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용기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다.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쓸 수 없었던 것인지 아직도 난 헷갈린다.
다만 하나 분명한 건, 내가 정말 아는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나마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썰이 끝나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얕고 가벼웠다.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진짜 자신의 지식이라 했는데,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 업무를 핑계로 많이 읽지 못했던 것에 대한 결과가 이제 나오기 시작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내가 원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 더 많이 '실행'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과정에서 운의 작용 또한 무시할 수 없겠으나, 행동력이 결여된 운은 잠자고 있을 것이다.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지 않았던 아둔한 어제를 반성한다.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던 시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새벽에 대공원 둘레길을 걷다가, 내가 갖고 있는 '보통의 것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존재 자체를 잊기도 했던 '별것 아닌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매 순간 내가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이 습관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 난 왜 그랬을까.
바삐 서둘러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재택근무 중인 나의 상황이 문득 감사했다. 너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적어도 왕복 출퇴근하는 시간만큼 늘어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을 적어도 그만큼은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읽고 사유(思惟)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그 마음의 여유가 이른 새벽, 자연으로 발을 내딛게 했고 걸음걸음마다 찰나의 감사함을 알게 해주었다. 버겁게 느껴졌던 반복된 일상에서의 업무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해 주었고, 아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그래서 다시금 용기를 내본다. 내게 주어진 '지금'이라는 시간을 채워갈 다양한 이야기들을 써 내려갈 용기를 말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감사한 삶의 기록들은 그만큼이나 나에게 큰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다. 너희들 각자의 정립되지 않은 가치관과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과 수용력은 나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이다. 고작 40년 남짓 살아온 아빠라는 존재의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이 너희들의 삶을 규정지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몇 번이고 나를 망설이게 한다. 하지만 나의 진심이, 사랑이, 그리고 이 두려움이 너희들을 '사색'하게 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의 삶에서 겪어내야 할 각자의 몫이라 이야기해주고 싶다.
써지지 않았던 이야기는 어쩌면,
쓸 수 없었던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행이다.
아침에 읽은 책 한 권으로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으니.
부족한 나의 사랑을 이렇게나마 채워갈 수 있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