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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Jun 14. 2024

로마에서의 잠 못 들던 첫날밤.

로마는 로마였다.

밤새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잠을 푹 자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우선 첫 번째는 침대가 불편했다. 이탈리아의 숙소 중에 가장 비싼 가격에 예약한 숙소였다. 위치와 베드 타입만 보고 결정하긴 했지만, 집에 들어오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매우 오래된 건물에 잘 관리되지 않은 집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남편이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물티슈로 방걸레질을 했다. 우리 집도 물걸레로 직접 방을 닦지는 않았는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다. 방을 닦고 선반 및 식탁을 닦았다. 방과 거실에 모두 에어컨이 있었고 지금까지의 숙소 중 에어컨의 성능이 가장 좋았지만, 오래된 건물이라 두 개의 에어컨을 틀고 부엌의 인덕션 레인지를 켜면 두꺼비집이 내려갔다. 저녁으로 간단히 파스타나 해 먹으려던 우리 가족은 처음 보는 건물의 두꺼비집을 찾아 전기를 다시 올려야 했다. 체크인할 때 우리에게 아파트를 소개했던 너무나 유쾌했던 집주인이 괜히 미워졌다. 한국을 잘 안다고 태권도를 좋아한다며 태권도 선수 이름을 대며 우리에게 알은체를 했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꼭 가보고 싶다던 집주인은 그냥 장사치인 것인가 하며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안방에 누워 아이를 재우고 내가 예약한 사이트의 리뷰들을 다시금 읽어봤다. 최근의 리뷰에서도 위치가 정말 좋다는 이야기. 별을 10개까지 올릴 수 있는 사이트에서 별이 9개가 넘는 집이었다. 로마의 물가가 비싼 건지, 가장 비싼 돈으로 가장 안 좋은 숙소를 고른 것 같아 속이 쓰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일은 새벽부터 하는 바티칸 투어의 날. 깜빡 깊게 잠들어 투어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 봐 선잠이 들어도 이내 깨어 푹 잠들지 못했다.



새벽 6시 30분에 집합하는 투어였다. 일찍 시작하는 무리한 일정임에도 선택한 것은 가장 소규모 투어였기 때문이다. 사람 많은 바티칸에서 초등학생 막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싶어 소규모 투어를 신청했던 것이다. 구글맵에 대충 찍어봐도 20-30분 정도 걸리는 바티칸이니 아침에 준비하고 간단히 요기라도 하고 나가려면 5시 전에는 일어나야 할 터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피곤한데도 깊이 잠들지 못했다. 사실 바티칸이고 뭐고 피렌체에 더 오래 있을 걸. 돌로미티를 더 즐기다 올걸. 하며 내내 후회가 밀려들었다.


여행을 계획할 때에도 가장 고민했던 곳은 로마였다. 콜로세움이며 바티칸이며 아이들은 모두 기대했던 곳이지만, 나는 로마의 치안이 걱정이었다. 마지막 도시로 로마를 선택한 것도 만약에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마지막에 생기는 것이 타격감이 가장 적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면 로마에 대한 나의 두려움이 충분히 설명이 될까.


너무 좋았던 볼차노에서 차털이도 당했던 우리였기에 이탈리아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되뇌던 터라 삐걱거리는 침대, 지저분한 발코니, 좁고 배수가 잘 안 되는 화장실이 다 마음에 안 들었다.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면 가장 나쁜 후기를 써야만 할 것 같은 밤이었다. 몇 번이나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새벽녘이 되어 그냥 일어나기로 하고 거실에 나가보니 더 불편한 소파 베드에서 자고 있던 큰애와 남편도 부스스 일어난다. 걱정과 불안한 맘을 들키면 예민한 큰애 역시 남은 여행을 즐기지 못할 것 같아 애써 웃으며 아침 인사를 전했다.


