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속 화초
공무원 조직이라는 온실 속 화초인 나는
조금의 관심과 물만 주면 어느 정도 클 수 있다.
온실을 뚫고 자랄 수는 없다.
그랬다간 온실 주인이 목을 댕강 자를 테니.
만족스러운 건 짬이 차면서 축적된 노하우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 번 경험해 본 것들은 다음엔 더 쉬웠다.
매년 같은 시기, 반복되는 일들, 예상 가능한 일들.
저번보다는 힘을 덜 들이고 해내면 뿌듯하기도 하다.
서서히 중독되는 약물처럼 '적응되니 이제 좀 살 만 한데?' 하면서
이곳을 끊기가 어려워진다.
불청객, 벌레
온실 속 화초는 종종 밖에서 날아들어온,
본 적 없는 벌레에 취약했다.
벌레는 화초를 갉아먹었다.
적당한 온도, 습도에서 벗어나지 말아라
찬바람이 불면 감기에 걸려버리고 말 거야
잔뜩 움츠러든 어깨
새로운 걸 시킬 까봐 겁이 나는 날들
쪼그라든 마음으로는 살기가 힘들었다.
책은 도피처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까짓 거 해 보지 뭐.'라고 나를 프로그래밍하니
정신건강에 더 좋았다.
어떤 일이 닥쳐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
나 자신에 대한 믿음
나 그 정도로 잘 해낸다는 믿음
나아가
이 일이 아니라도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로 발전된다면 온실 속을 나올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이다.
온실 밖 세상
책은 온실 밖 더 큰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더 나은 걸 추구하고 싶다.
입에 풀칠하는 정도가 아닌 '잘' 살고 싶다.
마음먹으면 해외여행도 가고 싶고
아반떼보다 벤츠 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밖은 사바나일 수도 있고 유토피아일 수도 있지만
내가 어디에 맞는 사람인지는 나와보면 알 것이다.
목표는 결승선
대학과 공무원이라는 결승선을 통과하고 돌아보니
나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였다.
항상 그랬듯 경주마는 또 뛰게 되어 있어서
다른 경기를 기다렸다.
앞에 놓인 결승선은 '정년퇴직'
옆의 경주마도 다 같이 결승선을 향해 뛰고 있다.
근데,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경기였던가?
한 경주마가 가만히 서서 생각한다. 더는 결승선을 향해 달리지 않기로 한다.
드넓은 고원으로 가 호랑이가 될 것이다.
힘든 산을 넘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참나무 그늘에서 쉬어가야지.
혼자 사냥을 하는 호랑이는 꿋꿋이 살아남을 것이다.
홀로. 어떻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