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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Sep 30. 2018

[에세이 27]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미셸의 크루 에세이 03] 달에도 뒷면이 있다


    비교적 낙천적인 사람은 비교적 어두울 때가 있다. 내가 그랬다. 그리고 예전에는 그 어두운 면 자체를 인정할 줄도 모를 정도로 어렸다. 그래서 오늘은 앞에서 줄줄이 자신들의 힘겨움, 고민들을 터놓은 용기 만점 멤버들(아니 이 싸람들 진짜 대단?!?!)에 힘입어 나도 한 번 작게 웅크렸던 때를 풀어보려 한다.


    대신 내가 다른 이들에 의해 용기를 얻었듯, 혹 누군가 나와 비슷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고, 괜찮다고, 조금만 같이 용기를 내어 조금 더 걸어가 보자고, 그렇게 나지막이 속삭여 주고 싶다.







    나는 한 때 상담을 다녔다.

    

    상해를 다녀오고 나서였으니, 대학교 3학년 언저리였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놓아버린 연애는 상대뿐만이 아닌 내게도 큰 상처로 남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죄책감과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느낀 괴리감들이 한동안 나를 계속 채찍질하게 했다.


    나한테 상해에서의 연애는 사실 내 세상관 자체를 뒤집어 놓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서 상해라는 커다란 세상에서 느낀 빈부격차는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내 마음에 줄곧 돌덩이처럼 남아 있었다.


    그렇게 세상 문제의 무언가라도 해결해보고 싶어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동아리 안에서의 내 모습이 싫을 때였다. 아니 대체 이렇게 웃고 떠들어서 저 심각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거지?라는 생각이 나와 타인에 대한 분노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때 내 원인 모를 분노를 받아준 친구들에게는 지금에서지만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


    게다가 교환학생 후 우울증도 심하게 앓았다. 빈부격차를 느끼긴 했어도, 상해라는 도시를 나는 너무도 사랑했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어떤 일도 그때 그 순간들로 되돌아가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나를 한없이 좀 먹었다. 친구들도 다 나보고 변했다고 했다. 1학년 때는 헤실헤실 무한 긍정 왕이었는데, 상해를 다녀와서는 어둠의 자식보다 더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그렇게나 내던졌을까? 빡빡한 학교 수업들에, 어떻게든 상해로 되돌아가 보겠다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자고 친구들을 모아 일을 벌이기도 했다가, 급기야는 환경 프로젝트 부장까지 맡으며 생활 속에서 온통 '뛰어다녔다.' 지금에야 인정하지만, 솔직히 나는 마음 깊숙이는 '병자'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를 놓은 채로 살았던 1년은 바빴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보람은 되었다. 성과는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대외적으로는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프로젝트도 할 때는 고되었지만 막상 하고 나니 큰 자산으로 남았다.


    그런데 사생활은 달랐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가족들이랑은 싸우는 빈도도 늘어갔다. 눈에서는 걸핏하면 눈물이 와락와락 쏟아졌다. 내가 겪은 이별은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할 거란 생각에 말도 안 했고, 할 줄도 몰랐고, 말 해도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앞섰다.


    당시에는 왜 내가 그렇게 힘들고 우울한 지 원인도 몰랐다. 그래서 학교 상담 센터라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모든 건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때 찾은 상담 센터로의 발걸음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후로 정기적으로 2년 정도는 상담을 더 다닌 것 같다.


    학교 상담실의 선생님일 때도 있었고, 외부에서 센터를 운영하고 계신 전문 상담가일 때도 있었다. 나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때로는 상담 선생님이 내 안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는 그동안 느꼈던 따스함들이 순식간에 차게 식는 느낌이라 더 쓰렸다. 하지만 그럴 때면 다른 어떤 방도가 없었다. 책도 더 많이 찾아 읽고, 다니던 곳을 바꾸기도 했다.


