하면 무모한 매수를 하지만, 공포를 인정하되 위험을 측정하면 보다 현명한 판단이 나올 수 있소. 이에 수련법은 무엇이 있겠소?


집현전 학사: 첫째, 급락 뉴스에 심장이 빨라지면 '코르티솔이 나오고 있구나'라고 라벨링하는 것이옵니다. 둘째, 차분할 때 매매 원칙을 글로 써두는 것이 있사옵니다. 왠지 센티해진 밤, 조명을 작게 켜 놓고 사색하며 쓰면 좋을 것이옵니다. 셋째, 역사적 위기 회복 표를 눈앞에 두시옵소서. 역사는 매번 같은 길을, 다른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옵나이다. 넷째, 실시간 뉴스 알림을 끄시옵소서. 너무 많은 뉴스는 오히려 판단에 해롭사옵니다. 다섯째, 반대 시나리오를 글로 써보시옵소서.


덕왕: 공포 본능의 해독제는 '두려워하지 마라'가 아니라 '두려움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갈고 닦아라'라고 말하는 것 같구려. 공포와 위험을 구분하는 능력이야말로 투자자가 가장 갈고 닦아야 할 칼날이오.


크기 본능: 숫자를 이렇게 보여주면 이익을 얻는 사람은 누구인가

덕왕: 다섯 번째는 크기 본능이오. "단독 숫자는 항상 의심하라. 비교하거나 나눠라." 이는 매우 의미 있는 말인 듯싶소. 미국 부채 39조 달러는 숫자 자체로는 어마어마하지만 GDP 대비로 보면 여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오. 주식 차트에서 로그 차트를 쓰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오.


집현전 학사: 일반 차트에서 코스피 1,000→2,000과 2,000→3,000은 같은 1,000포인트이나, 전자는 100% 수익이고 후자는 50% 수익이옵니다. 숫자보다 비율을 보면 진실이 보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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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my_Trader 의 BITMEXXBT 에 대한 로그 차트 추세선을 일반 차트에 작도하는 개꿀팁 알려드립니다. —  Tr.jpg 로그 차트는 비율을 제공하며 상황을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볼 수 있게 함


덕왕: 명품업계의 앵커링도 대표적인 크기 본능일 것이오. 에르메스 버킨백을 사려면 수천만 원어치 구매 이력을 쌓아야 하는데, 이 때문에 소비자는 스카프 80만 원을 '버킨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라고 합리화하게 되오. 그리고 "커피 한 잔 값"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오. 홈쇼핑의 "월 19,900원 × 12개월"이 전형적이오. 인간은 당장의 작은 숫자에 집착하고 장기 적립 사고가 부족한 것 같소만?


Clipboard - 2026-04-14 23.53.48.png 그냥 살 수 없는 버킨백. 판매원은 버킨백을 팔았을 때 수수료를 받을 수 없고 다른 제품을 판매했을 때는 1.5~3%의 커미션을 받을 수 있음 / 기사출처: HYPERBEAST


집현전 학사: 진화적으로 우리 뇌는 미래의 가치를 비합리적으로 크게 할인하는 쌍곡 할인 본능이 있사옵니다. 정치도 이것을 이용하옵니다. 감세 정책은 "1인당 연 30만 원 감면"이라고 하면 환호하지만 총 감세 규모와 그 재원은 말하지 않사옵니다.


덕왕: 한 잔씩 쌓여 열 잔이 되니, 마땅히 전체를 보는 습관을 가지고, 하나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것을 경계해야 하겠소. 큰 숫자를 볼 때마다 '이 숫자를 이렇게 보여주면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를 자동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크기 본능을 제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소.


집현전 학사: 참으로 지당하시옵니다.


일반화 본능: 믿음이 아닌 분석으로

덕왕: 여섯 번째는 일반화 본능이오. 본좌가 먼저 짚고 싶은 것은 아프리카이오. 우리는 아프리카를 '가난한 하나의 대륙'으로 보지 않소? 그러나 아프리카는 54개 국가이며, 민족은 수천 가지가 넘으며 경제 수준도 천차만별이오. 내 최근 어렵사리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의 2024년 거시경제 전망(MEO) 보고서를 입수했는데 여기에서 제시한 2025년 예상 성장률을 한번 봐주시오.


