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싸고 덜 닦은 느낌의 경기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를 먹고 삽니다.
이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최악의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2무를 기록하고, 베티스 전에는 심지어 1골도 넣지 못해 패배를 했습니다. 벤제마가 부상당하고, 왼쪽 풀백 2명 모두 병원에 간 터라,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무득점 팀 알라베스를 상대로 경기를 치루게 됩니다.
조직력도 맞지 않았고, 우리 팀의 방향성이 어떤지 모르겠다는 평이 주류였습니다. 다만 저는 여전히 경기력 자체는 나쁘진 않으나, 결정적인 수비 삽질 몇 번과 부진한 골결정력이 큰 그림을 찢는 모습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선발 라인업은 이러합니다. 모드리치 크로스를 쉬게 하는 대신, 이스코와 세바요스가 선발로 나섭니다. 카세미루를 투입한 것은 팀 중심이 앞으로 쏠려도 역습 차단을 해줄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이고요. 공격진으로 아센시오, 호날두, 그리고 바스케스가 투입되었습니다. 도르트문트 전을 대비한 로테이션 차원에서 베일을 쉬게 한 것으로 보이며, 지단 감독은 호톱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높은 점유율, 3배가 조금 안되는 슈팅, 그리고 공 자체가 레알 마드리드 진영에서 거의 돌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코트 경기에 가까운 수준으로 공을 잡고 신나게 때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인 진행은 그리 되었다는 이야기고, 이제 자세한 내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단의 전술은 크로스밖에 없다"라는 말을 많이들 하시는데, 저는 이게 편견이라고 봅니다. 감독이 풀백의 높은 크로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사실인데, 사이드 자원이 골문 근처까지 들어가서 짧은 패스를 날린다던지, 역습을 활용한다던지, 혹은 어그로를 끌다 다른 선수에게 주고 빠른 슈팅으로 연결하던지 등등.. 공격 패턴은 굉장히 다양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현 레알 마드리드는 어떤 팀을 상대로도 한 가지 패턴만 나오지 않아요. 오히려 지난 시즌을 거치며 제공권을 활용하는 능력도 올라갔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는만큼 골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고요.
초반 알라베스가 강하게 몰아붙이는 듯 했으나, 호날두 -> 아센시오로 빠르게 사이드를 돌파한 컷백으로 첫 골을 따냅니다. 세바요스가 공을 받는 과정에서 부딪히며 공을 빼앗기나 싶었는데, 다행히 때리기 좋은 위치로 공이 가고, 그걸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합니다.
세바요스를 제대로 본건 이번 경기가 처음인데, 공에 대한 집중력이 강한 선수라고 느껴집니다. 체력과 활동량이 단점으로 꼽히는 선수라고 알고 있는데, 판단력과 민첩성이 뛰어난 선수라 수비상황에서도 주요 역습기회를 끊어냈고요. 앞으로도 나오면 계속 1인분은 해주지 않을까 합니다.
10분 뒤부터 알라베스는 경기 내내 수세에 몰립니다. 특히 레프트에서 마드리드가 포지션에 변화를 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보면 아센시오가 오히려 후방에 머물러 있으며, 나초가 카르바할처럼 멀리까지 진출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평소 아센시오의 스타일을 보면 의아한 선택입니다. 주력을 활용하고, 정확한 킥으로 크로스 내지는 슈팅을 직접 때리는 선수니까요. 하지만 아센시오는 기본적으로 2선에서 볼을 돌리는데 기여를 많이 하는 선수입니다. 공을 주고 받는 부분은 자기 몫을 해줄 수 있어, 아센시오가 밑으로 내려가고, 그 빈 자리를 주력/체력이 좋은 나초가 계속 전진/후퇴를 반복하며 공격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면 아센시오를 왜 밑으로 내렸을까? 답은 세바요스와 이스코를 좀 더 앞으로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이스코는 4년간 433의 3미들 자리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본인이 공격을 주도했을때 빛나는 선수이기에, 자유를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수석코치 시절부터 겪어온 지단 감독이 모를리가 없습니다.
