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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Feb 06. 2021

팔랑귀 인생

귀가 얇아 사람 말을 쉽게 믿는 내 삶

몸에 그렇게 좋다는 선배 말을 듣고 건강보조식품을 또 구매하고 말았다. 집사람의 잔소리 후폭풍이 예상된다. 나는 귀가 얇다. 얇아도 너무 얇아서 조금의 바람만 불어도 쉬이 팔랑거려 여름철에는 부채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다.

실제로 귓불이 얇아서 사람들이 내 귀를 만져보고는 너무 얇아 놀라기도 한다. 한 때는 귓불이 두툼해야 재물복이 있다는 소리에 귀가 얇고 귓불이 없는 내 귀가 싫은 적이 있었다. 약간의 콤플렉스라고나 할까?  심지어 이런 귀를 물려받은 걸 부모님을 탓하기도 했었다. 외모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지만 지금도 가끔 부처님 귀처럼 귓불이 두툼한 사람을 볼 때면 부러움을 감추지 못할 때가 있다. 대화를 할 땐 눈을 보고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나는  상대의 귀를 먼저 보게 된다.

내 귀에 대해 말하자면 귓불이 없는 것도 없는 거지만 귀가 남들보다 유독 얇다는 데 있다. 귀가 얇다는 말을 줏대가 없는 사람을 빗대어 말하곤 한다. 이 말은 분명 외형적인 귀의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 테지만 어찌 됐든 실제 내 귀가 얇은 탓인지 남의 말에 잘 요동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신체를 빗대어 성격을 묘사하는 것을 즐겼다. 예를 들어 머리가 벗어진 대머리는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 콧대가 높다는 말은 자존심이 쌘 사람, 이가 옥니인 사람은 고집이 쌘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말은 안목이 없는 사람, 입이 가볍다는 건 진중하지 못한 사람으로 치부했다. 내 주변 사람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얼추 맞는 거 같기도 하다.

나는 내 외모가 잘 생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큰 불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생긴 대로 살자는 것이 나의 신조이기에 내 몸 어디에도 건강의 문제로 칼을 댄 거 외에는 그 흔한 쌍꺼풀 수술조차 한 적이 없다. 머리는 좀 벗겨졌지만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거나 입이 가볍다거나 눈이 낮아 안목이 없다는 말을 들어보지 않았다. 하나 아내를 비롯한 동료 지인들로부터 귀가 얇다는 소리는 수도 없이 들은 거 같다. 필요와 욕구를 구분해야 함에도 그러질 못하고 쉽게 설득을 당하고 만다.

원인을 분석해보니 타고난 성격이라기보다는 어릴 적부터 충분치 못한 애정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란 자체 분석을 해보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번 반복되는 나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팔 굽혀 펴기를 하면 가슴과 팔뚝에 근육이 생겨 두꺼워진다지만 내 귀를 두껍게 하기 위해 귀 굽혀펴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도무지 귀를 두껍게 할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팔랑귀라서 손해 본 것도 다분히 있었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남의 말을 잘 듣는 팔랑귀 덕분에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 때문에 사람도 많이 사귀게 되었다. 또 남의 말에 경청하다 보니 인생의 교훈을 많이 터득하게 되기도 했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이 또 어딨겠는가. 하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라면 차라리 즐기는 게 나을 거 같다.

이제 누가 내 귀를 습자지처럼 얇은 팔랑귀라고 놀리더라도 개의치 않으려 한다. 그 귀도 부모가 물려준 소중한 신체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작은 소리에도 경청하고 믿어주는 그런 팔랑귀를 나풀대 볼까 한다. 남을 등쳐먹고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세 치 혀보다야 사람 말을 쉽게 믿어 조금은 밑지는 팔랑귀가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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