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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is Chung Aug 16. 2021

210814 레알 마드리드 vs 알라베스

절망적인 상황에서 발견한가능성

레알 마드리드는 지단 감독이 사임하고 라모스와 바란이 모두 이적한 채로 시즌을 시작하게 됩니다. 알라바 영입을 끝으로 아무런 영입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외데가르드의 이적설마저 나오는 상황입니다. 또한 토니 크로스 역시 부상을 당하여,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개막전을 치루게 됩니다.


안첼로티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 있는 선수 자원을 잘 살려 팀의 체계를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고 봅니다. 지단 감독이 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좀 더 다채로운 공격을 할 수 있는 팀으로 바꿔놓은 듯 보이며, 그 변화를 위주로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선발 라인업.


선발 라인업은 이러합니다. 아자르와 베일이라는 유리몸들이 동시에 출격하고, 크로스를 대신해 모드리치가 출장합니다. 뮌헨에서 센터백을 맡았던 알라바가 자신의 본업인 왼쪽 풀백으로 들어오고, 나초-밀리탕 센터백 라인을 구성합니다. 둘은 챔피언스리그에서 호흡을 맞춘 적 있고, 발이 빠른 센터백이기에 공격을 중시하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선수들입니다.











지단의 선수 활용 vs 안첼로티의 선수 활용


시작하기에 앞서, 두 감독의 성향 차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지단 감독은 밸런스를 극단적으로 지향하는 감독입니다. 좌우 공격 인원을 일정하게 유지하길 원하고, 공격을 위해 수비를 희생하는 전략을 택하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여러 선수의 복잡한 협업으로 부족한 전술을 보완하기 보다는, 각 선수가 자신의 영역에서는 1:1에서 절대 지지 않는 스쿼드를 구성하고, 선수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형태로 운영했습니다.


아자르, 베일, 이스코, 멘디 등 지단 감독이 원했던 선수들은 그런 성향이 있었습니다.


반면, 안첼로티 감독은 장점이 확실한 선수를 배치하고, 단점을 줄일 수 있는 역할을 붙여주는 감독입니다. 14/15 시즌 레알마드리드가 그랬습니다. 파워와 돌파력이 줄어드는 호날두의 똑똑한 움직임을 살려 선수들을 이어주는 역할과 득점에만 집중하게 했습니다. 크로스, 모드리치, 하메스, 마르셀로 등 빠르지 않지만 공을 빼앗기지 않고 패스 주는 법을 아는 선수를 활용하기 위해 빠른 역습을 포기하고, 후방에서 공을 뺏어 천천히 전진하는 전술을 택했습니다.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지 않으면서 낮아지는 수비력은 전방압박을 과감히 포기하고, 발이 빠르고 많이 움직이는 수비수들을 활용했습니다.


특출난 장점이 없는 선수들은 안첼로티 감독 밑에서 빛을 보기 어렵습니다. 아센시오, 이스코, 마리아노 같은 선수들이 포함이 되겠죠. 전성기의 아르투로 비달 정도만이 그가 원하는 수준의 6각형 플레이어일 뿐입니다.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라는 확실한 옵션이 있는 비니시우스 같은 선수들은 쓰임새가 있을거라 봅니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었는가?


"그래서 구체적으로 변한게 뭔데?"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런 핵심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 공격진의 역할 변화

2. 비대칭적인 공격 진형


이전 감독의 성향상 기대할 수 없었던 방향의 변화고, 불안요소가 남아있지만 이번 경기로 가능성 또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 공격진의 역할 변화


아자르, 베일의 동선과 역할이 많이 조정되었습니다. 지단 감독 시절에 두 선수가 요구받은 역할은 공격의 모든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공을 운반하고, 드리블로 수비 라인을 돌파하고, 적절한 대상을 찾아 크로스나 패스를 주거나, 아니면 자신이 스스로 마무리하는 과정까지, 모든 과정을 해낼 줄 알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베일은 예전의 속도가 없으며, 아자르는 예전만큼 돌파를 해낼 수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단 감독은 이런 선수를 명단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운영을 했지만, 안첼로티 감독은 둘을 활용하기 위해 특수한 역할을 줍니다.


- 아자르는 왼쪽 사이드-중앙을 오가며 짧은 패스를 받고, 뿌려주는 역할

- 베일은 오른쪽에서 대기하고, 기회가 왔을때 패널티 박스로 침투하거나 슈팅을 적극적으로 사용

+ 벤제마는 왼쪽으로 이동해 아자르 - 모드리치 - 알라바와 패스를 받고 움직이며 패널티 박스로 진입


이런 역할을 준 의도는 왼쪽에서 수적 우위를 만들어 상대 문 앞까지 공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축구는 공격이 유리한 게임입니다. 공격과 수비가 동일한 기술 수준을 가질 때, 수비는 항상 공격보다 1명이 많아야 방어가 가능합니다. 즉, 패스 가능한 범위에서, 국지적인 수적 우위를 가져가면 공을 앞으로 전진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자르는 드리블을 자제하고, 받은 공을 지켜내 동료들에게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아자르는 장기부상으로 폭발적인 드리블 돌파를 당장 기대할 수 없지만, 플레이메이커를 오래 해온만큼 공을 전달하는 스킬이 있고, 공을 지켜내는 능력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체력이 나쁜 선수는 아니기에 경기장을 오가며 계속해서 국지적인 수적 우위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이스코의 상위호환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베일의 유일한 무기. 파워

베일은 스피드는 잃어버렸지만 위치선정과 킥력은 좋은 선수입니다. 킥이 좋다는 것은 먼 거리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다는 뜻이고, 상대 입장에서는 베일이 어디 있든 공이 가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반에서는 철저하게 오른쪽에 위치하며 상대 수비가 자기를 마크하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오른쪽에 수비를 투입하는 것의 기회비용으로, 알라베스는 레알 마드리드의 왼쪽을 막을 인원을 1명 잃었습니다.


