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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짓제주 Nov 13. 2018

감귤창고를 업사이클링한 문화예술창고 ‘몬딱’

열린 문화예술 공간을 꿈꾸다

#1. 제주살이의 시작


2016년 나는 사진작가로서 제주의 숨은 보물 ‘제주흑우’에 매료되었다. 서울에서 제주를 오가는 한동안의 작업 끝에 서울에 이어 제주에서 전시회도 가졌는데, 그 일은 동시에 나를 제주살이로 이끈 계기가 되었다.


‘제주흑우’는 오랜 세월 제주민의 삶과 동반하면서, 한때 나라의 제물이나 진상품으로 일찍이 그 품질을 인정받기도 한, 우리나라의 귀한 검은 소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수탈되어 일본 ‘와규’의 원조가 되어 버린 가슴 아픈 역사도 지니고 있다. 나는 2016년 제주흑우를 주제로 사진 작업과 글쓰기를 함께하고, 2017년에는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서 거주작가로 한 해를 보냈다.


제주흑우에 이끌려 제주에서 일 년여 살다가, 나는 점차 제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어느덧 제주에 정착할 궁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내가 제주에서 땅을 구해 살아갈 길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비어 있는 마을 감귤창고 하나를 빌려 작업실 겸 숙소로 사용하기로 했는데, 그마저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의 감귤 선과장으로 사용되다가 개인 소유의 건축 자재 창고로 쓰이고 있는 것을 임차할 수 있었다. 1986년도에 지어진 이 창고는 70평 넓이, 6m 높이에 목조 천정을 가진, 넓고 튼튼하게 잘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래, 이곳에서 제주살이를 시작해 보자!”

“이곳을 작업실 겸 갤러리,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



#2. 감귤창고를 업사이클링하다


나는 오랜 역사와 내력을 지닌 감귤창고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거기에 새로운 가치를 입히는 ‘업사이클링(upcycling)’에 주안점을 두고 공간을 고치고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존과 역사에도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창고에 방치된 건축물 폐자재를 다 들어냈다. 그러나 건물 내부의 오래된 구조물과 1986년 개관 때부터 벽에 걸린 낡은 태극기 액자는 그대로 두었다. 창고 바닥은 젊은 작가와 함께 직접 에폭시 페인트를 새로 바르고, 회색 시멘트벽은 말끔히 물청소를 하였다. 커다란 철문의 녹은 벗겨 내면서 거친 느낌은 그대로 살려 두었다.

다음은 정크아트(Junk Art)의 구현이었다. 창고 철문은 자석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소품들을 갖다 붙이는 방식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사용하지 않는 목재 감귤 상자로 선반과 책꽂이를 만들고, 해변에서 주어 온 낡은 의자와 바싹 마른 나무로 한쪽 벽을 장식했다. 통대나무를 이용하여 실내 조명등을 만들고, 폐건축자재 팔레트와 전선 케이블로 테이블을 만들었다. 창고의 명물은 실내에 전시해 놓은 경운기트럭 한 대와 작은 목선 한 척이다.


제주에는 아직도 경운기와 폐트럭을 개조해 만든 농사용 경운기트럭이 가끔 눈에 띈다. 그런데 나는 이 경운기트럭의 역사성에 주목한다. 소가 농사를 돕는 일소의 지위을 잃게 된 것은 전적으로 농기계의 발달 때문이었다. 특히 경운기는 밭갈이와 운반의 획기적인 도구가 되어 일소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제주의 감귤 농사에서도 다를 것은 없었다.


나는 경운기트럭 하나를 수소문 끝에 어느 폐차장에서 수십만 원을 주고 사들였다. 녹을 벗기고, 페인트를 칠하고, 시동도 걸리도록 수리해서 창고 안에 전시해 두었다. 얼마 전에는 지인이 조그마한 낡은 목선 한 척을 기증하여 이를 경운기트럭 옆에 전시하였다. 이따금 마을 어르신들이 쟁기와 같은 옛 농기구나 생활용품을 가져다주시기도 한다. 제주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물건들이 실내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창고 작업은 갤러리 만들기로 이어져, 천정에 조명을 설치하고 벽면에 ‘제주흑우’ 작품사진을 걸었다. 업사이클링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는 이 공간에 거주하기를 10개월째, 얼마 전부터는 제주흑우 ‘그리기’를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나를 제주로 붙든 것은 확실히 제주의 검은 소가 아닐까 싶다.



