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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narae Kang Dec 30. 2017

암스테르담 점거운동과 NDSM 재생

NDSM 재생 20년의 교훈, 신간 Make Your City!

Make Your City! The City as a Shell (1)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 - 이미 있는 구조를  다시 새롭게 채워가는 도시

이 글은 암스테르담 기반 도시 활동가이자 전략가인 Eva de Klerk가 낸 신간 "Make Your City: The City as a Shell - De Stad als Casco"을 소개하는 첫 번째 글이다. 이 글에서는 책의 배경이 되는 암스테르담 북항구지역 NDSM 재생의 역사와 맥락, Eva의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세대 암스테르담 점거운동의 성과와 유산을 소개한다. 두 번째 글은 2017년 12월 18일 열린 출판기념회 후기이다.


        오,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 북항구 NDSM-지역, 새로운 가능성의 땅

        '점거', 어떤 장소를 '차지'하여 '자리'하는 것의 에토스

        De Stad als Casco - The City as a Shell (목차)

        NDSM, 문화예술 중심 도시재생 이전 - 동항구지역 개발의 교훈

        알려야 할 - Eva의 이야기

        시민의 공간 - 제 3의 공간, 시민 공유지를 찾아

        행동으로 써 내려가는 새로운 도시 역사




오,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은 약 2009년부터 매해 관광객 최다수를 갱신하고 있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연 최소 600만 명이다. 암스테르담의 매력은 무엇일까? 영화 '러빙 빈센트'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화가의 유작을 집대성한 빈센트 판 호흐 박물관, 렘브란트 그림을 비롯한 네덜란드 황금의 17세기 회화를 볼 수 있는 왕립미술관, 헤이네컨맥주체험관, 안네 프랑크의 집,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된 운하 거리처럼 도시 자체가 역사와 문화, 볼거리, 즐길 거리, 생각할 거리, 누릴 거리로 가득 차 있다는 점? 매년 봄에 열리는 게이 퍼레이드와 영화박물관 EYE를 주행사장으로 하는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를 통해 꾸준히 구축해 온 '자유와 인권의 도시'라는 이미지?


암스테르담이 지난 세기 늘 이렇게 인기있는 도시는 아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약 15년에 걸쳐 주민 수가 총 20만명이나 줄었다. 그 후 시정부의 지속적인 주택공급 노력으로 주민 수를 회복해 지금은 85만 명을 넘어선다. 관광객수도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정체기였으나, 2009년을 기점으로 상승일로이다. 암스테르담 인구 증가의 요인은 무엇일까? 인구 감소가 선명하던 1970년대 말부터 꾸준히 주거환경을 정비하고 신규 주택을 공급해 온 점, 도시의 역사문화적 자원과 잠재력을 인식하고 그 콘텐츠를 확충해 온 점, 스히폴 공항과 암스테르담 서항구를 꾸준히 발전시켜 암스테르담 권역 전체를 항공 물류와 내륙수운 물류의 중심지이자 업무하기 편리한 지역으로 자리매김 해 온 점, 국가적으로는 전후 복지국가 시대의 하향식(top-down) 기능분산과 전 국토 균형발전 정책을 잠정 중단한 가운데 암스테르담 권역 자체는 서유럽의 관문이자 유럽 내 다른 대도시와 어깨를 견주는 전략적인 경제-문화 중심지로 육성하자는 합의를 정부 간 논의에서 강화시켜온 점, 녹지 등에 꾸준히 투자해 다국적기업 및 대기업이 입지하고 싶은 활기찬 도시 공간을 만드는 한편 여러 스타트업과 창조산업 유치, 지원 정책을 지속해 온 점이 그 요인으로 보인다.

물론 한 도시의 매력은 그 무엇보다 '비교불가능성', '대체불가성'이다. 일자리와 주거의 질을 정량화 해 본 도시간 비교 지표와는 별개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번 즈음'은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이유는 바로 암스테르담이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이 독특하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이어서 암스테르담을 찾는다. 비슷한 모양의 집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더라도, 암스테르담이란 도시 자체는 세계 어디를 가도 다시 찾을 수가 없다. 자전거가 사람보다 더 많아서 수만대의 자전거 주차장이 빼곡하게 차는 도시, 스케일과 고도가 스페인이나 독일 도시보다 한끗 낮으면서 촘촘하게 건물이 밀집된 그림 같은 역사도심, 문화적 다양성과 그만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유럽에서도 흔치 않다. 이런 암스테르담의 매력에 또 하나의 매력을 더하는 독특한 곳이 있으니 바로 NDSM이다.