    물론 선생님마다 배경과 지식이 다 달라 자리를 옮길 때마다 나는 배우는 것도 많았고, 정말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직업이 있다니, 대학원을 심리학과로 가서 상담사가 되면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아무튼 간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갔다. 그렇게 여러 번을 나의 불안정함에 대해서, 나의 가족들에 대해서 마주하고 또 마주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건대, 우리 가족은 불완전한 가정이었다. 물론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가족이긴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어려서부터 자주 싸우셨고, 자식들에게는 특히 '칭찬'이나 '위로'면에서 인색한 분들이셨다. 대신 우린 사소한 것에도 주눅들 만큼 혼은 많이 났다. 어쩌면 뭐든 잘 하려고 하거나, 칭찬받으려 기를 쓰고 노력하는 지금의 내가 된 건 이런 가정환경 탓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다들 성장환경에서 힘든 점이 있으셨기에 그러셨다고 이해하게 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 남매를 잘 키워내시고, 결국 나를 계속 믿어주시고 지켜봐 주신 것들을 보면, 지금 내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


    대신 가족 외에는 주변 누구에게도 내 상태를 알리지 않았다. 나는 잘 보이고 싶었고, '무한 긍정 걸'로 남아서 주변으로부터 계속 더 칭찬받고 싶었다. 또 혹여 알려지면 그동안 사귄 친구들도 나에게서 멀어질까 봐 두려웠고, 앞으로 그 어렵다는 취업의 문턱도 넘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4학년이 되었다. 시간이 약이었는지 다행히 마음의 상처는 차차 아물어 갔고, 가족들과도 차차 나아졌다. 새로운 꿈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상해를 꿈꾸다 꿈꾸다 그와 가까운 북경에서 인턴십도 했고, 미국으로 훌쩍 인터뷰 여행도 떠났었다. 브런치에서 우리 학교 선배 언니의 이야기인 싱가포르 적응기도 읽어 싱가포르에 대한 꿈을 뭉게뭉게 피우다가 싱가포르에도 다녀왔다.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끊임없이 마주하는 '새로움들'-영감을 주는 사람, 새로운 장소들, 처음 보는 음식들과 물건들-은 나를 새벽에 깨우는 힘이었다. 기필코 다시 이 나라로 돌아와 일하고야 말겠다는 다짐과 희망은 새벽 5시에 내 두 눈을 띄웠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다시 롤러코스터를 탔다.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나는 나눌 줄 몰랐다.


    이번에는 좋은 문화적 충격을 겪었지만, 여전히 내가 이해하고, 내가 보는 이 세상에는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운 것들은 어떻게든 막 이야기하는데, 힘들었던 것들은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다. '나는 힘들면 안 돼. 내가 선택한 길이잖아. 잘 해내야지. 또 부정적인 기운은 안 좋은 거잖아. 그러다가 다들 나를 싫어하면 어떡해 등등' 그 작지만 강력한 것들은 마음에 고인 물처럼 고여 썩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병이 될 줄 몰랐다.


    싱가포르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하루는 엄마와 싸우다가 핀트가 나갔다. 여러 해의 상담을 통해서 알게 된 점은, 나는 엄마랑 가장 많이 싸우면서도 사실은 엄마한테 가장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그런 엄마한테 '그래서 네가 지금까지 제대로 한 게 뭐냐'는 식의 말을 들었다.


    정말 짧은 한 마디였는데, 거기에 푹 꺾였다. 몇 시간을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었다. 눈물도 안 나오고 세상이 온통 하얬다. 내가 지금껏 무얼 위해 산 건가, 살 가치가 있나 생각했다. 동생한테는 카톡으로 내 책들 다 팔아서 남은 돈 다 가지라고 했다. 그렇게 바닥을 쳤던 때가 있었다.






