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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Apr 06. 2018

[에세이 02] 하기 싫은 일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것

[여니의 크루에세이 01]

지하철 미션

작년 8월,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람들과 '지하철 미션'이라는 것을 하게 된 적이 있다.
지하철 안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가진 두려움을 얘기하고 떨쳐내는 일이었다. 하겠다고 했으면서도 막상 하려니 너무 무서워서 두려움을 떨쳐내자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거부감이 심하게 올라왔다. 일요일 오후, 2호선 지하철 안에서 결국 미션이 시작됐다. 퇴직 후 용기를 얻고 싶다는 J군부터,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다는 K양 등, 같은 팀원들이 떨려 하다가도 한 명씩 용기를 내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후련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다. 그제야 마음 저 깊은 곳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겼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붙들고 사람들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김연희라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하게 남들 하던 대로, 꼭 해야 하는 것만 하면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어렵고 무서운 일은 최대한 피하며 살아왔다. 하고 싶은 게 많았으나 혹여나 실패할까 두려워 고민만 하다가 떠나보낸 것들이 부지기수였다. 어려운 상황을 일부러 마주하고 싶진 않았다. 오늘같이.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를 잃는 느낌이었고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싹텄다. 나도 나답게 살고 싶었고, 앞으로의 인생에서 더 힘든 선택과 어려움이 많을 거란 걸 어렴풋이 알기에 이렇게 마냥 피하면서 살 순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이런 내 마음을 두서없지만 떨리고 갈라지는 목소리 그대로 전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그것도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드러낸 나의 두려움이었다.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힘차게 박수쳐주는 사람들과 눈시울을 붉혔던 또래의 여성분, 저 멀리서 힘내라고 외쳐주신 아주머니까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게 응원을 받으며 그제서야 나도 웃음이 났다.




내가 두려워 했던 것

지하철 미션을 했던 당시 나는, 나를 위한 1년의 유예기간을 갖고 있었다. 남들 다 정신없이 달릴 때 단 한 줄의 자소서도 쓰지 못했던 내가 나 자신과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하여 고민하고 싶다며 선택했던 일이었다. 주변의 많은 걱정을 뒤로하고 혼자 여행도 다니고 생존적 책 읽기도 하다 '인큐'라는 나를 공부하는 학교를 알게 되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차츰차츰 알아가던 와중에 프로젝트의 하나로 지하철 미션을 하게 된 것이었다.

지하철 미션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에게 1년의 유예 기간을 주기로 결심한 그 날 나는 나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지만, 그 마음 반대편에는 내가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고,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진짜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그걸 하기까지의 무섭고 싫고 힘든 과정 또한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서 겪어야 하는 과정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길 바랐던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그 후로 반년하고도 두 달이 지났다. 영문학을 공부하고 졸업한 나는 겉보기에 많이 다를 수 있는 UX디자인 분야를 준비하는 중이다. 뼛속까지 문학도가 공학과 디자인의 접점인 UX디자인을 하려니 거의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셈이었다. 다만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하고 싶은 일이면서도 너무 다른 분야라 두렵고 부딪혀야 할 것들이 많아 움츠러들 때도 많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어깨를 펴는 일이 반복된다. 혼자 헤매고 방황하다 책을 한 권씩 읽어보는 것부터, UX디자인 관련 글들을 읽어보는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관련 교육을 찾아 듣게 됐고 난생 처음 포트폴리오란 걸 건드려 보기 시작하다가 바로 며칠 전, 한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정규직도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드디어 작은 '물꼬'를 텄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제부터 진짜 시작일 것이다. 여전히 이 분야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100퍼센트 확신하진 못하겠다. UX디자인의 녹록지 않은 현실도 익히 들어왔다. 그러나 '인생을 결정하는 건 무얼 즐기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다'라는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리고 지하철 미션을 했던 날의 나를 떠올리면, 나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UX디자인을 하며 따르는 힘든 부분을 겪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반대로 하기 싫은 과정을 기꺼이 거치겠다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비저너리 콘텐츠팀 크루 여니라고 합니다. 비저너리 크루 에세이의 두 번째 타자로서 무슨 얘기를 할까 하다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저의 이야기를 적어 보았어요! 앞서 말했듯 제게 좋아하는 일이란 겪기 싫은 과정도 기꺼이 거칠 수 있는 일이에요. 비저너리를 찾아온,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좋아하는 일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아직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면, 그 전에 먼저 좋아하는 일이란 자신에게 어떤 뜻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꽤나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 비저너리가 여러분에게 도움과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구요. 그게 무엇이든 비저너리는 당신의 우주를 응원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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