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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28. 2016

야경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빛이 아닌 어둠이다

① 부다페스트 밤의 풍경

겔레르트 언덕을 앞두고 내리기 시작한 비가 갈수록 굵어졌다. 막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하늘빛이 강물과 같은 짙은 쪽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더 늦어지면 매직아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언덕에 놓여 있는 계단을 하나하나 서둘러 밟았다. 계단은 언덕길로 이어졌고 다시 나무 사이로 뻗어있었다.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바지와 신발이 젖었고, 마음은 다급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외국 도시에서 인적 드문 언덕길을 오르는 것도 찝찝했다. 그렇게 20여분을 올랐을까. 나무 사이로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 서자 부다페스트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해는 막 도시 너머로 사라졌지만, 아직까지 도시가 완전한 어둠에 잠기지는 않은 상태였다. 도나우 강변에는 붉은 전등이 빛을 밝히고 있었고, 국회의사당과 부다왕궁 건물도 저마다 밤을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 언덕길을 급하게 올라오느라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고 있었다. 마침내 마주한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심장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다시 길을 재촉해 언덕 정상으로 향했다.


겔레르트 언덕은 해발 고도 235m의 작은 바위산이다. 산과 언덕이 많은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동네 뒷산 정도의 지위에 불과하겠지만, 큰 산이나 높은 건물이 없는 부다페스트에서는 최고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도나우 강변에 위치한 덕분에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한 부다페스트 야경을 보기에 최적의 장소로 일컬어진다. 언덕 정상에는 월계수 잎을 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어느새 비는 장대비로 바뀌어 있었다. 해는 완전히 저물어 도시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빗 속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언덕 정상에서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광객도 있었고, 현지인들로 보이는 연인들도 있었고,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따금 엘리자베트 다리를 건너는 차들의 경적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빗소리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도 침묵을 즐기는 듯 조용히 카메라 셔터를 누를 뿐이었다. 하늘에는 비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달빛도 별빛도 구름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도시의 빛도 구름을 뚫고 나갈 수 없었다. 비구름은 부다페스트의 모든 빛을 그렇게 가둬놓고 있었다.


겔레르트 언덕은 11세기 초 헝가리에 그리스도교를 전한 수도사 겔레르트의 이름을 땄다. 그는 헝가리 최초의 국왕인 이슈트반 1세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초빙한 수도사였다. 하지만 겔레르트는 그리스도교에 반대한 폭도에 의해 이곳 겔레르트 언덕에서 산 채로 와인 통에 갇혀 죽고 만다. 폭도들은 겔레르트를 넣은 와인 통을 언덕에서 도나우 강으로 집어던졌다고 한다. 한때 헝가리인들에게 거부당했던 성인이 지금은 헝가리의 심장인 부다페스트를 매일 내려다보고 있다. 겔레르트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어찌 보면 성인에 대한 헝가리인들의 작은 선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겔레르트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부다페스트는 장식장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야경은 전 세계에서 몰려 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진짜 부다페스트는 빛이 아니라 어둠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 말이다. 아름다운 불빛으로 장식된 도나우 강변에는 다국적 관광객과 그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호텔이 즐비했다. 저곳도 헝가리인들의 삶의 터전일지언정, 그들의 진짜 삶은 도시 더 깊숙이 감춰져 있을 것 같았다. 이 도시의 진짜 모습은 어둠에 잠긴 채 빛에 자리를 양보하고 있었다.


서울은 어떤가. 내가 자란 도시 서울은 낮의 도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낮이 24시간 계속되는 도시다. 서울에서는 진정한 밤을 기대할 수 없다. 해가 지는 자연적인 순환은 부다페스트와 다를 바 없지만, 도시는 어둠에 시간을 양보하지 않는다. 서울은 밤이 되면 오히려 더 찬란하게 밝아진다. 한강을 따라 놓인 도로에는 수많은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밤새 오간다. 고층빌딩들은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순번을 정해가며 밤을 지새운다. 밤에도 빛이 가득한 도시에 야경이란 존재할 수 없다. 야경은 글자 그대로 밤의 풍경만은 아니다. 밤이 주는 안락함, 하루를 마무리할 때 느낄 수 있는 성취감, 일터에서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 모든 것들이 야경에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서울은 야경이 거세된 도시이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밤이 주는 선물을 놓치고 사는 것이 아닐까.

페슈트 지역의 도나우 강변에 앉아 해질 무렵 겔레르트 언덕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법 같은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해가 짙은 쪽빛으로 물들 무렵 강변의 전등이 하나 둘 불을 밝힌다.  이때까지 겔레르트 언덕에는 단 하나의 불빛도 없다. 나무들이 만들어낸 어둠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더 짙고 검다. 그러다 겔레르트 언덕 정상의 자유의 여신상에 불이 켜진다. 치터델러에도 불이 켜지면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아주 작은 동그란 불빛이 겔레르트 언덕 곳곳에서 하나씩 천천히 켜지기 시작한다. 늦여름 시골마을의 작은 뒷산에서 마주한 반딧불이들처럼 이 불빛들은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난다. 이런 순간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영화 <반딧불이의 묘>였다. 

14살 오빠 세이타와 4살 여동생 세츠코는 2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 부모를 잃는다. 그들은 공습을 피해 산 속 방공호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에서 세이타와 세츠코는 반딧불이를 잡아 불을 밝힌다. 결국 둘은 영양실조로 죽게 된다. 세이타는 동생을 화장시키고 자신도 죽는다. 이 영화는 "나는 죽었다"는 세이타의 대사로 시작한다. 이 아름다운 영화는 전쟁의 비극을 어린 남매를 통해 보여준다. 반딧불이는 그들의 영혼이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헝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는 동안 곳곳에서 죽음을 마주했다. 부다페스트는 20세기 비극적인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그만큼 이 곳의 헝가리인들은 죽음에 익숙했고,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그 많은 죽음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밤은 영혼들을 위한 시간이다. 오랜 역사가 묻어 있는 도시라면 앞서 살아간 영혼들을 배려해야 한다. 밤이 어두워야 하는 이유다. 부다페스트는 어두워야 할 곳과 밝아야 할 곳을 안다. 불이 켜져야 할 시간과 꺼져야 할 시간을 안다. 그래서 이 도시의 밤의 풍경이 아름다운 것이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회사 생활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서울에 익숙해졌다. 내가 자란 도시 서울은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매력이 21세기의 하이테크와 공존하는 도시다. 나는 서울을 사랑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을 같이 있다 보니 좋지 않은 부분까지도 익숙해져 버렸다. 밤에도 한낮 같이 밝은 길, 24시간 문을 닫지 않는 식당들.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면서 밤이 주는 선물을 놓쳐버린 것이 아닐까.


도시의 야경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부다페스트에서 깨달았다.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용기가 아닌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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