가족들과 대충 준비를 마치고 택시 어플을 켜서 택시를 불러 탔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 관광도시 답지 않게 고즈넉하다. 돌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택시의 창문을 조금 내리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넷이 아무 말 없이 긴장하며 가고 있었는데, 평온한 로마는 우리에게 너무 걱정 말라는 듯했고 택시 기사님은 약속된 장소에 친절히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가이드와 함께 바티칸 관광을 마치고 아이들과 근처 식당에서 허겁지겁 피자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나니, 어제 전날부터 내내 머물던 긴장이 조금 덜어지는 기분이다. 새벽부터 나와 피곤함이 역력했던 우리는 미션을 하나 마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다들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구글맵을 켜고 숙소 주소를 찍어보니, 도보 15분이라고 나온다. 로마의 길을 골목이 많아 구글맵에 찍힌 시간보다 더 소요될 것 같았지만, 어차피 딱히 이후에 다른 일정도 없었다. 애들도 배가 부르고 아이스크림으로 기분이 좋아진 터라 모두 쉬이 걸어가 보자고 한다.

천주교 신자인 우리에게 바티칸은 황홀 그 자체였다. 커플 운동화를 맞춰 신은 우리. 가이드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들어 칭찬받던 내 아들들.모두 긴장했기 때문이겠지




아침에 택시를 타고 빙 돌아왔던 길인데, 막상 걸어보니 숙소와 바티칸은 바로 코앞이었다. 이 가까운 거리를 무려 2만 원 가까이 내고 택시를 타고 왔다고 생각하니, 아침의 택시기사가 시종일관 웃으며 친절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래도 낯선 도시의 길들이 아침에 한 번 지나쳐봤다고 이내 익숙하게 느껴지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들어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저녁 먹을거리를 샀다. 그동안의 날들도 저녁은 숙소에서 주로 해 먹었던 우리였다. 그러나 너무 위치가 좋은 곳에 숙소를 잡아서일까. 우리 숙소 주변의 마트에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따위가 많을 뿐 식재료 사기에도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도 와인 한 병에 파스타 재료들을 사고, 막내가 좋아하는 부라타 치즈와 큰 애가 좋아하는 올리브, 그리고 내 영혼을 채워주는 하리보 젤리 등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간식들을 조금 먹었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품이 나온다. 침대 한구석씩을 차지하고 달고 단 낮잠을 잤다. 이 숙소의 유일한 장점이 지금까지의 숙소 중 에어컨이 가장 빵빵하다는 것이었는데, 그 장점이 빛을 발하는 오후였다.


느지막이 일어난 우리는 물을 끓이고 파스타 면을 삶았다. 사온 토마토소스에 갈려있는 고기를 볶아 면에 대충 비벼 먹었는데 다들 배가 고팠던지 허겁지겁 먹어댔다. 저녁을 먹었으니 좀 나가 돌아다녀보고 싶은 용기가 다시 생겼다. 아직 로마의 랜드마크를 하나도 구경하지 못한 우리였다. 집 근처에 있는 트레비 분수 쪽으로 함께 나섰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수천년된 돌길을 두 발로 디뎌 걸으니, 로마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들은 기대와 설렘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무조건 두가지 맛을 먹어야만 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먹었던 젤라또. 트레비 분수에는 밤에도 사람이 넘쳐났다. 활기찬 사람들을 보니 우리의 걱정도 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위치가 좋아 별점이 9개 이상이었던 숙소의 위치는 정말 좋았다. 별점 대비 청결도나 시설이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그건 내가 수천 년 뒤의 관광객이기 때문이었나 보다. 로마의 어떤 곳은 수천 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있기도 했고 로마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지키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간다고도 했다. 그러니 그다지 현대적이지도 않은 숙소가 현대인의 눈을 지닌 내 맘에 들지 않았나 보다. 밤나들이를 마치고 이탈리아 와인을 한 잔 마시고 누우니 어제보다는 마음이 놓인다. 내일은 어떤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이제 많지 않았다. 그래도 서두르지 말고 로마의 매력을 느끼며 남은 시간을 차곡히 채우고 싶어지는 밤이었다.


<표지사진은 바티칸에서 긴 투어 일정을 마치고 먹었던 젤라토. 이상하게 여행 중 용기나 격려가 필요한 때에는 젤라토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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