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나 Oct 29. 2024

01. 나에게 남은 빈자리

텅 빈자리와 마주하다

나는 늘 새로운 일을 만들어야만 했다.

직장에서도, 

프리랜서로든 주어진 일을

단순히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일조차 내 손으로 만들어 가며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남의 일이 곧 내 일이 되어,

쉽 틈 없이 매달렸다.

내 머릿속에서는

일 생각이 떠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매달렸건만,

일이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항상 내게 남은 것은 

텅 빈자리였다.


대단한 사람이 되려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쌓은 자리는 결국 사라지고,

남는 것은 일을 마친

나 자신뿐이었다.

언제나 제자리걸음에 

무엇하나 손에 쥔 것 없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마주하는 

나의 텅 빈 허무함은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큰 성공을 꿈꾼 것도,

특별한 사람이 되려 했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인정받길 바랐다.


그런데 내가 잘하는 일은

남들이 꺼려하는 일을 

알아서 대신 처리하는 것에

불과했던 걸까?

모두가 떠난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나를 보지 않고

타인의 인정에 기대어

스스로를 정의하려 했다는 것을.


칭찬을 받을 때조차도

나는 내 존재를 신뢰하지 못했다.

그저 타인의 시선과 평가 속에서

나를 증명하려 달렸을 뿐이다.

결국 타인의 인정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 것만 같은 

깊은 불안 속에 갇혀있었다.


하지만 공허함에 짓눌릴수록

내가 지금 서있는 

아무것도 없는 이 빈자리야말로

내가 바라봐야 할 

유일한 자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애 이렇게까지 자책하는 걸까?"

"지금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고 있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동안 듣지도, 믿지도 않았던

내 안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랫동안 외면했던 나 자신이었다.


아무리 주위에서 좋은 말을 해줘도

내 안에 자리 잡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나를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행동뿐이었다.

매일 샤워를 하며

사랑한다, 축복한다, 감사하다를

수증기 낀 샤워부스에 적어두고 되뇌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거울을 보고 자신과 

하이파이브를 수 있었다.


정말 작고 소소한 행동이었지만,

내가 나를 붙잡아주는 

가장 다정한 순간이 되었다.

공허한 마음에 스스로를 응원하는

작은 습관들이 생기면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한 발을 내디뎠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여전히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려는

무거운 공허함이 밀려오지만,

이제 두려워하며 피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하며

빈자리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른다.


이 빈자리가 없었다면,

나는 내게 가장 필요한 질문들을

던질 수 없었을 것이다.


혹시 열심히 달려온 인생에서

무엇하나 손에 쥔 것 없다 느껴지는

공허한 그 빈자리에 있다면,

그 순간을 지나치지 말고

잠시 머무르기를 권합니다.


그 빈자리는 

당신을 돌아볼 기회일지 모릅니다.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나에게 다정함을 건네보세요.

비워진 자리가 언젠가

당신을 가득 채워줄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