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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Jul 12. 2020

사색의 공간

빌딩 옥상에서 바라본 천태만상


가끔 오르는 빌딩 옥상은 산의 정상을 오른 것처럼 상쾌함이 있다. 옥상에 올라가 서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부끄럼 없는 하늘이 좋고, 거칠 것 없는 눈앞에 탁 트인 세상이 좋다. 늘 위로만 쳐다보아야 했던 어질어질했던 빌딩을 저만큼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게 마치 산을 정복한 쾌감과도 같은 즐거움이 있어 좋다. 눈부신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족함과, 가끔 내 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빌딩 숲 사이로 매몰찬 바람이 몰아쳐 올 때의 불편함 이외에는 이렇다 할 아쉬움이 없다.

옥상은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나를 잠시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하는 영혼의 쉼터 같은 곳이다. 온갖 물체들이 질서 없이 내다보이는 해바라진 낮보다는 어둠 속에서 오색찬란한 네온사인이 수놓는 테헤란로의 야경이 더 좋을 때가 있다. 그리고 밤바람이 간간이 내 목을 휘감고 갈 때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인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을 거 같은 도심에서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꽉 막힌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볼 때 호시탐탐 모공 속을 파고들어 뇌수를 적실 기회를 노리는 우울감은 옥상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하늘과 조금 더 가까워져 하늘의 뜻을 알고 하늘의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은 내가 보는 시선을 나를 향하게 만드는 나의 유일한 휴식처이자 삶을 닦는 사색의 공간이기도 하다.

도심 한복판 우뚝 서있는 빌딩 옥상에서 바라보는 테헤란로의 천태만상은 나로 하여금 다양한 사색의 늪으로 잠시 빠지게 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사람이 도찐개찐이다. 부자 가난한 자도 없고 잘나고 못나고도 없는 한낱 유한한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땅을 밟는 순간 여러 가지 잣대로 비교하고 우월해지려는 도시의 습성이 발현된다.

도시는 항상 성장을 원했고 성장을 위해서는 사람의 욕망을 자극시켜야만 했다. 점차 도시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착각을 갖게 만들었으며 도시에 집을 소유한다는 건 자신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성취이자 진정한 도시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마디로 존재보다는 소유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게 되어 버렸다. 급기야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사는 동네, 부동산의 자산가치, 자동차 브랜드, 입고 다니는 옷.. 이런 소유에서 행복을 찾다 보니 개성은 살아지고 오로지 자신이 꿈꾸는 소유만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안타까운 인간 군상(群像)인가!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기가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다시 말을 타고 달린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지친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며 혹시나 너무 빨리 달려서 자신의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했을까 봐 영혼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야심 차게 시작한 2020년이 벌써 절반을 향해 달려왔다. 말을 타고 광활한 대지를 달리듯 앞만 보고 달려왔다. 혹시나 앞을 향해 달리다가 영혼을 질질 끌고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았다. 잠시 멈추어 영혼을 기다려주는 인디언들의 지혜가 필요함을 느꼈다. 앞으로는 나 자신을 지나치게 다그치지 말고 내 영혼을 온전히 소중히 잘 챙기면서 살아보자 다짐해 보았다.

소유가 아닌 존재에 가치를 두며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줄 아는 진실함과 여유를 가져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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