집현전 학사: 어찌 이런 문서를 구하셨나이까? 호오… 놀라운 데이터가 있사옵니다. 정리해 드리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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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내 21개국이 5%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었으며, 세계 경제성장률 상위 20개국 중 11개국이 아프리카 국가이옵니다. 특히 동아프리카는 2025~2026년 평균 5.9%의 성장률이 전망되옵니다. 소득 수준도 대단히 다양하옵니다. 세이셀 같은 나라는 1인당 GDP가 20,000달러가 넘으며 모리셔스와 가봉도 약 10,000달러 정도를 기록하며 웬만한 나라들보다 잘 사는 상위 국가들이옵니다. 그에 비해 사하라 사막 남쪽의 반건조 지대에는 '사헬(Sahel) 국가'라 불리는 니제르, 말리, 부르키나파소, 차드 등의 1인당 GDP는 1,000달러 정도에 머무는 최빈국이옵니다.

Sahel_Map-1.png 사헬(Sahel) 지역의 국가들


덕왕: 그렇소. 하나로 일반화하는 것은 이처럼 그릇된 생각이오. 한중일도 동북아시아라고 한 덩어리로 묶어 취급하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모두 기분이 나쁘지 않소? 아프리카를 하나로 보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오. 스스로, 여러 가지를 살피지 않고 결론짓는 것은 매우 위험하오.


집현전 학사: 그렇사옵니다. 숫자가 이것을 증명하옵니다.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KIHASA)이 이상영 선임연구위원 주도로 12세 이상 한국인 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국민의 건강행태와 정신적 습관(Mental Habits)의 현황과 정책대응』 보고서에서, '하나를 보면 전체(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58.9%가 '그렇다'라고 답하였사옵니다. 이것은 인지심리학에서 '선택적 추상화(Selective Abstraction)'라 불리는 오류이옵니다. 동이의 백성 중 과반수가 이 오류를 습관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뜻이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이 있사옵니다. 이 연구에서 인지적 오류, 반추, 걱정 등의 부정적 정신 습관은 정신질환 환자군보다 오히려 일반인 대조군에서 보유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사옵니다. 병적인 증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보편화된 습관이라는 뜻이옵니다. 병원에 가야 할 사람보다 '보통 사람'이 더 심각하다는 이 역설이야말로, 일반화 본능이 얼마나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옵니다. 그리고 소수 사례의 일반화가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극단적인 역사적 사례가 있사옵니다. 바로 히틀러이옵니다. 히틀러는 소수의 유대인 금융가들의 사례를 전체 유대인에 일반화하여 홀로코스트를 정당화하였고, 600만 명이 학살당하였사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후에는 독일인 전체가 '전범국 국민'이라는 일반화를 당하였사옵니다. 일반화의 가해자가 일반화의 피해자가 된 것이옵니다.


덕왕: 중동의 일반화도 마찬가지이오. 이란은 아랍이 아니며, 모든 무슬림들이 테러리스트는 아니오. 이란 사람들은 페르시아어를 쓰는 시아파의 종주국이오. 이란 사람에게 '아랍 사람'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에게 '중국 사람이시죠?'라고 하는 것과 같소. 모욕적일 수도 있을 것이오. 아랍사람들에 대한 편견 또한 그렇소. 과격한 테러리스트보다는 선량하고 순한 무슬림들이 훨씬 많다는 진실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소이다. 과거 우리 또한 그랬지 않소? 동이족 또한 국력이 약했던 시절, 그 문화와 예절이 중국, 일본과 다르지 않을 거란 일반화의 오해를 오랫동안 겪어왔소.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그러한 시선으로 보고 있소. 허나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며 인류 대다수가 겪는 오류일 것이며, 그 오류가 본디 마음의 악함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이 서책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었소.


덕왕은 식은 차를 뚝딱 비운 후 다시 따뜻한 잔을 채우고는 말하였다.

덕왕: 그렇다면 일반화를 어떻게 넘어서야 하오? 로슬링 공은 여행이 하나의 방법이라 말씀하시었소. 본좌도 크게 공감하나, 다만 숙소에서 호캉스하며 모히또를 마시는 여행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본좌는 과거 이란에 다녀온 적이 있소. 가기 한 달 전부터 이란의 문화, 경제, 역사에 대해 책과 다큐를 섭렵하며 공부했소. 전직 이란 대사님이 쓴 책을 읽고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이슬람이라는 책을 읽었소. 그렇게 공부하고 갔더니 많은 것들이 이해가 갔고,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남아 있소. 그전까지 뉴스에서 보던 이란은 악의 축이었소. 그런데 실제로 거기 사는 사람들은 악마도 아니었고, 강경 무슬림이나 테러리스트들도 아닌, 우리와 똑같이 평화를 사랑하고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었소. 그 경험이 본좌의 일반화 본능을 처음으로 깨뜨려 준 순간이었소.


