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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Oct 22. 2023

피렌체에서 로마로.

피렌체에서 두 발로 도장 찍기를 마치고.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날은 별다른 일정 없이 피렌체의 곳곳을 돌아보고 기차를 타고 로마로 이동하기로 했다. 삼일동안 우리의 집이 되어 주었던 피렌체의 아파트는 정말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집안은 지금까지 가장 깨끗하고 단정했다. 하다못해 예쁜 바구니에 다소곳이 올려진 욕실 용품만 봐도 주인의 집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체크인 때부터 약간 깐깐하다 느꼈던 집주인이 실은 애정을 듬뿍 쏟아 관리하고 있는 집이라는 생각에 체크아웃 때는 뒷정리는 말끔한지 살펴보게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파트를 빌리니 호텔보다 더 아늑하고 넓어 좋긴 하지만 체크아웃 후에 짐을 맡길 수 없는 점은 약간 불편했다. 그래도 역 근처에는 짐을 맡아주는 곳들이 있었으니 우리의 캐리어들을 맡기고 가벼워진 몸으로 피렌체를 둘러보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 묶었던 아파트는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없었는데 우리 집은 5층이었기에 캐리어를 손수 들고 내려야 했다. 그런데 큰 기대 안 했던 아들이 힘이 되어 주었다. 남편 곁에서 자기가 든다며 캐리어를 들고 내리는 아들의 뒷모습이 든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지만 안쓰럽기도 했다. 낑낑대는 , 그러나 끝까지 캐리어를 사수하던 아이의 모습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의 문!과 짐을 묵묵히 낑낑대며 들던 큰아들



짐을 맡기고 나와 아이가 가고 싶다던 ‘카페 질리’에 가서 우선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이탈리아에 들어온 이래로 하루에도 몇 잔씩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우리나라에서는 카페에서 단 한 번도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적이 없었는데 이탈리아니까. 하고 처음 마셔본 에스프레소에 우리 모두 푹 빠졌다. 그래서 거의 매일 하루에도 몇 잔씩 에스프레소를 마셔대던 우리였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소품으로도 이미 오래된 카페임을 보여주던 카페 질리는 실제로도 1733년부터 영업한 카페라고 했다. 1733년이면 우리나라로는 조선 시대였는데 우리나라는 그 시대에 있던 상점 중에 단 한 군데라도 남아 있는 곳이 있으려나 하고 생각하니 카페의 역사가 새삼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탈리아에서 오래되었다는 어떤 것을 만나게 되면 그 시기의 우리나라를 떠올려보고 그 시절의 유물이나 유적지를 함께 떠올려봤을 때 오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자부심이 가끔은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에스프레소의 매력에 빠졌다.



카페의 바깥으로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카페 안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 고즈넉하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 좋았다. 커피를 즐기지 않는 막내가 물론 빵과 음료를 마시고 있긴 했지만, 막내가 좋아할 디저트도 사주고 싶었다. 피렌체에 있는 젤라토 맛집들을 도장깨는 기분으로 돌아다니던 우리였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집이 있어 함께 걸어가 보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두오모 성당을 한 번 더 올려다보았다. 오전이라 크게 덥지 않은 피렌체의 날씨는 상쾌하기 그지없었고, 청명한 하늘과 두오모 성당은 그림처럼 예뻤다. 두오모를 뒤로 하고 찾아간 젤라토 집에서 우리는 그토록 찾던 리소(쌀) 맛의 젤라토를 발견했고 마지막을 즐겼다. 이제 피렌체에서 가고 싶은 곳은 다 가 본 것 같다고 생각하니 떠날 시간이 된 것 같이 느껴졌다. 매일 들리던 우리의 피렌체 기사식당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피렌체에서 떠날 채비를 마쳤다.


역에 도착해서 보니 딱 우리 열차만 연착이 되었다. 고작 한 시간이었지만 일정이 갑자기 꼬인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피렌체에 더 머물고 싶어 하는 만큼 피렌체도 우리를 그냥 보내주기 싫은가 보다고 생각하니 한 시간이 단순히 늦춰진 것이 아니라 한 시간을 더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시간을 더 머무르고 기다림 끝에 로마로 가는 기차에 탑승해서 피렌체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다. 여행 중에 어떤 도시는 인상적이었던 그림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어떤 분위기나, 건물, 냄새로도 기억되었는데 피렌체는 나에게 주황색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두오모에 올라가서 내려다본 주황빛의 지붕들. 미켈란젤로 언덕에 앉아지는 해를 바라보며 주황빛으로 물든 피렌체 시내가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내려다본 피렌체 시내, 숙소 근처로 오니 어느덧 해가 지고 더 아름다워졌다.

로마의 악명 높은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에 우버를 부르다 핸드폰을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어 우버를 부르지도 않고 그냥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비싼 돈을 내더라도 타기로 했다. 도시 이동 시에는 안전을 가장 우선으로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로마의 숙소로 이동하는데 울퉁불퉁한 돌길의 로마의 도로가 그대로 전해진다. 그제야 꺼낸 핸드폰에서 어느덧 8월임을 알려주고 있다. 7월에 떠난 여행이었는데 끝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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