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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May 28. 2023

[출발 전] 유럽으로 떠날 결심

마침내, 남자 셋과 유럽을 갑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초산 연령은 약 32세라는데 나는 사실 그보다 훨씬 빠른 27살에 첫아이를 낳았다. 요새는 다들 늦게 결혼하여 늦게 아이를 낳는 추세이고 내가 결혼하던 그 당시도 그랬다. 가급적 늦게 갈 수 있으면 늦게 가라는 말을 그때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중요한 결정에서 나는 타인의 말을 듣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고 책임지는 편인데, 결혼 역시 나에겐 그랬다.


나는 그렇게 나의 이상형에 가까운 남편을 만나 26세에 결혼하여 27세에 첫아이를, 29세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결혼 후 현실은 꿈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았는데 늦게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렇게 심심할 거라면 아이라도 낳아야겠다는 순진하고도 무지했던 나였다.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르던 그 20대 후반의 시기는, 여자들의 나이로는 황금기였다는 사실이 지나고 나서야 보였다. 그 시기의 친구들은 선후배들은 이곳저곳 여행 다니기에 바빴고 나는 그네들이 부러웠으나 내가 한 선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그런 내색도 잘 비추지 않으려 했다. 그 시기 내가 만든 가족 안에서의 행복도 컸지만,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에 대한 아쉬움도 컸던 시기였다.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업어 간신히 재우고 눕힌 밤. 그 밤에 아이들과 함께 누워 아직 퇴근하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며, 그 시절 내가 했던 마음 휴식은 세계 각국의 여행지를 보는 것이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여행지를 보게 되면 이런 곳은 아이들과 함께 갈 수도 있겠다. 약 3년 정도만 더 키우면,,, 이런 곳은 애들이 10살은 되어야 갈 수 있겠지? 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당장은 엄두가 안나도 훗날 가고 싶은 여행지는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도 했다. 육아가 힘들고 지칠 때는 장바구니에 희망 여행지들이 더 많이 쌓여 갔는데 대부분은 유럽의 국가들이어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갓난아이들과 언제 갈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었다.  단군신화에 보면 곰이 인간이 되기 위해 동굴 속에서 백일의 시간 동안 빛도 없이 쑥과 마늘만을 먹고 버티는 통과의례가 있는데 곰도 아마 그 시간 동안 바깥에서 인간으로 살게 될 날들을 꿈꾸며 기다렸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시기 그런 상상과 기대로 버텼다.  

아이 둘이 자라면서 자동차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용기를 내어 제주도도, 괌도 방콕도 다녀왔다. 하지만 조금 더 멀리 멀리를 꿈꾸며 늘 망설였던 그곳은 사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었다. 유럽은 걷는 일도 많고 박물관이나 미술관등을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좋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에 담아만 두었을 뿐 아이들과 그곳에 있다는 상상은 차마 용기 있게 발권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코로나 직전 두 아이가 모두 초등학교 학생일 때,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바다가 없는 나라는 가고 싶지 않다는 아들의 말에 유럽의 여행지는 또다시 미루어 두고 하와이로 떠났다.


생각해 보면, 매년 국내선이나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났던 십여 년이었다. 날 것의 육아를 하던 초창기 3-4년을 제외하고는 가까운 제주나 동남아, 멀리는 하와이까지 소소히 여행의 행복을 누리며 떠나왔지만, 나는 내내 떠나지 못했다는 마음에 묶여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진정으로 떠나고 싶은 곳은 유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전 세계에 코로나라는 희대의 역병이 돌기 시작했고 팬데믹으로 발이 묶인 여행자들은 또다시 여행지들을 꿈꾸고 그리워했고 나 역시 그저 마음속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온 세상에 생채기를 남기고 삼 년 여정도 만에 사라졌지만, 그 사이 우리 아이들을 무럭무럭 자라나 슬슬 사춘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제 또 미루면 영영 넷이 유럽으로 떠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과 결혼 후 거의 처음으로 남편이 여름에 긴 휴가를 낼 수 있게 되어 만들어진 시간의 여유로 오랜 시간 내 마음속 여행 장바구니에 담겨 있었던 유럽의 항공권을 용기 내 발권하였다. 모르겠다. 나도. 모아둔 약간의 돈을 이렇게 쓰는 것이 맞는 건지. 코로나 이후에 어마어마하게 오른 여행비용들을 지불하며 지금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총예산을 세워보니 내 계획보다는 훨씬 초과하는데 이래도 되는 건지.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의 첫여름방학에 이런 긴 휴가는 괜찮은 건지. 다들 수학에 영어에 과학에 올인하여 달려들 텐데…

이러저러한 걱정과 불안이 덤벼들었지만, 워낙 오랜 시간 꿈꾸고 기다렸던 여행이라 더 늦으면 다음은 없다는 생각에 저질러버렸다.


어쩌면, 무모하기도 또 어리석기도 그래서 후회할지도 모르는 여행이지만 함께 3주라는 그 시간이 우리 가족을 어떻게 만들어 줄지 기대도 함께 부푼다. 항상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 건강하게 안전하게 무사히 네 명 모두 성장해서 돌아오는 여정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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