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윌레스라는 영국의 유명한 자연주의 학자가 있었다. 하루는 이 사람이 산누에 나비의 일종인 천잠나방 새끼가 누에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린 천잠나방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누에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있는 힘을 다해서 고생하는 것이 너무 애처롭게 보여 그는 누에고치를 가위로 찢어주어 나방이 쉽게 나오게 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누에고치에서 나온 새끼 나방을 계속 관찰해 보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어린 나방은 날개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천잠나방의 자랑인 아름다운 색깔과 무늬도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얼마 안 되어 죽고 말았다. 알프레드는 이 관찰을 통해서 새끼 나방이 누에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애처롭게 발버둥치는 그 일이 바로 날개를 튼튼히 자라게 하고 몸의 힘을 길러 주며 아름다운 색채가 나게끔 만들어주는 한 과정인 것을 깨달았다. 어린 나방은 애처로운 고생의 투쟁은 면제받았지만 그로 인하여 더 크지도 못하고 결국 죽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가장 유익했던 시절이 언제인가를 가끔 생각해 보곤 한다. 나름 화려했던 젊은 리즈시절보다 우울하게 시련의 나날을 보냈던 고등학교 시절이 내 인생에 가장 의미 있고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때가 아닌가 한다.
밝은 미래를 꿈꾸며 한창 클 나이에 나는 사선(死線)을 넘어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햇살 눈부신 화창한 어느 봄날 체육시간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축구를 하곤 했는데,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하늘이 노래지더니 결국 운동장에 쓰러지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양호실이었다. 응급조치를 받고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폐결핵으로 판명되었다.
그 당시에 결핵은 흔한 질병이었고 전 세계적으로 퇴치 운동을 벌이던 때였다. 이에 동참하는 의미로 크리스마스 실을 사서 크리스마스 카드에 우표와 함께 나란히 붙여 보내곤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결핵이라는 병이 뭔지는 알았지만 내가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요즘 무섭게 유행하는 코로나 19 정도는 아니지만 결핵도 전염이 될 수 있어 무서운 병으로 인식되었고 '하얀 나비'를 불러 천재가수로 알려진 김정호가 폐결핵으로 요절한 소식을 들은 지도 얼마 안 된 터라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었다.
다행히 결핵 음성 판정을 받아 전염성은 없다 하여 학교를 다니는 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약을 복용하는 게 문제였다. 처음엔 열 알 정도의 약을 6개월 복용했던 것이 차도가 없자 처방약이 늘어 15알을 6개월, 그래도 호전이 없자 스무 알 정도의 약을 처방받아 6개월, 총 1년 반이나 먹어야 했다. 자그마치 스무 알을 그것도 하루에 세 번을 그리 먹어야 했다. 더욱이 친구들이 약을 먹는 걸 보게 되면 나를 기피할까 봐 점심을 먹은 후 화장실에서 남몰래 먹느라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가족들 중에는 나 말고 둘째형과 어머니도 결핵 판정을 받았다. 특히 타이어 공장을 다녔던 둘째형이 증세가 심했다. 기침을 할 때마다 각혈을 하였고 병원에서도 포기할 정도여서 집안 분위기는 늘 근심과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둘째형을 부둥켜안고 흐느껴 우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나는 그때 사람은 어디서 왔고 산다는 게 무엇이며,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운동장에서 친구들이 뛰어놀 때 나는 교정(校庭) 계단에 앉아 사색하는 일이 잦았다. 보건소에서 처방해 준대로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는 거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꿈 많던 청소년 시절을 결핵과 지난한 싸움을 해야 했고 나이 에 걸맞지 않게 철학적 사고를 하며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던 비 갠 오후 어느 날이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산 중턱 위로 커다란 무지개가 뜬 게 아닌가. 장관이었다. 살면서 무지개를 본 적도 몇 번 없었지만 그토록 선명하고 아름다운 무지개는 난생처음 보았다. 오색 물감으로 칠해 놓은 듯한 무지개를 한참을 바라보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아름답고 황홀한 광경을 보고는 내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내 처지가 서글퍼서가 아니라 희망이란 것을 본 연유로 비롯된 감동의 눈물이었다. 노아의 홍수로 타락한 인류를 심판하고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의 상징으로 신이 보여주었던 계시가 아니던가. 이 힘든 고비를 넘기면 멋진 미래가 펼쳐질 거란 약속이라도 받은 듯 내면 깊은 곳에서 용기가 용솟음쳤다. 나는 그때 보았던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춘기 시절을 이렇게 병마와 싸우며 내가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한때 원망도 했지만 그 시련과 역경이 궁극적으로 나를 더 강하고 한층 성숙하게 만들어준 자양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고난을 통해 나를 연단(鍊鍛)하여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와 헛된 욕망을 참을 수 있는 절제를 배웠고 힘들게 살아가는 소외된 자들을 돌볼 줄 아는 긍휼한 마음을 갖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한 생명의 귀함을, 그래서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고난의 유익함을 깨달은 것이다. 나의 이러한 경험은 마치 예방주사를 맞은 거와 같았다. 숱한 어려움이 닥쳐도 긍정의 자세로 벼랑 끝에 서는 용기를 가지고 당당히 맞섰으며 끝이 없게만 보였던 암울했던 인생의 긴 터널을 능히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또 다른 역경과 고난이 나라 안팎으로 찾아왔다. 내남없이 참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국가적 재난으로 삶을 포기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도 만만치않게 나올 만큼 개인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히 자신을 성찰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분명 어떤 메시지가 있을 것이고 그 안에는 반드시 희망이 담겨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NO PAIN, NO GAIN!', 'NO CROSS, NO CROWN!'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으며, 십자가의 고난이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다는 영국 속담도 있지 않던가!
내가 만약 천잠나방이라면 나는 누가 내 누에고치를 찢어주기를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누에고치 속에서 묵묵히 색채를 다듬고 날개의 근육을 단단히 만들 것이다. 언젠가는 때가 되면 맞이할 세상에서 맘껏 하늘을 향해 비상할 것을 꿈꾸며 희망을 놓지않고 고난을 견뎌낼 것이다. 지금 겪는 모든 시련과 역경이 이 또한 감기처럼 지나갈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