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을 향해가며 행복한 이들

by Davca

종각역 인근에는 오래된 전집이 있다.



메뉴는 단출하지만 다양한 막걸리가 있고 올드팬들의 방문으로 제법 예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2023년을 보내며 전 직장에서 함께했던 분들과 조촐한 송년회를 했었다. 그중 한 분은 이전 직장에 나의 추천으로 같은 곳에 입사를 했고, 파란만장한 2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사실 이곳의 추억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재무부 시절 광화문에 계셨고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도 광화문에서 근무를 하고 있고. 가끔 아버지를 만나면 이런 점들을 신기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셋이 같은 대학을 나온 것도 그렇고. 여하튼 아버지께서 광화문에서 근무하시던 시절, 종종 막걸리와 전이 그리워 찾았던 곳이 바로 여기다. 요즘처럼 먹을 것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이곳의 메뉴를 보면 사실 뭐 없다. 각종 전의 크기도 배를 채우기는 힘든 사이즈고. 그럼에도 이곳만의 맛이 있다. 오래된 철제 테이블과 좁디좁은 의자, 그럼에도 종류별로 다양한 막걸리가 그 맛인 거다. 그리고 그 맛에 취해 우리는 지난 시간들을 얘기하고 우리의 내일을 호기롭게 떠들어댔다. 오십을 향해가며 서른 중반 그 시절을 떠올렸다. 가득 채운 탁주 한잔에 우리들의 추억이 둥둥 떠다녔다. 행복했던 그 시절의 기억 그리고 사람들.



잘 산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벌이로 가정을 지키고 빚 없이 가끔 치킨 한 마리에 온 가족이 웃고 떠드는 뭐 그런 소탈함이 있다면 잘 사는 것일까. 누군가에는 그렇겠고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불행일 수 있겠다. 저마다의 기준이 다른 것이니, 이만하면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은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외부의 시선으로 인한 판단은 무의미하다. 그럼 난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럴싸해 보이는 생각과 포부로 휘둘리지 않을 선택들을 이어가고 있긴 한데, 이것은 내 인생에서 좋은 선택의 방향을 향해 있는 것인지 불안하기도 하다. 해보지 않은 것들을 새로 하려면 저마다의 용기가 필요한데 두 주먹을 불끈 쥐는 데엔 나름의 시간과 다짐이 요구되고 그럼에도 포기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이 모든 것들을 머리에 싸 짊어지고 용기를 낸다는 것은 칭송받을 만한 무엇임이 틀림없다. 그래도 난 선택을 했고, 리스크를 피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으로 2024년은 충분했다 할만하지 않을까.



자유의지로 선택한 결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난 시간들의 선택이 나의 예상과 부합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생각해 보면, 처참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 나름의 의미가 있다. 나의 예상과 계획대로 풀려가지 못해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던 시간들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그렇게 해석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어긋난 항로로 인해 경험한 것들의 의미가 내겐 더 컸기 때문이다. 좋은 이들과의 인연이 시작되기도 했고, 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내 입장에선 좋은 소재들이 셀 수 없이 늘어난 것은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든 관련된 글들을 어디서든 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우리들은, 오십을 앞두고 행복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꾸준히 운동하며 건강을 지키고 지금처럼 이런 시간들을 가끔 갖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건재함을 알릴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소식을 전하며 우리가 쌓아온 지난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싶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자 서른 중반의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