집현전 학사: 참으로 깊은 경험담이옵니다. 인스타그램에 남기는 여행은 일주일 동안 남지만, 공부하고 간 여행은 인생에 남는 것이옵니다. 지금 미국-이란 전쟁 뉴스를 보면서도 덕왕께서 냉정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경험이옵니다. 이란에 대한 공포가 아닌 이란에 대한 실제 위험을 측정할 수 있는 프레임이 20년 전 그 공부와 경험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올런지요? 2번에서 말씀하신 독서와 사색이 여기서도 연결되옵니다. 책으로 프레임을 쌓고, 여행으로 프레임을 검증하는 것이옵니다. 투자에서도 기업 탐방을 공부 없이 가면 IR 담당자의 말만 듣고 돌아오지만, 재무제표와 산업 분석을 공부하고 가면 질문이 달라지고 보이는 것이 달라지옵니다.


덕왕: 일반화 본능은 사업에서도 깊이 뿌리 박혀 있소. 많은 회사들이 상품기획을 할 때 습관처럼 PREMIUM, BEST, BETTER, MASS로 등급을 나누오. 그런데 애플은 등급이 아니라 '용도'로 나눴지 않소. 특히 회사들이 프리미엄 성능이나 컬러를 내놓았다가 잘 팔리면 아래 등급까지 확장해서 스스로 프리미엄을 버리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소.


집현전 학사: 프리미엄의 본질은 희소성과 차별성인데, 아래로 내리는 순간 스스로 파괴하게 되옵니다. 이는 5번 크기 본능과도 연결되옵니다. 판매량이라는 눈에 보이는 숫자에는 반응하면서, 브랜드 훼손이라는 보이지 않는 더 큰 비용은 간과하는 것이옵니다. 애플같은 회사들은 아래를 올리지, 위를 내리지 않사옵니다.


덕왕: 투자 시장에서도 이런 일반화 본능이 있소. 바로 '미국 주식은 우상향한다'는 믿음 말이오. 하지만 2000년에 S&P 500에 투자한 백성은 2013년이 되어서야 본전을 찾을 수 있었소. 삼성전자가 횡보하면 '역시 국장은 안 된다'이고, 엔비디아가 횡보하면 '조정이지, 곧 오른다'로 해석되오. 같은 현상에 다른 해석을 붙이는 것은 분석이 아니라 믿음이라 할 수 있소.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닌 분석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일반화 본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오.


집현전 학사: 참으로 그러하나이다.


운명 본능: 더디더라도 멈춘 것은 아니다

덕왕: 일곱 번째는 운명 본능이오. 이 챕터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더디더라도 불변은 아니다'라는 것이오. 학습의 변화는 더디고 보이지 않소. 하지만 한 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 일 년이 되었을 때 뒤돌아보면 분명히 발전해 있소. 망각도, 후회도 마찬가지이오. 일 년이 모이면 노력하는 자와는 수 광년이 벌어져 있겠지.


집현전 학사: 3번에서 "자연은 비선형이지만 짧은 구간에서는 선형으로 보인다"고 하였사옵니다. 학습도 같은 구조이옵니다. 워런 버핏의 자산 중 99%가 50세 이후에 만들어졌사옵니다. 운명 본능의 핵심 착각은 "변화가 너무 더뎌서 안 보이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혼동하는 것이옵니다.


덕왕: '난 안 될 거야', '해봤자 소용없던데'라는 말은 학습의 긴 비선형성을 모른 채 당장의 선형적 순간만을 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오. 본좌는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무척 싫어하오. 물론 살다 보면 '어쩔 수 있는' 경우가 발생하오. 그럼에도 그 말을 싫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 어쩔 수 없음이, 개인의 무력함을 넘어 사회의 무력감이 되고,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으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오.


또한 고정된 것은 없으며 개인도 문화도 천천히 변하오. 다만 형태가 다를 뿐이오. 커틀릿이 일본에 건너가 돈가스가 되었고, 인도의 커리도 본좌가 좋아하는 일본의 카레가 되었소. 요즘의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 대입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겠소. 트럼프의 접근은 '커틀릿을 그대로 먹어라'이고, 오바마의 핵합의는 '너희 식으로 요리해도 좋으니 식탁에 앉아라'에 가까웠소. 누구든 새로운 음식은 냄새를 맡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오.