암스테르담 북항구 NDSM-지역, 새로운 가능성의 땅


NDSM은 암스테르담 중앙역 남쪽의 역사도심에 비해 이 곳은 본래 주목받는 곳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곳은 중앙역 뒤쪽, 에이(Ij)강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공장 지대였기 때문이다. 본래 네덜란드조선·선박수리회사(Nederlandsche Dok en Scheepsbouw Maatschappij)가 선박을 만들고 수리하던 산업 지역, NDSM. 네덜란드조선·선박수리회사의 줄임말인 NDSM은 이제 이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 NDSM에는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암스테르담 시민에게 먼 곳이었다. 지금처럼 승객을 무료로 실어나르는 배가 다니지도 않았고, 강을 가로지르는 터널 두 개는 자동차 위주였고, 편하게 도보로 건널 만한 다리도 마땅히 없었다. 또 2018년 여름에 운행을 개시할 예정인 암스테르담 지하철 남-북 노선은 NDSM과 먼 동쪽으로 지나간다. 쉽게 발걸음 할 수 없으니, 사람들의 마음에서도 멀었다.


NDSM이 암스테르담 시민에게 별개의 도시 생활권이 아니라, 암스테르담의 역사도심과 남부와 이어지는 하나의 도시 생활권으로 더 가까이 받아 들여지기 시작한 계기는 무료 배 운항이었다. 암스테르담 시정부는 중앙역 바로 뒤편과 중앙역 서쪽(Westerdoksdijk)에서 NDSM을 오고가는 무료 수상 대중교통을 개시했다. 암스테르담 시민이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그대로 갖고 탈 수 있는 이 배는 15분~30분 가격으로 운행하며, 역 뒤에서 NDSM까지 건너는데 약 15분이 걸린다. 강을 건너는 동안 강 양쪽 수변개발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점도 수상 이동의 장점이다.


각종 음악 축제와 야외 전시 등 문화예술활동이 일년 내내 끊이지 않는 NDSM에는 이제 연 최소 200만 명이 발걸음을 하고 있다. 여러 관광 안내 자료에서 빠지지 않는 명소, 관광객의 주요 방문지가 된 것이다. 매주 토요일엔 Ij-Hallen이란 유럽 최대 벼룩시장도 옛 조선·선박수리회사정비창고와 그 주위에서 열리고 있다. 옛날 항만, 산업시설물 구조를 재활용하여 곳곳에 흥미로운 문화예술 작업장들이 들어와 있다. 곳곳에 MTV, Hema, Red Bull과 같은 저명한 기업의 업무용 건물과 힐튼 호텔이 새로 지어졌다. 현재 NDSM은 문화와 예술 중심의 도시재생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사례가 되었다.


그 기원이 18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네덜란드조선·선박수리회사(NDSM)는 지금의 NDSM터에 1919년에 자리 잡았다. 회사가 시설 확장과 인수합병을 거듭하면서 90헥타르에 달하는 에이(Ij)강 북쪽이 조선수리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인근엔 항만물류업과 조선수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위해 새로운 주거단지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국제 조선업 경쟁구도의 재편으로 네덜란드의 조선업은 점점 쇠퇴를 면치 못했다. 1979년 마침내 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이후 또 다른 인수합병을 통한 고용 승계와 회생 노력이 있었지만, 이미 변화한 세계 조선산업 구조의 대세를 거스르기엔 역부족이었다. NDSM은 1984년 선박수리조선소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멈추게 된다. 전 회사 이름 NDSM으로 불리게 된 이 지역은 새로운 가능성의 땅이 되었다.


1967년의 NDSM 전경 (De Klerk, 2017: 5)




'점거', 어떤 장소를 '차지'하여 '자리'하는 것의 에토스


1996년, 이 에이강변 북쪽을 바라보며 소위 '이 땅은 우리 땅이다', '이 땅은 이 도시에 사는 이를 위해, 모두를 위해, 창조적 열정을 가진 이를 위해 존재한다'는 정신으로 깃발을 꽂는 한 무리가 등장했으니, 바로 'het Gilde van Werkgebouwen aan het Ij(에이강의 산업유산 건물 길드; 에이강의 산업유산 건물 협동조합)'이다. 이 협동조합은 에이강변의 산업유산 건물 12채를 점거해 살며 예술활동을 하던 주민과 예술가가 주요 구성원이었고, 일종의 대안적 도시개발 연구실천모임이었다.