    자, 여기까지가 내가 나눌 수 있는 나의 가장 어두운 면이다. 무한정 밝아 보이고 에너지 넘치는 내 모습 뒤에는 내가 꽁꽁 숨겨온 작게 웅크린 내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떨까? 아직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불안정하다. 나는 아직 어리고, 나약하다. 지금 이렇게 잿빛 글을 써보는 것도 무슨 대단한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실험해보는 거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알고 있는 점은, 그래도, 나는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나는 어제보다는 오늘 더 배우고, 어제보다는 조금씩 더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오늘 살아남았다.


    물론 특히 "힘겨움, 부정적인 것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 쪼끔은 알겠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다. 이제는 그 어두운 면도 입 밖으로 한 번 내어봐야지, 하고 다짐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뒷면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인정도 하지 않으면서, 모두들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워했다. 나는 '혼자 남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철저하게 '혼자 남았었다.' 칭찬만 받으려 했고, 멀쩡해 보이기 만을 바랐다.


    하지만 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낮아지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듯이, 어두워지지 않으면 어쩌면 밝아지지도 않는 것인 것 같다. 그래, 이제 멀쩡한 척 그만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가 겪는 모든 일에 징징거리겠다는 다짐이 아니다.


    다만 좋을 때가 있으면 힘들 때가 있는 법, 뭘 못했던 때가 있으면 잘 하게 될 때가 있는 법, 멍청했던 때가 있으면 잘 알게 될 때가 있는 법, 그런 것들을 인정하기로 했다.


    또 조금씩이라도, '괜찮지 않은데, 힘든데?'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나를 꿈꿔 본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나와 같다면. 부디 당신을 옥죄는 그 무수한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빈다. 또 당신은 혼자가 아니니, 함께 헤쳐나가기를.



    '달에도 뒷면은 있다.'






          PS : 살면서 한두 번 누구나 바닥을 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언제 어떤 식으로 찾아 올진 다 다르지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심리학적인 용어로는 ‘인정 욕구’와 ‘공포/회피형 애착 장애’의 컬래버레이션이 시너지 작용을 내어서 한 번 저 심해까지 끌고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극복한 상태에 가까워요. 그런데 저도 혼자 힘이었다면 그렇게 못 했을 것 같아요. 정말 운 좋고, 감사하게도 저에게는 고비마다 도와주는 가족이나 친구들, 전문가의 손길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그렇게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도, 다 되는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그 사람들한테 손을 뻗을 수 있냐는 건데, 그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쉽지 않은 거 알아요.


    하지만 구조 신호도 보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조차 없다는 거. 그거 하나는 확실합니다. 어떨 때는 구조 신호 보내기도 벅차다고요? 저도 알아요. 경험해봐서 압니다. 푹 꺾였을 때, 정말 위험했던 바닥까지 가 봤거든요.


    하지만 지금이 되고 보니, 그 터널은 언젠가 끝나더라고요. 그러니 살아남으세요. 터널은 반드시 끝나요. 그리고 그 문턱을 넘어 되돌아보면 결국 해낸 자기 자신을 대견해할 그럴 날이 옵니다. 그거 하난 확실해요. 지금 안 괜찮으면 안 괜찮다고 주변에 말하세요. 주변에 말하기 힘들면 전문가에게라도 말하고, 병원을 찾아가고 신이라도 찾으세요.


    삶은 원래 버거운 겁니다. 또 안 그래 보이지만 다들 버겁게 살더라고요. 대신 언젠가는 그 무게도 가벼워질 날이 오더라고요. 저처럼, 지금처럼 돌아보고 고백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인 것 같아요.



    하나 더, 희망적인 사실을 알려드리자면, 저는 지금, 이 글에서의 모습과 달리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제 스스로에게 솔직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싸웠던 엄마는 이해하게 되었고,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으며, 부모님들에게는 거꾸로 상담을 해 드릴 때도 있고요. 또 가족 내부의 문제도 중재해 나가고, 해결해 나가고 있어요. 제가 제 문제를 풀기 위해 공부했던 심리학은 가족에게도 유용하게 쓰이더라고요.