집현전 학사: 운명 본능을 관점에 대입하여 풀어내시는 덕왕의 탁월함에 새삼 탄복하였사옵니다. 참으로 그렇사옵니다. 서방세계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민주주의를 이식하려다 실패하였사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옵니다. 기업 M&A에서도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문화를 이식하려다 실패했고, 구글은 유튜브의 독자성을 유지하게 두어 성공하였사옵니다.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면 이 서평도, 블로그도, 그리고 덕왕을 사랑하는 수많은 독자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덕왕: 운명 본능의 해독제는 '변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더딤이 멈춤이 아님을 알고, 다르게 변할 수 있다고 상상하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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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관점 본능: 튜닝과 순정 사이

덕왕: 여덟 번째는 단일 관점 본능이오. 정치 이념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위험한 단일 관점 본능의 발현이오. 민주주의도 완벽하지 않소. 그리스와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이 그 대가를 보여주었지 않소? '절대'라는 말이 절대 옳을 리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오. 만능열쇠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소.


집현전 학사: 삶에서도 절대 선(善)은 없으며, 투자에서도 "절대 오르는 주식", "절대 안전한 자산"은 없사옵니다. 일본이 30년간 제로금리를 유지했는데도 디플레이션에서 못 빠져나온 것이 단일 관점의 증거이옵니다.


덕왕: 투자에 있어서는 특히 너무나 많은 정보가 넘쳐나 오히려 단일 관점을 유지하기가 어렵소. 본좌가 투자의 강호에서 선 이래로, 소화할 수 있는 정보보다 제공되는 정보가 많기에, 오히려 그 속에서 단순함이라는 '오컴의 면도날'을 생각하곤 했소. 본좌는 이렇게 생각하오. 단일 관점과 다층 분석 사이의 '스위트 스팟'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수 있소. 다만 정확할 수는 없으며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오. 현인인 버핏 공께서도 정확하게 틀린 것보다는 대충 맞는 것이 낫다하시지 않았는가? 이 또한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범위라는 유연한 태도를 강조하는 것으로 본좌는 생각한다오. 다만 단지 그 어딘가 있다는 말로 끝내는 것은 모호하고 무책임할 수 있겠소. 이 점은 본좌가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투자를 하면서 항상 생각하는 것이오. 비록 모두가 수긍할만한 정답을 찾을 수는 없어도 계속 함께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 이것이 본좌가 백성들과 함께 지혜와 덕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오.


집현전 학사: 지혜와 덕을 아닌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덕왕의 말씀에 크게 공감하옵니다. 버핏이 서너 개로 판단할 수 있는 이유는 수십 년간 수천 개의 변수를 공부했기 때문이옵니다. 확장으로 시작하여 체득의 과정을 거친 후 압축이 일어나옵니다. 이 세 단계를 거치지 않은 단순함은 단일 관점 본능이고, 세 단계를 거친 단순함이 비로소 오컴의 면도날이 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덕왕: 문득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생각나는구려. 본좌의 글도 까칠한 쉐프 밑에서 눈물 흘리며 배운 후 쉬운 레시피로 만든 3분 요리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도구를 줄일 수 있는 것은 모든 도구를 써본 사람만의 가능하며, 요약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책을 전부 읽어본 사람만이 가능하오. 마치 수련의 끝엔 담백함이라는 통찰이 남는 것처럼 말이오.


