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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미 Apr 02. 2016

"괜찮아요?"

제4화


오랜만에 이용한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아있던 커플이 말다툼을 시작하더니 조금씩 언성이 커지자 객차안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우리쪽을 향해 모여드는게 느껴졌다.

급기야 반대편에 계신 어른 한분이 나무라듯 목소리 좀 낮추라고 하니까 이 남녀는 서로를 탓하면서 욕설까지 섞어 누굴향해 말하는지 여전히 싸움을 계속했다.

주변에 계신 승객들은 너나없이 모두 못마땅한 표정으로 흘겨볼 뿐 이젠 안하무인처럼 구는 그 진상커플을 달리 뭐라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

그 바람에 옆자리의 나만 얼굴이 화끈거리게 눈총을 고스란히  같이 받는것 억울해서 빨리 내릴차비를  하고 벌떡 일어났다.


" 아, 그만좀  하라고ᆢ병*아! 에잇** 짜증나게!"


갑자기 남자가 거친 욕설과 함께 여자의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던지더니 벌떡 일어났다. 부평환승역에서 내려서는 급기야 육탄전으로 남녀의 싸움은 이어졌다.

가방과 휴대폰을 바닥에 던지고 차라리 죽이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여자는 놀랍게도 배가 살짝 불룩한게 임산부였다.

무엇때문에 그렇게 둘다 화가 난 건지 싸움은 쉬 끝날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곳을 벗어나려고 바삐 발길을 돌리는데 남자가 집어던진 가방에서 여자의 소지품 쏟아져나와 이리저리 흩어지고 굴러갔다.

내가 걸어가는 방향으로 립스틱과 화장품 몇가지가 또르르 굴러갔다. 그냥 가자니 사람들 사이에 막 밟힐것같아서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보이는데로 주워서 여자쪽을 바라보니 반대편에서도 몇몇 분들이 나처럼 똑같이 주운 것들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이내 남자는 어디론가 가버렸고 여자는 혼자 철퍼덕 찬 바닥에 다리를 쭉 뻗어버리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 손은 배에 올리고 한 손은 눈을 가리고 우는 소리에 지하철 역무원인듯한 분이 달려왔지만 여자는 이 상황이 창피하고 화가 나서 우는건지 다른 사정이 있는건지 알수없게 울어댔다.


열차가 지난 후 사람들이 다 환승구역을 향해 다 빠져나가자 그곳은 물건을 들고 도와주려 서있는 우리 몇사람과 건너편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새댁! 애기 힘들다..   그만 일나라!"

"그래요. 찬 바닥에 그렇게 있음 안돼.  뭔일인진 몰라도 신랑도 가버렸는데 괜히 그러구있다  자기몸만 상해~  어서 일어나요."


엄마 나이쯤 되어뵈는 중년여성 두 분이 안쓰러운듯 물건을 가방에 넣어 챙겨주며 남자떠난것에 맘쓰지 말라며 연신 일어나라고 손을 잡아 일으켰다.

넋을 놓고 잠시동안 대꾸도 없이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내 두 분도 포기하신듯 아기걱정하라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나셨다.

나는 주운 물건을 전해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그녀 가까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히 판단이 서질 않았다 .  조용히 놓고 떠나자니 그러면 안될것 같고ᆢ 그렇다고 어줍잖게 그녀를 위로한다고 말을 붙이기는 더 어려웠다.


실컷 울고 났는지 눈물도 마른듯 여자가 바닥에서 일어나려했다.  홀몸이 아니니 몸을 한번에 일으키지 못하고 기우뚱 거리자 반사적으로 달려가 나는 팔을 잡아 버렸다.

" 아... 저... 도움이 불편하시면 의자에만 앉혀드리고 갈게요. 바닥에 떨어진 화장품들은 보이는것만 주웠는데ᆢ 여기... 넣어줄게요."


마치 도움받는게 싫다할까봐ᆢ 사실은 조금전 남자와 악다구니로 독하게 싸우던 그녀가 약간  무섭기도 했고 거절당하면 너무 창피할것같아서 눈치보듯 빨리 말하는 나를 흘낏 보더니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를 부축해서 서너발자국 떨어진 의자에 앉히고 나는 주변에 혹시 뭐가 더 떨어져 있나 살펴보며 그녀의 물건을 가방에 챙겨넣었다.


오래전 내가 임신초기에 과학교사로 근무하던 때  아침마다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부평역까지 오는 도중 구토증과 다리가 퉁퉁붓고 어지럼증때문에 전철인데도 멀미증세를 심하게 겪었었다.

한 정거장 가다가도 또 토할것같은 증세에  정말 배를 움켜잡고 입을 틀어막고 다녔던 그 때일이 순간  생각났다.  입덧을 해 본 직장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이 고역을 공감할 거다.


그 당시에 나는 누구든 괜찮냐고 묻고 도와줄 손길이 절실했음에도 바쁜 아침 출근길에 아무도 배려할 수 없음이 당연하다 체념하며 이리저리 치여서 혹시나 (아기가 있는) 배가 눌리는걸 막느라 정말 매일 아침 출근이 전쟁터같았다.


누가 시원한 바람에 물 한 모금만 주면 좋겠고,  따뜻한 커피 한모금만 목구멍으로 넘기면 고통스런 메스꺼움을 이겨낼수 있을것 같았다.  

고스란히 그때 생각이 스쳐서 배를 잡고 있는 한 손도 안타까웠고  내가 더 어찌할바를 모르고 긴장해서 입이 말랐다.


그래서 그냥 떠날수가 없었다.


"저...괜찮아요? 시원한 물이나 따뜻한 커피라도... 마시고 싶어요?"


조심스레 내가 묻자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 고인 눈을 한 그녀는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어쩌면 이럴땐 아무도 없이 모른척 해줘야 그녀도 빨리 일어나 툭툭털고 갈건데 ᆢ 근처에 매점도 없고 빨리 해결해 주고 빠질 상황이 안되는게 나도 엄청 부담스러웠다.



 혹시 모를 그녀의 당혹감을 이해하기에  내가 옆에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고 작은 위로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도와주는 내 기분이 중요한게 아니라 도움을 받는 그녀의 기분이 어떤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열차가 도착해서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름 호의를 베풀만한 착하게(?) 생긴  여학생

두사람에게 그녀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한 후 그곳을 잠시 벗어났다 물 한병과 쵸코바 한개를 사들고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왔을때는 이미 그곳에 세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좀 허탈한 마음에 다리에 힘이 빠졌지만 한편으론  다행스러웠다. 나는 의자에 잠시 앉아 그녀가 기운차리고 떠난것에 안도했다.  당연히 그녀 입장에서는 내가 다시 돌아와 이것저것 챙기는게 더 불편했을 수 있으니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착한 여학생 두사람이 그녀를 잘 도와줘서 더 편안히 갔을 수도 있다.


"휴~ 괜찮아졌겠지ᆢ 그럼 다행이고ᆢ에구~ 다리야~! "


불과 20여분 남짓한 짧은 시간동안 겪은 일이었건만  오~ 20일은 늙어버린 기력쇠함에 사들고 온 '자유시간'을 한방에 뜯어서 한입 베어물었다.  물병도 열어 한모금 마셨다.

달달하고 시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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