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걷다걷따

서울 성곽을 걷다

첫 번째 걷기_서울성곽종주

by 이기자

타네

불타네

녹두꽃 타네

별 푸른 시구문 아래 목 베어 횃불 아래


횃불이여 그슬러라

하늘을 온 세상을

번뜩이는 총검 아래 비웃음 아래

너희, 나를 육시토록

끝끝내 살아


김지하 시인의 '녹두꽃'을 읽고 시구문이 무슨 뜻인지 찾아본 적이 있다. 시구문(屍口門). 글자 그대로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광화문과 흥인지문(동대문) 사이에는 시구문이 하나 있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모르고 지나가는 곳. 광희문이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15년을 살았지만 광희문을 두 발로 직접 찾아가 본 적은 없었다. 그만큼 광희문은 가깝지만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아마 시체가 나가던 문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조선이라는 왕조가 문을 닫은 지 100년도 더 지났지만 조선의 사람들은 지금도 한수 이북에 여전히 터를 잡고 살고 있고, 아마도 시체를 내보내던 광희문은 산 사람들에게 조금은 꺼려지는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가깝지만 닿지 않는 곳이 광희문이었다.

멀리 광희문의 옆 모습이 보인다. 남산에서 서울성곽길을 따라 내려오면 처음 볼 수 있는 성문이다.

10월 17일 토요일 오전 7시 30분. 서울성곽길 종주에 나섰다. 숭례문(남대문)을 출발해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터를 거쳐 다시 숭례문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남산, 낙산, 북악산, 인왕산 등 4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넉넉잡아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숭례문에서 출발해 남산을 오르고 반얀트리호텔과 국립극장, 신라호텔을 지나면 주택가에 들어서게 된다. 좁은 주택가 골목을 바쁘게 걷다 보면 새로 지어진 하얀 성곽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광희문이 나타난다.

광희문

광희문은 정말 불현듯이 나타난다. 이 커다란 성문이 자리를 옮겨 다닐리야 없지만, 마치 평소에는 이 곳에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무심코 지나다니던 광희동사거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바로 앞에 광희문이 있다. 시구문이라는 기능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광희문 바로 앞에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는 곳들이 여전히 있다. 헌종 시절(1846년) 김대건 체포를 계기로 시작된 천주교 박해인 병오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 시체가 광희문 앞에 산처럼 쌓였다고 한다. 광희문 앞에 서서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니 김지하 시인의 녹두꽃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깊은 밤 넋 속의 깊고 깊은 상처에 살아


광희문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흥인지문이 보인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외관이 우주선 같은 매끄러운 곡선형이라면 흥인지문의 옹성은 엄마의 품 같다. 따뜻하면서도 단호하다. 서울에서 가장 시끄럽고 번잡한 곳 중 하나일 흥인지문사거리가 중심을 잡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아마도 옹성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낙산으로 가는 길. 흥인지문을 건너면 바로 넓은 잔디밭이 나온다. 서울 도심 한 가운데 말이다!

흥인지문에서 건널목을 세 차례 건너면 동대문성곽공원이 나온다. 본격적인 서울성곽길 걷기의 시작이다. 동대문성곽공원은 서울성곽종주의 출발지로 적격이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은 이 곳이 서울 도심 한 복판이라는 사실을 잊게 해준다. 고개를 돌려 흥인지문을 바라보면 수많은 차와 사람이 정신없이 오가고 있다. 성곽길로 향하는 발걸음에 힘이 붙을 수밖에 없다. 길지는 않지만 서울 도심의 번잡함을 벗어나 온전히 내 숨소리와 땀방울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이 시작된다.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고틸 줄이 이시랴

낙산공원은 서울의 야경 명소로 유명하다. 여러 드라마에서 힘들게 사는 주인공의 동네로 낙산공원 일대가 나오기도 했다. 드라마 주인공들은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낙산공원에 앉아 서울의 야경을 보며 때로는 한숨을 쉬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어려움을 토로하고 때로는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나 또한 대학생 시절 낙산공원을 적지 않게 찾았고 가끔은 맥주캔을 한 봉지 가득 싸들고 올라가 몇 시간을 앉아 있기도 했다.

낙산공원에 마음을 둔 이들은 조선시대에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람이 단종의 정비인 정순왕후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된 이후 낙산 근처에 정자를 짓고 단종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낙산공원에서 혜화문으로.

흥인지문에서 낙산공원까지는 20여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주택가보다는 성곽 바깥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성곽길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좋다. 낙산공원 성곽 안쪽으로는 산책을 즐기기 좋게 길이 나 있다. 조금만 내려가면 바로 대학로가 나온다. 성곽 바깥 쪽으로 길을 잡으면 성곽길이 이어진다. 낙산공원 성곽길은 시야를 막는 장애물이 거의 없어 온전한 서울 하늘을 즐기기 좋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서울에서는 낙산공원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나는 들꽃과 지붕, 하늘이 좋아서 낙산공원을 간다