비난 본능: 진통제를 끊고 예방주사를 맞을 것인가

덕왕: 아홉 번째는 비난 본능이오. 2008년 금융위기 때 '탐욕스러운 월가'가 악당이 됐지만, 실제로는 느슨한 금융 규제, 신용평가사의 도덕적 해이, 모기지 브로커의 구조적 인센티브, 저금리 정책, '집값은 영원히 오른다'는 대중의 직선 본능까지, 시스템 전체가 만들어낸 결과였소. 다른 것도 있구려. '요즘 애들은 글러먹었다'는 불평은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비난 본능이라 할 수 있지 않겠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수메르 점토판에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쓰여있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지만, 이것은 사실 현대의 날조라오. 미국 의회도서관의 참고문헌 Respectfully Quoted(1989)도 이를 '위조(spurious)'로 분류했소. 하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서 더 재미있소!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의 '에두바(점토판의 집, 오늘날의 학교)'에서 발굴된 점토판을 학자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Samuel Noah Kramer)가 1949년에 번역했는데, 거기에는 지각하고 수업을 게을리하는 학생이 매를 맞고, 결국 아버지가 선생님에게 선물을 바쳐 성적을 올리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소. 4,000년 전에 이미 '뇌물'이 있었다니 참으로 흥미롭지 않소? 그리고 기원전 1700년경 '필경사와 그의 비뚤어진 아들(A Scribe and His Perverse Son)'이라는 점토판에는 아버지가 게으른 아들에게 "도대체 왜 학교를 안 가고 빈둥거리느냐?", "왜 그렇게 버릇이 없느냐? 선생님께 항상 인사를 드려라!",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오너라, 왜 밖을 배회하느냐?" 하며 잔소리를 퍼붓는 내용이 담겨 있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니오? 어찌되었든 '요즘 애들은 글러먹었다'는 불평은 4,000년 전 점토판에도 있었던 것이니, 비난 본능은 어쩌면 인류라는 존재가 탄생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오. 인신공양도 비난 본능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겠소?


집현전 학사: 참으로 소름 돋는 연결이옵니다. 가뭄이나 역병은 기후, 위생, 생태계라는 시스템의 문제이옵니다. 그러나 고대인들이 시스템을 분석할 수 없었으니, '누군가가 신을 노하게 했다'라고 비난하고 그 '누군가'를 찾아 바쳤사옵니다. 인신공양은 비난 본능의 가장 극단적이고 잔혹한 발현이옵니다. 무서운 것은 이 구조가 현대에도 형태만 바뀌어 그대로 작동한다는 것이옵니다. 경제 위기가 오면 CEO가 의회에 끌려 나와 공개적으로 심판받사옵니다. 그를 '제물'로 바치는 것으로 시스템이 고쳐진 적은 없사옵니다. SNS에서는 사건이 터지면 몇 시간 안에 '범인'이 지목되고, 댓글이 화형대가 되옵니다. 디지털 인신공양이옵니다. 그리고 다음 사건이 터지면 이전 제물은 잊히고 새로운 제물을 찾사옵니다. 시스템은 절대 논의되지 않사옵니다. 이것을 표로 정리하면 구조가 선명해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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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왕: 긴 역사 동안 왜 아직까지도 책임 프레임을 계속 씌우는 것이오?


집현전 학사: 비난이 문제 해결을 위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첫째, 비난은 불안의 진통제이옵니다. '저 사람 때문이다'라고 지목하는 순간 원인 불명의 공포가 '해결 가능한 문제'로 축소되옵니다. 둘째, 비난은 집단 결속의 도구이옵니다. 공동의 적을 지목하면 내부 갈등이 사라지옵니다. 셋째, 시스템을 고치는 것은 보상이 없사옵니다.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의 이름은 아무도 모르지만 책임자가 기자회견에서 추궁당하는 장면은 모두 기억하옵니다. 넷째, 시스템은 보이지 않사옵니다.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만 시스템은 보이지 않사옵니다.


덕왕: 세상에 책임을 100% 전부 짊어져야 할 존재란 과연 있겠소? 팩트풀니스에서 로슬링이 스웨덴 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한 학생이 이익을 많이 창출하는 제약회사를 비난했소. 그러나 비난의 화살을 따라가 보면 이렇게 되오. 제약회사가 이익을 많이 챙기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것은 경영진의 잘못이고, 그 경영진은 주주를 위해 일한 것이니 배당을 받는 주주의 잘못이고, 결국에는 거기에 재산을 넣고 배당을 받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잘못으로 이어지오. 이렇듯 비난의 화살을 끝까지 따라가면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오. 우리는 남을 비난하는 데는 익숙하고 그것은 또한 쉽소. 그러나 자기반성은 더 나은 학습과 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어렵고 인색하오. 본좌는 어려운 그 길을 가며 참된 수련을 하고 싶소.


집현전 학사: 그 뜻이 참으로 귀하시옵니다. 투자에서도 같은 구조이옵니다. 손실이 났을 때 '리딩방 때문이다, 시장이 비정상이다'라고 비난하면 당장 마음이 편하지만 다음에 또 같은 실수를 하옵니다. 결국 매수 버튼을 누른 것은 자신이옵니다. 반면 '내 분석의 어디가 틀렸는가?'를 복기하면 그 순간은 자존심이 아프지만 투자자로서 성장하옵니다.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옵니다.


