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허비 이즈 플레잉 싸컬
디쥬 두 유얼 홈월크?
엄마는 오늘도 어김없이 영어삼매경이다. 웃으면 안 되는데,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내 앞에서 영어 동화책을 낭독하던 귀여운 사촌 꼬마 동생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그런가. 문장의 의미나 자연스러운 연음보다는 ‘읽는 것’에 의의를 두는, 힘 잔뜩 들어간 목소리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우리 엄마가 영어 공부를 한다. 배워봤자 어디에 써먹냐며, 배울 시간도 없다며 미루고 미뤘던 영어 공부를 이제야 한다. 49세 우리 엄마가. 평일 아침 10시 수업이 꽤나 빡빡한지, 밤 12시부터 새벽1시 까지는 꼭 영어 숙제 및 복습을 위해 책상 앞에 앉아계신다. 숙제도 어찌나 완벽하게 해 가려고 하시는지, 늘 아빠나 나에게 검사받고 가신다. 당신이 쓴 단어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틀렸다면 고쳐달라고 부탁까지 하시고선, 답안에 가까운 숙제를 가지고 학원에 가신다. 어차피 학원 가면 채점도 하고, 모르는 것도 가르쳐 줄 거라고. 지금 답만 써 가는거 하등 소용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알겠으니까 일단은 고쳐달라고만 말씀하신다.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이다.
올해 겨울, 아빠의 회사 거래처 상대인 필리핀 가족과 우리가족이 함께 놀러 간 적이 있다. 필리핀 특유의 억양이 아닌 미국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 발음과 문장을 구사하시는 분들이었다. 이런 낯선 이들과의 1박2일 여행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특히 엄마는 필리핀 가족의 막내 남자아이가 내 남동생의 어릴 적 얼굴과 똑 닮았다며 여행 내내 즐거워했다.
저토록 열심히 영어 공부하는 엄마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 가족과의 여행, 물론 즐거웠지만, 엄마는 어쩌면 조금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 여행 당시 나와 아빠는 필리핀 가족과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옆에서 아무리 번역해줘도 직접 대화하는 것만 못하고, 웃을 때도 남들보다 한 템포 늦게 웃어야 했다. 그래도 엄마는 주눅 드는 일 하나 없이 몇 안 되는 아는 영어+한국어+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이야기했다. 이건 정말 과한 비유일 수 있지만,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한 식구들과 살면서 소외감을 느꼈다던 한 연예인의 말이 떠올랐다. 같은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엄마도 그 비슷한 어떤 감정을 조금은 느꼈으리라.
그래서 결국 엄마한테 미안해졌다.
엄마는 그냥 숙제를 틀리는 게 싫었던 거다. 창피했던 거다.
숙제를 고쳐달라는 엄마에게 핀잔을 주었던 게 미안해졌다.
제대로 공부하려면 그렇게 숙제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 했던 게 미안해졌다. 엄마의 숙제를 봐 주는 게 아주 조금은 귀찮았던 것도 미안해졌다.
모래엔 학원 final테스트를 본다며 내일 하루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던데, 엄마가 1등 먹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