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눈치를 보게 된 것은 업무의 범위와 책임의 한계가 상향될 수밖에 없었던, 직급의 영향이 컸다. 이 순간에도 눈치라는 것을 '주위의 상황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으로 순화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보며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의 존재에 대해 부담감 또한 적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잘하고 싶다고 했고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했다.
인정을 받기 위해 드러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과도한 의식은 스스로를 단단하게 여물어지게 만든다고 여겼고 그렇게 나이가 들었다. 나라는 존재는 사회적 위치의 변화와 더불어 과거라는 견고한 성벽 안에 갇히게 되었으며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나로서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나만의 관점과 생각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하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하고 그것을 언어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눈치라는 것은 그야말로 장애물 그 자체였다. 시간이 지나며 내 안은 곪은 상처로 가득 찼고 내가 아니었을 지난 시간은 후회로 남았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것일까? 저마다의 생각이 있고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의 전달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텐데, 난 모든 것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 가 중요했다. 있는 힘껏 나를 숨겨 다수의 의견 그 어디쯤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럴수록 마음은 불편했고,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생각과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도 인지하기 어려울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평화를 위해서, 조화를 위해서, 배려라고 생각해서, 이 모든 관계에 영원성이 있다고 착각했기에 난 나의 상처와 아픔 정도는 온전히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먹고 만신창이가 되었고 내려놓았다. 아니, 아직은 완벽히 그러하다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순간에도 난 주위를 살피고 있으니 몹쓸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또 무엇을 기대했기 때문이었을까. 하루 내 문드러진 마음을 토닥이는 퇴근길이 오늘이 마지막이길 속없이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