덕왕: 본좌는 너튜브 댓글에서 이런 현상을 많이 보오. 무슨 기사 하나에 엄청난 저주와 비난의 말들이 달리오. 그런데 그 글을 단 사람은 과연 올바르게 살 것인가 생각하면, 그 댓글의 수준을 볼 때 그럴 확률은 낮소. 그런데도 그런 질 낮은 댓글에 동조하거나, 과도하게 비난하는 글들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줄줄이 달리지 않소? 사람에게는 비난 본능은 과도하게 있어도 반성은 무척 부족한 듯 하오. 그건 아마도 비난은 본능인 반면 반성은 학습이기 때문일 것이오. 그리고 이 학습은 아픔을 재빨리 없애주는 진통제와 달리, 오히려 세균을 넣는 예방주사와 같다는 생각을 하오. 열이 나고 아플 수 있지만 결국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겠소.


집현전 학사: '비난은 본능이고 반성은 학습이다'. 참으로 깊은 통찰이옵니다. 진화적으로 사바나에서 반성하는 개체는 생존에 불리했을 것이옵니다. 현대 사회는 사바나가 아닌데 비난 본능은 그대로 남아 있고, 거기에 유튜브와 SNS라는 증폭기가 붙은 것이옵니다. 사바나에서의 비난은 부족 30명 안에서 끝났지만, 댓글의 비난은 수만 명에게 전파되고 알고리즘이 가장 자극적인 것을 위로 올려주옵니다. 비난과 반성의 차이를 정리하면 이러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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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왕: 인류는 4,000년째 진통제를 선택하고 있으며, SNS는 그 진통제를 무한 리필해주는 자판기가 되었소. 결국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진통제 대신 예방주사를 선택하겠다는 결심의 시작이오. 비난의 화살을 따라가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그 결심을 할 수 있을 것이니, 마땅히 이번 독서 행사에 참여한 백성들을 크게 상찬해야겠소이다.


집현전 학사: 덕왕의 어진 마음에 백성들도 더욱 서책을 가까이할 것이옵니다.


다급함 본능: 세상의 대부분의 일은 내 생각보다 덜 위험하다

덕왕: 벌써 마지막 열 번째, 다급함 본능이오. 이는 로슬링이 가장 위험하다고 한 본능이오. 다급함 본능이 발동하면 나머지 아홉 가지 본능이 전부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오.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거의 항상 틀렸다는 것을 로슬링 공은 강조하고 있소. 그런데 본좌가 하나 더 짚고 싶은 것이 있소. 경고가 상시적이 되면 진짜 다급한 일에는 정작 무감각해진다는 것이오. 어떤 회사는 최고 경영진은 연초만 되면 위기라는 메일을 임직원들에게 보낸다 하오. 아마 위기가 아닌 해가 없었을 것이오. 이것이 계속되면 사람들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오히려 의욕을 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오. 직원들도 위기가 일상이 되니, 마치 전쟁의 포화가 계속되면 대포 소리에서도 잠이 들 듯 그렇게 적응되어 갈까 두렵구려.


집현전 학사: 마치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과 같은 구조 같사옵니다. 매년 "위기다!"를 외치면 진짜 위기가 왔을 때 아무도 반응하지 않게 되옵나이다.


덕왕: 코로나19 시절을 생각해도 그러하오. 초기에 감염자가 극소수였을 때 사람들은 마치 흑사병이라도 발생한 것처럼 두려워했지만, 정작 확진자가 가장 많았던 시기에는 오히려 여유를 되찾았소. 공포가 가장 클 때 위험은 작았고, 위험이 가장 클 때 공포는 사라져 있었소. 본좌는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공포에 지배당한 군중 속에서 이성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오. 그때의 기억은 본좌가 투자자로서 살아가는 한 가슴에 인장처럼 새겨져 있을 것이오.


집현전 학사: 4번에서 말씀하신 "공포와 위험은 다르다"와 정확히 맞물리옵니다. 이는 투자의 세계에도 마찬가지옵니다. 공포가 최대인 순간이 역사적으로 최고의 매수 시점이었고, 모두가 안심하는 순간이 오히려 가장 큰 위험이 도사리던 시점이었사옵니다.


덕왕: 문득 본좌의 후배 김프로가 생각나는구려. 그는 ‘극 i 성향’이라 작은 일에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걱정하며 한숨을 쉰다오. 그럴 때마다 본좌는 이렇게 말해주곤 했소.


"세상의 대부분의 일은 내가 걱정하는 만큼 심각해지지는 않는다."