    또 잘 보이려고 하는 부질없는 짓들은 관두고자 노력해요. 물론 아직 어두운 감정이나 모습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건 연습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제가 과거에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려워했었지만, 덤덤하게 '상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들은 제 가까이에 남았으며, 졸업하자마자 취업도 했습니다. 또 지금처럼 이렇게 비저너리 크루들도 만나게 되어 주거니 받거니 깊은 마음의 기쁨과 고민들을 나누고 있죠.


    그래요, 어쩌면 두려움은 두려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여전히 공상과학처럼 느껴지는 제 평생의 소원들은 하늘 위 저만치에 떠다니고 있고, 가끔 풀이 죽을 때는 있지만, 제 가치가 외부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 압니다. 누구나 불완전해요. 대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장합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애썼다고, 고생 많았다고 한 번쯤 꼭 안아주세요.


그리고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PS의 PS.


지금 혹시 우울증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

일단 집 밖으로 나오세요. 가족, 친구, 선생님 등 당신이 손을 뻗을 수 있는 누군가든 찾으세요. 또 주저 말고 상담사를 찾으세요. 상담사를 찾기가 힘들다면 가까운 병원이라도 찾고, 병원도 힘들다면 신이라도 찾으세요. 일단은 지금, 누워있는 그 침대를 벗어나는 겁니다. 힘겨울 거예요. 어느 때보다 몸은 무지막지하게 무겁겠죠.


    그리고 상담은 결코 한 번에 마법처럼 우울증을 걷어내 주지 않습니다. 적어도 2-3년은 걸리는 긴 프로세스예요. 그래도 장담코 추천드립니다. 100년 인생에 일주일에 1시간씩 2-3년으로 당신의 인생이 바뀐다고요? 그렇다면 뭘 망설이시겠나요? 처음에는 낯설고 두렵겠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의 문턱은 있습니다. 그 이후는 어렵지 않아요.


심리학에 관한 또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면 :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은 많아요.
그런데도 그중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고 가장 아끼는 책들을 꼽자면 다음과 같아요.


아직도 가야 할 길 : 차분하지만 전문적으로 심리학/정신의학 등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성경만큼이나 많이 팔린 뉴욕 타임즈 베스트 셀러"

죽음의 수용소에서 :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다면. 또 당신의 인생을 바꿀 단 한 권의 책.

나는 오늘도 나를 응원한다 :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응원하며 나아갈 용기를 얻고 싶다면.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 내 마음 속 고민들에 대해 꼭 상담을 받아야하는지 고민이 된다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인간의 놀라운 변화와 그 변화를 포기하지 않고 치료하는 의사, 휴머니즘과 감동을 동시에 느끼고 싶다면.


북 리뷰가 아니기에 책마다 자세히 각주를 달 수는 없겠지만, 심리/정신의학 쪽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적극적으로 추천하며, 의대 친구에게도 거꾸로 제가 추천하는 책들입니다.



우울증에 관한 또 다른 콘텐츠를 확인해보고 싶다면 :

    한 때 '우울증'이라는 이름 모를 긴 터널을 지나와 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은 뜻깊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걸 발견해 반가웠어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와 같은 거라서, 제때 손쓰지 않으면 더 큰 무언가로 번질 수가 있죠. 하지만, 정말 마음의 감기와 같은 거라서 극복하고 나면 '그래, 내가 그랬던 때가 있었지'하고 돌아보게도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혹시 모를 지금 그 심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다음의 콘텐츠라도 읽어보길 바라요. 그리고 그것도 잊지 말아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도 당신이고, 다른 콘텐츠들을 뒤져보고 있는 것도 당신입니다. 이미 당신 안에는 힘이 있어요. 그러니 이 긴 싸움을 멈추지 말아요.


https://brunch.co.kr/@hash-o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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