암스테르담시는 당시 민간 부동산개발컨소시엄과 함께 암스테르담 에이(Ij)강 북쪽 항만 NDSM을 맨해튼처럼 화려한 국제업무지구로 탈바꿈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청사진에 대해 'Het Gilde van Werkgebouwen aan het Ij'는 맹렬히 반대했다. 이들은 하향식 대규모 개발계획은 문화를 죽이고, 도시경관의 획일화를 통해 도시환경의 질을 저해할 것이라 보았다. 이들이 주창하는 대안은 그 공간을 실제 이용하고 그 지역에 실제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사람들이 직접 '참여해 이뤄지는' 점진적 상향식 도시재생을 허락하는 것이었다. 1997년 이들은 NDSM지역과 암스테르담의 미래에 대한 비전 선언서이자 도시재생 방법론 책자인 '방향을 바꾸는 조류(Het Kerend Tij)'을 발표했다.

 

(극심한 반대를 받은 수변 국제업무지구 개발안은 현재 암스테르담 남역 Zuidas 개발지구로 입지를 변경해 실현 중이다. 수변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위한 초기 민간 부동산개발컨소시엄의 실패에 대해서는 이 책  277-278쪽을 참고하라.)


'Het Gilde van Werkgebouwen aan het Ij(에이강의 산업유산 건물 협동조합)'과 그 책 '방향을 바꾸는 조류(Het Kerend Tij)'는 그 기원이 1960년대부터 암스테르담에서 면면히 이어져오던 점거운동(kraakbeweging)과 관련이 깊다.


암스테르담의 점거운동은 사실 여러 모로 독특했다. 점거를 업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점거가로 번역할 만한 krakers(squatters)를 '무단' 점거자라 부르기엔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점거단(占據團)은 막무가내로 건물을 침입한 것이 아니라, 목표와 철학을 갖고 법 절차에 입각해 빈 건물을 점거한 다음 원칙에 따라 건물을 재단장하고 주거 및 기타 활동을 위해 건물을 이용한 일종의 자율자치공동체였기 때문이다.


그 점거단 참여자의 동기가 지극히 '나로부터' 시작한 경우도 많았다. 점거 운동을 '대안' 주거 운동이라고도 부를 수 있으나, 정작 거기에 참여하던 젊은 학생들은 거창한 이유만을 찾지 않았다. 지극히 '나로부터' 시작한 동기이기도 했고, 취향과 선호의 문제이기도 했다. 학생 시절 주거비를 절약하려고, 암스테르담에서 다른 방을 구할 수가 없어서 도시의 주거난을 해결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보자고, 커다란 물류창고와 같이 남겨진 산업시설이 나름 너무나도 멋있고 특이해서, 역사의 흔적이 서려있는 건물을 그냥 허무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해서, 일-삶-사회에 대한 대안적인 시각과 균형을 실험하고자, 또는 연극이나 그림, 영화처럼 나만의 창조 욕구를 불태울 공간을 직접 꾸려 보고 싶어서. 지극히 '나로부터' 시작한 동기가 '내가 공부하고, 친구를 사귀고, 일을 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현재를 사는 중인 도시 공간에 대한 애착'으로 발전해 갔다. 그렇기에 그 일원 중에서 het Gilde van Werkgebouwen aan het Ij를 조직해 활동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대부분의 사회 운동 조직에서 흔히 발견되듯, 점거운동 가운데서도 극단적 이상주의자와 실용주의자 사이에, 또는 여러 다른 측면에 대한 의견 차이로 참가자 사이에 갈등이 없지 않았다. 폭력을 쓰던 그룹은 주택협회를 통한 시정부의 점거운동 양성화 노력 가운데 점차 도태되어 갔다. 한편, 청년 시설 점거 공동체에 참여한 많은 이들은 추후 직장을 잡고 가정을 꾸리면서 안정적인 사회 생활을 꾸려갔다. 점거운동가 중 누군가는 추후 암스테르담 기반 주택협회의 임원이 되기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변호사, 의사, 연극인, 시각예술가 등 다양한 직업을 찾아갔다. 어떻게 보면 발언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내 개성대로 살 자유, 신념대로 살 자유를 마음껏 누린 젊은 날의 점거 경험이 훗날 일하게 된 일터에서 그곳의 필요를 채우고 경영을 잘 하는 지혜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암스테르담 시정부는 1964년부터 1999년 사이에만 점거운동가들이 점거한 건물들 중 무려 총 200여 채를 건물주로부터 매입해 사회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주택협회에 양도했다. 주택협회는 이를 다시 점거 조직에 주거지로 임대해주었다 (Pruijt, 2003: 139). 점거운동의 조직화와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기존 재산권자에 대한 보상비를 낮추기 위해 시정부와 점거운동이 암암리에 협력했던 이야기는 강제 퇴거와 철거 행정집행이 빈번한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시의회와 시민사회와의 긴장 가운데 일어난 엄연한 현실이었다.


