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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27. 2016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용기가 아닌 동기

프롤로그

동유럽 여행은 몇 권의 책, 몇 편의 영화, 그리고 몇 가지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마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깨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꿈에서 그칠 뿐 실제로 사표를 던지지도 않고, 짐을 꾸리지도 않는다. 먹고 살 문제에 대한 걱정이나 용기의 부족은 이러한 주저함의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다. 직접 퇴사를 결심하고 여행을 준비하면서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왜 떠나야 하나?'였다.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용기가 아닌 동기였다. 


그저 한국이 싫다며 해외로 뛰쳐나가서는 오히려 실망만 할 가능성이 컸다.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은 실상 전 지구적으로 전개 중인 문제들의 한국적 현상에 불과하다. 낯선 외국 땅에서 '여기도 다를 게 없구나'하는 실망만 안고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저 쉬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매달 나오는 월급으로 다박다박 살아가는 처지에 회사까지 그만두고 서는 남태평양의 저무는 해를 보며 모히또나 마시다 올 수는 없었다. 조금씩 모은 돈으로 마련한 공백기간(나는 회사를 그만두며 반년 정도 하고 싶은 일만 하자고 생각했다.)인 만큼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우연찮게 브람스의 1번 교향곡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브람스는 1855년에 교향곡 작곡에 착수했다. 브람스의 나이 스물한살 때였다. 하지만 브람스는 쉽사리 1번 교향곡을 완성하지 못 했다. 그는 슈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장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브람스가 의식한 거장은 베토벤이었다. 베토벤이 남긴 9개의 교향곡은 그 자체로 완전무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교향곡에 도전했다가 베토벤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브람스 역시 베토벤이라는 거인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한 것이다. 


마침내 브람스가 1번 교향곡을 완성한 때가 1876년이다. 1번 교향곡을 쓰는데만 21년이 걸렸다. 브람스의 1번 교향곡은 '10번 교향곡'이라는 별칭(베토벤의 교향곡을 이을 만하다는 평가이자 베토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비판이 함께 담긴)을 얻기도 했다. 브람스가 21년 만에 1번 교향곡을 완성한 곳이 독일의 뤼겐섬이다. 최근에 비정상회담에 소개되기도 했는데 예전부터 독일인들의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브람스도 이 섬에서 여름을 보내며 마침내 1번 교향곡을 완성한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뤼겐 섬을 여행의 최종 목적지로 정했다. 


거인의 발걸음 소리, 21년의 작업, 뤼겐 섬의 유명한 하얀절벽. 이런 것들이 나를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뤼겐 섬이 내게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동기가 된 것이다. 왜 회사까지 그만두고 여행을 가냐고 물으면 "뤼겐 섬의 하얀 절벽을 보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뤼겐섬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다. 거인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브람스에 대한 부러움, 오로지 나만의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뤼겐섬으로 구체화된 것이었다. 브람스 덕분에 뤼겐 섬은 독일 최대의 섬이라는 지리학적 분류를 넘어 예술에 대한 열망, 도약을 위한 숨고르기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됐다.

최종 목적지가 정해지자 경유지를 고르는 일은 일사천리였다. 평소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 있었다. 뤼겐으로 가는 길에 그 도시들을 퍼즐 맞추듯이 하나씩 넣었다. 부다페스트와 비엔나는 영화의 영향이 컸다. <글루미 썬데이>에서 일로나가 자전거를 타고 건넜던 다리와 <비포 선라이즈>에서 제시와 셀린이 걸었던 길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직접 눈으로 본 세체니 다리와 비엔나의 길들은 인상적이었다. 


유럽의 도시들은 밤의 풍경이 아름답다. 서울은 낮의 도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낮이 24시간 이어지는 도시다.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일하고 논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노는 것도 쉬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유럽의 밤이 아름다운 것은 해가 질 때 도시도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곳에만 불에 켜진다. 그래서 야경이 아름답다. 과하지 않다는 데에 야경의 본질이 있다. 

