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지구별에 우리땅 80평이 생겼다
부동산 찍고, 시청 들러 등기소까지
2020년 10월 13일 두 번째 결전의 날이 왔다.
아침 일찍 씻고, 나름 단장을 하고(BB크림을 조금 펴 바르는 정도? ㅎ) 약속 시간 맞춰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출동~
우리측 중개인 둘과 자매들, 토지 매도인측 중개인과 매도인, 대출을 위한 은행측 법무사까지 복닥복닥 작은 사무실에 모여 앉았다. 때가 때인지라 모두 마스크를 쓰고 앉아있는 모습이 비현실적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각자 준비해 온 서류들을 서로 확인하고 돈이 오가는 자리. 땅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인데 복잡한 과정을 거쳐 그 주인만 바뀌는 거다. 보이지 않는 돈들이 온라인 상에서 오가고, 작성된 서류들이 오가다 보면 결국 온라인 상에서 우리의 땅이 된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서류를 떼어 잘 기입된 우리 이름을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고파는 저 땅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매도인이니 매수인이니 우리끼리 그런 이름으로 거래하고 있지만 한편 꽤나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광활한 우주, 그 안의 작은 별 지구, 그 안에서도 아주 작은 나라의 땅덩어리 한 구석에 붙어있는 80평 땅 쪼가리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라니! 인간들의 끝없는 땅따먹기 놀이, 놀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치열하고 처절한 싸움 같은 것. 어른이 된 후 많은 시간을 이 땅과 집에 걸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처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행위는 땅따먹기 놀이에서 제대로 벗어나고자 함일까 본격적으로 합류하는 것일까. 그마저도 아리송하여 씁쓸한 마음이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땅 80평을 무사히 차지하기 위해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눈을 똑바로 뜨고 예민함을 바짝 곤두세운 채 서류들을 훑어나갔다. 이름 한 획, 숫자 하나 잘못된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프린트된 서류들 안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곳을 찾아 여러 차례 사인을 했다.
원래 은행 대출 근저당권 설정을 위한 은행측 법무사 말고도 매수인측에서도 소유권 이전을 위해 법무사를 동행한다. 보통 매입자측 법무사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소개시켜 주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넷째가 등기 업무를 오래 해온지라 따로 법무사 없이 자가등기를 하기로 했다. 각자의 능력치를 발휘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해내기로 했고, 그럭저럭 잘 지켜나가고 있는 중이다.
<공인중개사사무실에서 확인한 서류들 - 소유권 이전 서류들>
매도용 인감증명서(매도인)/등기신청위임장(매도인 인감도장 날인, 매수인 도장 날인)/매매계약서/매도인의 등기필증(등기권리증)/매도인의 주민등록초본(주소변동 포함)/매수인의 주민등록초본/부동산거래계약신고필증(공인중개사 준비)
끝났다! 일단 80평의 땅은 우리에게로 옮겨왔다. 아니 옮겨온 것 같다. ^^ 가만히 앉아서 서류 확인하고 사인만 했을 뿐인데 진이 빠진 네 자매는 당장 배를 채우러 가고 싶었으나 그럴 여유가 없다. 차 한 대만 움직여서 파주시청으로 고고~
파주에 13년 살았는데 시청에 정상적인 민원업무를 보러 간 것은 딱 두 번째다. 4년 전쯤 여권을 다시 만들기 위해 갔던 이후 처음. 4년 더 전에 시청에 몇 차례 갔던 이유는 모두 '임진강 준설 반대를 위한 행동' 등등 활동을 위해서였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시청 정문 앞에서 피켓시위와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서. ㅎㅎ 나서서 활동하는 사람은 못되는지라 속해 있던 단체의 일원으로 참여한 정도지만 감회가 새롭다.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요즘 더욱 '공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똑같은 공간이 시간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다른지.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시청은 언제나 차를 댈 곳이 없고 답답하고 딱딱한 느낌이다. ㅎㅎ 관공서에 대한 나의 오랜 선입견일 수도 있겠으나 절대 친근해지지 않을 것 같은 한결같은 곳!
우리는 주차장을 뱅뱅 돌아 주차타워 맨 꼭대기에서 겨우 자리를 하나 찾아 차를 대고 각자 해야 할 일을 나눠 움직였다. 차 한 대로 움직인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중요한 일은 넷째 차지다. 일단 세무과에 들러 취득세를 신고한다. 취득세를 신고하기 위해서는 매매계약서와 부동산거래계약신고필증(공인중개사 준비)이 필요하고 추가로 신청서를 써서 접수하면 된다. 신고 완료되면 취득세를 납부한다. 등기 신청 전에 반드시 취득세 신고와 납부를 완료해야 한다. 다음엔 취득세 납부확인서를 출력한다(지방세 신고.납부 사이트로 접속하여 출력/서울은 이택스, 서울 외 지역은 위택스).