호톱은 공간 창출은 할 수 있으나, 직접 틈을 만들어내는 포스트 플레이는 안되는 터라, 드리블로 수비를 찢을 수 있는 이스코와 세바요스를 더 공격적으로 쓰려 했습니다. 당연히, 누군가는 그 공백을 채워야 하고 보조 역할로서 볼 회전에 좀 더 보탬이 될 수 있는 아센시오를 밑으로 내리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죠. 전술은 무언가를 살리기 위해 또 다른 무언가를 버리는 과정입니다. 얻고 버리고를 반복하며 가장 득실이 높은 방법을 찾는 것이고요.
사이드는 호날두가 맡아줄 수 있으니, 이스코와 세바요스가 날뛸 수 있도록 아센시오를 자제시켜야 했습니다. 오늘 아센시오가 한게 없다는 평가는 당장 보이는 뭔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아센시오는 감독의 요구에 부합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봅니다.
이스코는 가장 많은 슈팅을 가져갔습니다. 많은 패스를 기록했고, 공격진 중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였죠. 세바요스는 이스코보다는 조금 밑에서 횡으로 벌려주는 패스를 많이 시도를 했는데, 일단 공격 들어갈 타이밍을 잘 읽고, 골문을 직접 때릴 수 있는 킥력도 갖췄다는 점에서 모드리치에게 없는 장점이 있고, 1:1능력을 더 올린다면 된다면 괴물 하나가 또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경기에서 우리 팀은 많은 찬스를 냈습니다. xG(기대 골 수)에 비해 실제 골은 적고, 알라베스의 xG는 실득점보다 낮았죠. 그러나 39분에 한번 먹히고, 후반 들어서도 결정적인 찬스가 될 뻔한 장면들이 3~4번 더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카르바할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49분의 모습을 빼면 카르바할이 그렇게 못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지금 풀로 선발을 뛰고 있고, 슈페르코파를 대비해 훈련량을 급격하게 늘렸을 것으로 보아 많이 지쳐있을 것 같습니다. 이건 기량의 문제가 아니라 체력의 문제죠.
그럼에도 오늘 오버래핑도 할만큼 했고, 눈에 띄는 실수는 없었습니다. 카르바할에게 기대하는 것이 커서 혹독한 평가가 따르는 것이지, 퍼포먼스 자체는 욕먹을만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지금은 하키미를 올려 쓸 때가 왔고, 체력회복을 어느 정도 도와줘야 하는 시기에요. 감독의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해봅니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센터백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초중반에도 그랬습니다. 넣을 거 못 넣고, 막을 거 못 막아서 전체 그림은 좋았지만 아슬아슬한 우위를 센터백 삽질로 비긴 경기가 수두룩했죠.
첫 골은 라모스가 오프사이드 라인을 잘못 읽어 일어난 실수였습니다. 거기다 바란이 들어오는 선수를 보지 않으면서 참사가 벌어진거죠.
바란은 전반 3분에 사고칠뻔 했고, 55분에 사고 한번 치고요, 75분에도 사고 또 칩니다. 특히 75분에 저지른 실수는 빅클럽 센터백이면 절대 해선 안되는 실수에요. 제가 알던 바란이 이렇게 존못이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오늘 퍼포먼스는 적어도 제가 본 경기들 중에서는 최악이었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승리 이론이 있습니다. 소위 깔때기 모델이라고 하는 것인데, 1,2단계는 알라베스 전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수비의 관점으로 봐도 찬스가 생길 확률 자체는 적게 만들고 있어요. 하지만 저 마지막 스텝, 그러니까 알라베스가 골을 넣어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그 1~2개 없는 찬스도 정말 잘 꽂아넣고 있습니다. 이건 수비수의 개인 기량의 문제라고 봅니다. 감독에게 잘못이 있다면, 문제 있는 선수를 계속 내보내고 있는 것이지, 전술의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아요.
정리하자면, 역시 지난 경기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겼습니다. 베티스전은 그러지 못했고요. 결국 감독이 변화를 줘야 하는 부분은 수비수의 정신줄을 잡고, 오늘 있던 실수를 명확히 인지하도록 훈련을 시키는 일입니다. 혹은 다른 센터백을 끌어다 써야 하는데… 바예호 투입은 언제 이뤄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