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Oct 20. 2023

피사에 다녀와서 만난 피렌체의 인생 피자집.

이탈리아에서 처음 먹는 이탈리아 피자.

이탈리아 사람들은 오후 5-7시 정도에는 가벼운 술과 안주를 마시고 보통 8시나 9시 정도에 먹는다고 한다. 즉 우리가 저녁을 먹는 시간에는 보통 가볍게 한 잔 목이나 축이고 우리가 야식을 먹는 시간이 되었을 때 본격적인 식사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피렌체에 와서 이러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저녁 식사 시간을 지키게 되었다. 그래서 어제 두오모에서 내려와 길거리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느지막한 시간에 집 앞 식당에서 스테이크며 파스타와 와인을 곁들여 저녁 식사를 했다. 살짝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랐을 때 우리의 숙소에 들어왔는데 아침부터 미술관에 데리고 다녔던 일정이었기에, 내 딴에는 인심 쓰며

“내일은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돌아다니자!”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둘째가

“엄마 우리 피사 가기로 했잖아. 기차 타고 피사 가야지.”


술이 깼다. 둘째 아이가 얘기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냥 살짝 넘어가려고 했던 피사였건만, 아이는 피사를 꼭 가보고 싶어 했다. 졸린 눈을 부여잡고 기차 사이트에 들어가 네 명의 기차표를 왕복으로 끊은 뒤에야 비로소 다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한다. 얘들아.


아침을 가볍게 먹고 역으로 갔다. 피렌체는 역 이름마저 낭만적이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이라니. 역 근처에서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사들고 역으로 들어갔다. 며칠 뒤 로마에 갈 때에도 이 역에서 출발해야 하니, 미리 역을 알아두는 것도 좋은 것 같았다. 피사까지 가는 기차는 고속열차는 아니고 일반 열차였는데, 따로 열차 좌석 번호가 없다. 그래서 그냥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되는데, 4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공석은 별로 없어 둘씩 나누어 앉으려는데, 한 모녀가 가방을 치워주며 넷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을 만들어 준다. 다 같이 여행객들인데 아이들과 함께 다니다 보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배려를 받게 된다.


사온 젤리를 둘째와 나누어 먹으며 창밖의 이탈리아를 바라본다. 정말 이탈리아 사람들은 색색의 빨래를 거는구나. 어쩜 건물 색을 저렇게 천연 빛깔로 칠했을까. 둘째와 풍경을 구경하며 창밖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덧 피사다.

피사 중앙역과 피사의 사탑 사이에는 강이 흐르고, 강변에는 모형같은 예쁜 집들이 이어져있었다.

피사 역에서 내려 피사의 사탑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여행을 시작한 이래 가장 더운 날이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길을 걸어 피사의 사탑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목에 동대문에서 떼어온 것 같은 모자들을 파는 곳이 있었다. 우리에게 모자를 권하던 남자가 네 명 모두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보고 그냥 환하게 웃는다. 우리도 그저 미소를 보낼 뿐. 피렌체에도 사람이 정말 많았지만 피사는 더 많았다. 하하. 기차에서 내릴 때에는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피사의 사탑 주변에는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다들 피사의 사탑을 피사체로 두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아들들도 피사의 사탑을 손가락으로 드는 사진도, 손바닥에 올려놓는 사진도, 피사의 사탑을 발로 차는 사진까지 여러 포즈를 취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우리도 했다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 들기!

피사의 사탑을 보고 원래는 가볍게라도 점심을 먹으려고 했으나, 너무 뜨거운 날씨에 입맛도 사라졌다. 그저 시원한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뿐이라 다시 기차를 타고 피렌체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피렌체도 관광지지만 피사는 더 관광지인 것 같아 어차피 맛집이랄 것도 없었다. 피사에서는 정말 피사의 사탑만 보고 왔는데 그래서 사실 나는 약간 시시한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돌아와서 둘째가 방학 숙제한 것을 봐주는데, 유럽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로 피사의 사탑을 썼다. 역시 랜드마크의 힘이란. 피사는 시시하지 않았다. 사실 유럽 여행에서 여러 랜드마크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약간 숙제 같은 기분으로 다니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그런 랜드마크를 오래 기억했다. 역시 숙제는 힘이 셌다.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는 둘째와 구글 맵을 켜고 역 근처의 식당을 검색했다. 아직 이탈리아에 와서 제대로 된 피자를 먹지 못한 것 같아 피자집 위주로 검색했는데 마침 역 근처에 미슐랭을 받은 피자집이 있다.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었지만 여행 중이니까, 그리고 점심이니까 가보기로 한다.

트러플이 막 올라가져 있는 이탈리아의 흔한 피자. 마르게리따는 역시는 역시였음


우리 아버님은 맛있는 식당에 다녀오시면 꼭 명함을 가져오신다. 요즘 인터넷 검색하면 전화번호며 주소가 다 나오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명함을 챙겨 놓으신다. 할아버지와 종종 식사하는 우리 아이들도 그런 아버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식당에 갔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면 자기들도 식당 명함을 챙겨 온다. 피렌체로 돌아와 엄청 허기진 상태에서 들어간 역 앞에서 먹었던 피자는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 없었다. 피렌체에서 먹은 나폴리 인증을 받은 피자는 정말 맛있었다. 나는 까르보나라 피자를 먹었는데 트러플도 어찌나 인심 좋게 올라가 있는지. 처음 먹는 맛이었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배까지 부른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낮잠을 한숨 자기로 했는데, 침대에서 내 옆에 누운 둘째가 슬쩍 명함을 보여준다.

“엄마 내가 이거 가져왔어.”

피렌체 피자 맛집 명함은 지금 우리 집 마그네틱들 사이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다시 가야지. 우리를 감동시켰던 그 피자 먹으러. 그때에도 명함을 들고 오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우리 집에 아직도 이 피자집의 명함이 있다고, 웃으며 오늘을 이야기하길. 여행이 끝으로 향할수록 계속 다음을 생각하는 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피렌체에서 로마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