한편, '합법적인 점거'는 법제도의 변화로 점점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각 점거자의 신원을 정확히 기재한 영장이 있어야만 퇴거 행정집행이 가능했다. 그러나 신원을 특정하지 않은 영장도 퇴거 행정집행에 효력을 갖는 것으로 세부적인 법조항이 바뀌었다. 일정 조건과 절차를 지키면 합법이었던 점거는 마침내 2010년 10월 1일 '점거와 공실에 관한 법(Wet kraken en leegstand)' 발효와 함께 '범죄'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현재 점거가 다시 합법화될 가능성은 정치적으로 매우 희박하지만, 점거운동의 한 갈래가 간직한 에토스 중 하나인 '공간에 대한 적극적인 주권 주장'과 '도시공간의 사용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과 참여'는 진화해 도시운동(urban movements)의 다른 한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공공 주도의 계획'이나 '민간 주도의 개발'에 반기를 드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공간의 공공성을 보다 더 강화하는 방식의 대안개발안(alternative plan; counterplan)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거나 계획 단계에서부터 지역의 시민 조직, 주민 단체, 세입자 등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Het Gilde van Werkgebouwen aan het Ij'도 그 움직임의 연장선이었다. 'Het Gilde van Werkgebouwen aan het Ij'는 NDSM을 국제업무지구로 재개발하는 안을 반대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대안을 내놓았다. 그 대안의 핵심 문구가 바로,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책의 부제, 'De Stad als Casco'이다.




De Stad als Casco - The City as a Shell


책의 핵심 개념인 De Stad als Casco의 Casco는 껍데기, 틀, 프레임, 기본 구조를 뜻한다.

De Stad als Casco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시간을 거쳐 도시에 점차 형성되어 온 구조,
즉 기반 시설, 가로 체계, 기존 건물들을 허물지만 말고,
그 지역 공간 이용자가 그 구조물에 새로운 기능을 채워 쓰게 하자'

'이미 있는 것들에서부터 시작해
도시의 물리적 유산, 산업-역사-문화유산에 얽혀있는
사람들의 기억과 관계망, 장소성을 존중하고 살려나가 보자'

'지역 주민과 실제 공간을 이용할 사람들이
직접 필요로 하는 기능들을
이미 있는 구조물 안에 구현해내도록
주도권을 그들에게 주자'

책의 전체 제목은 "Make Your City: The City as a Shell - De Stad als Casco"이다.

의역해 본 제목은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 - 이미 있는 구조를 재활용하는 도시'이다.

저자: Eva de Klerk (와 그 동료 Carolien Veldbrugge, Joost Zonneveld)
쪽수: 256, 판형: 240 x 172 x 23 mm, 언어: 네덜란드어, 영어 병기.
De Klerk, Eva (2017) Make Your City: The City as a Shell. Trancity X Valiz.


왜 De Stad als Casco인가?

왜 오래되고 멋진 공간이 없어져야 하지?

새로 짓기 위해 왜 꼭 오래된 구조물을 헐어야 할까?

이미 있는 것 위에 지어나갈 수는, 이미 존재하는 것 위에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갈 수는 없을까?

어떻게 하면 공간을 이용할 이들이 직접 그 공간과 공간을 둘러싼 물적,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 적극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함께 그 환경을 개발해가는 것이 가능할까?

De Stad als Casco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발견한 철학이다 (De Klerk, 2017: 17).