취득세 신고와 납부가 끝나면 민원실에 들러 공부를 발급받는다. 공부는 등기에 필요한 토지대장, 토지이용계획확인원 등의 서류다.
넷째가 이런 중요한 서류들을 처리하는 동안 나는 건축과로 갔다. 지구단위계획수립지침과 지침도를 받기 위해서다. 얼마 전 설계 미팅을 했던 선배가 시청에 전화로 물어보니 직접 방문해서 받아야 한다고 했다는 사전 조사 자료다. 시청에 간 김에 받아놓고서 설계팀에 전달하면 좋을 것 같아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건축과에 가서 기웃거리다 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운정신도시 안 동패동에 다가구주택을 짓는데 지구단위계획수리지침과 지침도를 받고 싶어서 왔어요."
건축과에서는 도시개발과로 가보라고 했다. 같은 층에 있는 도시개발과로 가서 다시 똑같이 물었다. 담당자는 뭔가 뒤적거리더니 말한다.
"통일기반조성과로 가보세요. 통일기반조성과는 시청 안에 없고 본관을 나가서 건너편 별관 건물 옆 건물에 있어요."
'통일기반조성과'라는 이름의 부서가 시청에 있는 줄도 처음 알았는데 심지어 시청 건물 밖에 있다니! 뭐 하라는대로 할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정문을 나가 건너편 별관을 찾고 또 그 옆건물로 가서 3층에 있는 통일기반조성과를 찾아냈다. 담당자를 찾아(사실 담당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거기서 말 붙이기 좋은 사람을 하나 찾아) 물어보니 잠시 뭔가 뒤적인 후 답해준다.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가세요. 찾아서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그렇게 나의 일은 끝났다.
한창 취재를 다닐 때 종종 지역 시청이나 군청에 전화를 걸 일이 생기곤 했다. 문화관광과에 자료를 요청하거나 특별한 사항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 한 번에 해결되지 않았다. 분명히 몇 번이나 검토해 적절한 과라고 생각되는 곳의 담당자를 찾았으나 늘 담당자가 아니라고 했다. 전화를 세 번 정도 돌려야 내가 원하는 정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직접 방문해서 일을 보면서 생각한다. 음 전화든 방문이든 뭐든 삼세 번이구나!
아, 나중에 찾아보니 건축과는 안전건설교통국에 속하고, 도시개발과는 도시발전국, 통일기반조성과는 평화기반국에 속해있었다. 세상에나, 이런 국과 과를 어찌 매치시킨다는 말인가! 우리가 집을 짓기 위해 땅을 사는 일이 평화기반국 통일기반조성과와 관련된 일이었다니, 어쩐지 엄숙해지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마음이 동시에 솟구쳐 올랐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야 할 곳은 등기소. 2시로 예약을 잡아놓은지라 잠시 틈이 생겼고, 우린 더이상 참을 수 없을만큼 배가 고팠다.
시청은 구도심이라 할 수 있는 금촌에 있는데 등기소는 최근 운정신도시로 옮겼다. 등기소 위치는 파주 사는 나보다 서울서 일하는 넷째가 더 잘 알고있다. 마침 등기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내가 종종 가던 브런치 카페가 있어 주린 배와 고픈 수다를 채웠다. 통일기반조성과에 얽힌 기막힌 정보들을 나누며 웃다가, 등기에 필요한 서류들을 읊어주면 골치아파하다가. 그래도 뭔가 결과가 생기는 날이라 피곤하지만 연신 뿌듯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다.
등기소에는 넷째 혼자 들어가서 후딱 일을 보고 왔다. 자가등기일 경우 권리자(토지매수인)가 도장과 신분증을 가지고 등기소에 직접 방문하여 신청서를 작성하고 준비해온 서류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신청서는 양식을 받아 작성하거나 인터넷 등기소사이트에 로그인하여 전산입력한 후 출력하여 제출하면 된다.
드디어 진짜 끝.났.다!
우리의 집짓기는 통일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작은 행위였어. 그 씨앗을 뿌리기 위해 우리는 드디어 땅을 마련한 거지. 지구별에 우리땅 80평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