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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라쥬 Jul 02. 2020

삼시 세 끼,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요리도 미션처럼


보글대며 김치찌개가 끓는다.

바로 옆 화구에선 프라이팬 안의 계란말이가 반쯤 말려져 익어간다. 아래쪽 오븐레인지에서는 위-잉대며 고등어가 익어간다. 싱크대 한 편의 큰 볼에는 데쳐내야 할 브로콜리가, 옆의 작은 접시에서는 칼집 낸 소시지가 대기 중이다. 오늘의 저녁 메뉴다.


매일 아침, 고양이가 울고 갈 세수로 잠 기운을 떨쳐내고 부엌으로 달려가는 생활 10년 차. 그럼에도 서툰 나의 칼질은 오늘도 나의 발목을 잡는다. 나의 바쁜 마음과는 별개로 시간은 끈기 있게 퀘스트를 완료해가고 나만 점점 뒤로 물려진다.


회사에 다닐 때의 나는 제법 빨랐던 것 같은데... 제법 그럴듯한 멀티가 가능했고, 업무처리 속도도 다른 이들에 비해 빠른 편에 속했는데... 그것도,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전제로 한 속도에서.


물론 지금도 멀티는 진행 중이다. 쌀을 깨끗이 씻어 밥솥에 넣고 취사를 한다. 동시에 가스레인지에 국을 끓이면서 시사 라디오를 듣는다. 또한, 그와 동시에 프라이팬을 꺼내 들고 간단한 계란 프라이나 닭가슴살을 구워낸다. 그런데.. 맛은.. 좀. 그렇다.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부터 나는 집안일엔 영 꽝이었구나. 아니 관심이 없었던가.


부모님은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이담에 돈 많이 벌면 돼. 그래서 집안일해주는 사람 두고 살면 되지 뭐. 이런 거 못해도 돼.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그래 괜찮다. 다만, 생각만큼 돈을 많이 벌지 못해 집안일을 직접 하고 있다는 건 조금 안 괜찮지만.


벌써 십 년이 넘었다.

맞벌이든 전업이든, 어쨌든 주부라는 타이틀을 추가로 장착한 것이 말이다. 결혼할 무렵 남편은 말했다.


"당신은 집안일 싫어하잖아. 나는 요리하고 청소하는 게 싫지는 않으니까 내가 하면 되지. 걱정 마."


 그 말을 너무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고 정말 심각하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흠..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내 품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음식에 있어 그리 예민하지 않은 편이란 거다. 물론 처음 이유식을 시작하던 시절에는 약간의 음식 거부가 있었지만... 녀석들은 세상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 건지 나에 대한 적응력이 좋은 건지, 무튼 이후로는 어떠한 음식을 만들어 내어놓든 만사 '감사합니다'다.  심지어 정체불명의 음식을 만들어낸 나조차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에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비린내나 풋내 등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순간들이 올 때에도 녀석들은 와구와구 내 몫까지 맛있게 먹어주는 편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지 않은가. 도무지 스킬이라고는 늘지 않는 나의 요리실력을 감안해서 먹성 좋은 녀석들을 보내주셨으니 말이다.


무튼, 그러한 연유로 오늘도 나는 저녁 미션을 수행하는 중이다. 퀘스트 결과는 미리 알렸으되, 결과물의 퀄리티는.... 알려고 들지 마라. 세상엔 모르는 게 약인 경우가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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