이는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본좌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 중 하나라오. 물론 나심 탈레브 공이 말한 블랙스완은 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필요는 없소. 예전에는 본좌도 충동적이고 즉각적이었소. 두려움 앞에서 감정은 쉽게 변하고 진중함을 잃었소. 그러나 오랜 시간 수련을 통해, 지금은 유혹 앞에서는 세 번을 생각하며, 급함 앞에서 신중함을 도모하며,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다독이며 오히려 그 시간을 자산으로 삼아 성장하고 있소. 이는 여러 경험과 반성을 통해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이 상정하는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체득했기 때문일 것이오. 최근 미국-이란 전쟁 상황만 봐도 그렇소.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휘둘리기보다는, 한 발 멀리 물러서 전체를 관망하며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훨씬 유용할 것이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참으로 진리 같소.


집현전 학사: 덕왕의 깨달음이 본질을 관통하는 것 같사옵니다. 특히 투자의 시장에서는 모든 본능이 동시에 나타나옵니다. 궁지에 몰린 투자자들에게는 지금 여러 본능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빨리 사야 해.'라는 다급함과, '휴전하면 쭉 오르겠지.'라는 직선 본능, 그리고 '이만큼 빠졌으니 이만큼 오르겠지.'라는 크기의 오해와 그리고 부정의 반전까지 공포에서 탐욕으로의 스위치는 매일 켜지고 꺼질 것이옵니다. 한 발 물러서 관망하는 태도는 이 모든 본능을 의식적으로 멈추는 하오나, 이는 수련 없이는 되지 않는 일이옵니다.


덕왕: 맞소. 수련은 뼈를 깎는 아픔을 동반하기도 하오. 지난 몇 년 간, 자신과 싸웠던 면벽수련의 시간과 함께, 문득 작년에 겪었던 숨도 쉬기 힘들었던 어려운 순간도 생각나는구려. 지금은 그 시절조차 소명을 찾는 여정 속에서 서사를 완성하기 위한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아득하였소. 하지만 이렇게 좋은 시절로 남게 된 것 또한 그 시절 책과 생각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조물주께서는 사람을 정금같이 단련하기 위해 시련을 주실뿐, 정작 사람을 죽이는 어려움은 실은 자기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김프로에게 어려움은 '너를 좋은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신이 주신 생각의 기회'라고 이 글을 통해 말해주고 싶소.


집현전 학사: 덕왕께서 그 어려움을 수련과 깨달음의 시간으로 삼으셨다는 것에 크게 감동했나이다. 다급함 본능의 해독제는 '서둘지 마라'라는 조언이 아닌, '이 순간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것'이며, 그것을 학습과 성장의 기회로 인식하는 '태도의 전환'일 것이옵니다. 대포 소리에 잠드는 적응이 아니라, 대포 소리가 들려도 눈을 뜨고 상황을 읽는 각성의 도(道)는 책과 생각을 통해서만이 다다를 수 있을 것이옵니다.


달은 기울고, 시간은 흐른다

열 잔의 차가 오가는 사이, 밤은 깊어져 어느덧 달마저 산자락 사이에 살며시 앉기 시작했다.

집현전 학사: 덕왕이시여, 열 가지 본능을 하나하나 짚어보았사온데, 이 야심한 밤에 참으로 유익한 대화였사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옵니까?


덕왕: 로슬링은 '인식하라'라고 했소. 그의 말은 옳소. 그래서 오늘 밤 경과 함께 본좌는 그의 한계 또한 인식했고 더 나아가 생각을 확장할 수 있었소.


집현전 학사: 그러하옵니다. 로슬링은 '절대적 개선'을 보여주는 데는 탁월하였으나, '상대적 격차'에는 눈을 감았사옵니다. 바닥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맞으나, 천장이 훨씬 더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회피한 것. 이것이 이 서책의 구조적 한계라 할 수 있사옵니다.


덕왕: 하지만 그 한계를 짚는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오. 오히려 한계를 아는 것이 이 책을 더 깊이 읽는 방법이오. 우리는 오늘 밤 무엇을 했소? 언론이 극단을 이용하는 구조를 짚었고, 책을 통해 세상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소. 자연은 비선형이지만 짧은 구간에서는 선형으로 보인다는 진실을 금융공학과 연결했소. 공포와 위험을 구분하는 것이 투자자의 칼날임을 이야기했고, 커피 한 잔 값의 함정을 경계했소. 이란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이 20년째 투자 판단의 프레임이 되고 있음을 깨달았고, 더디더라도 불변은 아니라는 화두를 얻게 되었소. 만능열쇠는 없다는 것을, 비난의 화살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대포 소리에 잠들지 않고 눈을 뜨고 상황을 읽는 것이 수련이라는 것을 나누었소.