프라하는 단 한 권의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덕분에 경유지로 고르게 됐다.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의 땅인 보헤미아에 대해 알고 싶었다. 책과 영화에 나오는 프라하는 어둡고 무거운 도시다. 소련의 탱크가 짓밟고 지나간 땅, 자유가 거세된 죽음의 땅이었다. 하지만 지금 TV에 나오는 여행 광고 속 프라하는 사랑과 낭만의 도시다. 연인들의 땅이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직접 프라하에 가보고 싶었다. 부다페스트-비엔나-프라하라는 경유지가 일사천리로 정해졌다.

베를린은 처음에는 뤼겐 섬으로 가기 위해 잠깐 머무르는 도시로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읽은 책 한 권 덕분에 베를린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됐다. <작가의 창>이라는 책에 독일 소설가 다니엘 켈만의 짧은 글이 나온다. 그는 베를린 슈프레 강을 오가는 바지선 위의 관광객들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화물을 실어나르는 바지선도, 음악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 승객이 갑판에서 맥주병으로 건배하는 바지선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바지선에 앉아 있는 승객 대부분은 카메라를 지닌 관광객으로, 어린 학생만큼이나 주의력이 떨어진다. 그들이 무슨 사진을 찍을지 늘 궁금하다. 아마도 대부분은 '눈물의 궁전'을 찍을 것이다. 그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넘나들던 월경열차의 역사였던 유리 건물로 오늘날은 텅 비어 있는데, 곧 댄스클럽이 된다고 한다. (중략)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진에 담을 수 없다. 그건 베를린장벽이 놓였던, 보이지 않는 선이다. 최고의 카메라로도 부재는 포착할 수 없으니 관광객들은 쓸모없는 장비로 똑같은 창문이 줄지어 박힌, 새 건물의 회색빛 얼굴이나 찍어댈 뿐이다."


가장 중요한 건 사진에 담을 수 없다. 그건 보이지 않는 선이라는 다니엘 켈만의 글이 베를린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었다. 베를린은 보이지 않는 선으로 두 동강 나 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38선, 군사분계선이라는 눈에 보이는 선이 있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선이 서울을, 한국을 둘로 나누고 있다. 베를린의 보이지 않는 선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2월 11일부터 26일까지 보름 동안 동유럽(실제로 중부유럽으로 구분되겠지만 느낌상 동유럽)의 도시들을 갔다 온 여행기를 브런치에 쓰기로 했다. <동유럽 예술 기행>이라는 매거진 제목은 이번 여행이 미술관과 박물관, 영화, 소설에 대한 단상을 위주로 이뤄질 예정이라 정한 거지, 내가 특별히 예술에 조예가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도 않고...


보름 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잊지 못할 순간들이 많다.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지금껏 본 밤의 풍경 중 최고였다. 그럼에도 부다페스트에서 딱 한 곳만 간다면 테러하우스를 가겠다. 헝가리 사람들은 과거의 아픔을 지극히 현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놓았다. 우리 사회도 이들과 비슷한 아픔-위안부, 노근리, 4.3-을 겪었는데, 그 상처를 보다듬는 방식은 너무나 달랐고 부끄러웠다. 비엔나 제체시온의 클림트 벽화는 압도적인 느낌이 있었는데, 베를린의 함부르거반호프 현대미술관에 제체시온 클림트 벽화를 패러디한 현대미술 작품이 있어 놀라웠다. 바꿔 생각하면 유럽 내에서 변화하는 베를린의 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베를린은 과거를 발판 삼아 미래로 뛰고 있다. 그리고 뤼겐 섬. 독일의 바다는 생소해서 좋았다. 발트해의 겨울 바닷바람은 차고 시렸다. 그 높은 위도를 짐작할 수 있는 바다였다. 호수를 닮은 바다 어디에서 그렇게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지 신기했다. 그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뤼겐 섬의 하얀 절벽을 바라봤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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