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다익따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

네 번째 리뷰_인식의 전환 '페미니즘의 도전'

by 이기자

세계적인 통계석학 한스 로슬링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학원 교수의 인터뷰가 오늘(10월 5일) 여러 매체에 실렸다. 로슬링 교수는 통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TED의 10대 명강의에도 뽑힌 로슬링 교수는 통계를 통해 세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설명한다. 인구, 소득, 삶과 죽음, 행복 같은 무수한 개념들이 로슬링 교수를 거치면서 조각조각 맞춰진다.


통계로 바라본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의외로(?) 로슬링 교수는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로슬링 교수는 공통적으로 한국의 특수성을 언급한다. 동시에 한국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 일종의 희망을 내비친다. 전제조건이 있다. 페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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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슬링 교수의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언급들을 발췌했다.


“단순히 인구정책으로 안된다. 페미니즘을 통해서 변화가 온다. 저출산은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지만, 다른 문제가 일으킨 결과이기도 하다. 과거의 여성과 달리 지금 여성들은 일도 잘해야 하고 가정일도 잘해야 한다. 이런 부담을 지워서는 출산율이 높아질 수 없다. 스웨덴은 인구정책이 아니라 양성평등과 관련된 변화에서 출산율이 반전됐다”(경향신문,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510042319575&code=920101&med=khan)


"싱글맘들에 대한 편견도 지워야 한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미혼녀와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없애야 한다. 결혼과 이혼 문화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절대 이혼이 안된다는 문화에서는 결혼을 쉽게 결정할 수 없다. 결혼을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0/04/0200000000AKR20151004022800002.HTML?input=1195m)


"과거 스웨덴의 경우 남성의 수명이 여성보다 5년 짧았으나 1970년대 양성평등이 진전된 후 2년 정도로 격차가 줄어들었다. 남자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등 행복을 더 추구할 때 더 오래 살았다. 양성평등이 남성에게도 좋게 작용한다는 사례다."(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0/04/0200000000AKR20151004022800002.HTML?input=1195m)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와 성찰 없이는 한국의 미래도 암울할 뿐이다. 로슬링 교수의 생각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라면 꼭 한 번 읽어볼 책이 있다. 여성학자인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아마 여성학을 다룬 책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 중에 하나일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생초짜인 나도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의 개략적인 내용을 접했을 정도이니, 아마 많은 사람이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면 14쇄를 찍었다고 한다.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읽힌 이유는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고,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왜 우리가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페미니즘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페미니즘의 기초는 왜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기초에 충실하다.


"페미니즘을 공부해!"가 아니라

"페미니즘을 왜 배워야 하는지 알려줄게"다.


제주도에서 육지(한반도)로 이동할 때 가장 불편한 지역은 어디일까?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이 질문을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이 던졌지만 사람들마다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책은 제주도에서 출도착이 가장 불편한 도시가 '교통의 요지'인 대전이라고 지적한다. 대전에는 공항이 없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답을 맞힌 사람이 있었는데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였다고 한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이동권의 개념이 희박하다. 어디든 원하는 대로 편하게 갈 수 있다. 반면 장애아나 장애아의 가족들에게는 문제가 달라진다. 공항의 유무, KTX의 유무가 이들에게는 거리보다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정희진은 이런 관점의 차이를 배우는 일이 '다른 목소리'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점에서 페미니즘은 '양성 평등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이 된다.


수십년간 익숙한 목소리가 아닌 새로운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순탄할 수는 없다. 그건 어려운 일이다. 일정한 고통과 상처를 감내해야 한다. 정희진도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가려면(특히 남성에게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수반돼야 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22p)


나는 이 책의 머리말을 상당히 좋아한다. 내가 읽은 머리말이 붙은 책 중에서는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데, 정희진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80%는 이미 머리말에 담겨 있다고 본다. 그 뒤로 펼쳐지는 1부와 2부, 3부의 이야기들은 머리말에서 정희진이 이야기한 횡단의 정치로서 페미니즘을 보완 설명할 뿐이다. 머리말에서 좋았던 문장들 몇몇을 발췌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도너 해러웨이는 이렇게 말한다. "목격은 언제나 해석적인, 우발적인, 예약된, 속기 쉬운 참여입니다. 목격이란 증언하는 것이고, 서서 공공연하게 자신이 본 것과 기술한 것을 해명하는 것이며, 자신이 본 것과 기술한 것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입니다."(22p)


모든 물음은 질문하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질문 내용은 질문자의 입장과 관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물음에는 이미 특정한 형태의 답이 전제되어 있다. 질문은 질문하는 사람의 교양과 예의뿐 아니라 권력을 드러낸다.(26p)


돌에 부딪친 물이 크고 작은 포말을 일으킬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며, 눈을 감고 돌아다니다가 벽에 닿으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알게 된다. 이처럼 앎은 경계와의 만남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편안한 상태에서 앎이란 가능하지 않다. (34p)


얼마 전 시사인에서 여성 혐오 기획 기사를 냈다. 일베에 드러난 여성 혐오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 기사였다. 한국 인터넷 문화에서 갈수록 거세지는 여성 혐오 문화의 뿌리를 드러내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한 기획이었다.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 교수를 인용하며 일베의 여성 혐오 전략을 분석한 것은 곱씹어봐도 이해되지 않는 무리수다. 시사인 스스로 지적했듯이 그런 '절망적인 전략'을 펼칠 이유는 누구에게도 없다.


일베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여성 혐오 문제와 화해의 가능성, 방법에 대한 고민은 이제부터 우리의 몫이다. 이 문제는 로슬링 교수를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의 앞날을 좌우할 중차대한 문제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정희진의 이 책이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데 작은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글들


그러므로 위안부 누드는 황당한 사건이 아니라, 남성의 이윤과 쾌락을 보장하려는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위안부' 누드여서 문제인가, 위안부 '누드'여서 문제인가? 누드의 소재가 위안부였기 때문에 분노한 것이라면, 일반 누드와 포르노그래피는 문제가 없다는 것일까.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와 폭력이 이처럼 성애화 될 때, 남성 권력은 보이지 않게 되고 여성 억압은 생물학적 질서로 간주되어 비정치화된다.(93p)


한국은 강력한 가족주의 사회지만, 당위적으로 가족의 가치를 강요하고 신격화할 뿐이다. 기러기 아빠는 이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이다. 이는 남성이 희생하는 현상이라기보다는, 가족이 자녀 교육의 성공, 즉 출세 지상주의와 경쟁 논리로 가득 찬 공적 영역에 얼마나 종속적인지를 보여준다.(120p)


인권의 보편주의는 근대적 인권 개념의 성과이자 한계다. 인권의 보편성은 억압 세력의 지배 전략이 될 수도 있다. "빵을 훔친 사람은 징역에 처한다"라는 법은 평등하지 않다. 부자는 빵을 훔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법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이처럼 개인이 갖는 권력의 내용은 그 개인이 속해 있는 성별, 인종, 계급 등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160p)


폭력은 원래 이유가 없다. 권력 행동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폭력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사랑과 폭력은 원래 같은 의미지만, 특히 상대방의 상태와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더욱 비슷하다. 사랑이나 폭력은 모두 자기 확신 행위이지 상대방의 매력이나 잘못과는 무관하다.(199p)


"통일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여럿이 되는 것이다."(239p)

-조한혜정


혁명은 이름과 의식을 바꾸는 것이지만, 개혁은 몸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개혁은 글자 그대로 살갗을 벗기는 것. 피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어느 시대나 개혁을 외치는 지도층 스스로 피 흘리는 고통을 보여줄 때,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2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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