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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이모 Dec 30. 2021

내 마음속 나무

트리인마인드(Tree in mind) 예술치료연구소 특강을 듣고

손기정 문화 도서관 개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2월 1일에 시작해서 수요일마다 2시간씩 4회 진행된다는  '나만의 힐링 시간: 그림으로 질문하는 내 마음 이야기' 포스터.   마음을 색으로 그림으로 표현해 보는 미술치료프로그램 체험.  보통 8 - 12주를 진행하는데 개관 특별 프로그램으로 4주간 선착순 인근 주민의 신청을 받아 무료로 진행.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고 또 혹 내 마음속의 크고 작은 상처들이 드러날까 혹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모르는 단점이 또(?) 밝혀 지기라도 할까 봐 조금은 방어적인 태도로 참여를 결정했다.


12월 첫 수요일.  첫 강의에는 30분 지각, 소개도 못 듣고... 어쨌든 백지를 구기거나 잘라서 자신을 표현하는 첫 활동은 못하고 활동의 결과에 대한 각자의 이유만 들었다.  다음 활동은 빈 도화지에 자신의 오늘 기분을 색과 형태로 그리는 것. 생각나는 대로 5분 정도 그렸다.  그리고 그 그림을 옆사람과 바꾸어 완성하라는 예상하지 못한 과제!  처음 보는 사람의 그림에 내가 내 마음 가는 데로 무언가 집어넣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강사님의 리드로 참가자들이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신의 기분은 어떤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었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빈 곳을 채울 수 있었다.  내가 완성하도록 받은 그림은 오른쪽 위에 둥글둥글한 스프링 같은 선들이 모여 완성된 아름다운 나무 한그루.  아름답지만 면의 가운데가 아닌 한쪽 구석에 있고 또 조금은 바람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 커다란 통 유리창을 만들고 나무는 바깥에 그리고 창 안쪽에는 테이블과 따스한 차 한잔 그리고 왼쪽 옆에 그랜드 피아노를 삐쭉삐쭉 그렸다.   그림의 주인이 나무는 감상하면서 집 안에서 차 한잔과 음악의 여유를 느끼면 좋겠다고 느껴서였다.  


그리고 서로 그림을 바꾸어 보았을 때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기쁨에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먼저 그린 반쪽 그림은 오늘 본 예쁜 구름이 있는 하늘.   나의 그림을 완성시키신 수강자는 미술을 전공한 분인데 구름 아래서 쉬고 있는 편안한 내 모습을 그려 주었다. 기분 좋은 산들바람에 풀들이 약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누워있고, 그위에 팔베개를 하고 풀밭에서 쉬는 모습.  머리카락도 바람 방향대로 기분 좋게 날리고 그 아래 진짜 우리 집 개랑 닮은 작은 개가 꼬리를 흔들고 앉아 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어찌나 신기하고 좋았던지!  다행히 음악과 차를 좋아하는 옆의 참가자 분도 내가 완성해 드린 부분을 싫어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12월의 첫날 첫 수업. 귀갓길에 참가자 대부분이 근처 이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다음 수업을 기약했다.



12월 둘째 주.  두 번째 수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화이트보드에 적어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슬픔, 기쁨, 행복, 사랑, 혼란스러움, 우울, 미운, 분노, 걱정, 불안 등 여러 감정의 이름들이 하나 둘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왔고 강사님의 손에 의해 화이트보드에 적혔다.  강사님은 그 감정들을 다시 6가지로 묶었다.  1). 화, 분노, 짜증. 2) 슬픔, 우울. 3) 걱정, 불안, 불평.  4) 편안함.  5) 설렘.  그리고 6) 기쁨, 행복.    종이가 6장씩 주어졌고 각 감정을 생각나는 대로 그려보는 것이 오늘의 활동.    수강자들이 완성한 6가지 감정 그림은 일렬로 화이트보드에 붙여졌고 나는 그림들을 보며 정말 너무도 놀랐다.   단어로는 한 가지인데 그림으로는 이렇게 다르구나.  하물며 사람들의 진짜 감정은 얼마나 그 깊이와 넓이와 떨림이 다를까.  그런 생각을 하니 내가 무엇인가 의사소통을 하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내 말을 끝냈으니 당연히 듣는 사람은 이해를 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을 수 있는지... 늘 소통이 어려운 나에게 이 감정표현 그림 활동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수업.  처음에 10명 이상이 신청했는데 오늘은 4명이 전부.  각자 살아온 길은 다르지만 동네가 비슷해서인지 경험과 느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어쩐지 공통분모가 많은 것 같고 적은 인원이 함께 하니 더욱 심도 있게 들으며 말하며 '나만의 힐링 시간'이 돼가는 것 같았다.  오늘의 활동은 조금은 민망할 수도 있는데..  이번에도 2인 1조가 되어 투명한 책받침 같은 OHP 필름을 상대방의 얼굴에 대고 마커 팬 등을 이용하여 눈코입 머리카락 등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그렇게 쳐다보는 것도 요즈음 같은 코로나 시대에 참 불편한 일이고 남의 얼굴에 A4 사이즈 투명 필름을 대는 것도 조심스럽고 또 얼굴을 그리려면 필름이 자꾸 욺직여서 삐뚤빼뚤 정말 난감하고 민망하다.  탁본도 아니고 이거 뭐지....


