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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Jul 02. 2020

남자의 눈물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과 흘려도 되는 것들..

여자 화장실에도 명언 같은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는 주옥같은 명언들이 종종 눈에 띈다. 그중에 빌딩 구내식당 화장실 벽에 붙어있는 글귀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죠'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이 글귀는 마치 독립투사가 마지막 유언을 남긴 듯한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눈물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번뜩이는 재치에, 아무리 무심한 사내일지라도 웃음마저 흘리지 않을 순 없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이 한 줄의 문장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들의 방화수야 바닥에 흘리면 냄새나고 지저분할 테니 흘리지 말 것을 요구하는 건 어느 정도 위트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남자는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는 선뜻 동의할 수 없어서다.

한국에서 태어 난 남자라면 누구나 어릴 때부터 남자가 울어야 할 때는 세 번 밖에 없다고 듣고 자랐을 것이다. 태어날 때,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인데, 그 외에 눈물을 보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고 암묵적으로 배워왔다. 이러한 가르침의 영향으로 남자들은 은연중 솔직한 감정 표현을 억눌러 왔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정의하여 전해 온 구전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을 눈물을 흘리는 여부로 구분 짓는다는 것은 분명 어폐(語弊)가 있음이 분명하다.

'남자도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한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 그에 따라 자연스레 함께 느는 것이 있다. 잔주름과 흰머리가 늘고, 밤중에 화장실 드나드는 횟수가 늘고, 실없는 잔소리가 는다. 울어야 할 일이 느는 것도 그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는 지천명이 넘은 생을 살면서 많이도 울었던 거 같다. 어릴 때야 떼쓸 때 우는 게 전부였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시련당해 울고,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해 울고, 첫애 태어날 때 감격해서 울고, 아름다운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동해서 울고, 월드컵 경기를 보다가 애국심에 가슴 벅차 울고, 심지어 드라마 보다가 감정이입이 돼서 걸핏하면 청승맞게 울었다. 우는 이유도 참으로 다양했다. 나이가 들수록 어떤 이유에서인지 눈물이 많아졌다.

하지만 세상이 날로 삭막해져 가기 때문인지 울어야 할 일에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 같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아니 불쌍한 사람이다. 어쩌면 그는 희로애락의 삶을 해탈한 성인군자이거나, 아니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철면피 같은 냉혈인간일지 모른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마땅히 울 일에 일부러 울음을 참는다는 건 너무 억지스러운 짓이다.

어렸을 적에는 그저 웃을 일만 있었다. 여자애들 약 올리며 웃고, 선생님 별명을 불러대며 웃고,
동무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걸핏하면 웃음보가 터지곤 했다. 70년대 격동의 시기에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도 미래가 불안한 나라 정세에 아랑곳없이 마냥 신이 났고 웃을 일만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음에도 해가 거듭될수록 웃을 일은 줄어들고, 그 대신 울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사람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우는 일에 익숙해지는 일이기도 한 듯하다. 누구나 예외 없이 흐르는 세월 따라 삶의 무게 중심이 차츰 웃음 쪽에서 울음 쪽으로 기운다. 화병으로 고통받는 이에게는 울음만큼 최고의 치유도 없다. 웃음은 스트레스를 날려 주지만 울음은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는 까닭이다. 실컷 울고 나면 가슴속이 후련해지면서 마음의 정화를 가져다준다. 이것이 울음의 본질적인 가치이자 속성이며 울음이 주는 유익함이 아닐까 한다.

눈물이 흔한 사람은 그만큼 마음에 때가 묻지 않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분별없이 웃음이 헤픈 사람 치고 생을 진지하게 사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나이테가 감기면서 눈물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삶에 대한 진정성과 자기 성찰로 성숙해져 감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울고 있는 모습처럼 인간적인 것은 없기에 울어야 할 때는 한껏 울어 볼 일이다.

나는 화장실 소변기 앞에 서서, 전립선 비대증으로 배뇨할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하소연하는 선배를 생각하며, 이렇게 시원하게 뿜어내는 오줌발에 울컥하여 감사의 눈물도 함께 찔끔 흘린다. 시답잖은 거에도 눈물이 나는 걸 보니 이전보다 조금은 더 성숙해진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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