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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 May 13. 2016

나를, 당신을 위로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위로 받고 싶은 날이 있다.    


동시에 위로 받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위로가 필요할 때면, 위로 받고 싶은 이야기의 범위와 이야기 방식을 설정하고 누군가에게 털어 놓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먹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꼈던 아픔들이 내 입 밖에서 나와 다시 내 귀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담담하게, 가끔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재구성 할 수 밖에 없다. 더는 다치고 싶지 않은 짠한 노력이다.     


사실 위로 받아본 경험이 많지 않다. 여태껏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준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이다. 나에게는 위로로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위로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다. 위로는 하기도, 받기도 어렵다. 위로에 관한 글귀를 읽고 조언을 들어도 어떤 게 좋은 위로인지 잘 모르겠다. 함부로, 감히, 주제넘게 위로하게 될까 두렵다.   


가끔은 그 조심스러움 자체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문자를 가지고 위로할 때, 쓰고 지우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편이다. 네 마음‘도’와 네 마음‘이’ 중 뭐가 나을지, 그것도 아니면 네 ‘진심’이 나을지 한참동안 고민하다 겨우겨우 몇 자를 써서 보낸다. 위로가 필요한 상대는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일테니 일부러 바로 읽지 않을 때도 있다. 한참을 생각하다 적당한 말을 찾아내면 그제서야 답장을 보내기도 한다.     




위로가 두려운 나지만, 위로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꼭 덧붙이는 말과 절대 하지 않는 말 하나가 있다.     


어떤 사정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건 정말이지 내 진심이다. 나는 상대가 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의 필터링과 범위 설정을 거쳐 하는 말들임을 알고 있다. 그 말들과 말들 사이에는, 나는 알 수 없는 공백과 연결고리들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의 모든 이야기, 속마음을 다 알 수 없다. 어떤 사정인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는 것을 상대도 알았으면 하는 나의 마음이기도 하다. 나는 당신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의 상황에 놓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의 모든 걸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거라고. 그렇다면 나는 거짓말을 하는거라고.   


힘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힘내라는 말이 무성의하거나 무책임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사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의 무기력함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으레 자주 쓰곤 한다. 상대가 나에게 눈물을 보이거나 ‘힘들다’라고 고백하는 건, 자신의 가장 연약한 모습까지 기꺼이 드러내는 행위이다. 힘내려고 안 해봤을까. 혼자 애써봐도 힘이 안 나니까 이야기 들어줄 누군가를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용기 내준 상대에게 ‘힘내’라는 말은 턱없이 가볍다.




브로콜리너마저의 2집 앨범에 실린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깊은 어둠에 빠져 있어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정작 힘겨운 날엔 우린

전혀 상관없는 얘기만을 하지

정말 하고 싶었던 말도

난 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고 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어떻게 위로 받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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