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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는
산수가 아닌 신학에서 일어난다

세 번째 리뷰_버트런드 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

by 이기자

영화 킹스맨은 영국 신사(English Gentleman)의 이미지를 멋지게 살려냈다. 콜린 퍼스의 영국 신사는 전 세계 남자들의 우상이 됐다. 에그시가 영국 신사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보며 아마 많은 남자들이 '나 또한 영국 신사가 될 수 있으리'를 속으로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 신사 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영국 신사들의 영어 발음을 흉내 내는 일은 둘째 치고, 콜린 퍼스가 멋지게 휘두르던 우산(long umbrellas)이나 사자고 마음 먹었지만 우리 돈으로 60만원이나 하는 가격표에 다들 두 손 두 발 들었으리라 짐작한다.


콜린 퍼스나 에그시를 따라 하기 어렵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영국 신사가 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단돈 1만7000원에 영국 신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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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사 버트런드 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를 읽어보자. 이 책에 영국 신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영국의 귀족 집안 출신이다. 1872년 웨일스에서 태어난 러셀의 할아버지는 존 러셀 경. 영국 수상을 두 차례나 역임한 인물이다. 러셀은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니 의심의 여지 없는 영국 귀족, 영국 신사의 전형이다.


하지만 출신성분만으로 러셀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러셀이 신사의 교범이 되는 것은 그의 핏줄보다는 사상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 그의 명언 하나부터 시작하자.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겠다."


러셀은 20세기 최고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였다. 화이트헤드와 함께 집필한 '수학원론'으로 애매모호하던 수학을 논리학 위에 올렸고, 베스트셀러가 된 '서양철학사'는 러셀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겼다. 그는 여왕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성해방운동에 나섰고, 반전운동으로 대중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러셀 스스로도 자신의 입지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는 사실은 이 책의 제목 '인기 없는 에세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제목은 당대 서평가들에 대한 풍자와 조소가 강하게 담겨 있긴 하지만.


인기 없는 에세이는 사회와 정부, 정치, 지식에 대한 러셀의 생각과 사상이 깊이 스며든 책이다. 위트와 유머로 무장한 철학자의 책 답게 짧지 않은 분량에도 한숨에 읽을 수 있다.


정부, 정치에 관해서는 이런 문장이 흥미로웠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시민 집단을 길러내는 일도 쉽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렇게 하고자 하는 정부는 드물다. 그러한 시민들은 정부 최고위층에 있는 정치가들에게 존경심을 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200p)

러셀은 무정부주의자를 자청했다. 그는 현대 사회에 거대해진 정부의 힘이 사람들에게 잘못된 믿음을 전파한다고 생각한다. 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독일, 소련 정부가 보여준 행태가 그 예다. 그는 정신이 자유로운 시민 집단이 정부에 의해 붕괴될 것을 걱정한다. 러셀은 교육이 해결책이 되리라 보지만 현대의 교육자들은 정부가 만들어낸 '헛소리'들을 주입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만약 관찰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당신 스스로 관찰하라. 아리스토텔레스는 부인에게 치아 개수를 좀 세어 볼 테니 입을 벌리고 있으라고 부탁하는 것만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치아 개수가 더 적다고 서술하는 실수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저지르기 쉬운 치명적인 실수이다."(217p)

러셀은 '논리적으로 행동했던 철학자'다. 그는 관찰하고 증명했다. 수학을 대할 때 그가 보였던 태도, 그 자세는 정부의 선전을 대할 때 자유정신을 지닌 시민이 가져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관찰을 통해 획득된 지식에서는 차이가 차별로 확장될 여지가 없다. 반면, 편견을 통해 확고해진 견해는 차이를 차별로 만든다. 러셀은 이 명제를 "박해는 산수가 아닌 신학에서 일어난다"는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제시한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특정한 독단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 하나는 당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을 벗어나 다른 집단이 지닌 견해를 알아보는 것이다. 당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소속된 신문을 찾아 읽도록 하라. 당신이 보기에 그 사람들과 신문이 미쳤거나 심술궂거나 사악하다면, 당신 역시 그들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양쪽 모두 옳을 수는 있지만 양쪽 모두 틀릴 수는 없다."(219p)

특별히 21세기 대한민국에 필요한 문장이다. 가능하다면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예쁜 글귀보다는 이런 글을 걸어두고 싶다. 페이스북이고 트위터고 내가 맞다는 확신만이 넘쳐난다. '양쪽 모두 옳을 수는 있지만 양쪽 모두 틀릴 수는 없다'는 러셀의 글이 이들에게 울림을 줬으면 싶다.


마지막으로 인용할 글은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내가 특별히 경애하는 여성 예언자가 한 명 있다. 1820년 당시 미국 뉴욕 주 북부의 호숫가에 살던 여성이다. 그녀는 수많은 신도들에게 자신이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선언한 다음, 날짜를 정하고 그날 오전 11시에 실제로 보여 주겠노라고 제안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독실한 신도 수천명이 호숫가에 모여들었다. 그녀는 신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 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믿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렇다면 굳이 보여 줄 필요가 없겠군요" 그리하여 신도들은 모두 큰 가르침을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230p,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中)


이 책은 러셀이 직접 쓴 자신의 부고로 끝이 난다.


"그는 이미 숨을 거둔 시대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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