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저 문장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던 적이 있다. 역자의 번역을 빌려오자면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는 말이다. 달리면서 힘든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달리기를 멈추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뜻이다. 처음엔 이 문장을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실패와 좌절은 우리의 일상이다. 이승열은 3집 <Why We Fail>을 발표한 뒤에 한 인터뷰에서 실패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하루하루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게 더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세상일이란 게 성공 아니면 실패인데, 성공에 집중했다면 'How'였을 것 같다. 실패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 이유는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동명의 노래는 '사랑, 그 어려운 사랑 피 흘리는 넌 오늘 또 저문다'라는 가사로 시작하고 'why we fail, we don't know'라는 가사로 끝이 난다. 우리는 매일 이유도 알 수 없는 실패를 거듭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언제 멈출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으니까. 나는 하루키의 문장을 이제야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한다.
실패와 좌절이 반복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침대 위에 누워 지난 시간을 반추해보고, 내가 썼던 글들과 읽었던 책들을 뒤적여봐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 성공하는 법을 다룬 책은 있어도 실패하는 법을 다룬 책은 없다. 내게는 재능이 없거나 운이 없거나 너무 늦었거나 너무 빨랐거나. 어쨌거나 '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제야 삼십 대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이십 대에 겪은 실패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쌓여가는 빈병만큼이나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배울 것도 없었고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삼십 대의 실패는 다르다. 친구들에게 실패를 털어놓기에는 각자의 길이 너무 멀다. 웃고 떠들며 실패를 이야기하기에는 각자의 삶에 실패의 그림자가 너무나 진하게 드리웠다. 실패는 금기어다. 좌절은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나 마찬가지다. 매일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은 혼자 삼켜야 한다. 삼십 대가 되어보니 그렇다.
재능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는 모두 어렴풋하게나마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더 슬픈 것은 그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는 순간이다. 삼십 대에 겪는 실패와 좌절은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는 재능을 입증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충분한 재능이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슬프다. 멈추고, 동결하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나는 없다. 날갯짓을 멈춘 나비는 떨어진다.
나비 하나가 떨어진다.
날갯짓 하다 멈춘 걸까?
달빛 속에서 살아나라~
하얀 날개여.
하지만 밤은 까맣게 내려
하늘거리는 잎새를 누르고
계절은 다시 돌아온대도
떨어져 버린 넌
돌아오지 않아.
날아오른 건 나비하나
허공 속에서 멈춘다.
역시 나에겐 찰나였어.
이어갈 순 없겠지?
하지만 밤은 까맣게 내려
하늘거리는 잎새를 누르고
계절은 다시 돌아온대도
떨어져 버린 넌
돌아오지 않아.
-이승열, 돌아오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