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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라쥬 Oct 30. 2020

그들도 나이를 먹는다

가전제품의 반란

 세탁물을 집어넣고 드럼세탁기의 문을 닫으려는 순간, 으드득.. 대며  세탁기의 반항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내 '툭'하며 스스로 사망선고를 했다. 순간, 멍해진 나는 잠시 그 자리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를 어쩐다'


 마음 한편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절망감과 함께 녀석을 보는 나의 시선에 애틋함이 실린다.

이후 세탁기 문짝은 결국 나에 대한 연의 끈을 놓아버렸고, 이제는 집안 어느 곳에서도 녀석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결혼 10년 차.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노련미를 더하던 녀석들이 언제부턴가 하나씩 내게 이별을 고하며 떠나간다.

외국산 천연가죽으로 한껏 멋을 , 당시에는 드물던 패밀리 사이즈의 거대미를 자랑하던 고급 프레임의 안방 침대. 그녀는 어느  한껏 들떠있던 남편의 육중한 체구를 견디지 못한  회복 불가능한 부상을 입어 실려나가 버렸다.  나와 가족들의  없는 허기를 달래주던 새침한 목소리의 압력밥솥은 어느 순간부터 화가 나도 열기를 뿜지 않았다. 또한, 이따금 나의 머리를 말려주던 남편의 손에 들려있던 작은 드라이기는   전부터 조금씩 이상 증세가 나타나더니 어느 날부턴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손바닥의 단백질이라도 익혀버리겠다는  뜨거운 열기와 구수한 향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고된 노동에 지친 탓인지 아니면 시답잖은 금슬자랑에 샘이  것인지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결국 그들을 내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동료를 잃은 좌절과 슬픔 때문이었을까.  곳곳에 자리한 소중한 나의 동료들은 그렇게 평온함을 갈구하며  지내는 듯싶었는데.. 며칠  세탁기로부터 시작된 녀석들의 반란이 진중하게 거실을 지켜내던 소파로 옮겨가며 나는 다시  마음이 심란해져 온다.


 그럼에도. 하릴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 능력이 내게는 없거니와, 순리를 따라 떠나고자 하는 녀석들을 붙잡을 명분 또한 없다. 그렇기에 오늘도 결국 내가   있는 것이라곤, 메모지  장을 가져와 녀석들에 대한 서운함과 배신감을 달래 보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아. 당분간은 금주하고자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 말이오. 십여 년을 함께한 친구를 떠나보낸 실연의 아픔을 내 어찌 맨 정신으로 감당할 수 있으리오. 하는 수가 없구려. 오늘 밤도 나는 평생 친구인 주군을 소환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나의 아쉬움과 미련을 저 멀리 떨쳐버려야겠소. 그러니 오늘 밤도 당신이 조금만 이해해주시구려. 남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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