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것 사 오지 말고 그 돈이면…. 부끄럽지만 나도 이런 말을 했다
그 돈으로 더 가치 있는 것을 살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사겠는가?
예전에 다닌 회사는 잡지를 다수 발행했다. 대부분이 여성지였지만 그중에는 인테리어를 다루는 리빙
매거진이나 고급스러운 취향을 제안하는 럭셔리 매거진도 있었다. 기사는 보통 고급 브랜드의 신제품과 디자이너, 요트 투어나 미술 작품에 대해 다뤘다. 어느 날 마케팅 팀에서 럭셔리 매거진의 잠재 독자를 발굴해야 한다며, 독자를 대상으로 이런저런 설문을 진행했다. 몇 주 뒤, 설문 결과를 받아본 과장님이 충격받은 얼굴로 회의실에 들어왔다.
독자 조사에는 성별, 직업군, 대략의 수입은 물론 사는 지역도 포함되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나오기 전부터 강북과 강남의 특징을 분석한 가십 기사가 유행이었다. ‘강북은 세븐, 강남은 비’라는
말도 있었다. 당시 인기가수의 스타일을 빗댄 거였다. 아무튼 우리는 강북과 강남의 소비 취향이 얼마나 다른지 내심 궁금해했다. “남편에게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이라는 질문에 자동차, 집, 명품 등이 순위를 다퉜다. 대치동, 청담동 등지에 사는 강남 사모님들은 확실히 부동산을 선호했다. 평창동, 성북동 등의 강북 사모님들은 갤러리와 미술관을 꼽았다. “갤러리를 선물 받고 싶다니 역시 클래스가 달라.” 눈이 동그래진 우리는 수군거렸다.
“그런데 진짜 1위는 따로 있어.”
신기하게도 1순위를 기록한 선물은 사모님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다름 아닌 꽃이다. 부동산과 갤러리를 제치고 남편에게 제일 받고 싶은 선물이 꽃이라니!
그러니 앞으로 “아내의 선물은 꽃으로!”라고 말은 못 하겠다. 나 역시 꽃을 받으면 기분 좋긴 하지만
한때는 이걸 사느라 나에게 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꽃 같은 거 사 오지 말고”라는 말에는
사치품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금세 져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건 꽃을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금전적인 가치를 생명인 꽃에도 적용할 일일까? 생각해보면 꽃이 인간을 위해 기여한 일이 적지 않다. 동서고금 마음을 표현할 때 꽃을 선물한다. 구애할 때, 축하할 때, 위로할 때, 조의를 표할 때도 꽃을 건넨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꽃이 대신 전달했다. 오죽하면 사람들은 꽃말까지 붙였다. 빨간 장미는 ‘뜨겁고 열렬한 사랑’, 수선화는 ‘고결함과 신비로움’, 리시안셔스는 ‘영원한 사랑’ 등.
그런데 꽃을 선물하는 사람이 보상받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받는 사람의 웃음이다. 짧지만 환하게 번지는 그 미소를 보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계속 꽃을 사는 것이 아닐까? (핀잔은 다음에 듣더라도.)
영국의 신경과학자인 소피 스캇은 인류가 웃는 이유에 대해 ‘사회적 유대감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웃는 모습을 보고 가끔 이유도 모른 채 따라 웃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다. 웃음은 우리가 서로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전한다. 사람 사이에 흐르는 어색함이나 긴장감을 완화하고, 서로가 안전하다는 안도감을 준다.
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호감의 표현이자 애정, 상냥함, 깊은 위로다. 그래서 웃음꽃이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꽃이야말로 사람답게 살게 해주는 무엇이 아닐까.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민을 상대로 길거리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천국에 단 하나의 물건만 가져갈
수 있다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떠올렸다. “평생 모은 레코드 판이요.” “어머니의
유품이요.” “제가 아끼는 카메라요.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요.” 무엇이든 자유롭게 답할 수
있다. 지나가다 붙잡힌 어떤 남자는 꽃이라고 답했다. 리포터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랜만에 아내를 만나니까요.”
Editor & Photo 이소진
<ORDINARY> Magazine에 소개된 에세이입니다.
쓰면서 셀프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원고를 넘기고 편집부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이즈의 <너에게 원한 건>을 흥얼거리게 되었습니다. (흥얼거린 사람 최소 80년대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