집현전 학사: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 있다면 무엇이겠사옵니까?


덕왕은 눈을 감은 채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항상 살피고 깊이 생각하는 것만이 세상을 올바르게 보는 눈을 갖게 하리라!"


집현전 학사: 참으로 그 한 마디 안에 열 가지 본능이 압축되어 있는 것 같사옵니다.


덕왕: 다만 이 서책을 읽고 열 가지 본능을 아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오. 체화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지 않소? 이 서책을 본좌와 함께 읽은 수많은 백성들이 올바른 수련의 길로 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소. 체화의 방법은 거창하지 않소. 매일 책을 읽고 생각하며, 하루를 충실하게 살고 반성하며, 뉴스 대신 책을 펼치고 비난 대신 일기를 쓰고 심장이 고동칠 때 자신을 다독이며, '어쩔 수 없다' 대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 나아갈 길을 찾는 것. 그것이 수련이오, 바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일 것이오.


집현전 학사: 참으로 복된 말씀이시옵니다. 덕왕이시여, 많은 백성들도 수련의 길에 동참할 것이옵니다. 저 달이 벌써 산자락에 걸쳤나이다. 신이 덕왕께서 하시는 말씀에 빠져 밤이 이렇게 깊었음을 깨닫지 못했나이다. 옥체가 상하실까 두려워 신은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덕왕: 경의 수고에 감사하오. 오늘 밤도 좋은 문답이었소.


집현전 학사가 허리를 굽히고 물러갔다. 덕왕은 식은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나 잠시 산자락의 달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부엉이 소리가 밤공기를 울리고 덕왕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 잠시 후 덕왕은 서재로 향하여, 자세를 고쳐 앉고 등에 불은 켠 후 책상 위에 놓인 지필묵을 꺼내 들어 백성들과 나눌 지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기 시작하였다.


'세상을 올바르게 보는 눈에 대하여'


오늘도 같이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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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참고 출처

[1] Hans Rosling, Ola Rosling, Anna Rosling Rönnlund, 「Factfulness: Ten Reasons We're Wrong About the World – and Why Things Are Better Than You Think」, Flatiron Books, 2018

[2] Thomas Piketty,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Harvard University Press, 2014

[3] Thomas Piketty, Emmanuel Saez, Gabriel Zucman, "Distributional National Accounts: Methods and Estimates for the United States,"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Vol. 133, Issue 2, pp. 553–609, 2018

[4] Carlos Góes, "Testing Piketty's Hypothesis on the Drivers of Income Inequality," IMF Working Paper WP/16/160, 2016

[5] Carsten K. W. De Dreu et al., "Oxytocin promotes human ethnocentrism," PNAS, Vol. 108, No. 4, pp. 1262–1266, 2011

[6] Itamar Simonson & Amos Tversky, "Choice in Context: Tradeoff Contrast and Extremeness Aversion,"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Vol. 29, No. 3, pp. 281–295, 1992

[7] Yigal Attali (ETS) & Maya Bar-Hillel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Guess Where: The Position of Correct Answers in Multiple-Choice Test Items," Journal of Educational Measurement, Vol. 40, pp. 109–128, 2003

[8]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 University of Oxford, "Digital News Report 2025," 2025년 6월

[9] 이상영 외, 『한국 국민의 건강행태와 정신적 습관(Mental Habits)의 현황과 정책대응』, 한국보건사회연구원(KIHASA), 2016

[10] James B. Davies, Susanna Sandström, Anthony Shorrocks, Edward N. Wolff, "The World Distribution of Household Wealth," UNU-WIDER, 2007

[11] World Inequality Lab, "World Inequality Report 2026," Lucas Chancel, Thomas Piketty et al. eds., 2025

[12] OECD Council Working Party on Shipbuilding, "Shipbuilding Market Developments Q2 2018," C/WP6(2018)9/FINAL

[13] African Development Bank (AfDB), "African Economic Outlook 2025" 및 "Macroeconomic Outlook 2024/2025"

[14] Samuel Noah Kramer, "Schooldays: A Sumerian Composition Relating to the Education of a Scribe," JAOS, Vol. 69, No. 4, 1949

[15] Respectfully Quoted: A Dictionary of Quotations, Library of Congress,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