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은행원의 브랜드

삶의 끝을 생각하면 보다 대범해질 수 있다

by Davca

45년을 살고 17년의 직장생활을 해왔는데, 나의 브랜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하기가 어렵다.


느슨한 삶을 산 것도 아니고, 나의 일을 등한시한 것도 아닌데 콘셉트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다. 직업, 성향, 선호, 꿈과 관련된 경험과 지식의 수준이 낮지 아니한데 나는 무엇에 특화되었고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 한마디로 말할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가고 싶은 길의 방향과 연관 짓고 싶은 제한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문득 스쳐 지나간 생각 하나.



나라는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금전적인 보상, 연봉 등 물질적인 보상과 연계하여 가장 파급이 클 수 있는 주제로 콘셉트를 잡으려다 보니 그간의 내가 지향해 온 모습에 균열이 생긴다. 진심으로 가고 싶은 길이 맞는지,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부합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생존과 인정만을 중시하다 보면 브랜드의 콘셉트는 유지되기 어려울 텐데 도처에 난무하는 독립적인 삶을 사는 이들의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눈길이 간다.


나답게 꾸준히 길게 가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안목과 깊이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갈급해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기버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야 한다.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브랜딩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그간 쌓아온 경험들을 편집하여 쓸모 있는 존재로서 충분히 기능할 때 나의 브랜딩이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초기의 생각들은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들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하게 된다. 잘 먹고, 잘살고, 인정받고, 명예로운 것은 반짝이는 것이었고 누군가의 생을 돕는 일은 따뜻한 것이었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날이 어쩌면, 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좀 더 편하게 이끈다. 언젠가 있을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것이 가볍다. 그렇다면 내가 사라지고도 오래 남을 수 있는 고귀한 정신에 나를 던져보는 것은 어떠할까



왜 난 조금 더 빨리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제 브랜딩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자격이 생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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