#3. 열린 문화예술 공간을 꿈꾸다


“멋진 공간이네요, 여기서 커피를 파세요.”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곳을 커피숍이 아니라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이곳이 ‘누구든지 찾아와서 함께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공간’이 되기를 꿈꾼다. 그런 의미에서 업사이클링된 이 공간에 ‘문화예술창고 몬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주어 ‘몬딱’은 표준어로 ‘모두, 다, 몽땅’이라는 뜻이다.

‘문화예술창고 몬딱‘의 하드웨어가 어느 정도 완성되자 나는 바로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감산마을 주민과 부녀회를 대상으로 ’스마트폰 사진, 미술, 커피‘ 강좌 등을 진행했다. 이어 올 상반기에는 그간 제주살이에서 친분이 생긴 여러 분야의 예술가, 전문가들과 함께 ’기타, 목공, 도예‘ 등의 문화예술 강좌를 운영하였다.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좋았다. 서귀포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그러나 몇몇 지인들의 재능나눔과 착한 수강료로는 창고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여름이 되자 에어컨도 없는 큰 창고는 무더위에 결국 각종 프로그램을 중단해야만 했다. 일개인이 만들어 가는 문화예술 콘텐츠란 절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이제 ‘문화예술창고 몬딱’은 제주의 원주민과 이주민들이 서로 만나 소통하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덕분에 제주 지역 TV 방송에 내가 몇 차례 출연할 기회가 있었고, ‘문화예술창고 몬딱’도 지역에 소개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이제 창고를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생기고 있다. ‘문화예술창고 몬딱’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4. ‘찾아가는 갤러리트럭’이 제주를 달린다


나에게는 퍽 이색적인 트럭이 한 대 있다. 2013년에 푸드트럭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야외 전시용 트럭이다. 제주살이 전 육지에서, 나는 1t 중고 트럭을 탑차 형태로 개조하여 차량 겉면에다 스마트폰 작품사진을 부착하고 길거리 전시를 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찾아가는 갤러리’라 이름했다.


“사진 판매합니까?”

“아니요. 전시용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작품사진 전시입니다!”    

“멋지기는 한데, 생활은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다. 육지에서는 주중에 생업에 종사하고, 주말에 한 번씩 트럭을 가지고 출사해서 스마트폰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 전시를 하곤 했는데, 사람들은 종종 나를 전국을 유랑하고 있는 풍류객쯤으로나 보곤 하는 것이었다. 


그 갤러리트럭이 이제 제주도에서 움직이고 있다. 제주도에서 일주일에 한 차례씩 마을, 관광지, 요양원 등을 찾아가 스마트폰 작품사진을 전시한다. 나는 관람객에게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보여 주고, 그들과 공유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스마트폰 사진작가로서 스마트폰 카메라 촬영 팁도 알려 준다. 이 갤러리 기행은 다음(Daum) 카카오의 ‘브런치’에 연재도 하고 있다.



#5. ‘문화예술창고 몬딱’과 작가 김민수


나는 요즘 ‘문화예술창고 몬딱’에서 제주흑우 그림 작업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였으나 졸업 후 수십 년 동안을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생활하였다. 사실 스마트폰 사진도 훗날 나이가 들면 그림 그리기에 활용해 보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제주살이를 하면서 이제 나는 오랜 바람이었던 그림 그리기를 비로소 시작한다.



올 12월 ‘제주흑우 목탄화’ 개인전을 준비하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통에 아침 시간에는 갤러리트럭 전시 행사를 글로 정리하고, 빛이 좋은 오후에는 스마트폰 사진도 찍고, 일주일에 한 차례는 날씨 좋은 날을 골라 갤러리트럭을 끌고 길거리로 나선다. 


나는 돈 버는 재주는 그다지 없지만, 무엇인가를 만들어 가는 재주는 있다. 이제는 사람을 만나 친구를 만들고, 형, 동생을 만들어 간다. 나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 지역과 지역을 잇고, 문화예술을 함께 나누고 즐기는 공간을 꿈꾼다. ‘잇다_나누다_즐기다’는 ‘문화예술창고 몬딱’의 슬로건이다. ‘문화예술창고 몬딱’은 다 함께 문화예술을 만들어 가며 찾아오는, 찾아가는 갤러리이자 열린 공간이다.



김민수 작가

www.kimminso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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