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쓴 글을 다시 꺼내본다. 세월호가 아직 수면 위에 고개를 들고 있을 때, 지척지간까지 갔던 날의 기록이다. 2년 사이 많은 게 변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오늘 이 순간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운이 좋았을 따름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그 사이 기자를 그만뒀고 책을 더 많이 읽고 잠을 더 많이 잔다. 내가 쓴 글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렸고, 내가 읽은 글에서 내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로 잡을 단서를 얻으려 노력할 따름이다. 2년 전의 글을 다시 꺼내 읽는 것은 2년 사이 변하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세월호가 바다 속에 있고, 그 안에는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팽목항에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잊지 않기 위해 2년 전 글을 다시 읽고 다시 다짐한다.
2014년 4월 17일
목포 해경 경비정 P-92호는 2012년 전국 해경 경비정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과를 낸 배다. 경장인 전치헌 경위는 대통령 표창장까지 받았다. 작은 배였지만 한국 영해를 호시탐탐 엿보는 중국 어선들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런 P-92호를 이끌고 있는 전 경위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더 이상 전진하는 것은 무리다. 사고 해역의 파도가 너무 세기 때문에 작은 선박으로는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사고 해역에 가야겠는가?" 라고 말했다.
기자들끼리 한바탕 토론이 벌어진 사이 경비정에 타고 있던 선원들은 선실로 내려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짐을 왜 정리하냐고 묻자 "사고 해역에 들어갈 경우 배에 실려 있는 짐이나 집기가 다 떨어질 것이다. 미리 바닥으로 내려놓고 고정시켜놔야 한다"고 말했다. 대답을 마친 선원은 벽에 달려 있던 TV를 힘들게 해체해 침대 위에 올려놨다. 탁자 위에 어지럽게 놓여 있던 기자들의 카메라들도 모두 바닥으로 향했다.
희망도 그렇게 꺼지는 듯 했다. 사고 해역은 초속 12m의 강풍이 불고 있었다. 바다 속의 조류도 무서웠지만, 당장 바다 위의 바람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기자가 타고 있던 P-92 같은 50톤짜리 배로는 근처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큰 배들이 사고 해역을 지키고 있었지만, 수중 수색을 할 잠수요원들을 바다로 보낼 수 없었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날씨는 오전부터 심상치 않았다. 진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울돌목 기념지가 있었다. 수백년전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줬던 그 물살이 이제는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로 들어서자 가늘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굵어져 있었다. 처음 출항 예정지는 쉬미항. 오후 2시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남는 배가 많지 않아 1시간반을 기다렸다. 오후 3시반에 배가 온다는 연락이 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배는 오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쉬미항이 너무 좁아 이렇게 비바람이 거센 날에는 해경 경비정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항구에서 배를 기다릴 때 인근 주민이 "이런 날에는 돈을 줘도 안 나간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다시 30분 차를 달려 서망항에 도착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팽목항 바로 옆에 있는 항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 해역으로 출발한 항구이기도 하다. 비는 어느새 더 굵어져 있었다. 서둘러 비를 피해 선실로 들어갔다. 좁은 배 안에 15명 정도의 기자들이 탔다. 선원까지 합치면 20명 정도.
배는 아무런 설명 없이 바다로 나아갔고, 조용한 경비정에는 TV에서 나오는 세월호 침몰 소식만 가득했다. 박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들을 만난 이야기, 실종자 가족들의 거센 항의와 욕설, 결국 이런 일이 나면 나랏밥 먹는 사람이 할 일은 피해자들의 욕을 대신 먹어주는 것밖에 없지 않냐는 푸념 섞인 누군가의 이야기만 들렸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나아가던 배는 갑자기 멈춰섰다. 기름이 떨어져 급유선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배가 멈춰선 곳은 서거차도. 사고 해역에서 30분 남짓한 곳이었다. 기름을 다 넣고 배가 출발하자 그럭저럭 버틸만 하던 배의 요동이 급격하게 커졌다. 맹골군도에 들어선 것이다. 거짓말처럼 배가 위아래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배에 타고 있던 기자와 선원들도 부쩍 긴장한 티가 났다.
더 이상 가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때였다. 사고 해역을 20분 남겨놓고 더 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게 여객선 사고 현장 르포는 끝이 났다. TV에선 세월호에 생명줄을 붙이기 위해 파도를 뚫고 뛰어드는 잠수요원의 모습이 반복해 나왔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세월호 선장의 뒷모습도 반복해 나왔다. 회항한 배가 서망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 다시 깜깜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