시침 뚝 때고 쓱쓱 그려 나갔고 내 얼굴에 OHP 필름이 올라올 때도 눈을 조금 아래로 하고 모른 척 잘 지나갔다.   그런데 최종 과제는 상대가 내 얼굴에 필름을 대고  그린 내 얼굴 그림을 내가 완성하는 것!  마음대로 덧칠을 해도 된다는 강사님 말씀에 머리도 무지개 색으로 곱슬 곱슬 길게 하고 눈두덩이에 쉐도우도 칠하고 입술도 꼬리를 많이 올렸다.  너무 여러 가지 색깔을 써서 좀 난해 하긴 해도 아까 보다 밝아진 것은 확실해서 나도 앞으로 내 얼굴 밝게 잘 꾸미고 다녀야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건너편에 앉은 두 분의 자화상은 한분은 블랙 & 핑크로 다른 한분은 입고 오신 노란 상의와 주황빛이 도는 갈색 머릿결이 잘 표현되어 두 분의 친분이 오래되어서인지 정말 한 사람이 그린 것 같고 참 보기가 좋아 신기했다.


마지막 수업.  나이테를 그리는 수업.  아주 아기 때부터 시작해서 인생의 굵직한 선을 그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을 나무 나이테처럼 그려보는 것.  돌복을 입고 있는 나들 둘러싸고 기뻐하는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 언니, 오빠들의 표정이 생생한, 나의 실제 기억은 없지만 사진으로 당시의 공기까지 느껴지는 나의 첫 번째 생일이 내 그림 나이테 가장 중심에 왔고 학교 취업 결혼 육아 등 인생의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리며 다양한 선들을 그려 나가니 재미있는 나만의 나무, 나만의 나이테가 되었다.   각자 그린 나이테 그림을 들고 어떤 시절엔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이런 색으로, 선으로 표현했다고 나누는 시간. 살고 있는 위치가 비슷해서인지 남산, 손기정 체육공원의 나무들, 강릉, 여행,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에든버러, 일본, 부산 등등의 장소와 어머니와의 추억, 애증, 가족 간의 갈등과 또 행복한 순간들, 보람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동안 꼭 나의 이야기인것처럼 공감이되었다.


30분 정도를 남겨 두고 강사님은 카드처럼 생긴 반으로 접힌 하얀 종이를 한 장씩 주시고 거기에 나무를 그려보라고 했다.  나이테를 그렸으니 나무가 있어야지.  나도 평소에 나무를 보는 걸 좋아해서 사진도 많이 찍고 지금 딱 떠오르는 나무를 어설프게나마 표현했다.   나무 그림이 완성되고 강사님은 그 옆에 나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보라고 했다.   어렵지 않게 나무에게 할 말이 생각났고 적어나갔다.  나무야.  고마워.  사랑해.  난 네가 참 좋아.  기특해!!


강사님은 이제 작별 대신 참가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OO야, OO 해"라고 듣고 싶은 말을 이름을 부르며 해주자고 했다.  나는 "OO야, 기특해"라고 해 달라고 했다.  여러 명이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니 뭔가 뭉클.  뺨이 따뜻해졌다.  "OO야, 참 예쁘다"라고 해달라는 분이 두 분이나 있어서 누구에게든 예쁘다는 말을 더 자주 해야겠다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오늘은 12월의 마지막 수요일.  지나주에 종강을 하였는데도 수요일이 되니 수업을 진행하신 강사님과 함께 참여한 수강생들이 잘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마음으로 지난 4주간의 수업을 정리하니 내 마음의 나무를 보게 된 지난 4번의 강의가 참 감사하다.  내가 잊고 있던 감정과 마음을 서툴지만 알록달록 직접 그려보면서 내 눈으로 보니 정리도 되고 이해도 된다.   유능한 강사님과 따뜻한 이웃 수강생들의 인생 이야기를 함께 들으며 내 마음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이 내게는 힐링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슬픔, 편안함, 분노, 설렘'과 같은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을 때 똑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고 모두 다르게 표현한 것을 보고 놀랐지만 또 그 이유를 들어보면 이해가 갔고 그 그림뿐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게 된 거 같아 친근감이 생겼다.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삼라만상의 이야기를 다 듣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과 나의 가족들, 특히 이해와 지원을 갈구하며 나타내는 언어, 또는 비언어적인 표현들을 잘 들어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보고 오래 보며 예쁘다, 멋지다, 사랑스럽다, 자랑스럽다, 잘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만의 힐링 시간: 그림으로 질문하는 내 마음 이야기'를 통해 '나무'를 그릴 때 10명이면 10개의 다른 그림이 나오듯 '분노' '편안함' '설렘' 같은 감정의 그림도 더욱 다양한 모양과 색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았다.  내 마음도 다른 사람의 마음도 단편적인 언어로 완벽하게 표현되고 전달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배운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소통이 언제나 어려웠는데 그건 나만의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여유와 노력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감정에 따라 그린 그림 위에 다른 사람의 느낌이 더해져서 완성된 생애최초 콜레보레이션 아트.  옆사람이 내 얼굴에 OHP 필름을 올리고 매직팬으로 직접 그려준 것을 내가 다시 완성한 자화상. 그리고 인생 나이테와 나무 그림까지 정말 나만의 힐링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통해 나 자신도 내 주위도 가꾸어 가다 보면 푸른 잎과 아름다운 꽃 그리고 귀한 열매가 주렁주렁 맺힐 날도 꼭 오리라.


뿌리 깊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용비어천가의 나무처럼,  시냇가에 심기어 시절을 쫓아 열매를 맺는 시편의 나무처럼 풍성하고도 푸르를 내 마음속 나무 한그루에게 앞으로 내가 자주 해주고 또 남들도 자주 해주있으면 싶은 말.


"기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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