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사람에게

by 빛나는 지금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자꾸 묻게 된다.


나는 어느 쪽인가.
승자인가, 패자인가.
좁은 길인가, 넓은 길인가.

그 질문은 진지하지만
사람을 살리기보다
자주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나는 오랫동안
이 질문들과 씨름해왔다.
그리고 거의 반사적으로

늘 후자 쪽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여겼다.


어린 시절,
천국과 지옥 중
내 마음을 더 크게 떨리게 했던 것은
사실 언제나 지옥이었다.
그 떨림은 경외라기보다
두려움에 가까웠다.


우리는 어쩌면

‘두려움’에 지독히도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참 연약한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게 아닐까.

죽기를 두려워해
한 평생 종노릇하던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서.


그럼에도
그분을 안다고 여긴 지 오래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자주
나 자신을 쪼개고, 분류하고,
어딘가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마음이 불안해질 때,
속해야 할 자리가 어딘지 몰라
더 무서워질 때,
나는 조심스레
질문을 바꿔본다.

“나는 어느 편인가?”를
집요하게 묻기보다는
“하나님은 지금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라고.


어쩌면
이렇게 질문이 바뀌었다는 것 자체가
내 지난 세월의
유일한 성장의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그 질문에 대해
내가 붙잡게 된
성경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


이 말은
끝까지 해낸 사람에게 주어진 상도 아니고,
포기한 사람에게 내려진
무서운 판결도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지금 흔들리고 있는 사람에게,
아직 다 알지 못하고
자주 넘어지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사람에게
건네진 말처럼 들린다.


내가 체험하고,
조금씩 이해하게 된 신앙은
분류가 아니라 관계이고,
기준은 서열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혹은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시선에
더 가까웠다.


하나님은
우리를 나누기보다
오늘도 여전히
부르고 계신 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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