이 둘의 시너지로 인해 레알 마드리드는 왼쪽에서 항상 수적 우위를 쉽게 가져갔고, 점유율은 비슷할지라도 대부분의 시간을 상대 진영에서 보내며 계속 공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2. 비대칭적인 공격 진형



왼쪽만 열심히 파고든 레알 마드리드


철저하게 왼쪽에서 수적 우위를 가져가고, 왼쪽으로만 계속 공격을 했습니다. 지단 감독은 이런 방향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안첼로티 감독은 한쪽에 선수를 많이 투입해 확실한 공격루트를 만들고 상대가 이걸 의식하는 동안 반대편에서 위험한 찬스를 만들어내는 패턴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찬스는 많이 나왔지만 골이 나오지 않자, 안첼로티 감독은 후반 시작하고 승부수를 던집니다. 오른쪽 풀백인 바스케스를 윙어처럼 공격적으로 플레이할 것을 주문하고, 베일을 왼쪽으로 투입했습니다. 더 극단적인 비대칭 공격을 한 셈입니다. 수적 우위로 볼을 안전하게 전달하고, 왼발잡이인 베일이 만드는 좋은 크로스를 벤제마, 아자르, 바스케스에게 전달해 골을 넣기 위해서입니다.


압박을 받지 않는 바스케스에게 공이 전달되어 위험한 찬스를 만들었다

자칫 오른쪽의 수비 숫자가 줄어 상대에게 큰 찬스를 내줄 수도 있었지만, 활동 영역이 넓고 오른쪽 윙을 겸할 수 있는 발베르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단발성 전술이었습니다. 득점 이후 베일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안첼로티 감독은 바스케스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스케스가 오른쪽 윙과 풀백을 동시에 맡고, 베일은 중앙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공격 시의 수적 우위를 강화하는 셈입니다. 이제는 골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알라베스가 골을 넣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오면 한 골 더 먹을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 인원이 늘어날수록 알라베스도 공격 인원을 줄이기는 힘들다는 것,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발베르데와 밀리탕, 나초, 카세미루는 활동범위가 넓고 수비기술이 좋아 알라베스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계산이었습니다.


공격 인원을 추가함으로서 벤제마에게 가는 압박이 줄어들고, 위험한 찬스를 몇 차례 만들어내게 됩니다.








결론


나초의 추가골, 그리고 발베르데의 돌파로 벤제마의 추가골이 터지며 승기를 잡았지만, 이 경기의 의의는 전성기를 벗어난 선수들로도 잘 작동하는 팀을 만들었다는데 있습니다. 장점을 활용하고, 단점은 숨길 수 있는 전술을 만들 수 있는 감독을 데려왔고, 긍정적인 신호가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요소가 없는건 아닙니다.


첫째는 제공권입니다. 알라베스의 롱패스에 위험한 슈팅 찬스가 수차례 나왔습니다. 수비 인원을 줄이면서 나온 리스크가 꽤 컸습니다. 피지컬이 부족한 선수들은 아닌데도, 제공권에서 밀리며 위험한 찬스를 내주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키퍼의 다이렉트 패스를 받은 공격수와 풀백의 주고받는 원투패스로 위험찬스가 만들어진 상황



둘째는 수비 위치입니다. 압박 전술의 효과가 크지 않던 지단 감독에 비해 전방압박의 볼 탈취 효과는 좋았으나, 필요 이상의 인원이 골키퍼 근처에 있거나, 내려와서 상대 미드필더를 묶어야 할 선수가 내려오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대신 아자르가 수비에 열심히 가담하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체력입니다. 로페테기 감독은 늙은 선수단을 고려하지 않고, 전방 압박 축구를 구사했습니다. 전술의 모양새는 좋아 시즌 초 대승을 거두는 장면들이 많이 나왔지만, 감당할 수 없는 활동량을 요구받은 선수단은 이 전술을 더 이상 해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거기다 프리시즌 체력훈련마저 줄여버리며 스스로 팀의 체력을 낮춰버렸습니다. 그 결과가 엘클라시코에서의 1-5 대패입니다.


안첼로티 감독은 많이 뛰고 많이 움직이는 축구를 하고 있지만,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의 나이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강력한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로테이션을 잘 하지 않고 플랜 B가 없었던 안첼로티 감독의 성향상 이 문제가 터져나올 가능성은 꽤 높다고 봅니다. 비니시우스, 호드리구, 그리고 아센시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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