De Stad als Casco, 즉 '틀로서의 도시' 혹은 '껍질로서의 도시', '프레임으로서의 도시'는 도시 공간과 구조물 속에 창조성을 발현할 장을 포착하고 확장하는 시도이자, 그 창조성의 발현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그리고 그 시도들이 조화 속에 지속되면서도 함께 진화해가게 하는 노력을 지향한다. 그래서 'a shell'이다. 각 자치 단위가 이미 존재하는 구조 속에 채워져 가면서 그 구조를 변형하고, 종국에는 그 구조를 재창조하며, 채워지는 공간의 정체성을 색다르게 정의 내려 나가는 첫 출발점으로서의 틀 말이다.


책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부 De Stad als Casco 철학 소개
2부 암스테르담 북항구지역 개발 과정에서의 시민참여 역사와 시행착오, 현황, 관련 사례
3부 성찰과 교훈, De Stad als Casco란 개념에 대한 평가


책 뒤에 시민참여부동산개발운영회사의 조직원리를 소개하는 표도 있다. 항구시설, 산업유산, 폐교 등 도시 내 유휴공간에 대한 기획과 주민-시민-이용자 참여 설계 원리, 시정부와 시민참여개발재단(시민자산화회사) 간 바람직한 관계 설정에 관해서도 암스테르담 정책을 언급하며 논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가 창의적인 도시공간의 개척자이자 상향식 도시재생의 조직가, 촉진자로서 20여 년 가까이 NDSM에서 활동하며 얻은 경험과 성찰을 1인칭 단수 혹은 1인칭 복수를 번갈아 가며 이야기한다는 점이 인상깊다. 현장에서의 시행착오와 터득한 원리를 정직하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또 저자는 De Stad als Casco 개념을 자신의 것으로만 주장하지 않고, 그 개념을 발견하고 주창했던 Carolien Feldbrugge에게 공을 돌린다.

 



NDSM, 문화예술 중심 도시재생 이전 - 동항구지역 개발의 교훈

 

시각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Carolien Feldbrugge는 젊은 시절 암스테르담에 거주 중이었다. 1990년대는 NDSM-지역에 앞서 동항구지역이 본격 재개발되던 때로, Carolien은 동항구지역 물류창고 빌헤미나(Parkhuis Wilhelmina)에 1988년부터 살기 시작했다. 이 건물을 점거해 살고있던 주거자치회는 원래 살던 건물이 재건축을 위해 철거되어 급히 살 곳을 찾던 Carolien을 허입했다. 그 조건은 건물관리 공동기금에 돈을 내고, 건물의 유지보수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 건물에 직접 들어와 살면서, 직장 생활도 이어가던 Carolien은 점점 더 동항구지역의 고즈넉한 미와 옛 창고건물의 쓸모에 매료되었다.

그는 주거자치회 대표로 건물주가 된 시와 협상을 진행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이 건물의 미래에 대해 질문을 제기했다. '그 다음은?'. 그래서 시에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산업역사유산으로 가치있는 건물 빌헤미나를 허물지 말자. 주민-시민자치회가 그 건물을 매입해 재단장하고, 운영하고, 다목적에 맞게 창의적으로 활용하게 하자.' 그는 '빌헤미나 재단(Stichting Wilhelmina)'을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설립했고, 건물매입자금 대출도 알아보고, 대출상환 계획, 건물운영계획도 수립했다. 시와의 협상은 지난하기만 했다. 17년에 걸친 설득과 협상이 마침내 결실을 맺어 2002년 빌헤미나 재단이 건물의 85% 지분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건물의 나머지 부분은 시정부가 다른 영리법인에 매각했다.

2003년 건물 개보수가 완료된 이래, '팍하위스 빌헤미나(Pakhuis Wilhemina)'는 현재 총 8400m2의 면적을 94개 이상의 작업장과 전시, 행사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예술가와 디자이너, 기술장인, 건축가, 영화감독, 작곡가, 사진가 등 다양한 창조산업 종사자가 저렴한 임대료에 이 공간을 이용한다. 각자의 작업 활동을 나누니 영감도 배가 되고, 네트워크도 활발해진다. 빌헤미나는 이렇게 주거와 업무 공간 일색인 동항구지역에 다양성을 배가하는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ibid.: 46-53). 2006년에 개장한 시민담론생산 플랫폼 '팍하위스 더 즈베이허(Pakhuis de Zwijger)' 역시 기존 창고 건물의 현대적 재활용이란 측면에서 '팍하위스 빌헤미나'와 유사점을 공유하며, 불과 450미터 떨어져있다.