낙산공원을 내려와 부지런히 걷다 보면 오래지 않아 혜화문에 다다른다. 서울 성곽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진 소문이다. 처음에는 홍화문이라고 불리다 중종 6년(1511년)에 혜화문이라는 이름으로 고쳤다는 설명을 읽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가야 할 길이 멀다. 아직 본격적인 서울성곽종주는 시작도 안 했다. 서울 성곽종주의 본격적인 시작은 바로

이 곳. 와룡공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사실 숭례문과 흥인지문이 가장 유명한 서울 성곽의 흔적일 테지만, 제대로 유지된 서울 성곽은 와룡공원을 지나야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와룡공원에서 혜화문까지는 서울성곽길이라는 표지판만 있을 뿐 제대로 된 성곽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와룡공원에서부터 본격적인 순성놀이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의미도 있다. 와룡공원에서부터는 서울성곽길의 난이도가 높아진다. 여기까지 오면서 이미 남산과 낙산을 지나기는 했지만 북악산과 인왕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북한산이나 다른 험산보다야 평탄하지만, 평소 산을 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거울 수 있는 난이도다. 더욱이 숭례문에서부터 시작해 서울성곽종주를 생각하고 있다면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북악산을 내려가는 길. 부암동과 평창동의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와룡공원에서 20여분 정도를 올라가면 말바위안내소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군사보호지역이기 때문에 신분증이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사진 촬영도 제한된다. 그만큼 전망이 좋고, 길이 비교적 평이하다. 군인들의 순찰로로도 쓰이기 때문에 성곽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산이 목숨이고 산이 종교인 나라에 오늘 싱싱한 산 한 채가 방금 채색한 각황전(覺皇殿)처럼 사월 초순 첫 초록 재치고 솟아올랐네


산 전체가 군사보호지역이라 출입이 금지돼 있던 북악산은 2007년 4월 5일 처음으로 개방됐다. 북악산 전체가 아닌 서울성곽길에 한해서 개방이 이뤄졌지만, 성곽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든 북악산에서 서울 도심과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북악산 서울성곽길은 계단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내려간다면 큰 부담이 없지만, 올라간다면 정말 힘든 코스가 될 수도 있다.

북악산의 서울성곽길이 개방된 사연은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칼럼에 잘 나와 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12995.html)


북악산을 내려오면 창의문이 나온다. 창의문 앞에는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침투 사건 때 순직한 고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이 있다. 북악산 서울성곽길에는 1.21 사태 때 총알이 박힌 소나무가 여전히 자라고 있다. 역사는 누군가가 흘린 피로 자라는 나무와 같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시인의 언덕을 지나면 인왕산이 시작된다. 인왕산의 서울성곽길은 전체 성곽길 중에서 가장 절경이면서 가장 힘든 구간이라고 본다. 인왕산을 내려오면 사직공원과 강북삼성병원, 정동길을 지나 숭례문으로 이어진다. 인왕산 성곽길이 사실상 마지막 성곽길이라고 볼 수 있다.

인왕산은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더 어려운 산이다. 산의 규모에 비해 경사가 급하고 길이 미끄럽다. 특히 창의문에서 올라갔다가 사직공원으로 내려간다면 내려가는 길이 쉽지는 않다. 인왕(仁王)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의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왕조를 수호하는 산이라는 의미로 인왕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쉬운 산이 아니다. 험산인 만큼 경치가 아름답다.


서울성곽종주가 가능한 원동력은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서울성곽길의 도심 구간을 걷다 보면 우리 이웃, 우리 동네가 이렇게 운치 있었나 하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게 된다. 골목길에서 발견한 어느 주택은 노오란 색으로 벽을 페인트칠했는데 그 위로 전깃줄과 억새가 이리저리 엇갈렸다. 이 소소한 장면에 나는 멈춰서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서울성곽은 수백년 동안 한 자리를 묵묵히 지켜왔다. 하지만 성곽은 우리의 그늘막이 되어주고 때로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서울 사람들은 서울성곽을 오가며 수백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서울성곽길을 걷다 보면 성곽 안과 밖을 이어주는 암문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암문은 서울성곽을 퇴색한 유적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암문을 통해 서울성곽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회사를 가고 친구를 만난다. 트래킹화를 신고 서울성곽길을 찾아 나선 이들은 암문을 넘나들며 서울성곽의 색다른 매력에 빠질 수 있다.


성곽에 뚫려 있는 총안은 그곳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새로운 기대를 갖게끔 한다. 총안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나무 한 그루 일지라도 말이다. 수백년 전에는 누군가를 죽이고 감시하기 위해 쓰이던 공간이 이제는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하는 공간이 됐다.

10시간에 걸친 서울성곽종주는 처음 출발했던 그 곳, 숭례문에서 끝이 났다. 숭례문은 우리나라의 국보 1호, 그 자체로 한국과 서울을 상징하는 곳이다. 높은 빌딩에 둘러싸여 있지만 숭례문은 품위를 잃지 않는다. 우리는 숭례문을 한 차례 눈 앞에서 잃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은 숭례문을 지날 때마다 그때의 화마를 떠올리지만, 숭례문은 오히려 그런 우리의 마음을 감싸주듯 그 자리에 언제나 서 있다. 숭례문과 흥인지문, 광희문, 창의문, 그리고 이름 없는 서울성곽들이 고마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