Carolien을 비롯한 일군의 예술가들이 무려 17년에 걸쳐 빌헤미나 창고 건물 재활용 프로젝트를 끈질기게 추진해가던 그 시기, 저자 Eva는 영감을 받아 빌헤미나에서 예술활동과 그 주변 점거활동에 참여했던 일원으로서 동항구지역 재개발 다음으로 예고되어있던 NDSM 재생에 관심을 돌리게 된다. 그 후의 이야기는 한 편의 전설이다. 1996년대 프로젝트 그룹 'Het Gilde van Werkgebouwen aan het IJ (에이강의 산업유산 건물 길드; 에이강의 산업유산 건물 협동조합)'가 설립되었고 저자는 그 일원으로 1997년부터 활동했다. (Eva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우정을 나눠 준 Carolien과 옛 주거자치회 동료는 그래서 De Stad als Casco 출판기념회에 논찬자로 초청받았다. 그들이 다음 세대와 나눈 이야기는 다음 글을 참고하라.)


시는 부동산개발 및 투자업계의 큰 손들을 참여시켜 오피스 일색의 고급 국제업무지구로 에이강 북쪽을 재개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Eva를 비롯한 Het Gilde van Werkgebouwen aan het Ij는 기존 항만, 조선 시설을 재활용하는 문화예술중심의 재생계획을 제시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건설적인 '대안계획(counterplan; alternative plan)'을 내세웠다. 기존 구조를 실제 공간 이용자에게 제공하고, 그 내부 인테리어와 쓰임새는 모두 창의적인 공간 이용자가 정하고 만들도록 하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접근법이었다. Eva는 특히 기존 조선수리소(scheepsbouwloods) 건물을 다목적 문화예술중심 재생의 거점으로 기획하였고, 그 안에 Kunststad를 비롯한 여러 공간이 조성되는 과정을 이끌고, 조율했다.




알려야 할 - Eva의 이야기


저자 Eva는 결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결같이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하고, NDSM에 대한 애정을 갖고서 공간을 실제 이용하며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이들의 의견과 마음에 귀기울였다. 거기에서 즐기고 버티며 줄곧 존재해왔다. 마치 NDSM의 요정처럼 말이다. NDSM에서 일어나는 각종 활동과 크고 작은 문화예술 프로젝트, 토론에 참여하면서 시의 소유권 전략, 임대료 책정 정책, 공간 이용자들과의 공정한 파트너십 등 중요한 주제를 의제화해왔고, 그에 대한 의견을 평소 적극 표현했다. 여론 형성은 의사결정 시점에만 반짝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장기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va와 그 동료들의 그런 긴 노력이 있었기에 NDSM에 이만큼의 창조적 문화, 예술활동이 모여들고, 그 다양한 활동들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성장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쉬운 말로 쓰여졌다. 그렇다고 깊이가 얕진 않다. 현장에서 도시공간을 기획하는 이를 염두에 두고 실용적으로 쓰여졌다. 주민-시민주도로 도시 내 유휴자산을 이용해 문화예술, 소규모 제조업 공간 등을 꾸려가고자 하는 활동가, 조직가, 기획자라면 공감할 내용도 많을 것이고, 영감과 체계적인 전략의 단초도 발견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암스테르담 시정과 몇몇 사례에 대한 저자의 기술(description)에 내가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국내에 소개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현재 진행 중인 NDSM 재생의 서사가 강력하고, 그 과정 상 갈등이 투명하게 드러나며, 참신한 질문들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소개되어, 이들도 더 나은 답을 찾아 분투하고 있음이 더 알려지면 좋겠다.




시민의 공간 - 제 3의 공간, 시민 공유지를 찾아


미국발 금융위기와 부동산 시장 침체를 거친 후 건설경기가 다시 활황인 암스테르담에서는 정부의 재산권과 민간의 재산권 사이에서 '시민 공통의 재산권'을 모색하는 목소리가 다시 강해지고 있다. 즉, 시정부 소유와 민간 소유 사이에, 공공행정과 민간운영 사이에 시민성과 공통성에 기반한 협력적 소유권이 지금보다도 더 필요하다는 주장, 공간 이용자가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는 비영리 시민공간을 확보하고 유지하도록 더 강력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들린다. '네덜란드 기준'으로는 사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주택협회도 이미 너무 대형화되어 버리고 활동 영역이 주택 공급에 한정되어,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소유권'이라 하기엔 그 거리가 이미 너무 벌어졌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누군가는 이제 와서 역사에 불가능한 가정을 던진다.

바로 그 때 점거운동이 점거한 건물을 암스테르담 시정부가 매입해 주택협회에 넘기는 것이 아니
협동조합에게,
주민이 세입자이자 지분소유자로서 건물을 공동소유하는 상호주택소유협동조합의 구조로 점거자치회
넘겼더라면, 그랬다면,
민이 좀 더 건물 관리와 공동 소유권 유지에 적극적이 되어서 지불가능한(affordable) 사회임대주택을 시장에 매각하는 속도를 지금보다는 더 늦추지 않았을까?
다른 대안이 출현할 가능성을 더 높이지는 않았을까?
그런 가정이다 (Uitermark, 2012: 210-211) .


현재도 한창 진행 중인 NDSM 재생과 재개발에는 앞으로 어떤 주체들이 어떤 철학 위에 어떤 활동의 장을 어떻게 구축해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과거 점거운동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어, 지금에 맞는 진화한 대안을 내놓는다면 무엇일까? 이 넓은 땅이 무엇으로 채워지는 게 좋을까? 꼭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집? 오피스? 저 큰 구조물들을 다 철거해야 할까? 항만 조선시설과 새로운 기능이 공존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



이 글에서 소개한 책은 바로 이런 고민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NDSM을 오래도록 지킨 Eva가 경험을 거쳐 정리하고 성찰하여 내 놓는 이론이다.




행동으로 써 내려가는 새로운 도시 역사


Eva처럼 행동으로 견고해 보이는 현실에 균열을 낼 때,
'개발은 원래 그런거야'라는 편견에 도전하는 변화를 눈 앞에 보일 때,
그 새로운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이 등장한다.


제도의 제약과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관계망 속에서 행정의 강제력만도 아니고, 영리 추구의 논리만도 아니고, 예술과, 문화, 환경, 역사유산 보존과 같은 제 3의 가치를 바닥에서부터 밀고 나가본다는 것. 그 과정은 현장 기획가라면 누구나 매 단계 제각기 새로운 어려움을 맞닥뜨리는 모험일 수 밖에 없다. 문제의식이라면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야말로 치열할 것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함께 읽고 그 현장의 목소리를 더 힘 있게 내보길, 분투의 근력을 함께 쌓아가길, 그래서 5년, 10년 후에는 바로 우리네 도시, 우리네 현장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귀납적 이론을 다시금 국제 사회에 소개하고 나눌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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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De Klerk, Eva (2017) Make Your City: The City as a Shell - De Stad als Casco. Trancity X Valiz. (in Eng. & Dutch).

Korthals Altes, W.K. & Kang, V (2015) From Big Plans to Small Steps. In V Kang & H Park (Eds.), Beyond Suensangga: 16 ideas to go beyond bigplans (pp. 273-289). Seoul, South Korea: SPACE Books, an imprint of CNBmedia. (in Eng. & Korean.)


Pruijt, H. (2003) Is the institutionalization of urban movements inevitable? A comparison of the opportunities for sustained squatting in New York City and Amsterdam. International journal of urban and regional research, 27(1), pp.133-157.

Uitermark, Justus (2012) An actually existing just city? The fight for the right to the city in Amsterdam. In Cities for people, not for profit. Critical urban theory and the right to the city. (Eds.) Benners, N., Marcuse, P. and Mayer, M. New York: Routledge.


2015년 이미 국내 논문에서 문화예술 중심의 NDSM 도시재생을 분석하고 시사점을 내놓았다.

임동선 & 김정빈. 2015. 문화예술을 통한 지역재생 사업에 있어 참여 주체 간의 역할에 관한 해외사례 연구. Journal of Korea Planning Association, 50(3), p.225.

논문은 NDSM 도시재생 사례를 그 분석틀에 맞춰 집약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논문이 미처 다 다룰 수 없었던 앞뒤 배경과 향후 전망, 여러 이해관계자와의 갈등과 공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등 현재진행형 질문들을 그대로 드러낸다. 둘 다 보면 좋을 듯하다.


(다음 글은 2017년 12월 18일, NDSM에서 열린 Make Your City의 출판기념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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